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1 타르가의 역사 : 모던 클래식의 재탄생

2014-08-27     임재현

포르쉐는 최신형 911 타르가를 공개하면서 “The 911 Targa is back”이라는 홍보문구를 썼다. 이는 911 타르가가 새로 나왔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진짜 911 타르가’가 돌아왔다.

911 타르가라는 모델이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911 타르가는 국내에서 거의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세계시장에서도 911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겨우 10% 미만으로 911 라인업에서 가장 비인기 모델이었다. 그런데 사실 911 타르가는 911 탄생 초기부터 있었던 ‘원년 멤버’로 역사가 아주 오래된 모델이다.
 

911 타르가는 포르쉐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친손자이자 ‘부치’(Butzi)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지난 2012년에 작고한 그는 포르쉐의 아이콘 911을 만든 ‘911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포르쉐가 356의 후속모델을 개발하던 당시,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전복사고 시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지붕이 완전히 개폐되는 수입산 자동차 판매를 전면금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포르쉐는 컨버터블의 인기가 높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을 포기할 수 없었고, 부치는 지붕의 일부분만 열리는 신개념 자동차를 고안하게 된다. 카브리올레의 대안으로 개발된 911 타르가는 1966년에 처음 공개되고 이듬해 시판됐다. 쿠페가 출시된 지 3년 만이었다.
 

출시 초기 911 타르가는 지붕의 제거 가능 여부, 뒤창의 개폐 여부 및 소재에 따라 스파이더, 벨 에어, 보이지, 하드톱 등 4종류가 있었다. 총 4종이었던 911 타르가 라인업은 초기 생산이 끝나고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된 1968년부터 벨 에어 형태로 단일화됐다. 일반적으로 ‘911 타르가’는 이 형태를 말한다. 탈착식 지붕과 함께 911 타르가의 외관상 특징은 판 형태의 롤바(roll-bar)였다. 이것이 911 타르가의 핵심이기도 하다.

“차체의 일부로 고안되고 설계된 스테인리스강 롤바를 갖춘 이 새로운 포르쉐 모델은 최고 수준의 안전을 제공하면서 오픈 스포츠카의 모든 장점도 유지합니다.” 1967년 911 타르가의 광고 문구다. 오늘날과 달리 차체 강성이 형편없었던 당시 컨버터블은 전복되면 두부손상이나 경추골절 같은 치명적인 중상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자동차였다. 그런 이유로 미국 NHTSA가 컨버터블 전면 판매금지 같은 극단적인 조치까지 염두에 뒀던 것.
 

911 타르가의 롤바는 차체에 조립되는 부품이 아니라 차체의 일부였다. 사실 독특한 지붕은 개발 목적이 아니었다. 차체 중앙에 롤바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강철로 된 911 타르가의 롤바는 차가 뒤집어지거나 구르더라도 생존공간을 확보해 승객의 머리가 지면에 닿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했다. 당시 획기적인 묘안이었던 판 형태의 롤바는 ‘타르가’라는 모델명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태리어인 타르가는 판(plate)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배경도 있다. 바로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 경주다. 타르가 플로리오는 1906년부터 1977년까지 이태리 시실리 섬의 일반도로에서 개최된 자동차 경주대회다. 플로리오는 대회 주최자인 빈센초 플로리오의 성씨. 그는 시실리에서 와인 사업으로 성공을 거둔 부유한 사업가이자 자동차광이었다.

포르쉐는 1956년에 550 스파이더로 첫 출전과 동시에 우승을 차지했고, 1960년부터 1970년까지 10년 간 자그마치 8회나 우승했다. 포르쉐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의 업적을 기념해 신개념 오픈 스포츠카의 이름에 타르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타르가는 제품의 주요특징인 롤바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기도 했으니 금상첨화였다.
 

911 초창기에는 차체 형태가 쿠페와 타르가 2종류였다. 지붕이 완전히 개폐되는 카브리올레가 라인업에 추가된 것은 911이 탄생한 지 21년, 타르가가 출시된 지 18년이나 지난 1984년이다. 911 타르가는 카브리올레가 등장하기까지 18년 동안 911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었고, 모델명은 보통명사화 되어 ‘타르가 지붕’(targa top)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타르가는 좌석 위쪽의 지붕 일부분만 개폐되는 형태의 자동차를 뜻한다. 물론 타르가는 지금도 엄연히 포르쉐의 등록상표다.

911 타르가의 성공은 전 세계 자동차회사들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타르가 지붕을 갖춘 스포츠카들이 대륙을 초월해 전 세계에서 등장했다. 쉐보레 콜벳 쿠페(C4), 페라리 F355 GTS, 혼다 NSX-T, 토요타 수프라 스포트 루프 등이 그것이다. 새로운 자동차 형태를 개척해 전 세계 자동차회사들에 영감을 주고 시장에서도 성공한 911 타르가는 부치가 구상한 원안의 형태 그대로 유지되며 3세대(964)까지 이어지다가 4세대(993)에서 크게 바뀌었다.
 

1980년대 들어 차체 설계기술과 전복사고에 대비한 안전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911 타르가의 핵심이었던 차체 일부의 거대한 롤바의 효용가치는 떨어졌다. 게다가 911 타르가는 애초에 카브리올레의 대안으로 탄생한 모델이었기 때문에 카브리올레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911 탄생 초기부터 줄곧 있었다. 포르쉐는 911 타르가를 출시한 지 18년 만인 1984년에 2세대(930)를 통해 마침내 카브리올레를 라인업에 추가했다.
 

911 타르가는 카브리올레가 등장하기까지 911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911 카브리올레는 출시되자마자 타르가의 판매량을 넘어서며 쿠페 다음으로 인기 있는 모델이 됐으며, 3세대에서는 카브리올레의 판매비중이 타르가를 압도했다. 타르가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고, 포르쉐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911 타르가를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포르쉐는 4세대 911 타르가를 통해 1세대가 그러했듯 세상에 없던 신기한 지붕을 선보였다. 전체가 유리이고, 전동식으로 완전히 개폐되는 지붕이었다. 1954년에 나온 쉐보레 콜벳 버블톱(Bubbletop) 등 이전에도 유리 지붕은 있었으나, 전동식으로 개폐되는 유리 지붕은 4세대 911 타르가가 양산차로는 세계 처음이다. 그로부터 7년 뒤, 벤츠는 E 클래스(W211)에 파노라마 루프를 달았고, 이때부터 대중화가 시작됐다. 현재 국내에서 ‘국민 옵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호도가 높은 파노라마 루프의 인기는 4세대 911 타르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4세대 911을 개발하던 1990년대 초는 포르쉐가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대표모델인 911의 신형 모델을 개발할 여력도 없어서 3세대 모델의 외부 패널 대부분을 4세대에 그대로 쓸 정도였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포르쉐는 시간과 돈을 들여 파노라마 루프라는 신개념 지붕을 개발한 것. 포르쉐가 911 타르가를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파노라마 루프는 5세대(996)를 거쳐 6세대(997)까지 이어졌다.
 

초창기 911 타르가는 어딘가 낭만적인 자동차였다. 하지만 파노라마 루프를 달면서 하이테크 이미지가 덧칠해졌고 예전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잃었다. 자연스레 예전의 타르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사람들을 겨냥해 ‘GTN 오토모티브’라는 독일 업체는 5세대와 6세대 911 카브리올레를 예전의 타르가 스타일로 만들어주는 ‘클래식-하드톱’(Classic-Hardtop)이라는 컨버전 키트를 1만1천305유로에 판매하기도 했다.
 

지난 1월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최신형인 7세대(991) 911 타르가가 공개됐다. 최신형 911 타르가는 1960년대 스타일로 돌아갔다. 타르가 지붕, 철제 롤바, 둥근 뒤창이 예전의 그것이다. “The 911 Targa is back”이라는 포르쉐의 홍보문구는 바로 그런 의미. 신형 911 타르가가 새로 나왔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통 타르가 스타일의 귀환’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스타일은 1960년대의 그것이지만, 지붕의 개폐 방식은 전동식으로 바뀌었다. 신형 911 타르가의 타르가 지붕은 19초 만에 전자동으로 개폐된다. 911 타르가가 세계 최초의 전동식 타르가 지붕은 아니다. 혼다는 1992년에 전동식 타르가 지붕의 CR-X 델 솔을 선보인 바 있다.
 

포르쉐 911은 언제나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하이테크 스포츠카였다. 하지만 성간 이동이라도 할 듯한 동시대 경쟁모델들과는 달리, 911은 과거의 어느 시점과 단단히 연결된 접점이 있는 고전미가 매력인 독특한 스포츠카다. 신형 911 타르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1960년대의 낭만을 담은 21세기의 스포츠카다. 부치가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구상을 계승한 최신형 911 타르가를 보고 기뻐했으리라.
 

포르쉐가 과거를 존중하는 방법

포르쉐는 지난 6월 공랭식 엔진 전용 엔진오일인 ‘포르쉐 클래식 모터오일’(Porsche Classic Motoroil)을 출시했다. 포르쉐 클래식 모터오일은 2종으로, 2.7L 엔진의 356, 914, 911용 20W-50과 3.0L 엔진의 911용 10W-60이 있다. 포르쉐는 독일 바이작의 연구개발센터에서 이를 직접 개발하고 자체 테스트도 실시했다. 356은 1948년에 처음 출시됐으니 자그마치 66년 전에 생산된 차를 위해 엔진오일을 개발한 셈. 과거의 고객들이 제품을 오래 쓰기보다는 신제품으로 빨리 교체해주길 바라는 것이 기업의 당연한 논리다. 그런데 반대로 포르쉐는 단종된 지 최소 15년이 넘은 구형 엔진을 위한 엔진오일을 개발했다. 15년, 30년, 심지어 60년이 넘은 차도 신경 쓰는 이러한 자세, 포르쉐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