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을 듯한 슈퍼 스포츠, 포르쉐 박스터 GTS

2인승, 미드십, 소프트 톱, 수평대향 6기통, 자연흡기, 뒷바퀴굴림… 설명이 더 필요한가

2015-10-08     임재현 에디터

박스터 GTS의 키를 건네받은 건 장마전선이 북상해 시간당 수십 밀리미터의 강한 비를 뿌리던 날이었다. 게다가 태풍마저 우리나라를 향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둘째 날에도 빗줄기는 거셌고, 그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찬찬히 몰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오자 빗방울이 캔버스 지붕을 후드득후드득 두드렸다. 철제 지붕의 차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낭만적인 빗소리를 들으며 유유히 도로의 흐름을 탔다. 
 

박스터는 1세대(986)와 2세대(987)에 이어 현행 3세대(981)로 진화하면서 디자인과 품질이 크게 향상되고 고급스러워졌다. 예전엔 어딘가 ‘염가판 911’의 인상이 있었지만, 이제는 911과 동등한 수준으로 안팎이 고급스럽다. 휠베이스는 박스터가 911보다 25mm 더 길다. 

박스터 GTS의 실내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고조되는 공간이다. 낮은 시트 포지션과 계기판 중앙을 차지한 새빨간 바탕의 엔진회전계, 실내 곳곳을 덮은 알칸타라,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봉긋 솟아오른 보닛 양쪽까지… 스포츠카다움이 곳곳에 묻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미드십 로드스터는 희귀한 존재다. 몇 가지 안 되는 그것마저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아득히 먼 슈퍼 스포츠카가 대부분. 그에 비해 1억원이 조금 넘는 박스터 GTS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인생이 조금 잘 풀리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희망을 품을 정도의 현실성이랄까. 

셋째 날에야 비로소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사이로 햇살이 내리쬈다. 바짝 마른 도로에 나와 처음으로 지붕을 열었다. 한껏 속도를 높여도 머리 윗부분에서만 바람의 흐름을 느낄 뿐 실내로 바람이 들이치지는 않는다. 지붕은 시속 60km 이내에서 여닫을 수 있어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터널을 앞두고 있을 때 편리하다. 
 

엔진은 박스터 S의 것을 손질해 15마력 끌어올린 수평대향 6기통 3,436cc 자연흡기. 카이맨 GTS보다는 10마력 낮은 330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1,420kg의 몸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면서, 스로틀을 열 때마다 목숨을 걸 필요 없는 적당한 힘이다. 

엔진과 짝을 이룬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 PDK가 뒷바퀴로 동력을 보낸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4.9초로 박스터 S보다 0.1초 빠르고, 카이맨 GTS보다는 0.1초 느리다. 스포트 플러스 모드에서 론치 컨트롤을 사용하면 4.7초로 단축된다. 최고시속은 279km. 
 

엔진은 중간 회전영역의 토크가 풍부해 다루기 쉽고, 박스터 S에 비하면 회전한계를 앞둔 마지막 영역에서 좀 더 날카롭다.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2,000rpm에서 7단까지 시프트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풀 스로틀 상황에선 회전한계인 7,600rpm에서 변속이 이뤄진다. 시속 65, 115, 165km에서 각각 2, 3, 4단으로 변속하는데, 이 구간에서 가감속할 때의 즐거움이 가장 크다. 

솔직히 박스터 S보다 15마력 강력한 힘의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로 극적인 차이는 없다. 하지만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조금씩 개선된 느낌이다. 달리 말해 박스터 S가 가진 장점들을 갈고닦아 좀 더 낫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더 탄탄하고 섬세해진 섀시다. 
 

박스터 GTS에는 PASM(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이 기본으로 달린다. 세팅은 단단한 것(노말)과 더 단단한 것(스포트) 두 가지. PASM 대신 재래식 스포츠 섀시를 고를 수도 있다. 무료 선택품목인 스포츠 섀시를 적용하면 차체가 지면에 20mm 더 가까워진다. 무게중심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지만, 대신 딱딱한 승차감을 견뎌야 한다. 

반면, PASM 사양의 승차감은 매일 출퇴근에 이용해도 부담이 전혀 없는 수준이다. 작은 요철에도 쿵쾅거릴 정도로 하드코어한 스포츠 섀시와 비교해 핸들링에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승차감은 훨씬 유연하다. 서킷은 물론 일상에서도 즐길 수 있는 세팅이다. 
 

스티어링은 빠르고 정교하지만 예민하진 않다. 스티어링 휠의 총 회전수(로크 투 로크)는 2.5회전 안팎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어서 조작할 때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다. 시선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방향이 바뀌는 듯한 민첩한 몸놀림은 카이맨 GTS와 마찬가지. 하지만 전체적인 맛은 박스터 GTS가 약간 부드러운 느낌이다. 

스포트 플러스 모드에서는 스로틀 응답성이 훨씬 날카로워진다. 또한, PSM(포르쉐 스태빌리티 매니지먼트)의 개입이 늦어져 보다 능동적인 조종도 가능하다. PSM은 뒷바퀴가 조금 미끄러져도 세상이 끝날 것처럼 호들갑떨지 않는다. 묵묵히 운전자의 조작을 지켜보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조용히 잠깐 나설 뿐이다. 
 

GTS 전용으로 튜닝한 스포츠 배기 시스템은 박스터 S보다 훨씬 매서운 소리를 낸다. 특히, 4,000~6,000rpm에서 곧게 뻗어가는 고양감에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시프트업 때 펑펑거리고, 배기계통이 달아오르면 액셀 오프 때마다 퍼버벅 하는 블리핑 사운드를 내기도 한다. 

브레이크는 믿음직스럽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제동력이 네 바퀴에 골고루 가해지고, 차체가 착 가라앉으면서 속도계 바늘이 뚝 떨어진다. 어떠한 상황에서 강한 제동을 걸어도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고, 혹사시켜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휘발유를 태우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한동안 시끄럽게 달렸다. 고대 그리스 시인 에우리피데스는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짧다”고 했다. 하지만 박스터 GTS가 주는 쾌락의 농도는 매우 짙어서 그 잔향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박스터 GTS는 부담 없는 선에서 화끈한 실력을 발휘하는 차다. 이 가격대의 스포츠카로는 만점에 가까운 독보적인 존재다. 비록 얼마 전 박스터 스파이더에게 최강의 자리를 넘겨주고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성능·장비·가격이 황금비율을 이룬 GTS의 매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