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메이커 창업의 감격과 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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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메이커 창업의 감격과 난관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08.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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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커는 불과 5년 만에 신흥기업에서 자금 모집의 스타로 떠올랐다.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가 미스터 피스커를 만났다.


50회 생일을 몇 달 앞두고 헨릭 피스커는 모든 카 마니아들의 꿈을 이뤄내고야 말 기세였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직접 설계한 혁명적인 차 피스커 카르마를 만들어 전 세계에 팔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부호와 가장 유명한 인사들이 그 차를 샀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지난 여름 1호차를 받았다.
피스커라는 회사 이름은 미국에서 몇 십 년 만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브랜드였다.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멋진 애플, 나이키 등의 정상급 브랜드 반열에 오를 후보로 알려졌다. 대다수 자동차계 창업자가 일생을 바쳐 이룰 성과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럼에도 헨릭 피스커에 따르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괜찮은 시작에 불과하다. 덴마크 출신 카디자이너 피스커는 장기목표가 단순히 슈퍼카나 만드는 소규모 메이커가 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본질적으로 카르마는 ‘라인업을 찾아내는’ 길잡이다.

지금은 성공한 신생 자동차 메이커가 없는 시대다. 하지만 이 같은 회의론자들에게 피스커는 차를 설계·개발·제작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모델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고자 한다. 피스커 계획의 핵심은 자체 공장에서 수십만 대의 차를 만들 수 있는 본격적인 자동차 회사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면 내일의 친환경 기술을 살려 세계 최고의 재래식 프리미엄 메이커 BMW, 렉서스, 재규어 등의 시장을 파고들게 된다.

이미 건설작업은 상당히 진척됐다. 피스커는 약 10억 달러(약 1조1천억원)의 개발비(절반은 미국정부, 나머지 절반은 민간 투자자)를 투입하고 있다. 그중 단돈 2천만 달러(약 230억원)를 들여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 있는 광활한 GM 소유 공장을 사들였다. 좋은 시절이었다면 그보다 10배 이상 줘야 할 시설을 금융위기 속에 쉽게 손에 넣었다. 피스커의 핵심 목표는 2013년까지 5만 달러(약 5천700만원)짜리 하이브리드 모델 라인업을 만드는 것. BMW 5시리즈를 비롯한 동급 라이벌과 정면 대결할 프로젝트 니나 사업이다.

그러나 아무런 장애도 없이 꿈이 매끈하게 이뤄지기란 드문 일이다. 지난 몇 주 동안 피스커는 널리 알려진 문제에 부닥쳤다. 핀란드 발메트 공장에서는 예상보다 더딘 생산속도에 비난이 쏟아졌다.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문제(일각에서는 핵심 투자자인 미국 에너지부가 제시한 목표를 맞추려 서두르다 일어난 사태라고 주장한다)를 해결하기 위해 리콜이 불가피했다. 그러자 매스컴이 당초부터 미국정부가 너무 관대하게 피스커를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라 경연진의 틀을 다시 짰다. 헨릭 피스커는 형식적인 대표와 수석 디자이너이라는 익숙한 역할로 물러났다. 대신 딱딱한 사업·재정 문제는 톰 라소다에게 넘어갔다. 오래 전 대형 메이커의 자동차 전문가로 활약했고, GM과 크라이슬러를 거쳤다.

라소다가 제일 먼저 내린 결정 중 하나가 미국정부 에너지부의 자금지원을 1억9천800만 달러(약 2천260억원)에서 묶기로 한 것. 이 돈은 카르마를 만드는데 이미 써버렸다. 그는 특히 미국과 중동에서 민간자금을 끌어내는 데 역점을 뒀다. 일각에서는 자금 총액을 10억 달러(약 1조1천억원)로 보고 있다. 프로젝트 니나는 사소한 걸림돌이 없지 않았으나 2013년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최근 자동차계의 이상주의자 헨릭 피스커가 <오토카>에 카르마 프로토타입을 가져왔다. 불과 몇 년 전 그는 애스턴 마틴의 수석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다. 게다가 널리 칭찬을 들은 V8 밴티지를 그렸고, 오랫동안 애스턴에 눌러앉을 수 있는 처지였다. 그래서 혹시 애스턴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물었다.

“내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꿈이 하나 있었다” 피스커가 입을 열었다. “완전히 새로운 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BMW에서 일했을 때, Z8 스포츠카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차는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007 영화에 나왔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 뒤 애스턴 마틴의 스카우트를 받아 V8 밴티지를 디자인하게 됐다. 하지만 밴티지를 완성했을 때 그밖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그것이 피스커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

피스커에 따르면 처음부터 새로운 대형 메이커는 접어두고 자동차 회사를 시작하자는 생각마저 없었다. 그와 BMW 시절의 친구이며 동업자 바니 쾰러는 캘리포니아에서 나름대로 차를 손질하는 일을 찾았다. 첫 번째 계획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기존 모델을 개조하는 튜닝이었다. 그 이전에 이미 갈고 다듬은 피스커의 유명한 디자인 스타일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얼마동안 그 아이디어가 통했지만, 장기적인 사업으로 고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다시 피스커가 말을 이었다. “점차 전혀 새로운 자동차 메이커를 세우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에서는 30년 전부터 새 메이커가 나온 적이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럴 만한 이유가 뚜렷했다. 다만 아주 어려웠을 뿐이었다. 기존 업계에서 하지 않는 위험을 부담해야 했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혁명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운명이 닥쳤다. 2007년 피스커와 쾰러는 군용차 제조업자와 부닥쳤다. 그는 당시 혁명적인 퀀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보여줬다.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가 바탕을 이루고,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가볍고 덩치가 작았다. 이로써 전혀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퀀텀 관계자들은 정상적인 차를 만든 경험이 전혀 없었다” 피스커의 설명. “하지만 바니와 나는 달랐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아주 특별한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이 파워트레인이 필요했다. 정상적인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이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극단적인 디자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극단적인 차를 만들기란 말만큼 쉽지 않았다. 피스커의 말을 들어보자. “가령 10만 달러(약 1억1천만원)짜리 4도어 세단을 라이벌과 비교해보자.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차나 따라야 할 일련의 기준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가 태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느 차를 보면 그 라이벌을 알 수 있다.”

카르마는 다르다고 피스커는 주장했다. 우선 규격이 기존의 어느 세그먼트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길이는 포르쉐 파나메라와 비슷하지만, 그밖에는 유사성이 전혀 없다. 휠베이스가 훨씬 길고 아주 낮다. 차폭이 더 넓고, 뒤 오버행이 아주 짧다. 유사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포르쉐와 닮아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인 밸런스는 그밖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 포르쉐 911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를 빚어낸다. 포르쉐는 카이엔 SUV와 파나메라 세단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고 본다. 911이 포르쉐 이미지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 극단적인 차를 만들어내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이 극단적인 모델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날 브랜드를 분명히 규정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피스커의 말이다.


그러다 중대한 분수령을 만났다. 이들 파트너가 첫 번째 대형 투자자이며 자동차 수집가 데이비드 앤더슨을 만났을 때였다. 그는 제1차 투자금으로 500만 달러(약 5억7천만원)를 내놓으면서 실패하지 않을 이유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이런 소규모 메이커는 거의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실패한 어느 회사의 전직 최고 재정책임자를 찾아냈다” 피스커의 말. “그를 찾아가 어떻게 됐는가를 물어봤다. 그에 따르면 팔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기도 전에 공장을 지은 것이 큰 실수였다고 했다. 고객이 원하는 차를 디자인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하고, 제조공정은 전문업체에 맡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따랐다”
아울러 카르마는 또 다른 친환경 요소를 받아들였다. 루프에 올린 태양광 패널, 재활용 목재 대시보드와 동물과는 관계없는 실내 트림을 썼다. 심지어 그 뒤 피스커는 딜러에 태양광 표지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2007~2008년만 하더라도 혁명적이었지만 점차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풀사이즈 클레이 모델 작업을 넘어섰을 때 본격적인 투자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피스커의 말. “그래서 휴렛 패커드 회장 레이 레인을 만났다. 그는 지금 우리 회장이고, 우리 사업이 진척되는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는 환상적인 드라이브크레인을 설명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아름다운 보디로 감싸주지 않는 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렸다. 심지어 내 앞에서 당장 포드 CEO 잭 내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정말로 애스턴 마틴을 디자인한 적이 있는가를 확인했다” 레인은 미국과 카타르의 사모펀드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모금액은 1억 달러(약 1천100억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2008년은 문제였다. 그해 1월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피스커는 풀사이즈 모델을 선보였고(격찬을 받았다), 새 브랜드의 탄생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러나 세계금융위기가 닥쳐 만사가 중단됐다. 피스커는 자동차 잡지를 돌면서 기분을 풀었다. 자기네 새 사업을 소개하고 상당한 홍보효과를 거뒀다. 그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 피스커의 웹사이트는 화려한 자동차 잡지 스크랩으로 가득 찼다. 아울러 앞으로 카르마를 만들 메이커를 모아 미인대회를 열었다. 그런 다음 한때 포르쉐 복스터를 만들었던 핀란드의 발메트를 점찍었다.

그 뒤 날벼락처럼 부시 정부의 에너지부가 피스커에 연락했다. 미국정부는 피스커의 새로운 방식(미국 빅3의 구식 자동차 생산방식을 대체할 새 전략으로)을 찬성했다. 게다가 이제 갓 태어난 피스커에 지원 자금을 신청하라고 권했다. 그해 말 피스커는 40명의 인력을 거느리고 사업에 착수했다.

정부의 지원과 그밖의 다른 민간투자자들이 뒤를 이었다. 발메트는 카르마 생산 준비에 들어갔고, 피스커는 두 가지 모델 선셋 컨버터블과 서프 왜건을 발표하여 극찬을 받았다. 물론 여기저기 걸리는 데가 많았다. 카르마 제1호의 시승은 2011년 초에 이뤄졌다. 인증과정이 오래걸리고 딜러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예상하지 않은 기술 장애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여름, 시간에 맞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새로운 카르마를 받았다. 피스커가 말하기 좋아하듯 돈이 없는 두 동업자가 불과 4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기술이 앞선 차를 도로에 내놨다.

그렇다면 거대 자동차 메이커의 꿈은? 피스커는 여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으로서는 한 해 8천~1만대의 3개 모델 카르마 생산을 겨냥하고 있다. 그 뒤 몇 가지 니나 버전이 나올 전망이다. 그러면 핵심 동력원으로 2.0L BMW 4기통을 받아들일 훨씬 저가 미국제 라인업이 등장하게 된다.

피스커는 장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장기 프로젝트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상당히 거창한 벤처다. 우리 투자자들이 경이적인 새로운 자동차 메이커를 세우려는 꿈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계획을 잘 추진되면 한 해 50만대를 만들 수 있다. 피스커의 앞길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우리는 틈새나 파고들 생각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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