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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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아이들>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04.3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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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사이, 혹은 21년의 간극

그날은 선거일. 학교에 가지 않아 신이 난 다섯 아이들이 밖으로 놀러나간다. 그리고 그날 오후 실종신고가 들어온다. 하지만 경찰서에서는 시골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오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부모들을 돌려보낸다. 더구나 그날은 선거일이라 비상이 걸려있어 놀러나간 아이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달도 그 다음 해에도 다섯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스타 피디 강지승이 프로그램 조작 때문에 좌천되어 온다. 거기서 강지승은 5년 전 아이들의 실종 사건에서 마음을 떼지 못하고 있던 법의학 교수 황우혁과 만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강피디는 자신이 재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는 일념으로, 황교수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토대로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두 사람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만류하는 박경식 형사. 이 세 사람의 관점과 입장이 팽팽한 삼각구도를 그리면서 5년 만에 사건이 불거지고 마을은 긴장에 휩싸인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 세 사람의 관점을 세 점으로 놓고 삼각형을 그려간다. 처음엔 느슨했던 삼각형의 각 변은 서서히 모양을 갖춰가면서 굵어지고 팽팽해진다. 그래서 긴장이 고조되고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황교수의 가설과 점점 맞아가면서 ‘혹시’와 ‘설마’ 사이를 줄타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허상이 되어 버리면서 팽팽했던 삼각구도는 무너져 내리고 무언가에 대한 어떤 기대들은 반대급부로 큰 분노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후반부. 황교수의 가설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긴장을 조이던 모호한 안개를 슬쩍 걷어내면서 그 가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짚어주며 긴장과 갈등과 대립을 조금씩, 상처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1996년의 강피디는 대우 에스페로를 몬다. 강피디의 좌천부터 재기를 위해 안달하던 모습을 다 보고 담아낸 차다. 스페인어로 ‘희망’이라는 뜻을 가진 이 차는 어쩌면 ‘에스페로-희망’이라는 글자 그대로 강피디의 안달하는 희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선정적이고 관심을 확 잡아 끌 수 있는 민감한 소재로, 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것을 딛고 재기해보겠다는 강피디의 치기어린 얄팍한 희망, 그것이 에스페로에 담겨 있다.
2001년의 강피디는 SM 520을 몬다. 2000년 프랑스 르노가 인수한 뒤 르노삼성자동차로 출범해 2001년 10만대 생산을 돌파했던, 당시를 대표하던 자동차. 예전의 치기어린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겸허해진 모습으로 나이와 연륜을 함께 먹은 모습의 강피디, 그 연차의 가장 평범하고 평균적인 모습의 그는 그 시기의 아이콘 같은 SM 520을 몬다. 아이들의 실종을 둘러싼 1996년과 2001년의 긴장과 해소 사이만큼이나 1996년과 2001년의 시간차를 두고 있는 강피디의 모습은 에스페로와 SM 520 사이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아이들이 실종된 후, 벌써 21년이라는 세월은 흘러갔다.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추측과 가설 사이에서 감독은 자신이 바라보아야 할 방향을 분명히 잡은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마음이다.

아이들의 실종으로 상처받고 고통받은 아이들의 부모들, 그리고 그런 이웃을 바라보면서 딱함을 느끼고 슬픔을 함께한 마을 사람들, 온 산과 마을을 뒤지며 아이들을 애타게 찾아 헤맨 모든 사람들,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했던 전국 각지의 사람들… 감독은 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주목해 그 마음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조금이라도 치유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글 · 신지혜(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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