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글로리아 - 기아 프라이드

2014-01-28     아이오토카

남들의 머리카락은 희게 변해도 나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근력이 떨어지고 유연했던 몸이 굳어지는 건 남 얘기인 줄만 알았다. 눈이 침침해지면서 노안이 오는 것도,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도,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도 모두 남 얘기인 줄만 알았다고 모두들 말한다.

아마도 그녀, 글로리아도 그랬으리라. 열심히 일하고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무슨 이유에선가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일과 삶을 기뻐하며 평범하고 즐거운 일상을 누리고 싶어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거울에 비친 얼굴엔 탄력이 사라지고 주름이 잡혀가고 있으며 눈이 불편해 찾은 안과에서는 녹내장 결과를 알리며 이제부터 평생, 안약을 매일 한 방울씩 넣으라는 처방을 받는다.

아직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을 즐거워하며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싶은 그녀이지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므로, 더 이상 30대가 아니므로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것도 수월치 않다.

그런 그녀는 출근을 하며 퇴근을 하며 아들과 딸을 만나러 가며 일상 속에서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녀, 글로리아의 차는 기아의 프라이드. 지구의 저 반대편 칠레에서 ‘기아’를 당당히 달고 다니는 프라이드를 보며 어딘가 글로리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치켜세우지 않아도 남들이 큰 존경의 눈길을 주지 않아도 남들과 동등하고 대등하게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는 글로리아. 먼먼 이국 땅 칠레의 거리에서 보이는 기아의 프라이드는 어딘가 그런 그녀를 닮았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글로리아는 운전대를 잡고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런 그녀에게 프라이드는 오롯이 그녀만의 공간이 되어준다. 그녀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그녀의 방이 되어준다. 그녀가 아무런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을 발산할 수 있도록 그녀의, 그녀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준다. 아마도 그녀의 차가 홀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가졌다면 그녀는 차 안에서 기꺼이 춤까지도 추었으리라. 그렇게 글로리아와 그녀의 차는 삶의 부분을 공유한다.

언젠가 한 선배가 말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서글퍼지는 것은 불편한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예전 같으면 하루 이틀 밤을 새 일을 했다고 해서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녹내장 때문에 안약을 매일 넣는 일은 상상 속에서도 없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삼십 분쯤 걸었다고 숨이 턱에 차거나 관절이 아파오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조금 부딪혔다고 멍이 들거나 단지 팔을 크게 휘둘렀을 뿐인데 뼈에 금이 가는 일은 꿈에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나이를 먹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불편한 것을 하나 둘씩 끌어안으며 삶을 채워간다. 글로리아는 그 일상이 쌓여 인생이 되는 과정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금씩 불편해져가는 육신을 그러안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싶고 아직도 자신의 내부에는 젊음이 가득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화사한 시절이 지났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점점 더 불편한 것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곧추세우고 마지막 장면의 글로리아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느끼고 인정하고 사랑한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다.

글: 신지혜(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