새끼를 동반한 재규어, E-페이스

새끼를 동반한 재규어는 근육에 힘이 들어간 까칠한 면모와 숨은 감성을 보여준다

2018-06-09     최주식 편집장

재규어에게 알파벳 E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무엇보다 1960년대 전설적인 E-타입이 연상되기 때문인데, 근래에 와서는 3시리즈를 겨냥한 XE로 지평을 넓혔다. 그리고 오늘 만나는 E-페이스는 F-페이스 아우격으로, XE가 그랬던 것처럼 콤팩트 SUV 클래스의 상위권을 노린다. 어쨌든 지금 재규어의 E는 과거 우아한 고성능을 뽐내던 상징도 아니고 최신 유행인 전기차를 의미하는 이니셜도 아니다.

 

현실적인 엔트리 모델이라는 바탕이 되면서 영역을 확장해야 하는 무거운 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몇 해 전 F-페이스를 처음 만났을 때, 재규어 관계자로부터 그 이름짓기와 관련해 1950, 60년대 재규어에서 많이 쓰인 슬로건이 그레이스(grace), 페이스(pace), 스페이스(space)라는 말을 들었다. 그중 페이스를 가져온 것은 SUV라는 새 영역에 진출하지만 재규어다운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표현.

 

아무튼 이 페이스라는 단어는 차분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경계심을 담고 있다. 가령 마라톤 같은 달리기 경주에서 페이스를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단 경주뿐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일이다. E-페이스를 처음 만난 건 지하 주차장에서였는데 조금 어두운 가운데서도 한눈에 재규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XE를 그대로 키워놓은 듯 하면서도 어딘가 다르다. F-페이스보다 작아보이지만 많이 작다는 느낌은 아니다. 주차 라인을 꽉 채우고 있다. 눈매는 약간 부드럽고 프론트 그릴 아래 커다란 에어댐 등 하체에 좀 더 힘을 준 모습이다. 키를 눌러 도어잠금을 풀자 바닥으로 비추는 조명에 재규어와 그 뒤를 따르는 새끼 재규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야생의 느낌을 주면서도 정감 있는 분위기. 패밀리 SUV로 아웃도어 활동을 암시하는 감각적 센스다. 두 마리 재규어는 계기판 너머 앞 윈도 끝단에서도 발견된다.

 

 

시선이 갈 때마다 미소 짓게 만든다. 시트와 스티어링 휠, 계기는 전형적인 재규어 스타일. 운전자를 지원하는 최신 첨단장비들도 빠짐없이 실었다. 그런데 로터리 방식이 아닌 스틱 기어 레버가 낯설다. F-타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확실히 신선하다. 물론 F-타입만큼 스포티한 느낌은 아니다. 눈에 띄는 것은 기어 레버 앞뒤로 넉넉한 수납공간. 2개의 USB 포터를 내장한 센터 콘솔 안은 깊숙하다.

 

SUV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퍼포먼스 SUV를 지향하는 데 따른 고민이 묻어난다. 스티어링 휠을 잡고 도로에 나서면 콤팩트한 SUV의 그것보다 키 큰 스포츠카를 모는 분위기다. 약간은 건들거리며 출발하는 SUV 특유의 움직임이지만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순조로운 출발이 이어지고 속도를 높여나가면서 노면에 밀착되는 느낌이 든다. 저속에서 중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차분하고 세련된 움직임을 보여준다.

 

 

주행감각은 전반적으로 앞바퀴굴림 성격을 보여주지만 뒷바퀴에 쉽게 토크를 전달하는 AWD 시스템으로 다양한 주행상황에서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따라서 코너에서 머뭇거리지 않아도 된다. 푸트워크를 조금 활발하게 하면 그에 맞춰 템포를 끌어올려 준다. 응답력이 좋다. 하체는 조금 단단한 편이지만 노면 충격은 잘 잡아준다. 차체 제어가 뛰어나고 보디 롤도 상당히 억제되어 있다.

 

둔턱을 지난 뒤의 충격 흡수는 파장이 짧다. 19인치 굿이어 타이어는 그립이 무난하고 노면 소음이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일정 속도를 넘어가면 바람 소리는 들이치는 편이어서 특별히 조용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보다 속도를 높여갈수록 중심을 잘 잡아가는 차체 안정성이 인상적이다. 밸런스가 좋다. 재규어가 자랑하는 2.0L 인제니움 가솔린엔진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차체를 이끈다.

 

 

4기통 2.0L 터보차저 가솔린엔진은 최고출력 249마력, 최대토크 37.2kg·m의 성능을 낸다. 가솔린엔진이지만 1300rpm부터 최대토크가 발휘되어 디젤엔진처럼 빠른 가속을 돕는다. 최고출력을 뽑아내는 5500rpm 구간도 멀리 있지 않다.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실으면 태도를 돌변하고 집중력을 쏟아 붓는다. 어중간한 속도로 달릴 때는 그다지 특징 없는 성격인 듯하나 가속에 집중하면 다르다. 

 

기어 레버 옆의 주행 모드를 찰칵 손으로 밀고 다이내믹 모드로 바꾸면 계기에 붉은빛이 감돌면서 한층 빠르고 탄탄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주행 모드 전환은 급격하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자동 9단 기어는 기어비의 범위가 넓어 속도에 맞게 효율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빠릿빠릿한 성격은 아니다. 패들 시프트의 조작감도 괜찮지만 스틱 기어인 만큼 수동으로 변속하는 재미가 있다.

 

 

다만 컵홀더에 음료를 놓았을 때는 변속 때 걸리적거린다. 뒷좌석은 XE가 그렇듯 조금 좁아 보인다. 자리에 앉으면 레그룸이 거의 찬다. 체형에 따라 불편할 수 있겠다. 헤드룸에 여유가 있어 답답함을 덜어준다. 등받이가 살짝 뒤로 기울어져 있어 앉아 있으면 생각보다 편안하다. 암레스트를 내리면 컵홀더 두 개의 심플한 구성이다. 12V 아웃렛이 하나 있고 그 아래 작은 수납함. 도어 포켓은 쓸모가 있다.

 

성인이 앉았을 때 여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들이 탔을 때는 충분한 공간이다. 재규어와 새끼 재규어를 그려 놓은 이유가 설명이 된다. 트렁크 공간이 여유 있어 장비를 싣고 아웃도어를 즐기기 좋은 차라는 것을 말한다. 새끼를 동반한 재규어는 근육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누구라도 건드리면 맛을 보여주겠다는 까칠한 자세가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내면에는 깊은 감성이 숨어있다.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은 말하자면 길들이기에 달려있다. 그리고 공인연비 9.0km/L가 좀 아쉽다.

 

 

디젤 모델도 선택지에 놓아두면 어떨까. E-페이스는 확실히 F-페이스가 다소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어필한다. 누가 봐도 재규어이고 재규어다운 달리기와 자세를 보여준다. 그래서 개발 목표와 결과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재규어는 E-페이스를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스포츠카라고 표현한다. 맞다. 근데 누구나 좋아하는 SUV와 재규어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SUV 사이에서 서성댄다.

 

개발 목표와 실전에서의 목표는 항상 일치하는 것일까. 새끼를 동반한 재규어처럼 생각이 많아진다. 어쨌든 경쟁이 치열한 콤팩트 SUV 시장에 매우 다이내믹한 선수가 등장한 것은 틀림없다. 밀림이 들썩이는 듯하다.   

 
 

 

 

JAGUAR E-PACE R-Dynamic SE

가격 6470만원
크기(길이×너비×높이) 4395×1900×1638mm
휠베이스 2681mm 
엔진 직렬 4기통 1998cc 터보 가솔린
최고출력 249마력/5500rpm
최대토크 37.2kg·m/1300-4500rpm
연비(복합) 9.0km/L
변속기 자동 9단
0→시속 100km 가속 7.0초
서스펜션(앞/뒤) 스트럿/인테그럴 링크
브레이크(앞/뒤) V 디스크/디스크
타이어 모두 235/55 R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