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인피니티는 초대형 SUV로 QX가 있지만, 승용차로서는 M이 최고급이다. 인피니티의 M모델은 벤츠의 E클래스와 BMW의 5시리즈와 경쟁하고 있다. 렉서스가 그 등급으로 GS를 가지고 있고, 그 위로 LS를 가진 것에 비하면, M이 최고급인 인피니티의 모델 라인업은 약간 허전한 느낌도 들긴 한다.
오늘 시승한 M30d는 M모델 라인에서 3.0L 디젤 엔진을 얹은 차량으로, 뒷바퀴굴림방식의 준대형 세단이다. M의 디자인은 2009년 초에 인피니티가 제네바모터쇼에 내놓았던 컨셉트카 ‘에센스(Essence)’의 디자인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모델이다. 그런 점에서 에센스와 M은 인피니티 브랜드의 디자인 방향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닛산의 디자인 총괄 CCO 시로 나카무라의 부임 이후 닛산과 인피니티의 디자인은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컨셉트카 에센스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곡선을 살린 모습으로 디자인되었고, 신형 M 역시 그러한 에센스의 디자인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M의 차체 비례는 후드의 길이가 28%에 이르는 고성능 지향의 비례이다. 대체로 후드의 길이 비율은 25%를 기준으로 해서 짧으면 거주성 중심의 이미지를 주고, 그보다 길면 동력성능을 강조한 고성능 차량의 이미지를 주게 된다. 트렁크의 길이 비례 역시 세단형 승용차의 특성을 나타내는 요소인데, 후드 길이의 1/2보다 길면 보수적인 이미지를 주며, 그보다 짧으면 경쾌하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준다. M의 트렁크 비례는 28%의 후드 길이 절반보다 짧은 12%로, 마치 출발선의 육상선수처럼 당장 달려나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아울러 범퍼를 제외한 후드와 트렁크의 시각적인 길이 a와 b를 보면 트렁크가 매우 짧아보이도록 디자인되어 스포티함을 강조한다.
M의 차체 내·외장 디자인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볼륨을 강조한 형태이다. 앞 펜더와 후드의 볼륨이 그렇고, 앞 펜더에서 벨트라인을 따라 흐르는 오목한 면으로 구성된 캐릭터 라인의 형태 또한 볼륨을 강조하고 있다. 수평 리브로 구성된 라디에이터 그릴도 볼륨감을 강조한 곡면 형태이고, 헤드램프는 라디에이터 그릴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모습의 인상은 마치 눈을 부릅뜬 화가 난 듯 공격적인 인상도 준다.
사실 실내의 엔진 소음은 절대적인 소음 수치가 얼마인가에 따라 느껴지는 정도가 다르지만, 국가나 시장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은 다르다. 가령 독일의 아우토반과 같이 상대적으로 고속주행이 많이 요구되는 지역의 운전자들에게는 절대적인 정숙성보다는 엔진음을 얼마나 들려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실제 아우토반의 주행에서는 다른 차들의 흐름에 따라 높은 속도를 내기도 해야 하므로, 소리에 의한 정보 파악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런 요구가 상대적으로 적고 도심지 주행 비중이 높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정숙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느낌은 물론 실내 소음이 적은 것에서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동력계의 전체적인 조화가 잘 이루어진 때문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마치 꽉 조여 놓은 듯 밀도 있는 느낌이 전반적인 주행감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밀도 있는 주행감은 탄력만으로 주행할 때는 마치 차체를 놓아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M30d의 주행감각은 마치 극도로 다듬어 만든 식재료에 미묘하게 달짝지근함이 더해진 일본 음식 특유의 미각이 떠오르는, 시간을 두고 정성들여 다듬은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에서 느끼는 물리적인 승차감은 차의 실내 디자인이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사실 시각적으로 보이는 디자인은 일견 차의 승차감과는 관련이 적은 것 같지만, 우리들이 자동차에서 느끼는 감각은 촉각과 청각은 물론이고 시각의 느낌까지도 종합해서 만들어진다. 때문에, 내․외장 부품의 시각적 형태와 외관 마무리는 차의 승차감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실내 도어 핸들과 베젤, 가니시 등 금속 질감을 가진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서 유럽 고급 승용차들의 질감 중심의 실내 같은 인상을 준다. 게다가 재봉질로 마감된 도어 트림과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합성수지만으로 성형된 보통의 차들과는 다른 질감을 전달해준다.
운전 중 조작을 배려해 돌출된 형태의 센터 페시아는 실제로 운전 시 돌출돼 있지 않은 차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버튼에 새겨진 글자의 크기가 약간 작은 듯하고, 버튼 자체도 얇고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운전 중에 조작하려면 옆의 다른 버튼들이 눌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고, 아주 잠시 동안은 내가 원하는 버튼을 찾기가 어렵기도 했다.
1989년에 등장했던 최초의 인피니티 Q45 모델에서는 일본의 전통 자개공예 장인이 수작업으로 마무리한 내장재 패널을 쓰기도 했었지만, 오늘날의 인피니티는 일본의 전통적 성격 보다는 일본의 디자인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부분이 우리나라 시장에서 일본 차들이 한계 아닌 한계를 가지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로 정치적․역사적 맥락에서 연유하는 민심의 부침(浮沈)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은 일본의 영향력 속에서 시작되었고 발전했다. 물론 오늘날 우리의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은 일본 메이커와 대등한 위치로 올라섰고, 우리나라 차는 일본차와 그 성격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요즘의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의 실무 엔지니어나 디자이너들 중에는 ‘이제 일본차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견해가 맞을지도 모른다.
글 : 구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