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웰컴 투 마이 하트 - 캐딜락 D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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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웰컴 투 마이 하트 - 캐딜락 D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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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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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치유에 대하여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딱지가 앉고 또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 흉터가 아무는가 보다. 더그와 로이스. 그들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사랑하는 딸을 차 사고로 잃은 것이다. 그날 이후 로이스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집 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집으로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매만진다. 더그는 작은 사업체를 꽤 탄탄하게 운영하고 있고 아내를 무척 사랑하지만 딸의 빈 공간을 채우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런 그가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 당분간 이곳에 머물겠다고 통보한다.

나이도 지긋한 아저씨. 살집이 올라 숨 쉬는 것도 가쁜 중년의 아저씨. 열 몇 살의 비쩍 마른 소녀, 좀 더 나이 들어 보이게끔 짙은 화장을 한 소녀, 스트립걸인 소녀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집에도 돌아가지 않는 걸까.

순진하지 못한 의구심은 곧 연민으로 바뀌어 버린다. 더그의 아내 로이스가 차를 몰고 더그와 소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말이다.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어리디어린 여자애의 작은 집에 얹혀살면서 청소를 해주고 먹을 것을 사주고 고장 난 곳을 고쳐주고…

아내의 입장에서 로이스는 기가 막히지 않았을까? 언제나 뚱한 표정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지내던 남편이 어딘가 생기 있는 표정으로 어린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로이스도 좀 이상하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더니 함께 그 집에 머물며 소녀에게 옷을 사 입히고 아픈 곳을 치료해주고 늦게 다니지 말라며 자상하게 타이른다. 아, 그들은 소녀에게서 자신들의 딸, 너무나 사랑했지만 사고로 잃은 딸을 투영해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로이스가 더그를 찾아 몰고 온 차는 캐딜락 DTS. 오랜 시간 집 밖으로는 나오지도 않던 그녀였다. 아마도 그녀가 차를 몰고 다녔던 그때와 거리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고 물론 차도 수 차례 바꾸었을 것이다. 그만큼 로이스 자신에게는 낯선 차인 캐딜락 DTS를 몰고 남편을 찾아 여행을 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커다란 모험이고 엄청난 행동의 변화인 것이다.

그만큼 남편은 그녀에게 큰 존재이리라. 딸을 떠나보낸 아프고 슬픈 기억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 이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 그런 남편이 ‘당분간 이곳에 머물겠다’고 했으니 그 마음과 몸이 오랜 세월의 금기를 깨고 캐딜락을 차고에서 꺼낸 것이리라. 운전법이 서툴러서 이리저리 쿵쿵 받치다가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로이스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로이스가 캐딜락을 몰고 거리로 나설 때, 그녀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그 행보는 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고 크나큰 충격을 잊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딛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소녀에게 엄마의 마음과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준 디딤돌이었다.

소녀가 부부의 마음을 받아들일지 독자적인 삶을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며칠간 함께 나눈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리라는 것을 우리 또한 느낄 수 있다. 결국 로이스가 몰고 간 캐딜락은 그래서 부부의 회복과 함께 소녀의 새로운 삶을 조명하는 실마리가 되었고 인생의 각도를 바꾸는 아주 작지만 큰 도구가 되었다.

글·신지혜(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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