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SUV로 돌아온 푸조 2008 SUV

2017-05-26     안정환 에디터

 

푸조의 기존 모델들은 SUV라기보다는 크로스오버에 가까웠다. 스타일은 차체가 높은 해치백에 기반했다. 푸조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SUV 명함이 절실해진 것이다. 그 결과, 2008은 1년 만에 SUV다운 강인한 얼굴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노선변경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모델명 뒤에도 SUV를 ‘떡하니’ 붙였다.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부분변경이지만, 전해지는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바짝 세운 라디에이터 그릴에 빵빵해진 보닛은 듬직한 인상을 주며, 옆 라인 비율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더불어 휠 아치 부분을 검정색 플라스틱 소재로 감싸 진정한 SUV 느낌을 전한다. 실제로 이 부분은 험로주행 시 튀어 오르는 모래 또는 자갈로부터 흠집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존 모델은 외관에 크롬장식이 많았다. 최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 크롬소재를 다양하게 적용하는 추세지만, 이전 2008의 크롬장식은 과해도 너무 과했다. 특히 사이드미러 전체를 감싼 번쩍이는 크롬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신형으로 넘어오면서 크롬장식의 수는 줄었고, 적절하게 배치되어 ‘딱’ 세련된 느낌만 전한다. 뒷모습은 달라진 게 없다. 볼륨감 넘치는 엉덩이에 사자가 발톱으로 할퀸 듯한 테일램프 그대로다. 다행히 기존의 뒷모습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가 없더라도 용서가 된다.

 

외관의 변화에 만족감을 얻고 실내에 들어서자, 익숙한 인테리어가 반긴다. 1년 전에 봤던 실용적이면서도 멋스러운 디자인이다. 이전 2008을 시승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 모습은 신형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변화가 없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이미 2008의 인테리어는 동급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쓴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고 만져보면, 전부 플라스틱, 우레탄, 인조가죽 등 값싼 소재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싸구려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부위별로 다른 소재를 쓰거나, 무늬를 달리해 입체감을 주고 세련된 스타일로 마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공조시스템을 제외한 대부분 기능은 터치식 디스플레이로 조작된다. 이는 버튼류를 최소화해 실내의 심플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터치식 디스플레이를 사용할 때 약간의 지연이 있지만 쓰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실내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스티어링 휠’. 작고 앙증맞은 것이 꼭 카트에서 떼어다 붙인 듯하다. 실제로 손에 감기는 그립감도 적당해 막 잡아 돌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다. 그 위로 불쑥 튀어나온 계기판도 아주 멋스럽다. 속도계와 rpm 게이지 테두리를 파란색 LED 무드등으로 둘러 세련된 분위기를 내고, 높은 위치에 있어 주행 중 보기에도 편리하다. 굳이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같은 비싼 장비를 넣지 않더라도 똑똑한 인테리어 설계를 통해 실용성을 높인 것은 박수칠 만하다.

 

뒷좌석은 앞좌석에 비해 다소 옹색하다. 키 180cm 성인이 앉았을 때는 조금 빠듯하게 느껴진다. 시트는 평평하고, 등받이가 약간 서있는 편이어서 장거리 이동 시에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머리 위로 펼쳐지는 광활한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가 답답함을 덜어준다. 하나의 통유리로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2열 시트를 평평하게 접으면 성인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애인과 함께 누워 밤하늘의 별을 셀 수도 있겠다. 글라스 루프 테두리 또한 파란색의 무드등이 들어가므로 분위기는 만점이다. 


시동은 키를 꽂아 돌려 건다. 계기판의 양쪽 바늘이 튀어올라 반긴다. 그리고 이내 털털거리는 디젤 특유의 소음과 진동이 실내로 밀려온다. 약간 거슬리긴 하지만, 디젤 소형 SUV를 타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스톱앤고’ 시스템이 적용됐기 때문에 정차 시 진동과 소음으로부터 잠깐 벗어날 수는 있다. 또한, 2008의 스톱앤고 시스템은 차가 완전히 정차하기도 전에 작동한다. 이는 연비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차가 멈춰선 뒤 시동이 툭 하고 꺼지는 이질감을 줄인다. 다시 출발할 때에도 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달리는 느낌은 경쾌하다. 페달을 밟는 만큼 엔진이 발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2008에는 직렬 4기통 1.6L 디젤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99마력, 최대토크 25.9kg·m의 성능을 낸다. 그러나 체감되는 출력은 그 이상. 토크 분포를 초반에 몰아넣어 낮은 출력으로도 듬직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고속으로 올라가면 낮은 배기량의 한계가 드러난다. 시속 100km를 넘어서는 순간 계기판 바늘의 움직임은 더디고, 가속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고속에서는 A필러쪽에서 들어오는 풍절음이 상당하다. 한마디로 2008은 도심에 아주 적합한 소형 SUV인 것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MCP 변속기’다. 수동기반 자동변속기로, 전자식으로 클러치를 떼고 붙이는 방식이다. 그래서 변속할 때마다 동력을 차단하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수동변속기의 차를 탈 때처럼 차가 울컥거리는 것.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끌었다가 놓으면서 앞으로 튕겨 나가는 느낌이다. 이는 일반적인 자동변속기에서 느낄 수 없는 부분. 때문에 이질감이 큰 게 사실이고, MCP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낯설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수동변속기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직결감이 우수하고 연비가 좋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수동변속기 차를 타듯이 변속 타이밍에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다 붙였다 하면, 울컥거림이 덜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기어로 맞물린다. 그래서 잘만 하면 운전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차엔 돌릴 맛 나는 작은 직경의 스티어링 휠이 있다. 그런데 모양만 잘 갖춘 게 아니다. 실제 주행에서 느껴지는 조향감각도 아주 좋다. 돌리는 대로 바퀴도 재깍재깍 잘 따라온다. 여기에 탄탄한 서스펜션까지 더해져 핸들링은 SUV를 넘어선다. 고속 코너링 때 롤 억제 능력이 뛰어난데, 노면을 쉽게 놓치지 않고 잘 잡고 달린다. 푸조가 모터스포츠에서 갈고닦은 실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2008과 같은 작은 SUV에도 달리기의 기본기를 꼼꼼하게 전수했다. 

 

부분변경을 거치면서 안전성도 강화됐다. 액티브 시티 브레이크(Active City Brake)라는 첨단 안전 시스템을 탑재해 만약의 충돌 사고를 예방한다. 시속 30km 이하의 속도에서 전방에 추돌 상황이 감지될 경우 스스로 제동을 걸어 차를 멈춰 세우는 기능이다. 다만, 가장 낮은 등급의 모델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2008은 얼굴이 몰라보게 바뀌었지만, 기존의 높은 완성도와 실용성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해치백 이미지에서 듬직한 SUV로 변신했으니 호감도가 상승할게 분명하다. 이제 아기 사자의 사냥 준비는 끝났다. 열심히 잡고, 먹을 일만 남았다. 곧 있으면, 형 사자까지 준비를 마치고 나올 테니 사자 가족은 만찬을 즐길 일만 남았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언제 또 다른 맹수가 덮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