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캐딜락, 김영식 대표에게 듣다
달라진 캐딜락, 김영식 대표에게 듣다
  • 황순하
  • 승인 2018.10.04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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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투박했던 캐딜락이 확 달라졌다. 판매량도 급증하며 캐딜락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2016년 새로 취임한 김영식 대표가 있다. 그에게 캐딜락의 목표와 발전방향, 그리고 미래 계획을 물었다

 

 

자동차산업 초기인 1902년에 태동한 캐딜락(Cadillac)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선도적인 기술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 자유롭고 풍요로운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서 오랫동안 군림해 온 브랜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공식 의전차량이며, 한국에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용하여 ‘대통령의 차’(Presidential Car)로 잘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는 경제와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전성기를 누린 미국의 황금시대(Golden Age)였다. 이 시기에 캐딜락은 롤스로이스에 버금가는 최고의 자동차브랜드로서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가난한 사람도 죽기 전에 캐딜락 한번 타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미국의 장례차량들이 예외 없이 캐딜락인 이유다.

 


비행기 꼬리 같은 테일 핀(tail fin)의 화려한 디자인과 큰 차체, 대배기량 엔진을 자랑하던 캐딜락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미국 경제의 쇠락과 함께 추락했다. 1990년대까지는 ‘할아버지들의 바퀴달린 소파’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브랜드 정체성의 혼란으로 존폐 위기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199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예술과 과학’(Art & Science)이라는 주제로 이보크(Evoq) 콘셉트카를 과감하게 선보이며 놀라운 변화를 시도했다.

 

직선 위주의 미래지향적 디자인과 날씬하고 단단한 차체, 고성능 엔진과 예리한 핸들링 등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특성을 벤치마킹해 젊고 다이내믹한 브랜드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판매 지역도 미국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과 유럽, 중동 등 전 세계시장으로 진출하여 글로벌 브랜드로 변신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전 세계 50여개 국가에 진출했다. 아직까지는 연 35만대 정도의 판매에 머물고 있지만, 새로운 디자인과 전략으로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올드보이’의 아름다운 도전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미국시장에서 오랜 시간동안 영광을 누렸던 캐딜락이었지만, 국내에는 1993년 첫 해 13대를 판매한 이후 계속되는 판매 부진에 시달려왔다. 1997년 외환위기로 잠시 철수했다가 1999년 GM 코리아를 통해 재진입했지만 급변하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수입차시장이 연 1만대를 돌파하는 호황을 누렸지만 캐딜락의 판매는 연 300대 내외였다.

 

병행수입 판매하던 사브(SAAB)가 철수한 2008년 이후에는 캐딜락 판매력에 집중하여 연 700~800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2016년 이후 캐딜락은 확 달라졌다. 그해 1100대 판매고를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2000대를 돌파하여 무려 82%의 판매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은 국내 수입차시장 최고의 성장률이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캐딜락 판매시장 중 한국이 톱5 마켓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비록 판매대수는 국내 수입차시장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20년 가까이 구석에 밀려나 있던 브랜드가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다. 특히 일부 브랜드의 승자독식 구도로 굳어진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캐딜락의 성장은 일대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놀라운 변화는 김영식 대표가 캐딜락 코리아(당시 GM Korea)의 CEO로 취임한 2016년부터 일어났다. 최근 몇 년 사이 캐딜락에 어떤 일이 생긴 걸까?

 


강남 도산대로에 위치한 캐딜락 하우스에서 김영식 대표를 만났다. 반갑게 맞아주는 김 대표의 표정에서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의 활기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와 자동차의 인연은 대학 졸업 후 1990년 첫 직장으로 현대차에 입사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2001년 BMW 코리아의 고객관리와 애프터서비스를 맡으면서 수입차시장에 발을 들였다. 2004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애프터서비스와 마케팅 총괄임원, 2010년 페라리와 마세라티를 수입 판매하는 FMK의 업무총괄 임원, 그리고 지금의 캐딜락 코리아까지 30년 가까이 수입차와 함께 해온 외곬 인생이었다. 

 

김영식 대표와의 인터뷰가 진행된 2시간 여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김 대표의 끈질긴 자동차 사랑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시내버스의 제일 뒷자리에 앉아 친구들과 당시 인기 있던 ‘포니’를 가장 먼저 찾는 게임을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부터 자동차가 신기해서 좋아하긴 했지만, 남자라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수준이었다. 대학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당시 자동차는 사회인으로 성공하면 가질 수 있는 귀한 아이템이자 로망이었다.

 

현대그룹 공채로 들어가 망설임 없이 자동차를 지망했다. 자동차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글로벌시장의 큰물에서 놀고 싶은 욕심이 ‘자동차’와 가장 잘 맞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울산공장의 해외부품조달부로 발령이 났는데, 부장은 신입인 나에게 ‘업무를 안 해도 좋으니 12주간 주말마다 2시간씩 자동차에 대해 뭐든지 공부해서 100명이 넘는 부서원들에게 강의를 하라’는 미션을 내줬다. 그때 얼마나 놀라고 떨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킨 일은 해야 하니 매주 주제를 정해놓고, 주중에는 관련 부서들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정리해서 주말에 계속 발표를 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자동차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당시 고졸이 대부분이던 부서에 대학을 나온 신참이 서울에서 내려왔으니 공부도 시킬 겸 길들이기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참 감사하다.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난 덕분에 자동차가 더 좋아지고 30년 가까이 버틸 수 있었다고 본다.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웃음).”

 

본사로 올라와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이후 자동차를 알아가는 재미에 즐겁게 업무를 했다. 그리고 15개월 만에 서울 본사의 해외 애프터서비스 쪽으로 옮기게 됐다. 쉽지 않았던 일인데, 담당 팀장이 많은 도움을 줬다. 아무래도 서울 본사에 있으니 여러 부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중 마케팅이 가장 재미있었다. 자동차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반대로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차종들을 묘하게 엮어서 마치 경쟁 차종인 것처럼 시장에 인식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웃음). 해외 출장을 나가면 현지의 멋진 프리미엄 브랜드 차종들을 보면서 ‘현대차는 왜 저런 걸 못 만드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앞서 가는 브랜드들을 공부해 언젠가는 우리도 멋진 자동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그렇다면 잘 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왜 BMW 코리아로 옮기게 되었을까?
“BMW로 옮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BMW를 잘 알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처음에 BMW 코리아로 옮긴다고 하니 주위에서 다 반대했다.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그 당시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는 소규모 수입상으로 가는 거니까. 수입차시장도 월 600대 정도 팔리던 시절이라 미래가 불확실했다.

 

그래도 프리미엄 브랜드 차종을 보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강력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앞서 가는 브랜드의 안에 들어가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고, 열심히 하다가 잘못되면 다시 현대차로 돌아오면 된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BMW 코리아로 옮기면 BMW 한 대를 준다는 말에 넘어갔다(웃음). 

 

BMW 코리아로 옮긴 이후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업무들을 배울 수 있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업무가 많다고 불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정말 일복을 타고난 것 같다. 그래도 일을 배우러 갔으니 익숙한 애프터서비스보다는 새로운 분야 쪽으로 일을 많이 했다. 급속히 늘어나는 고객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고객지원팀을 설립해서 고객의 소리를 가감 없이 모아 정책에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운영했다. 이는 수입차업계 최초였다. 이것이 업계의 화제가 되면서 BMW를 따라잡으려고 뒤늦게 체제를 정비하던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는데 당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독일인 사장이 제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겠다고 파격적인 제안을 해서 옮기게 됐다. 어차피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를 배우러 수입차시장으로 왔으니 벤츠도 배우고 싶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서는 좀 더 많은 분야를 담당해서 일을 배웠는데, 라이프 스타일 마케팅을 기획해 액세서리 아이템을 다양하게 고급화하고, 고객 매거진도 만드는 등 다양한 고객 이벤트 활성화로 고객 만족도를 대폭 올린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들을 잡아 일을 하기도 쉽지 않은데, FMK로 옮기고 다시 캐딜락 코리아 대표로 오게 되었다.
“수입차시장에 와서 각 브랜드들의 글로벌 조직과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겪어 보니 처음 가졌던 생각도 많이 바뀌고 새로운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해보고 싶은 걸 눈치 보지 않고 글로벌 본사와 직접 협의해 결정하고, 또 그대로 실행하고 싶어서 수입차 법인장이 되어야겠다고 목표를 수정했다. 법인장이 되려면 모든 분야에 걸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하니 규모가 작아도 모든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FMK로 옮기게 된 것이다.

 

다른 브랜드와는 달리 FMK는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리테일을 하고 있었다. 페라리와 마세라티 두 브랜드의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는데 재고관리와 판매, 애프터서비스 등 모든 부문에 걸쳐 문제가 많아서 법인은 수년간 자본잠식 상태였고, 직원들이 떠나는 어수선한 분위기라 골치가 아팠다. 글로벌 본사와의 갈등도 심해 한국의 딜러십을 박탈당할 위기까지 맞았었다. 그래도 어려운 브랜드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고 기죽지 않고 페라리부터 정상화시켰고, 그 뒤 마세라티에 집중해서 판매를 안정화시켰다. 힘은 들었지만 법인 규모도 작고 고객 수도 많지 않아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면 반응이 빨리 와서 정말 재미있었다.” 

캐딜락의 기함 CT6. 한국형 자율주행 모델의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캐딜락이 진출한 50여 개 국 중 최초로 독자적인 이름의 캐딜락 코리아가 되었다. 이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GM에게 캐딜락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미션을 부여받았을까? 
“금융위기 이후 GM이 변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100년 넘게 자리한 디트로이트 지역의 보수적이며 고집스러운 분위기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먼저 캐딜락을 럭셔리하면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브랜드로 탈바꿈시켜서 전체 GM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다.

 

그래서 본사도 뉴욕으로 옮기고 첨단 디자인의 캐딜락 하우스도 오픈한 것이다. 이제 캐딜락은 수익성 확보와 함께 장기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미래 선도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캐딜락으로 대표되는 GM의 기술은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실용화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너무 앞서 나가 시장과 멀어지는 것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캐딜락이 프리미엄 브랜드로 아메리칸 럭셔리(American Luxury)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그 느낌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아메리칸 럭셔리는 어떤 의미이며 캐딜락 차종에는 어떻게 구현됐을까? 그리고 ‘유럽식 고품격’에 친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 말대로 미국 럭셔리 문화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나라답게 럭셔리를 희소가치로만 보지 않는다. 멋진 디자인과 높은 품질의 제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조, 판매, 보유, 애프터서비스 등 전 과정에서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모든 비즈니스 시스템이 럭셔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문화이고 철학이다.

 

특수층만을 위한 하이 럭셔리가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으로 일반 사람들도 언젠가는 가질 수 있는 대중 지향적인 럭셔리가 캐딜락의 본질이다. 아직 캐딜락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디자인이 익숙한 유럽식과는 많이 달라서 고객들이 의구심을 갖거나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실제 타 본 후의 반응은 우리가 놀랄 정도로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고객들을 캐딜락에 무조건 태워드려야 한다(웃음). 현재 업계 최초로 24시간 테스트 드라이브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하루 동안 고객의 모든 삶에 캐딜락이 함께 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리는 것이다. 고객의 삶을 더 빛나게 해주는 멋진 도구가 되는 셈이다. 아직은 제품과 전시장, 마케팅 등에서 캐딜락만의 독특한 콘텐츠가 충분하지 않지만, 본사를 뉴욕으로 옮기면서 급속히 좋아지고 있다.”

 

캐딜락은 지난 4월, 요한 드 나이슨 CEO 교체로 변화를 시도했다. 제품과 브랜드 전략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궁금하다.  
“제품과 브랜드 전략에 있어 단절은 없다. CEO 교체도 단지 미국시장에서 판매가 정체되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캐딜락이 앞선 좋은 기술들을 다 개발했지만 시장과의 소통은 많이 부족했다. 지금 자동차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친환경차로 넘어가는 변혁기에 있다. 이제 4, 5년 후면 친환경차의 리더십에 대한 주도권 싸움에 전환점이 올 것이다.

 

때문에 캐딜락도 고성능 프리미엄 전기차 라인업을 충실히 준비하고 있다. 자율주행에서도 이미 자율주행 3단계를 구현한 CT6을 최초로 상용화하여 미국과 캐나다, 중국에서 실제 운행 중이다. 아직 국내시장에서 캐딜락의 디자인과 기술의 리더십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차종들이 없어 아쉽다. 하지만 GM 코리아 내 엔지니어링 센터에서 개발중인 정밀지도만 완성되면 한국형 CT6 자율주행차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캐딜락의 화려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국내시장에서는 왜 20년 간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까?
“한국의 문제라기보다는 캐딜락이 미국시장에 안주해 변화에 둔감했고,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쟁 브랜드들은 이미 차체 경량화와 고효율 엔진, 전자 편의장치 등에 주력하고 있었는데, 캐딜락은 2000년대까지 큰 차체의 대배기량 가솔린엔진 차종이 주력이었으니 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승용디젤이 시장을 강타할 때도 캐딜락은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해외 시장에 관심도 없었다. 디자인도 미국 노년층을 겨냥하다 보니 지루해졌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모델의 부재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만 쌓아왔다고 본다. 캐딜락의 제품 라인업이 주력인 CT6, XT5뿐만 아니라 CT4, XT4, XT6 등 대폭 보강됐고 시장에서 디젤 인기가 하락하고 있으니 이제는 해볼 만하다.”

 

취임 이후 어떤 비전을 내세우며 어떤 정책으로 조직과 운영을 바꾸어 가고 있는지 물었다.
“FMK에서 5년 간 리테일을 경험한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를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영업사원 교육도 시키고 고객들을 만나면서 현장을 파악했다. 캐딜락 코리아에 와보니 현장이 무너져 있었다. 전시장도 비용을 줄인다고 대부분 쉐보레와 같이 쓰고 있었다. 서비스센터의 정비인력들도 질과 양 모두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매력적인 차종이 부족해 판매가 안 되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그렇게 흘러간 것은 이해하지만, 고객 서비스가 부실해 다시 판매가 안 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본을 갖추고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우선 전시장을 전부 캐딜락 전용으로 바꾸었다. 전국의 18개 서비스센터 중 15곳이 경정비 외주처리였는데, 센터 개수를 21곳으로 늘리면서 15곳을 골라 딜러직영 책임정비시스템을 갖추었다.

 

그중 서울, 부산, 전주 세 곳은 판금도장이 가능한 풀 서비스 정비시설로 변화했다. 물론 경쟁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네트워크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신차종들과 함께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영업사원도 30여 명에서 이제 120명으로 늘었고 정비인력을 포함해서 인천에 종합 트레이닝센터를 만들어 11월에 오픈한다. 교육 콘텐츠도 새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서비스업은 인적자원에 투자해야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난 덕분에 30년 가까이 버틸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영식 대표

 

김 대표는 어떻게 좌절과 실패로 주저앉았던 캐딜락 코리아의 구성원들과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온 것일까? 
“실패해도 좋다고 했다. 걸어가봐야 비로소 보이는 게 있으니 일단 새로운 걸 시도해보자고 설득했다. 다행히 시장에서 신차종의 반응이 좋았고 캐딜락 하우스 같은 멋진 팝업스토어도 관심을 끌면서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해서 작은 성공들이 쌓이면 큰 변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조직 내 해볼만 하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흘러 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힘은 많이 들었지만 보람을 느낀다.”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이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캐딜락의 중장기 성장 목표는 무엇일까?
“디젤게이트와 최근 차량 화재, 배기가스 기준강화로 인한 차값 상승 등 디젤엔진의 인기가 하락하고 소득 증가와 함께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작은 규모 브랜드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행운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과를 만드는 건 실력이다. 우리는 지난해 급성장을 했기 때문에 올해는 내실화를 강조하고 있다.

 

계속 급성장하면 조직이 못 따라가서 오히려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 현재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조치들이 현장에서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가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올해는 2500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재고 부족으로 좀 부진했지만 백오더가 많고 9월부터 공급이 원활해질 예정이라 무난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급성장으로 인해 글로벌 본사의 관심을 충분히 받고 있다(웃음). 향후 2년 내 연 5000대를 판매해 캐딜락 글로벌 판매의 탑3이 되는 것이 장기 목표다.

 

BMW 코리아에 합류한 당시 연 2700대를 팔았고 2년 뒤에 연 5000대 판매를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뭘 어떻게 단계별로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아직 한국 럭셔리카 시장의 잠재력에 대해 본사의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아 제품 개발이나 인증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곤 한다. 그래서 자료도 열심히 보내면서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웃음). 미국에서 출시된 신차종이 국내에 2년 뒤에 들어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캐딜락은 특이하게 CJ슈퍼레이스 6000 클래스의 스폰서로 2013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네이밍 스폰서로 계약을 강화해서 아예 대회 이름을 ‘캐딜락 6000 클래스’로 바꿨다. 어떤 계기로 자동차 레이싱의 스폰서가 되었으며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선진국에서는 카레이싱이 자동차 문화의 큰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고성능 기술을 계속 개발해서 레이싱에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 그래서 카레이싱의 감동과 재미를 한국의 고객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저평가된 캐딜락의 고성능 이미지를 올리고자 한 이유가 가장 컸다.

 

사실 캐딜락의 V 시리즈는 고성능 스포츠카로서 어느 브랜드에도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가졌음에도, 가격은 매력적으로 낮아서 한국 고객들에게 충분히 더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후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레이스가 국내에 있다는 게 오히려 감사하다.”

 

최근 차량 화재로 인해 국내 리콜과 제품책임에 대한 정부와 소비자들의 관심과 요구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다. 캐딜락 코리아 역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어떤 대응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경쟁사이긴 해도 시장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브랜드가 겪고 있는 사안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사실 우리는 차량을 직접 만들지 않기 때문에 품질 이슈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 않다. 하지만 수입 판매 이후는 우리의 영역이라 사안이 발생하면 발 빠르게 정부와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는 게 관건이다.

 

어느 차종이나 수많은 요인에 의해 화재가 날 수 있지만, 이번의 경우 화재가 특정 모델, 특정 기간에 집중되어 비상한 관심과 함께 뭇매를 맞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원만히 잘 해결된다면 국내 리콜제도 재정립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캐딜락은 부평의 GM 코리아 내 엔지니어링 센터가 있어 본사의 엄격한 방침에 의해 모든 신차종의 품질을 출시 전에 철저히 검증하고 있다. 다행히 작년부터 캐딜락의 화재는 아직 한 건도 없다.”


2008년에 철수한 사브의 애프터서비스는 잘 되고 있나?
“물론이다. 우리가 파악하기엔 현재 국내에서 사브가 1100대 정도 운행되고 있다. 이 차들은 우리가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할 것이다. 다만 오너들이 캐딜락으로 많이 바꾸고 있다(웃음).”

 

30년 가까이 같이 해온 자동차는 어떤 의미일까? 더불어 김 대표의 워라밸과 은퇴 이후 세컨드 라이프 계획을 물었다. 
“자동차는 이미 직업을 넘어 소울메이트(Soul mate) 같다. 오감 만족을 주는 정말 매력적인 존재다. 워라밸은 최근 유행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젊었을 때부터 일을 통한 성취감을 최고의 가치와 즐거움으로 알고 살았다. 그래도 나는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면서 상대적으로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편이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갖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전 온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골프를 했는데 정말 행복했다. 세컨드 라이프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은퇴 후에도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할 것 같다. 차가 너무 좋으니까(웃음).”

 

끝으로 자동차와 함께 하는 커리어를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의 한마디는?
“다른 산업과 달리 자동차는 상당히 분야가 넓고 복잡한 종합산업이다. 단순 제조업을 넘어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매력적인 산업인 셈이다. 그러니 자동차산업 내 존재하는 다양한 업무분야 중 어떤 것이라도 택해서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변화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외곬 인생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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