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유럽의 자동차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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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유럽의 자동차 산업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06.2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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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산업이 갈림길에 섰다는 판단에는 모두 동의한다. 판매위축, 할인압력, 유럽경제위기, 그리고 점차 늘어나는 신차 디자인·개발·제작비용. 이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일부 메이커를 파멸의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메이커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말기증세라 할 만하다. 지난해 대규모의 적자를 냈고, 올해 유럽의 신차 시장이 계속 움츠러들고 있어 사태는 악화일로다. 수많은 애널리스트가 2012년을 태풍전야의 고요로 보고 있다. 유럽 자동차산업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무자비한 재편의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나치게 많은 차가 지나치게 적은 고객을 쫓고 있다. 게다가 이른바 ‘생산시설 과잉’에 직면하고 있다. 해마다 일정한 물량을 만들어야 할 공장이 생산능력을 훨씬 밑돌고 있어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지역의 높은 생산비까지 겹쳤다. 딜러를 통해 과도한 차가 쏟아져 나오고, 따라서 사생결단의 할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 자동차산업은 EU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한다. ACEA(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에 따르면 16개 회원사가 25개국에 208개의 승용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접 러시아, 우크라이나, 터키 공장을 합치면 공장 수는 297개로 늘어난다. ACEA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산업의 직접 고용 인력은 230만명이 넘고, 간접고용자는 1천만명에 이른다. 아울러 연구 및 개발에 210억 파운드(약 38조원) 남짓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제조사들은 점차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높은 생산비, 치솟는 연구/개발비와 가격전쟁에 둘러싸여 허둥대고 있다.

최근 어느 업계 신문이 파리에 있는 재정연구업체의 보고서를 손에 넣었다. 거기에는 르노 영업총책 카를로스 타바레가 프랑스 상원 청문회에 나가 증언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에 따르면 르노 클리오를 프랑스에서 만들 경우, 터키 공장보다 1천100파운드(약 200만원)가 더 든다.

PSA(푸조+시트로엥) 제조총책 데니 마르티는 상원 특별위원회에 나가 르노와 마찬가지 사정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PSA는 슈퍼미니 부문에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유럽기지를 임금이 싼 나라로 옮기라는 압력은 견딜 수 없을 정도. 특히 중급차 메이커가 심각한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게다가 한국계 현대, 기아의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 승용차시장은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에 추락한 뒤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실제로 2011년 서유럽의 핵심 신차 시장은 1997년보다 판매대수가 줄었다. 심지어 중부유럽의 새로운 시장을 합쳐도 1천519만629대에 불과하다. 1997년 유럽 핵심시장 판매량은 1천519만3천대였다.

어느 메이커가 제일 심각한 위기에 빠졌나? 그 이유는?
지난해 유럽에서 이익을 낸 대형 메이커는 단 하나, 폭스바겐뿐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차를 팔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실적도 아주 좋았다. 2011년 이른바 ‘EU27+EFTA’(유럽연합 27개국과 유럽자유무역지대)에서 폭스바겐의 판매량은 9% 오른 168만4천대. 반면 포드는 2.9% 떨어진 107만7천대였다. 르노는 9% 줄어든 104만400대, 푸조는 9.4%, 시트로엥은 8% 감소했다. 피아트는 무려 17%나 추락했다.

하지만 불황에 시달리는 메이커는 유럽 만이 아니다. 혼다 20%, 마쓰다 25% 그리고 토요타도 8% 내려갔다. 이렇게 문제가 꼬인 이유를 살펴보자. 주요 신차 시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과 지나친 가격할인이 발목을 잡았다. 21세기에 들어설 무렵 르노는 신세대 메간느와 라구나를 앞세워 고급시장에 파고들었다. 르노를 좀 더 비싸게 팔려는 작전이었다.

Mk2 라구나 발표회 때 당시 르노 총수 루이 슈바이처는 영국 저널리스트들에게 르노의 약점을 털어놨다. 폭스바겐 골프는 르노 메간느보다 1천500파운드(약 270만원)나 더 받을 수 있다는 것. 두 모델이 똑같이 한 해 40만대를 판다고 가정하자. 그럴 경우 골프는 메간느보다 한 해 6억 파운드(약 1조1천억원)를 더 벌어들인다. 모델의 수명을 5년으로 잡는다면 폭스바겐 금고에 30억 파운드(약 5조4천억원)가 더 들어간다. 그처럼 막대한 현금 다발이 차세대 골프 플랫폼 연구개발비로 쓰인다. 그리고 폭스바겐에 순익 4억 파운드(약 7천억원)를 바친다.

고급시장에 진출하려던 작전에 실패한 뒤 르노 메간느는 현재 유럽에서 한 해 약 24만대를 판다. 하지만 좀 더 높은 값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에 비해 골프는 유럽에서 약 50만대가 팔렸다. 더 많은 판매량과 더 능률적인 공장이 손을 잡고 폭스바겐의 가격을 끌어올린다. 그게 바로 골프의 둘째 이점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량이 많아 대당 제작비는 줄어든다. 그런 이점을 살려 품질이 더 좋은 부품(가령 멀티링크 액슬)을 쓸 수 있다.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라이벌과 대등한 생산비용으로 훨씬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판매가 하락과 판매량 감소는 적자로 이어진다. 지난해 피아트 브랜드는 유럽시장에서 약 4억1천800만 파운드(약 7천600억원)의 적자를 냈다. PSA와 비슷하다. GM유럽 역시 약 4억4천800만 파운드(약 8천100억원) 내려갔다. 포드마저 1천700만 파운드(약 310억원)의 적자를 봤다. 대량생산되는 차라고 해서 프리미엄 모델보다 설계, 생산비가 크게 내려가지도 않는다. 판매량이 줄어들면 노는 생산시설이 많아지고, 거래가는 내려간다.

승자는 누구인가? 그 이유는?
주로 서유럽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다. 2011년 1년에 걸쳐 EU 30개국에서 폭스바겐 판매량은 9% 올랐다. 아우디가 9%, 미니는 19%, 랜드로버는 11.5% 증가했다. 현대와 기아는 다같이 11.5%(높은 가치의 힘으로). 닛산은 도시형 SUV 시장을 공략해 13.7% 늘었다.

간단히 말해 프리미엄 메이커들은 가치가 훨씬 높은 차를 팔고 있다. 예를 들어 BMW 딜러에 들어가 할인을 요구할 수는 없다. 수요가 많고, 우월한 중고차 가치 덕택에 개인과 대량구매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다. 프리미엄은 고객들이 가격표대로 사도록 설득할 수 있어 유리하다. 백지에서 출발해 BMW 3시리즈를 설계하고 개발하는 비용이 포드 몬데오보다 더 들지 않는다. 생산비 역시 엄청나게 큰 차이는 아니다. 특히 정교한 서스펜션, 값비싼 고장력 강판 보디와 폭넓은 전장품 개발비는 프리미엄과 주류 모델 사이에 별로 차이가 없다. 유럽에서 몬데오를 팔아 이익을 내는 것은 독일 프리미엄 중형 모델을 파는 경우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3시리즈가 두드러진다. 벤츠 C클래스는 전 세계에 팔린다. 따라서 생산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영국 소식통의 정보에 따르면 독일의 컴팩트 프리미엄 중형은 대당 평균 이익이 5천 파운드(약 900만원). 어느 메이커의 세계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한 해 이익을 계산하면 20억 파운드(약 3조6천억원)에 이른다. 이마저 한 개 모델 라인을 계산했을 경우다.

레인지로버 이보크에 대한 루머에 따르면 랜드로버의 마케팅 전문가들의 예상을 훨씬 넘어 엄청난 고객이 파노라마 선루프를 골랐고, 초기 이보크 고객들은 값비싼 옵션을 마구잡이로 달았다고 한다. 따라서 최종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최근 20% 늘어난 랜드로버의 마진에는 옵션으로 거둬들인 이익이 한 몫을 했다.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가?
아니다. 유로존 국가들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스는 여전히 대외부채로 파산의 위험을 안고 있다. 게다가 포르투갈을 같은 길로 몰아붙이고 있다. 아울러 대다수 유럽 정부의 긴축정책 탓에 국민들은 값비싼 내구 소비재를 외면하고 있다. 수많은 나라에서 청년실업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유럽에서는 연령구조가 신차 판매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영국에서 신차를 구입하는 평균연령은 35세다. 피아트-크라이슬러 회장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ACEA(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2014년이 지나서야 유럽 자동차시장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2012년의 첫 2개월 동안 신차시장은 또 다시 곤두박질쳤다. 8% 가까이 감소했다. 2012년 유럽의 신차시장은 1천200만대를 간신히 넘기리라 예상하고 있다. 피아트, 르노, PSA, GM유럽은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앞으로 2년 더 적자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무엇을 해야 할까?
해결책이 많지 않다. 그리고 당장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과잉시설을 줄여야 한다. 어느 업체 추산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시장은 한 해 300만대 또는 공장 10개가 넘친다. 현행 생산능력의 20%와 맞먹는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공동전선을 펴자고 제의했다. 유럽연합정부수준에서 각 메이커들이 협력하여 공장폐쇄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공장폐쇄에 반대하리라 예상했다. 따라서 EU가 대량생산 메이커의 사투를 막고 공평하게 시설축소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기적으로 플랫폼을 함께 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최근 협력 관계에 들어간 PSA와 GM이 본보기로 꼽힌다. 그들은 소형, 중형과 대형 플랫폼을 함께 쓴다. 그러나 벤치마크는 폭스바겐의 신형 MQB 플랫폼이다. 폴로에서 파사트까지 널리 쓰이고, 전 세계 어느 공장에서나 똑같이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한 해 600만대가 똑같은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궁극적으로 대량생산 메이커는 진지하게 장기 동맹에 참여해야 한다. 한 해 100만대가 넘는 차를 똑같은 플랫폼과 부품으로 만든다. 그러면 모든 공장이 거의 완전 가동할 수 있다. 몰락하지 않고 중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앞으로 24개월 동안 과잉시설을 폐쇄할 수 있느냐에 운명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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