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911의 정체를 밝혀줄 라이벌들과의 대결
상태바
신형 911의 정체를 밝혀줄 라이벌들과의 대결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04.30 1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형 포르쉐 911은 과연 얼마나 좋은가? 웨일스의 험로에서 강력한 경쟁자들과 일대 결전이 벌어졌다

우리가 처음 신형 포르쉐 911을 시승하고 내린 평가에서는 캘리포니아의 햇살만큼이나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신형 911은 해답을 준 것만큼이나 많은 의문을 남겼고, 우리는 조금 더 파고들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991과 선배인 997 시리즈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구형은 조금만 달려도 진정한 개성이 훤히 드러난 반면, 신형은 비밀이 훨씬 많았고 얼마나 좋은 차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911과 맞설 폭넓은 라이벌들과 함께 트랙을 달려보기로 했다.

성격이 서로 다른 3대 라이벌이 스노도니아 국립공원과 앵글시 레이스 서킷에서 맞섰다. 이곳에서 신형 911은 마침내 그 영혼을 드러냈다. 우리는 2개 대열로 나눠 북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미드엔진 팀에 가담했다. 바로 8만7천935파운드(약 1억5천600만원)의 아우디 R8과 그보다 값싼 6만3천400파운드(약 1억1천200만원)의 로터스 에보라 S. 8만1천242파운드(약 1억4천400만원)의 포르쉐와 7만8천550파운드(약 1억3천900만원)의 XKR은 산속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우디 R8 쿠페는 이제 8살이 되었지만 실내를 제외하면 나이를 느낄 수 없었다. 6단 수동변속기, 완벽한 액셀 반응과 지평선처럼 넓은 파워밴드는 영하 15℃의 매서운 추위를 거뜬히 이겨냈다. 에보라는 보다 가벼운 몸집, 겨울 타이어, 한결 날씬한 엉덩이와 로터스의 명성을 업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자동변속기가 흠이었다. 그래도 때로 흔들리는 변속패턴을 잘 다스리면 달리기는 무난했다. 게다가 두 손을 스티어링에 올려놓고 있으면 언제나 순수하고, 투명한 반응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라이벌들 중 단연 최고였다.

이어서 재규어와 포르쉐가 함께 도착했다. 그런데 911을 타고 온 맷 선더스는 예상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그래, 정말 좋은 차야”라고 말했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찬사였다. 하지만 재규어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끝없이 호의적인 오버스티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차는 R8보다 더 오래됐지만 ‘미소를 머금게 하는 능력’이라는 단순한 기준에 따르면, XKR은 이 자리에 나올 자격이 충분했다. 마침내 네 라이벌이 한자리에 모였다. 비교의 초점은 물론 신형 911이다.

R8은 가장 매혹적이었다. 오랜만의 시승을 통해 이 차가 얼마나 특별한지 새삼 깨달았다. R8의 엔진 반응과 미묘한 댐핑은 놀라웠다. 내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포르쉐는 더욱 벅찬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형 911을 과연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일단 실내의 향취는 상큼했다. 파나메라식 디자인이 제법 럭셔리의 향내를 풍겼다. 고속으로 달릴 때, 등 뒤에 울리는 3.8L 수평대향 6기통의 익숙한 포효는 내가 911을 몰고 있음을 일깨웠다. 이제 노즈는 까닥거리지 않는다. 뜻밖에도 승차감은 이전의 911과는 달랐다. 이와 대조적으로 7단 수동변속기는 실망을 줬다. 단지 기어단수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변속동작도 전과는 달랐다. 하지만 예전의 어떤 911보다 크루징에서 뛰어났다.

다음으로 재규어에 뛰어올라 둘을 비교했다. XKR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거슬리는 것들이 적지 않다. 다리공간이 좁고, ZF 변속기는 낡았다. 아울러 연비가 낮고 조잡한 내비게이션이 거슬렸다. 하지만 XKR은 스스로 정체를 알고 있는 차. 예를 들어 지구를 처음 방문한 외계인이 ‘GT’가 뭐냐고 묻는다면 XKR을 보여주면 된다. 사실 오늘 나온 라이벌들 중 가장 GT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아울러 승차감과 세련미가 제일 뛰어났다. 게다가 타이어를 불태울 공간이 생기면 소방차를 부를 때까지 스키드를 계속한다.

에보라는 4대 라이벌 중 값이 제일 싸다. 그래서일까? 센터 디퍼레셜은 너무 폭이 좁고 즉시 출발하지 않으면 제동이 걸린다. 인체공학적 기능은 끔찍하다. 중년신사가 운전석을 들락거리기 위해서는 체면이 구겨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첫 인상보다는 덜 거칠고 말을 잘 듣는다. 승차감도 좋고, 예전보다 소음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토요타의 3.5L V6 슈퍼차저 엔진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개성 없는 반응은 다른 라이벌의 주문형 엔진과는 뚜렷이 대조됐다.

우리가 앵글시 트랙에 도착했을 때, 이 라이벌들을 가렸던 안개의 일부가 걷혔다. 우선 재규어가 가장 알기 쉬웠다. 거의 상상한 그대로였다. 로터스는 약간 불편한 옷을 입은듯 했다. 내면에는 울부짖는 스포츠카가 숨어있지만, 고객의 폭을 한층 넓히라는 요구 앞에서 주춤거렸다. 아우디는 모든 것을 경쾌하고도 당당하게 보여줬다. 반면 포르쉐는 카드를 가슴에 대고 숨겼다. 이제 카드를 꺼내도록 압력을 넣을 때가 왔다.

에보라의 거동은 예상과 달랐다. 우리는 이전에 수많은 에보라를 몰고 서킷을 돌았다. 때문에 코너에서 드러나는 답답한 언더스티어는 좋은 자세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에누리를 하더라도 R8에 잡아먹히는 스피드에 우리 모두가 놀랐다. 물론 아우디의 네바퀴굴림은 엄청난 트랙션을 발휘했다. 게다가 제동을 걸 때 한결 안정됐고, 어느 코너에서나 훨씬 예리했다. 

911은 만화 <슈퍼맨>의 주인공 클라크 켄트와 같았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 911은 트랙에 나오자 슈퍼맨으로 돌변했다. 스펙상의 성능은 잊어버리자. 신형 911은 R8을 뛰어넘어 만능의 경지에 도달했다. 아울러 꽤 훌륭한 수준의 편의장비를 갖추고도 에보라보다 가볍다. 휠베이스가 10cm 늘었다고 많은 팬들이 통탄하지만 아우디보다 액슬 간격이 20cm나 가깝다. 실제로 휠베이스는 라이벌 중 가장 짧다.

힘차게 몰아붙이면 파워스티어링이 깨어나고 서스펜션이 일을 시작한다. 엔진은 기쁨에 넘쳐 아우성친다. GT3 RS 이외의 어떤 997도 이처럼 뛰어난 코너 돌파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구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고해도, 코너를 돌파할 때는 911의 가장 오래된 금언 ‘서서히 들어가 빨리 빠진다’(slow in, fast out)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이제 신형 911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야심만만한 진입속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초기의 가벼운 언더스티어를 죽일 수 있었다. 액셀과 트랙션을 걸어 총알처럼 커브를 빠져나가기 전에 맛깔스럽게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R8을 그렇게 몰아붙인다면? 991이 그토록 편안했던 마지막 0.5초에 상냥하던 아우디는 흔들렸다. 네바퀴굴림은 드립팅을 해야 할지 직전해야 할지를 몰라 허둥댔다.

재규어는? 글쎄. 911을 내려 XKR에 오르자 트랙이 얼어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온갖 크기와 모양의 재미가 몰려들었다. 우리 대다수가 재규어를 몰았을 때 가장 많이 웃었다. 실제로 밖에서 XKR이 긴 헤어핀에서 슬라이딩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게 다른 차를 몰고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날 늦게 나는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한편 다른 친구들은 시승을 마무리하기 위해 산에 남기로 했다. 내게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도로에서도 트랙에서처럼 스릴을 느낄 수 있을까? 두 팀이 함께 달려야 했던 100km에서 시험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값싼 에보라는 가징 뛰어난 스티어링 이외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운전하기는 좋았지만 함께 살아가기는 너무 어려웠다. 재규어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복고풍에 잘생긴 고성능 GT를 원한다면 벤츠나 BMW보다 더 매력적이다.

다른 차들은 911의 또 다른 면모를 밝혀주었다. R8은 여전히 강력한 머신이고, 그 자태를 좋아한다면 뒷좌석이 없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자꾸만 포르쉐를 향하는 우리의 눈길을 거둘 수는 없었다. 물론 흠잡을 곳도 있다. 변속기는 아쉬웠고, 스티어링은 전동식으로선 센세이셔널하지만 997의 스티어링만큼 자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밖의 모든 면에서 991은 어느 선배들, 또는 이 자리에 나온 어떤 라이벌도 대적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눈부신 속살을 벗기기 위해 이토록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다만 포르쉐가 고객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말은 달라진다. 그들의 절대 다수는 911과 모양이 같고 이미지가 같지만 거동이 다른 차를 원한다. 오로지 최대가속에 도전하는 대다수 오너들에게 신형 포르쉐는 필요하고 원하는 바로 그 멋지고, 안락하고 조용하고 유능한 차다.

그러나 진정한 비밀을 힘들여 찾아내려는 소수에게 이 차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저 멀리 1963년 포르쉐는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새 차를 내놨다. 그때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방위 스포츠카. 거의 반세기가 지난 뒤 911은 다시 한 번 그 차로 돌아갔다.

글 ·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 포르쉐 911 주행 영상 보러가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