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 꽃가루가 날렸다. 도로는 시시때때로 정체되어 주차장을 만들었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열병하고 있는 시내 풍경은 건조했다. 그럼에도 세계의 기업들은 앞다투어 이곳에 진출한다. 물론 시장의 규모 때문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 13억 인구, 중국의 수도에서 열리는 북경모터쇼는 전 세계 대부분의 브랜드가 참여하는 초대형 모터쇼. 그리고 이름도 읽기 어려운 수많은 중국 브랜드를 포함해 피닌파리나, 린스피드 등 스페셜리스트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모터쇼의 규모와 다양한 볼거리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번 북경모터쇼 방문은 처음인데, 혼잡한 도로교통이나 어수선한 전시장 주변은 상해모터쇼 분위기와 비슷했다.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가방검사 등 보안검색을 거쳐야 하는데 상해에서보다 위압적인 공안의 모습은 줄어든 듯했다. 여전히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친환경 트렌드가 시장을 지배하면서부터 세계의 모터쇼도 좀 심심해진 경향이 있다. 친환경이라는 테마에 맞는 새 모델이나 컨셉트카를 만들다보니 상상력이 제한된 느낌이랄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과거 전성기 때의 도쿄모터쇼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차들이 많았다. 북경모터쇼는 뭐랄까, 참가규모는 세계 최대급이지만 그 속에서 어떤 철학이나 방향성을 읽기는 어려운 느낌이다. 무엇보다 시장이 크니까 그 시장을 노린 다국적 기업의 향연, 어쩌면 거대 딜러쇼의 성격이 짙어 보였다.
북경모터쇼의 특징은(대부분 중국모터쇼의 특징이기도 한) 중국 현지형 전략 모델이 많다는 점. 오로지 중국 시장을 고려해 다른 나라에는 없는 모델을 내놓다는 점이 다른 모터쇼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이번 북경모터쇼에서는 현대가 중국형 아반떼(현지명 랑둥 朗動)’를 선보였는데, 기존 아반떼 대비 차체 길이 40mm와 높이 10mm를 늘리고 새로운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를 적용했다. 그리고 기아는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중국형 그랜드 카니발(현지명 Grand VQ-R)을 선보였다. 쌍용은 체어맨 2.8을 중국 시장에 처음 출시했다. BMW가 선보인 3시리즈 롱 휠 베이스 모델 역시 중국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모델. 기본 모델보다 휠베이스가 11cm나 길다. 월드 프리미어라고 하지만 사실 중국 외의 어느 시장에서 팔 수 있을지 궁금하다. 3시리즈 롱 휠 베이스 모델은 중국 선양 공장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람보르기니의 SUV 우루스가 인상적이었다. 마세라티 부스에서도 마세라티 최초의 SUV 쿠뱅을 보았는데, 왠지 슈퍼카 브랜드의 SUV는 어색했다. 그런 한편 페라리는 절대 SUV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무튼 포르쉐 카이엔의 성공이 가져온 변화의 흐름이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은 예전처럼 노골적인 디자인 카피는 자제하는 모습이었고(부분적으로 눈에 띄기는 했지만) 자체 시장방어를 위해 애쓰는 흔적이 역력했다. 2012 북경모터쇼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보다 자세한 북경모터쇼 이야기는 <오토카 코리아> 6월호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최주식 /월간 <오토카 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