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화차 - 스바루 포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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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화차 - 스바루 포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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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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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향이 조금만 바뀌었어도


그녀가 사라졌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부모님을 뵈러 가는 도중에 잠시 커피를 사왔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의 집 또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채 비워져 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문호는 전직형사인 사촌형 종근에게 사랑하는 그녀, 결혼을 앞둔 그녀 경선을 찾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렇게 선영을 찾는 일이 시작되고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픈 진실을 불러온다.

미미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모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가 변영주 감독의 각색과 연출로 선을 보였다. 원작에서 말하는 극단적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그녀의 모습에 감독의 안타까운 시선이 얹혀 깊은 생각과 큰 울림을 남기는 좋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문호에겐 선영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고, 종근은 지나가는 작은 바람인 줄 알았던 선영의 실종이 실은 거대한 폭풍임을 직감하고 형사로서의 절박한 이유를 갖게 된다. 경선은 그녀의 과거 속의 실체를 꼭꼭 감추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그 절박함들은 개별적인 이유이지만 커다란 틀에서 볼 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정기간 선영으로 살아온 경선에게 가닿은 바람의 방향이 조금만 바뀌었다면 그 차갑고 냉정한 바람의 대상이 바로 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은 물론이고 영화 <화차>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며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는 미스터리가 주는 짜릿함이 전부가 아니다. <화차>는 한 번 타면 내릴 수 없는 화차에 올라 탄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둘러봐도 출구가 없는 현실, 경선의 극단적 선택. 하지만 아무도 경선을 함부로 정죄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문호가 타고 다니는 스바루 포레스터는 바로 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다. 문호와 선영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려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그 설렘과 기쁨의 순간에도, 휴게소에서 선영이 사라진 당혹스럽고 걱정되는 순간에도, 선영을 찾기 위해 그녀의 궤적을 추적하는 모든 일정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 진실들과 마주치는 순간에도 문호의 차, 스바루 포레스터는 함께 한다.

결국 스바루 포레스터는 문호와 종근의 추적과 함께하면서 선영 혹은 경선이 살아왔던 모든 족적을 알게 되고 그녀를 비롯해 우리가 속해 있는 현실의 구멍을 함께 들여다보며 극단적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허상에 홀려 사는 인간들의 가련하고도 불쌍한 모습을 지켜봐주는 역할을 한다. 뉴 포레스터에 인격을 부여해 묻는다면 그 차는 과연 무어라 말할까. 자신이 보아온 문호에 대해서, 추적과정에서 보게 된 종근에 대해서, 문호와 결혼까지 할 뻔했지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깊은 수렁에서 몸부림치다가 다른 이름에 기생해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화차에서 뛰어내리려던 선영 혹은 경선에 대해서 말이다.

미스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원작이든 영화든 <화차>는 단순히 우리의 지적 추리력을 즐겁게 충족시키기 위해 쓰이고 찍은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 <화차>를 보고 나서 우리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물기 어린 눈을 하고 자리를 뜨게 되는 것이다.

글 · 신지혜(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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