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우디 앨런이 파리에 대한 사랑을 늘어놓는 영화 맞다. 오프닝 타이틀부터 파리의 이곳 저곳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펼쳐 놓고 간들간들 공중에 뿌려지는 말랑거리는 음악까지 맘먹고 파리사랑을 영상에 담아냈다. 게다가 시간여행이다. 주인공이 향수를 느끼는 1920년대의 파리를 재현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상상하다가 피식 웃음이 난다.
그 남자의 이름은 길이다.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인데 그런 상업적인 냄새 물씬 풍기는 글보다 순수문학, 소설을 쓰고 싶어 안달이다. 그런 그에게 예술가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1920년대, 그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던 파리는 지난 시대의 환상이자 이상향이다.
그런데 그의 약혼녀 이네즈는 그런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능력을 인정해주고 돈 많이 주는 시나리오를 접고 작가적 능력도 검증받지 못한 채 소설을 쓰려고 하는지, 왜 자신의 부모님이 사주는 근사한 식사나 비싼 의자를 보러 다니고 보석을 사는 것보다 밤거리를 슬슬 걸어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도 없다.
그날도 길은 이네즈와 좀 틀어졌다. 머리를 식히러 밤거리를 걷던 그는 무심히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있는데 홀연히 그의 눈앞에 클래식 푸조가 등장한다. 1928년에 출시된 푸조 랑듀레 184! 아름다운 차군, 생각하고 있는데 차문이 열리더니 흥에 겨운 누군가들이 그를 초대한다. 그리고 얼떨결에 따라간 길은 1920년대에 와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저게 누구야? 핏제럴드 부부,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브뉘엘 게다가 콜 포터의 노래를 직접 듣다니… 그날 이후 길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파리의 자정을 기다린다.
매일 밤 자정에 누군가를 태우고 나타나 길에게 선망의 대상과 함께하는 기회와 경험을 주는 차, 당대 최고의 작가이자 평론가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작품평을 받게 되는 행운을 주는 차,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안겨주는 차인 것이다.
푸조 랑듀레는 길이 선망하던 1920년대의 이미지이자 꿈으로의 통로, 그리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모티브가 된다. 어쨌거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파리는 현재도, 1920년대도, 벨 에포크 시대도 참으로 아름답다.
글․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