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아부의 왕 - 마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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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아부의 왕 - 마티즈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08.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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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아부 또는 감성 영업


언제나 정직하게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직한 만년교감 아버지의 가치관을 그대로 이어받은 동식.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번듯한 기업에 수석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그 정직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동식의 행동은 번번이 다른 사람들의 호흡과 어긋나기만 한다. 프리젠테이션 준비하라고 해서 열심히 준비했더니 장소가 거기가 아니란다.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쫓아갔더니 등산을 해야 한단다. 상무님이 제일 먼저 정상에 도착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대서 구두에 양복바람에도 기를 쓰고 올라가 일등을 했더니 상무님 표정이 좋지 않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동식은 그런 사람이다. 정직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면 되는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순수하고 그래서 남들처럼 입에 발린 소리도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호락하며 착한가? 아무래도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식은 영업부로 발령이 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몰래 사채를 끌어다 쓴 엄마 때문에 사채업자들이 쫓아다닌다. 이제 동식이 할 수 있는 건, 보험 영업을 열심히 해서 보험왕이 되는 것. 그래서 사채 빚을 하루 빨리 갚는 것. 그래서 그는 전설의 혀고수를 찾아간다.

동식의 차는 마티즈다. 지금은 쉐보레 스파크로 바뀌었지만 동식의 차는 마티즈다. 터덜터덜 귀가하는 동식을 기다리는 집과 집 앞에 소심하게 웅크리듯 자리를 잡고 있는 마티즈. 그 차를 보는 순간 꼭 동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남들과 상관없이 열심히 달려왔을 것만 같은 차, 화려하거나 커다랗진 않지만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기는 표정으로 단정하게 담에 기대어 옆모습을 보이는 차, 거만함이나 자만심 없이 조금 소심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차, 동식의 마티즈.

그 마티즈를 동식이 얼마나 타고 다녔는지는 모른다. 회사에 다녀오는 순간에도 그 차는 집 앞에 주차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절대 새 차가 아닌, 연식이 좀 되어 보이는 마티즈는 동식이 어떤 사람인지, 동식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짧은 시간에 큰 웅변만큼이나 강렬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동식은 혀고수와 함께 그 차, 마티즈를 타고 비법을 전수받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자신의 꿈 또는 해야만 하는 돈 벌어 갚는 일에의 의지를 다진다.

하지만 보험왕이 되었다고 2억이나 되는 돈을 단번에 갚을 수는 없는 일. 사채업자들과 마주치는 일이 빈번해지고 청출어람 수제자를 바라보는 혀고수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리고 동식은 사채 빚에 쫓겨 단번에 돈을 벌 수 있는 일, 회사의 홈쇼핑 인수건을 달성하기 위해 혀고수에게서 전해 받은 ‘감성 영업’을 총동원해 일생일대 큰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동식은 큰 일의 성사를 위해 이회장을 만나고 이회장의 차 에쿠스에 타기도 하는데 마티즈와 에쿠스의 차이만큼이나 차 안의 동식은 다르다. 마티즈에서의 동식은 주도적이고 계획적이다. 자신이 빨리 돈을 벌어야 부모님을 지킬 수 있기에 그는 마티즈의 운전대를 잡고 각오를 다진다. 에쿠스 안에서의 동식은 이회장의 심기와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즉각적으로 ‘감성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누가 봐도 멋진 차, 고급 차이지만 그 안의 동식에겐 순간순간이 기회이며 위기이다.

마티즈와 에쿠스의 차이만큼이나 동식은 평범한 일상과 아주 특별한 경험 사이를 건넜고 이제 그는 강인하고 감성적인 그의 혀와 함께 멋진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글·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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