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TUAL REALITY

2014-08-26     임재현

탄생 15주년을 맞이한 그란 투리스모와 그 팬을 위해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콘셉트 카를 개발하는 획기적인 콜라보레이션 ‘비전 그란 투리스모’. 그 결과물들이 지금 차례로 도착하고 있다.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자동차로 전 세계 유명 서킷을 달려본다”는 일상적인 체험을 중시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용 비디오 게임 ‘그란 투리스모’가 처음 나온 것이 1997년. 폴리포니 디지털(그란 투리스모 시리즈 제작사) 대표 야마우치 카즈노리의 구상으로 탄생한 그란 투리스모는 전 세계에서 시리즈 누적 7천만 개 이상 판매되며 2013년에 탄생 15주년을 맞이했다.

그란 투리스모 15년 역사의 가장 큰 업적은 이전까지 아이들이나 하는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자동차 경주 게임을 당당히 산업 수준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지금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15년 동안 게임업계와 자동차업계 모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그란 투리스모의 탄생 15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헌정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비전 그란 투리스모’다.

비전 그란 투리스모(이하 비전 GT)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란 투리스모를 디자인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야마우치 카즈노리 대표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의 제안에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화답하면서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비전 GT는 2013년 8월 독일 쾰른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규모의 게임 전시회 ‘게임스컴’(Gamescom)에서 공식 발표됐다. 현재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업체는 완성차 회사와 자동차 디자인 업체, 카로체리아 등을 포함해 총 28곳에 달한다.

 

Mercedes-Benz AMG Vision Gran Turismo

벤츠는 지난 11월 17일 시리즈 최신작 ‘그란 투리스모 6’의 발매일에 앞서 가장 먼저 ‘메르세데스-벤츠 AMG 비전 그란 투리스모’를 공개한 데 이어 11월 19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새로 건설한 연구개발센터 개관식에서 실물 모형을 처음 공개했다. 벤츠 AMG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됐다.

벤츠 디자인총괄 부사장 고든 바그너(Gordon Wagner)는 “벤츠 AMG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관능적인 순수함’이라는 디자인 철학이 잘 스며든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벤츠 디자인 팀은 이 모델에 민첩하고 우아한 ‘사냥 중인 고양이과(科)의 맹수’ 이미지를 담았다. 관능적인 곡선과 힘 있게 솟은 펜더가 특징인 차체는 벤츠의 전통적인 스포츠카 비례를 이어받았다. 보닛과 리어 해치는 금속 로크로 고정되는 방식으로, 클래식 경주용 자동차에 대한 오마주다. 그릴은 유달리 거칠었던 것으로 유명한 1952년 제3회 ‘파나메리카나 대회’(Carrera Panamericana)를 제패한 전설의 300 SL을 연상시킨다. 이 그릴은 LED로 구성돼 자체적으로 발광한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과 카본파이버로 조합된 차체 무게는 1,385kg에 불과하다. V8 5.5L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85마력, 최대토크 81.6kg·m를 발휘한다. 배기음은 AMG의 베테랑 사운드 전문가가 조율했다.

 

BMW Vision Gran Turismo

BMW는 지난 5월 15일 ‘BMW 비전 그란 투리스모’를 공개했다. BMW 브랜드 디자인총괄 카림 하비브(Karim Habib)는 “이 차의 디자인 과정은 평소보다 간소하긴 했지만 실제 차와 별 차이는 없었다”며, “공력 성능이나 다른 기술적인 기능은 단순히 디자인 요소만이 아니라 실제로 기능을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주를 위해 디자인되고 설계됐다는 뜻”이라며, “가상현실을 위해 디자인했지만 이기기 위한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BMW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1970년대 투어링카 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했던 3.0 CSL과 최신형 M235i를 동시에 연상시킨다. 차체 전체를 두른 BMW M 컬러링은 차체의 공력 성능을 강조하는 동시에 BMW 모터스포츠의 영광과 긍지를 표현한다.

직렬 6기통 3.0L 트윈파워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49마력, 최대토크 69.0kg·m을 발휘하며 시퀀셜 6단 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로 힘을 전달한다. 무게는 1,180kg에 불과하고, 다른 BMW 차와 마찬가지로 앞뒤 50:50 무게배분을 실현했다.

BMW 그룹 디자인총괄 부사장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Adrian van Hooydonk)는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순수한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야마우치 씨와 BMW 그룹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비전 GT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Volkswagen GTI Roadster Vision Gran Turismo

BMW에 이어 폭스바겐은 지난 5월 26일 ‘GTI 로드스터 비전 그란 투리스모’를 공개하고, 28일부터 31일까지 오스트리아 라이프니츠 뵈르테제(Wörthersee)에서 개최한 폭스바겐 축제에서 실물 모형을 공개했다. 가상 세계를 위해 디자인한 차가 실제 콘셉트 카로 제작돼 현실에 등장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GTI 로드스터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뵈르테제 축제에서 단연 최고의 관심거리였다.

뵈르테제 축제는 1982년에 폭스바겐 오너들의 팬 미팅 성격으로 시작됐다. 첫해에는 100여 명이 참가했지만 지금은 자그마치 20여만 명 이상 모이는 규모로 성장했다. 폭스바겐은 2006년부터 이 행사를 공식 후원하고 있다.

GTI 로드스터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VR6 3.0L 트윈터보 TSI 엔진으로 최고출력 503마력, 최대토크 67.9kg·m를 발휘하며, 여기에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네바퀴굴림이 짝을 이룬다. 무게는 1,421kg, 0→시속 100km 가속시간 3.5초, 최고시속은 308km에 달한다.

 

Mitsubishi Concept XR-PHEV EVOLUTION Vision Gran Turismo

미쓰비시자동차는 지난 5월 30일 ‘콘셉트 XR-PHEV 에볼루션 비전 그란 투리스모’를 공개했다. 다카르 랠리와 세계랠리선수권대회(WRC) 등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긴 미쓰비시자동차는 디자인팀, 선행 자동차 연구팀, 공력 기술개발팀 등 일반적인 경주용 자동차와 같은 기획개발 체제를 통해 이 콘셉트 카를 만들었다.

스타일링은 2013년 도쿄모터쇼에 출품한 ‘콘셉트 XR-PHEV'를 기반으로 모터스포츠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정교한 경주차로 진화시켰다. 외장디자인 담당 야마모토 슈이치로는 “운동선수의 강인한 신체를 떠올리도록 디자인했다”며,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에서 출발하는 순간의 근육의 긴장감과 순발력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앞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채용했으며, 전기모터가 가진 순발력과 엔진의 강력한 토크를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에 전달한다. 차체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제어하는 ‘S-AWC’(Super All-Wheel Control)는 각 바퀴에 최적의 구동력을 배분한다.

그란 투리스모는 시리즈가 진화할수록 업계와의 협력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전작인 ‘그란 투리스모 5’는 게임 발매 당시 개발 중이었던 닛산 GT-R과 쉐보레 콜벳을 위장막 쓴 상태로 수록한 바 있다. 이에 그란 투리스모 팬들은 아직 출시 전인 신차를 게임 속에서 미리 체험해보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란 투리스모 6’은 지난 12월에는 BMW M4 쿠페, 지난 1월에는 토요타 FT-1 콘셉트를 실차 데뷔와 거의 동시에 추가하기도 했다.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에는 반가운 국산차들도 있다. 지난 2004년에 발매된 ‘그란 투리스모 4’에 국산차로는 처음으로 현대차 7종, 어울림모터스 스피라 프로토타입이 수록되면서 국내 팬들을 기쁘게 했다. ‘그란 투리스모 6’에는 2013년형 현대 제네시스 쿠페 3.8이 추가됐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비전 GT 참가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 전 세계 자동차 회사와 디자인 회사, 카로체리아들이 그란 투리스모만을 위한 콘셉트 카를 개발 중이다. 그란 투리스모 팬들은 지금까지 추가된 4대를 비롯해, 앞으로 추가될 24대에 달하는 비전 GT 콘텐츠와 함께 풍성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다.

 

현실과 가상 세계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그란 투리스모는 2008년부터 닛산자동차와 협력해 ‘GT 아카데미’라는 드라이버 발굴 및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지역 예선을 통과한 각국 우승자들을 모아 실제 레이스 캠프에서 최종 선발 과정을 거치는 방식. 우승자는 닛산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 실제 경주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2008년 제1회 GT 아카데미 우승자 루카스 오도네즈(Lucas Ordonez)는 2011년 르망 24시간 경기에서 LMP2 클래스 2위, 종합 9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FIA GT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현재 2014년 시즌 일본 슈퍼GT에 출전 중이다.

한편, ‘그란 투리스모 6’은 지난 4월 7일 1.06 업데이트를 통해 ‘GPS 데이터 비주얼라이저’ 기능을 추가했다. GPS 데이터 비주얼라이저는 토요타자동차에서 출시한 ‘스포트 드라이브 로거’(Sport Drive Logger)가 달린 차로 서킷을 주행해 기록한 각종 데이터를 USB 메모리를 통해 게임에 불러들여 리플레이 데이터를 생성하는 기능이다.

현재 지원되는 서킷은 후지 스피드웨이, 츠쿠바 서킷, 스즈카 서킷이며, 향후 점차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토요타 스포트 드라이브 로거는 위성 기반 위치 데이터, 페달 입력 값, 스티어링 각도, 기어단수, 엔진 회전수, 주행속도 등을 저장한다. 현재 일본 내수용 86에만 옵션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가격은 9만1천800엔(약 91만원)이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동시에 즐기기 위한 비용은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