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팬텀 드롭헤드 쿠페로 달린 크림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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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팬텀 드롭헤드 쿠페로 달린 크림반도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08.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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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보다 공산주의 유산을 더 잘 가려낼 방법이 있을까?

 

낡은 콘크리트 더미가 모터보트 한 척을 세워둘 만한 너비의 물길을 덮고 있었다. 절묘하게 위장된 해상 작업장. 바다에서 산속으로 뚫고 들어가자 나온 이 거대한 동굴은 냉전시대에 해양선박을 수리하던 비밀기지였다. 그리고 그 선박은 모터보트가 아니라 핵잠수함이었다.

공산종주국 소련이 이 해양시설에 붙인 코드네임은 ‘목표 825 GTS’였다. 이 극비 해상동굴기지는 크렘린이 핵폭발도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한 요새이기도 했다. 바로 그곳을 오늘날 가장 유명한 자본주의의 상징이 거침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비록 지금은 멋대로 차를 세울 수 있다고 하지만 굳이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롤스로이스 팬텀 드롭헤드 쿠페의 최신 시리즈 Ⅱ를 몰아보기 위해서다. 흑해연안의 우크라이나 영토, 아름다운 크림반도에 동유럽 언론 기자들이 시승에 참가하려 몰려들었다. 우리고 그들이 시승했던 코스를 따라 달려볼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시승코스는 녹음이 우거진 석회암 절벽과 흑해의 짙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이었다.
 

이 절경을 꾸불꾸불 누비는 해안도로는 군데군데 화사한 휴양지를 지났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명사들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푸틴이 롤스로이스를 어떻게 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때 소련 대통령이었고 카마니아인 독재자 레오니드 브레즈네프는 롤스로이스를 극찬했다. 심지어 1980년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실버 섀도우를 몰다가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그 차는 아직도 남아있고, 수리하지 않은 채 리가 자동차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브레즈네프는 팬텀에도 대단한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의 비밀기지 입구에서 서방인사들이 그 차를 몰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면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팬텀 드롭헤드 쿠페 시리즈 Ⅱ의 가장 중요한 기계적 변화는 오리지널 6단 자동변속기를 8단으로 바꾼 것. 롤스로이스 내부인사에 따르면 그와 함께 주목해야 할 소프트웨어도 있다. 이따금 8단 자동변속기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매끈함과 정밀한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손질을 거듭한 소프트웨어다.
 

변속기 업그레이드는 오늘 우리가 만끽하게 될 드롭헤드 쿠페를 비롯해 모든 팬텀에 적용되었다. 아울러 연비소비량을 줄여 복합연비를 7.3km/L에서 8.1km/L로 끌어올렸다. CO₂ 배출량은 385g/km에서 347g/km로 낮췄다. 그밖의 기계적 변화는 크지 않다. 다만 가벼운 스타일 변화가 있었고, 약간 어색했던 팬텀의 얼굴이 헤드램프 재설계로 개선됐다. 장방형의 새 헤드램프는 LED 방식이고 방향에 따라 움직인다. 그릴 주위도 훨씬 단정해졌다. 아울러 약간 작아진 앞머리는 4도어보다 돌출각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길이와 높이, 그리고 기막히게 손질한 알루미늄 보닛과 티크 목재 대시보드를 보면 비용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능적으로는 (절실하게 필요했던) BMW 아이드라이브(iDrive) 시스템이 개선되었고, 더 큰 스크린과 360° 카메라가 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자동주차 장비를 갖추지 않았고, 놀랍게도 BMW의 탁월한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사각지대 모니터, 충돌보호 시스템은 포함되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롤스로이스 키를 쥐고 섬세한 드롭헤드의 비상하는 여인상으로 다가가자, 몇몇 약점을 금방 잊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차 옆을 너무 멀리 지나가 뒷걸음질 할 수밖에 없었다. 도어의 듬직한 손잡이가 앞쪽에 달려있기 때문. 자동개폐형 패널을 지나 넓은 앞좌석으로 들어가기는 예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호화스러운 가죽 시트에 엉덩이를 들이밀 때 체면을 구길 필요는 없었다.

먼저 3개의 날씬한 크롬 창이나 스티어링의 다채로운 짜임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밖에도 단순한 계기와 대시보드 그리고 넓은 도어를 덮은 아름다운 목재마감에서 감명을 받았다. 직물 루프는 크롬 탭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걷을 수 있다. 성급한 사람들은 그 과정이 지루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티크 목재로 덮인 뒤 데크 아래 접어 넣어야 할 소재의 양을 생각하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기대를 넘어서는 장점은 아무래도 성능이다. 무심코 오른발을 가볍게 밟아도 출발했다. 변속 속도를 올리는 스티어링의 ‘S’ 버튼을 누를 필요가 거의 없었다. 453마력의 V12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아주 능률적으로 파워를 전달했다. 위력적인 추월작전에 필요한 기어비에서 기어가 몇 단 떨어졌지만 별 문제는 아니었다. 실제로 S 버튼을 누르면, 권위 있는 추진력으로 73.2kg·m의 토크를 뿜어냈다.

 

우리는 계속해서 직선구간과 산길에서 그르렁거리는 트럭들을 앞질렀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숙달될 때까지는 반향전환이 약간 불편했다. 따라서 직선코스를 소화하듯 발랄하게 코너를 돌파하려면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했다. 보디 롤링과 사이드월을 비트는 언더스티어가 뒤이어 소화할 메뉴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스티어링을 깔끔하게 다루자 팬텀은 훨씬 단정하게 코너를 돌파했다. 다가오는 코너의 정점 약간 안쪽을 겨냥하면 상당히 만족스런 페이스로 커브를 요리했다.

결국 바라는 대로 모든 파워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2.6톤의 무게가 21인치 휠을 누르고 있어 라인 밖으로 튕겨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묵직한 휠을 통해 떨림이 전달됐다. 스티어링이 함께 떨려 이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2012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텀은 일정한 촉감을 살려줬다. 다행히 보디 구조 자체에서 떨림을 느끼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그 대신 고풍스럽게 장식된 실내를 휘감아 도는 잔잔한 바람을 즐겼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리바디아 궁전. 그곳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소련의 원수 스탈린과 만났다. 2차대전 이후의 유럽대륙과 세계각지의 분쟁지역을 놓고 흥정을 벌였다. 미·영과 소련이 맞선 협상은 녹록치 않았다. 지금 와서는 잘 알려진 대로 두 서방 지도자는 스탈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1945년 2월 이들 지도자는 전후 세계의 운명을 가름하는 협상을 벌였다.

지금은 매력적인 흑해 연안의 항구이자 소련 시대의 휴가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는 방문객들에 알맞은, 그러나 조금은 낡아 보이는 항구다. 롤스로이스 시승코스 반대편에는 초대형 크루즈선과 맞먹는 2천여 객실의 최고급 호텔이 우뚝 서있다. 이 호텔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낡아가기 시작한 팬텀의 허점을 쉽게 덮어줬다. 그리고 몇 가지 전자 운전보조 장치가 21인치 휠의 떨림을 지웠고, 팬텀을 자동차계의 정상으로 밀어 올렸다.

아무튼 우리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비밀 핵잠수함 기지보다 훨씬 정답고 아름답게 조각된 창작품의 재미와 유혹은 황홀했다.

글 · 리처드 브렘너(Richard Bremner)

ROLLS-ROYCE PHANTOM DROPHEAD COUPE
가격  약 5억9천600만원
0→시속 100km 가속 5.6초
최고시속 240km
연비  6.8km/L
CO₂ 배출량 347g/km
무게  2630kg
엔진  V12, 6749cc, 휘발유
구조  프론트, 세로, 네바퀴굴림
최고출력 459마력/5350rpm
최대토크 73.4kg•m/3500rpm
무게당 출력 174마력/톤
리터당 출력 68마력/L
변속기  8단 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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