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몇 통의 메일을 교환하고, 인터넷을 뒤진 다음 슬로베니아 최초의 슈퍼카를 몰아보기 위해 류브릴냐로 날아갔다. 우리는 종종 등장하는 신생 메이커의 하찮은 제품들을 곧잘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때처럼 쉽게 외면할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가슴에 꽂혔다.
그들은 프로토타입 2대를 만들었는데, 이미 판매되었다. 그리고 돈을 미리 내놓고 기다리는 차가 2대 더 있었다. 일은 벌써 시작됐다. 가격은 어쨌든 30만 유로(약 4억2천200만원). 물론 여기에 옵션이 더해진다. 터무니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노바티오 T500의 역사를 알게 되면 눈이 번쩍 뜨인다.
우리는 류브릴냐 공항에서 재규어 XF 앞좌석에 앉아 T500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갔다. 그곳에서 만난 이 회사의 실세, 알료사 투섹(매력적이고 겸손하며 사려 깊은)이 그 배경을 설명했다.
2004년 투섹은 레이싱에서 물러난 뒤, 고성능 스포츠카 조립 사업을 할 작정이었다. 슬로바키아 동료 딕 크벤트난스키가 만든 K1 어택이 그 대상이었다. 부품 형태로 살 수 있는 차였고, 그는 한 대분을 받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을 멈추고 생각해봤다. V6 엔진 밑에 있는 변속기는 너무 게으르고 높았다. 글라스파이버 보디는 무거웠고, 허용오차는 너무 팍팍했다. 만들고 싶은 차가 아니었다.
그는 그때부터 뜯어고치고 다시 만들고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레노바티오(Renovatio: 재탄생)가 탄생했다. 어택과 함께 쓰는 부품은 20%를 밑돌았다. 게다가 튜브 크로몰리 섀시를 썼지만 23cm 더 길고, 7cm 더 넓고, 1cm 더 낮고 30kg 더 가벼웠다. 그리고 몬데오의 V6 엔진 대신 아우디 RS4 엔진을 섀시 안에 얹고, 아우디의 6단 수동변속기와 짝지어 뒷바퀴를 굴린다.
먼저 우리는 교외의 교통체증을 뚫고 나가야했다. 가벼운 도어를 들어올리고, 얄팍한 좌석에 내려앉았다. 좌석의 길이가 너무 짧았고 너무 높았다. 그러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낮고 긴 좌석을 원한다? 그러면 좀 더 낮고 긴 좌석을 주문하면 된다.
이만한 값이라 해도 30대를 만들 경우, 개발 예산이 대형 메이커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규모 메이커가 할 수 없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유연성과 선택. 나중에 이 문제를 다시 다루기로 하자.
그동안 콕핏을 살펴보았다. 레이싱 머신의 디지털 대시보드가 마련되어 있었다. 발상이 좋았고, 모든 장비가 뛰어났다. 그리고 골고루 잘 담아냈다. 손바느질한 알칸타라가 표면을 장식했고, 작고 네모난 스티어링까지 잘 다듬었다. 그밖에는 모두 카본파이버였다. 상쾌한 스티어링도 마찬가지. 이 차는 기술적으로 세 번째 프로토타입이지만 대체로 감촉이 좋았다.
시동을 걸자 방음처리를 하지 않은 R8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네 번째 프로토타입 이후부터는 RS4 엔진이 아니라 R8의 엔진을 들여놓게 된다. 물론 이 엔진도 사운드는 제대로 나왔다. 변속기도 마찬가지. 우리는 힘차게 달려 나갔다. 투셱이 이 차가 트랙을 겨냥했다고 한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시가지에서는 거칠지 않았지만, 노블 M600보다는 단연 가야르도 슈퍼레제라에 가까웠다. 그래도 더 부드럽기를 바란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
레이싱 드라이버가 개발한 거의 모든 차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파워 브레이크 페달은 힘차게 밟아야 했다. ABS나 트랙션 컨트롤은 없었다. 이 정도의 물량이라면 피할 수 있겠지만 레이스에서 태어난 보쉬 시스템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트랙에 나갈 때는 완전히 루프를 벗겼다. 그러자 엔진 사운드가 훨씬 훌륭했다. 이 아우디 엔진은 대단했다. 그리고 T500은 V8 엔진의 R8보다 더 빠른 느낌이 들었다. 티타늄 배기관 덕택에 한층 우렁차기도 했다.
이때부터 레노바티오는 출중한 밸런스를 과시했다. 엉덩이를 휙 틀 만큼 파워가 있었고, 슬라이딩을 계속했다. 대다수 미드십 엔진 모델보다 훨씬 예측하고 접근하기 쉬웠다. T500 아래에는 철저하게 다스린 섀시가 있다. 나는 몇 시간이나 계속해서 트랙을 달리고 싶었다. 차는 가벼웠고, 브레이크는 언제까지나 페이드를 몰랐다. 전통적인 슈퍼카보다 포르쉐 911 GT3이나 최신형 로터스 엑시지 S에 더 가까운 거동을 보였다. 결국 레노바티오의 위치는 독특했다. 새로운 슈퍼카 수집가들의 의식구조를 내가 아는 척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보기에 너무 많은 슈퍼카들이 비슷한 일을 한다. 도로에서 달리기에는 너무 빠르고, 서킷에서는 소모성 부품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 차는 약간 다르다. 어느 모로나 휼랜드 시퀀셜 박스는 대다수 고객의 환영을 받을 만하다. 게다가 무게를 30kg이나 줄였다. 흐느적거리는 패들을 쓸 수 있고, 트랙에 들어가면 레이스에 대비한 집중력이 강화된다. 완전한 텔레메트리 옵션을 달고 나오는 슈퍼카도 많지 않다. 나는 두 가지를 모두 고르고 싶다. 온 세상을 바꿀 차도, 이탈리아의 기성 슈퍼카 메이커들이 걱정스럽게 흘낏거릴 라이벌도 아니다. 나조차도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이제 나는 투섹의 길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