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의 유래와 의미

2014-09-23     임재현

운전을 하다보면 뒤 유리창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인 차를 흔히 보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아기가 차에 타고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의미이거나 천천히 운행하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최근 국내 블로그와 SNS에서는 ‘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의 진짜 의미’라는 글이 급속히 퍼졌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진 내용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아기를 태우고 가던 부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현장에 출동한 구조요원들은 심하게 찌그러진 차에서 미처 아기를 발견하지 못했고, 의식을 잃은 부부만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폐차장으로 옮겨진 사고차 안에서 아기는 다음날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 사고를 계기로 위급상황 시 아기를 구조해달라는 의미의 스티커를 차에 붙이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그럴싸한 내용이지만, 이것은 지난 2002년 무렵부터 미국에 돌았던 도시전설(확실한 근거가 없는데도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놀라운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 이면에는 비극적인 교통사고가 아니라 한 기업의 성공스토리가 담겨 있다.
 

1980년대 초, 독일 운전자들이 안전운전을 장려하는 표지판을 차 유리창에 달고 다니는 모습에 착안한 패트리샤 브래들리와 헬렌 브래들리는 미국에서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팔았으나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그들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마이클 러너(Michael Lerner)는 3만 달러(약 3천114만원)에 상품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다.그는 1984년 세이프티 퍼스트(Safety 1st)라는 회사를 설립해 ‘아기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라고 쓰인 밝은 노란색의 마른모꼴 표지판을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 1984년 9월 1만 개가 팔렸던 ‘아기가 타고 있어요’ 표지판은 이듬해에는 매달 50만 개씩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표지판의 성공을 발판으로 세이프티 퍼스트는 ‘안전제일’이라는 뜻의 회사명에 걸맞은 다양한 유아용 안전용품들을 선보이며 제품을 다양화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 60개국에 광범위한 유통망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지난 2000년 1억9천500만 달러(약 2천24억원)에 캐나다 도렐(Dorel)에 인수돼 도렐 쥬버나일 그룹(DJG)에 편입됐다. DJG에는 세이프티 퍼스트를 비롯해 맥시코시, 퀴니 등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유아용품 브랜드들이 속해 있다. 세이프티 퍼스트는 여전히 유아용품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업 중 하나다.


현재 국내에는 매우 다양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가 판매 중이다. 저마다 예쁜 디자인과 기발한 문구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스티커를 고르는 노력만큼 아이의 안전을 위한 실제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이를 안고 조수석에 타거나, 심지어 아이를 안은 채 운전을 하는 운전자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아이를 안고 앞좌석에 탑승할 경우, 아이는 경미한 사고에도 에어백의 폭발력에 의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도로교통법 제50조 1항에는 유아(6세 미만 어린이)의 경우 유아보호용 장구(유아용 안전시트)를 장착한 후 좌석안전띠를 매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의무사항이며 위반 시 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의 유래나 배경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의 안전은 예쁜 스티커가 아니라 기본을 지키는 안전운전에 의해 지켜진다는 점이다.


 

‘아기가 어딘가에 타고 있어요’

지난 2008년 아랍에미리트의 한 벤츠 판매사는 신형 GL 클래스 출시에 맞춰 광고에이전시 JWT 두바이에 의뢰해 기존 M 클래스 고객들에게 보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그것은 전통적인 ‘BABY ON BOARD’ 문구 뒤에 ‘SOMEWHERE’를 추가한 ‘아기가 어딘가에 타고 있어요’ 표지판이었다. GL 클래스의 넓은 실내공간을 재치 있게 표현한 이 선물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고객들로부터 32통의 문의전화를 받았으며, 캠페인 시작 한 달 만에 14건의 계약이 성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