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BMW 750i,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12기통 독일 승용차

2015-12-02     임재현 에디터

1986년 7월 2세대 7시리즈(E32)가 직렬 6기통 엔진을 단 730i와 735i 두 모델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BMW가 12기통 엔진을 개발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BMW 고위 관계자는 “엔지니어들이 최고의 것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막지 않을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소문이 무성했던 ‘12기통 7시리즈’ 750i와 750iL(롱 휠베이스 버전)은 1987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보닛 아래에는 BMW가 새로 개발한 V12 5.0L 엔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은 BMW 최초의 12기통 엔진임과 동시에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메이커가 처음으로 선보인 대량생산 12기통 엔진이기도 했다. 
 

BMW가 V12 엔진 개발에 처음 착수한 것은 1972년 초였다. ‘M33’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은 첫 번째 V12 프로토타입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직렬 6기통 2.5L 엔진 2개를 뱅크 각 60°로 결합한 형태였다. M33은 최고출력 300마력을 냈는데, 무게가 315kg으로 양산화하기엔 너무 무거운 것이 문제였다. 

이에 BMW는 더 작은 6기통 엔진을 사용해 두 번째 프로토타입 ‘M66’을 배기량 3.6L와 4.5L 두 가지 버전으로 개발했다. 4.5L M66은 M33보다 40kg 가벼웠고, 1977년 실시한 벤치 테스트에서 최고출력 275마력을 냈다. 그러나 석유 파동의 여파로 세계 고급차 시장이 얼어붙자 12기통 엔진 개발은 중단되고 만다. 
 

BMW는 1982년 12월 1일 세계 경제가 안정됐다고 판단하고 V12 엔진 개발을 재개했다. 이번엔 단순히 엔진 2개를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불과 10개월 만인 1983년 10월에 BMW 최초의 양산 V12 엔진인 ‘M70’의 개발을 완료하고 벤치 테스트에 들어갔다. 

M70은 325i 등에 들어가는 직렬 6기통 2.5L ‘M20’ 엔진을 기반으로 했다. 실린더 보어 크기(84mm) 등 주요 치수가 같았고, 무게는 240kg이었다. 초기 프로토타입 M33보다 25% 가까이 가벼워진것. 5,200rpm에서 300마력을 발휘해 리터당 60마력의 출력을 냈고, 최대토크는 4,100rpm에서 45.9kg.m이었다. 
 

750i는 냉각 효율을 높이기 위해 730i나 735i보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닛의 공기배출구 크기를 조금씩 키운 것이 특징이다. 테일 파이프도 키드니 그릴을 연상시키는 사각 형태로 6기통 모델과 차별화했다. 

750iL은 당대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지상고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셀프레벨링 리어 서스펜션과 함께 서보트로닉(Servotronic) 파워스티어링도 기본이었다. 전통적인 파워스티어링이 엔진 회전수에 따라 작동하는 것과 달리, 서보트로닉은 주행속도에 대응해 보다 폭넓고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장점이 있다. 
 

또한, 처음으로 일렉트로닉 댐퍼 컨트롤(EDC)을 단 BMW이기도 하다. 2개의 독립식 액추에이터 밸브 시스템을 갖추고 압축력과 반발력 모두 2단계로 조절할 수 있었다. 스포츠 세팅에서는 댐퍼가 약 3배 단단해졌다. 

‘하이라인’(Highline) 패키지를 선택하면, 센터콘솔 냉장고와 크리스털 잔 2개, 뒷좌석 열선 및 통풍 시트, 호두나무 접이식 테이블 등이 추가됐다. 가격은 2만 마르크(현재 화폐 가치로 약 1천330만원)로, 750iL에 하이라인 패키지를 적용하면 가격이 730i의 2배에 달했다. 1991년에는 12기통 7시리즈에 세계 최초로 HID 헤드램프를 적용하기도 했다. 
 

그동안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해 후발업체이자 한 수 아래로 평가되던 BMW는 750i를 계기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750i와 750iL은 제네바모터쇼에서 정식 데뷔하기 전에 이미 3,000대가 사전계약으로 판매됐다. 최고급 대형 세단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750i가 데뷔하고 4년이 지나서야 V12 엔진을 단 600 SEL(S 600의 전신)을 선보였다. 

지난 2012년 9월, BMW는 자사의 V12 엔진 탄생 25주년을 기념해 760Li ‘V12 25년 에디션’을 미국에서 15대 한정 판매했다. 가격은 일반 760Li보다 2만 달러(약 2천400만원) 가까이 비싼 15만9천695달러(약 1억9천만원)였고, 3일 만에 매진됐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