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딱지가 앉고 또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 흉터가 아무는가 보다. 더그와 로이스. 그들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사랑하는 딸을 차 사고로 잃은 것이다. 그날 이후 로이스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집 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집으로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매만진다. 더그는 작은 사업체를 꽤 탄탄하게 운영하고 있고 아내를 무척 사랑하지만 딸의 빈 공간을 채우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런 그가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 당분간 이곳에 머물겠다고 통보한다.
나이도 지긋한 아저씨. 살집이 올라 숨 쉬는 것도 가쁜 중년의 아저씨. 열 몇 살의 비쩍 마른 소녀, 좀 더 나이 들어 보이게끔 짙은 화장을 한 소녀, 스트립걸인 소녀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집에도 돌아가지 않는 걸까.
순진하지 못한 의구심은 곧 연민으로 바뀌어 버린다. 더그의 아내 로이스가 차를 몰고 더그와 소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말이다.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어리디어린 여자애의 작은 집에 얹혀살면서 청소를 해주고 먹을 것을 사주고 고장 난 곳을 고쳐주고…
아내의 입장에서 로이스는 기가 막히지 않았을까? 언제나 뚱한 표정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지내던 남편이 어딘가 생기 있는 표정으로 어린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로이스도 좀 이상하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더니 함께 그 집에 머물며 소녀에게 옷을 사 입히고 아픈 곳을 치료해주고 늦게 다니지 말라며 자상하게 타이른다. 아, 그들은 소녀에게서 자신들의 딸, 너무나 사랑했지만 사고로 잃은 딸을 투영해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로이스가 캐딜락을 몰고 거리로 나설 때, 그녀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그 행보는 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고 크나큰 충격을 잊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딛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소녀에게 엄마의 마음과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준 디딤돌이었다.
글·신지혜(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