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하가 만난 사람 / 혼다코리아 정우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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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하가 만난 사람 / 혼다코리아 정우영 대표
  • 황순하
  • 승인 2018.08.2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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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자동차 외길을 걸어온 혼다코리아 정우영 대표가 지난 4월,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회장에 취임했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그의 혜안이 필요하다. 그에게 새롭게 변화하는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지난 것들을 익혀서 새 것을 알 수 있으면 스승이 될 수 있다).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이 유명한 한자성어가 요사이 필자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 자동차산업의 모든 기본 규칙들이 혁신적으로 변화해가는 커다란 변곡점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동차 자체를 보면 동력원이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바뀌어 가고 있고, 운전자의 반응과 관여가 최소화되는 자율주행 차량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시에 시장에서는 구매보다 공유로 사용 행태의 흐름이 바뀌고 자동차의 기본 형태에 관한 대중의 인식도 세단 스타일에서 SUV나 해치백으로 전환되는 등, 오랜 기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것들이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 

 

정우영 대표는 1976년 대학 졸업 후 당시 혼다 모터사이클을 조립 생산하던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에 엔지니어로 입사, 대림자동차 대표와 혼다모터사이클코리아 대표를 거쳐 2003년부터 혼다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40년 넘게 자동차 외길을 걸어온 그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현역 최고원로이자 수입차업계 1세대다.

 

정 대표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지난 4월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의 수장으로 선임된 이유도 있지만, 새로운 변화와 시도로 어수선해진 국내 자동차산업과 수입차업계를 보다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의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정 대표의 자동차와의 질긴 인연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딱히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거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니고요. 대학 졸업 후 별 생각 없이 기아산업에 들어갔고 주물 공장으로 배치를 받아 어찌할까 싶었지요. 마침 그 때 혼다 모터사이클을 조립 생산하는 기아기연이라는 계열사가 만들어졌고, 이름에 ‘연’이 들어갔기에 연구조직인 줄 알고 지원했죠(웃음). 그래서 이륜자동차와의 인연이 시작된 겁니다. 1981년 자동차산업합리화조치에 의해 회사가 대림자동차로 바뀌었어도 열심히 했죠. R&D센터장과 공장장을 거치면서 제 꿈은 일본보다 더 좋은 모터사이클을 한국에서 만들어보는 것이었어요.

 

사내에서 혼다와 관련된 모든 업무의 창구역할을 하다 보니 혼다에서 연수도 많이 받고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대림자동차를 그만두고 잠시 쉴 때 그 인연으로 혼다에서 연락이 왔죠. 오랜 시간 한국에서 로컬 파트너와 사업을 해왔지만 정작 혼다에는 남은 게 없다면서, 이제 직접 진출해서 판매를 하고 싶으니 같이 해보자고요. 그래서 2001년에 혼다모터사이클코리아를 같이 세웠고, 2년 뒤 혼다자동차 수입도 결정되면서 회사 명칭이 혼다코리아로 바뀌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온 겁니다.” 

 

1987년 수입차 판매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이후 30년 동안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 금융위기, 그리고 2015년 디젤게이트 등 3번의 외부 변수가 있었다. 수입차시장의 흐름도 변화가 컸다. 초기 수입차시장은 포드, 크라이슬러 같은 미국 브랜드가 주도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부터는 독일과 일본 브랜드의 양강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후 수입차시장은 독일브랜드와 디젤엔진의 압도적인 주도로 크게 성장했지만, 2015년 디젤게이트로 독일브랜드와 디젤엔진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소비자들은 비(非) 독일브랜드와 하이브리드 엔진 등으로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감회는 어떨까? 

 

혼다코리아 정우영 대표는 지난 4월,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수장으로 선임됐다

 

“결국 사업이라는 게 내부 경영을 아무리 잘 하더라도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이 생기면 휘청거릴 수 있다는 걸, 모두가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 경제 변동에 의해 환율과 금리가 흔들리고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 거죠. 세상에 영원한 건 없습니다. 1등을 했더라도 흥분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하고, 판매가 급락해도 좌절하지 말고 다시 기회가 올 때까지 내부를 다지며 기다리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남자들이 로망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모터사이클과 자동차를 오랜 시간 다룰 수 있었기에 자동차업계 선배로서 자랑스럽다기보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도 별 실수 없이 모양새 흐트러트리지 않고 해왔으니까요.” 

 

선문답 같은 답변이지만 오랜 시간 산전수전을 다 겪어낸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묵직한 여운이 느껴진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수입차시장의 성장과 다양화로 규모를 키우면서 이제 20개 회원사와 31개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임이 됐다. 수입차업계의 공통된 이해관계나 주요 이슈에 관해 관련 공공기관들과 적극적으로 의견 교환을 하고, 소비자와 언론을 상대로 소통에 나서는 등 그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4월 회장으로 취임한 정 대표에게 협회를 어떤 비전으로 이끌고 가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국내 자동차시장도 많이 성숙해져 국산차든 수입차든 시장의 정확한 니즈에 맞추어 제대로 된 콘셉트의 자동차를 적절한 타이밍에 내놓을 수 있는가에 따라 마켓 리더가 됩니다. 국제화 시대에 관세도 없어지니 국산차와 수입차의 구별도 무의미합니다. 소비자의 선택만 남아 있는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둘로 나누어 비교하는 걸 좋아합니다. 국산차와 수입차, 수입차에서도 독일차와 일본차 등으로 나눠 비교 분석합니다. 현재 모든 브랜드에서 수많은 콘셉트의 자동차를 정신없이 시장에 퍼붓고 있는데, 국산차와 수입차, 가솔린엔진과 디젤엔진 등의 이분법 구도로는 전체를 담을 수 없습니다.” 

 

현재 KAIDA는 시장에 들어오는 브랜드들을 순차적으로 회원으로 포함시키다 보니 주로 선진국의 승용브랜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대형 상용브랜드 5곳을 회원사로 맞이한 것이 최초의 다변화 시도였다. 그래서 향후 중국이나 인도 국적의 자동차업체들이 회원신청을 하면 받아들일 것인지 궁금해졌다. 

 

“협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어느 브랜드든 신청하면 이사회 결의를 거쳐 받아들입니다. 중국이나 인도라고 예외일 수 없죠. 지금처럼 소량씩 수입하면 상관이 없지만, 향후 대량으로 지속 수입하게 되면 수입관련 서류작성이나 인증 정보 등 협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겁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콘셉트나 저가 상용차 분야에서는 충분히 시장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아직 정식으로 신청한 브랜드는 없고요. 단 선진국 모델을 그대로 베끼는 카피 메이커(Copy maker)들은 사양합니다(웃음).”

 

혼다자동차 이야기를 해보자. 대부분의 일본브랜드들이 2000년대 후반 판매를 개시했고 당시 혼다의 전투력은 놀라웠다. 어코드와 CR-V의 두 차종 중심으로 매년 성장해 2008년 1만2356대로 수입차업계 최초로 연 1만 대 판매를 돌파했고, 수입차시장 점유율 20%로 업계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해 9월에 터진 미국 금융위기로 수입차시장의 강한 성장세가 한풀 꺾이며 혼다도 주춤했고, 이후 2015년에는 1.8%까지 하락했다. 그리고 지난해 다시 시장점유율을 4.4%까지 끌어올리며 반등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 10년 동안 혼다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혼다의 경쟁력은 더 살아날 수 있을까?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어떤 시장에 진출할 때 혼다가 현지 법인에 내리는 지침은 압도적인 소비자만족(CS)을 달성하는 것 단 하나입니다. 기업은 영속해야 하니 그 시장에서 떠날 게 아니라면 제품과 서비스 측면에서 시장이 원하는 브랜드가 되라는 것이죠. 실제로 판매량이 갑자기 많아지면 판매와 정비의 서비스에 허점이 생겨납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초기부터 판매보다는 소비자만족에 더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잠재 고객층에는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많고, 그분들이 유학생 시절 경험했던 혼다의 품질과 서비스, 내구성 등의 이미지가 초기 판매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경쟁모델 대비 가격도 합리적이었고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많이 어려웠는데, 특히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2배 이상 뛰어 판매모델들을 일본에서 수입하던 상황에서 채산성을 맞추기가 힘들었죠. 게다가 2009년 미국시장에서 발생한 토요타의 품질 스캔들로 일본차의 품질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2011년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태국의 대규모 홍수로 장기간 차량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겹치면서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조금 아련한 표정이 된 정 대표가 설명을 이어갔다. 가슴 속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듯했다. “금융위기 때 유로화는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해서 그 이후 독일브랜드들의 엄청난 판매 공세가 가능했고, 독일브랜드들은 디젤엔진에 강점이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디젤엔진의 선호도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디젤엔진이 없던 일본브랜드들의 판매가 힘들어졌고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힘든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건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입니다.

 

어느 브랜드라도 살고 죽는 것은 결국 딜러가 결정하는데, 우리는 딜러의 존속과 수익을 최우선 목표로 정했습니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딜러 수를 늘리지 않았고 딜러 간의 고통스러운 할인경쟁도 유도하지 않았죠. 오히려 딜러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수준의 판매량을 계산하고 판매가 줄더라도 가격을 계속 올렸습니다. 어차피 공급도 한동안 어려웠으니까요. 남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시장에서 판매대수 1,2위를 달성하는 것보다 딜러의 사업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키고 소비자만족을 지켜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기업의 목표는 1등이 되는 게 아니라 생존입니다. 따라서 고객한테 사랑받고 시장에서 존경받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판매가 어려워도 압도적인 소비자만족 1위를 고수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2015년까지 큰 점수 차로 계속 1위를 했는데, 2016년 다시 판매가 늘어나니까 바로 벤츠에 밀린 겁니다(웃음). 작년에 차량부품의 표면방청 불량으로 품질이슈가 있었죠.

 

자동차의 안전과는 관계없지만 외관불량으로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드렸으니 저희가 책임을 지고 290억 원을 들여 1만9000명의 고객 차량에 표면 방청처리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97%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 한 분까지 다 점검해드릴 겁니다. 이번 이슈를 계기로 저희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1등을 해 봤으니 또 언젠가는 다시 1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혼다 본사도 같은 방침이었기에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았습니다.”

 

혼다의 이런 역발상적인 방침에 대해 딜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판매와 서비스를 위한 초기 투자도 많았는데, 판매량이 연 1만 대에서 3000~4000대 수준으로 떨어지면 딜러들이 장기간 버텨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비자만족도 1위를 계속 유지해왔다는 것은 딜러들이 현장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했다는 뜻이니 신기할 정도다.

 

정우영 대표는 현재 혼다의 우선순위는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려운 시기에 딜러들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었으니까요. 딜러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하면서 이해를 구했습니다. 추가적인 투자도 요구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딜러들은 판매량이 줄어도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고 딜러십 변동도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오히려 시장에서 물량으로 1,2위를 다투던 브랜드의 딜러들이 과도한 투자와 경쟁에 내몰려 적자를 내고 오너들도 많이 바뀌었죠. 딜러들이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소비자들도 만족할 수 없죠.”

 

브랜드들은 시장에서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 소비자만족 등 소프트한 부문에서 자신을 차별화하며 힘겹게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혼다의 브랜드 이미지는 진출 초기에 가졌던 품질 좋고 편안하며 서비스 좋다는 실용적인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필자가 기억하는 혼다는 뛰어난 엔진과 차체 기술로 독특한 차종들을 개발하고 F1에도 과감히 참가하는 ‘기술의 혼다’였고, 모터사이클과 자동차, 선박 엔진에 아시모(Asimo) 로봇과 비행기까지 아름다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혼다의 기업문화가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의외다. 

“진정한 모빌리티의 의미는 엔진 달린 것 이외에는 하는 게 없다는 거죠. 혼다의 모토는 전 세계 시장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겁니다. 인간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의 생활을 여유롭게 만드는 편리한 생활도구를 만드는 거죠. 이것저것 다하면서 자동차도 하나 한다고 모빌리티 회사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혼다는 연간 자동차 500만 대, 모터사이클 2000만 대, 파워트레인 500만 대 등 연 3000만 개 이상의 엔진을 만들어 고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죠. 그동안 북미시장과 인도, 동남아 같은 신흥시장에 주력하다 보니 국내에 좀 덜 알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 혼다 오너들은 재구매율이 높고 영업사원들에게 혼다차는 내가 더 잘 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더 노력해야죠.”

 

‘기술의 혼다’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미지리딩 모델이 필요하다. 고성능 스포츠카나 독특한 콘셉트와 디자인의 모델을 한두 개 개발해 홍보용으로 앞세우고, 그 이미지를 활용해서 평범하고 실용적인 차종들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건 자동차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혼다는 90년대 일본의 RV붐을 선도하며 독특하며 매력적인 모델들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적인 기호에 맞춘 차종들이 주로 생산되고 있어 아쉽다. 연간 생산규모가 경쟁 상대의 절반 수준에 그친 점도 차종 라인업을 단순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옳은 지적입니다. 판매 증대보다 장기적인 혼다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혼다만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모델들이 필요한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 내수시장의 장기 침체로 인해 혼다의 매력적인 RV모델들이 많이 사라진 건 아쉽습니다. 주력 제품인 어코드와 시빅도 북미시장과 신흥국 위주가 되다 보니 재미없는 패밀리 세단이 되어 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다행히 10세대 어코드는 과거의 독특하고 스포티함이 많이 강조되어 기대가 큽니다. 하이엔드 스포츠카 NSX의 출시를 놓고 고민이 많았는데, 예상 판매대수에 비해 선행투자가 많이 필요해 결국 포기했습니다. 소형 스포츠카인 S660도 좋지만 왼쪽핸들 사양이 없어서 아쉽죠. 고급 퍼포먼스 브랜드인 어큐라(Acura)의 시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적절한 출시 시점을 계속 검토하고 있는데, 지금은 우선 혼다의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급선무라 판단합니다.”

 

혼다는 1999년 프리우스에 앞서 인사이트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기술의 혼다’에 걸맞는 선도적인 역작이었지만, 그 이후로 혼다는 친환경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친환경차 기술에서 앞서가던 혼다가 잠시 주춤했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시장반응이 시원치 않으니 옳은 방향인가 회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너무 앞서 갔다고도 할 수 있겠죠. 다행히 요새 나오는 하이브리드 모델들의 완성도가 높아 앞으로 더 인기가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가 미래 친환경차의 주력이 될 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원가를 낮추기 위해 혼다는 GM과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를 공동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문이 열렸으니 각 브랜드에서 경쟁적으로 다양한 친환경차를 출시하고 자기 방식을 업계의 표준으로 삼고자 치열하게 경쟁할 겁니다. 기술과 원가 측면에서 현실성이 있어야 성공할 테니 각 브랜드간의 연합이 분야별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혼자 잘 하기에는 자동차산업이 너무 복잡해졌어요(웃음).”

 

혼다 2018 슈퍼커브

 

혼다는 1948년 모터사이클 제조업체로 시작했다. 1958년 도심형 근거리용 슈퍼커브가 대히트를 하면서 이듬해 세계 최대 규모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로 도약했다. 이후 60년 간 전 세계 주요 지역에서 모터사이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연 30만 대 규모로 성장했던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은 이제 연 9만 대의 작은 시장으로 위축되었다.

 

왜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은 성장하지 못했을까? 그래도 혼다는 15년 연속 국내 모터사이클 브랜드파워 1위를 유지해왔다. 작년에는 누적 판매 10만 대를 달성했고 올 상반기에는 최단기 1만 대 판매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전체 규모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해외 주요 브랜드가 다 들어와 있는 국내시장에서 혼다만 독야청청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국내 모터사이클 업계도 60년대 해외 브랜드 모델의 단순조립 산업에서 많이 변했죠. 결론적으로 말해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자동차산업은 국내 중추 기간산업이 되었지만, 모터사이클산업은 실패했다는 겁니다. 이는 산업화 초기부터 정부지원과 사회제도가 자동차 위주로 실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도로나 주차장 같은 교통 인프라부터 도로교통법 같은 법규에 묶여서 모터사이클산업은 도심 배달 업무 이외 자체적인 사용문화를 형성하기가 어려웠죠.

 

저소득 신흥국에서는 먼저 모터사이클로 모빌리티를 경험하다가 소득이 증대되면 자동차로 옮겨가는 트렌드인데, 우리나라는 모터사이클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자동차로 들어가 버린 겁니다. 시장규모가 작다 보니 정부도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하는데 무관심했던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시장이 줄어드는데 브랜드가 유지되는 것은 이미 시장에서 혼다 모터사이클은 안전하고 품질이 좋아 트러블 없이 즐겁게 탈 수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관련 단체나 동호회를 중심으로 건전하고 긍정적인 모터사이클 문화를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마켓리더로서 혼다가 이런 문화형성에 어떤 기여할 수 있을까? “지금도 관련 협회나 각 브랜드의 동호회를 중심으로 다들 열심히 활동하고 있죠. 아직 미약하지만 소득수준 향상과 라이프스타일 다양화로 점차 나아지리라 기대합니다.

 

전체 시장은 줄어도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은 연 2만5000대 규모에서 계속 성장 중입니다. 혼다는 몇 대 더 파는 것보다 모터사이클 사용문화의 발전과 정착에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게 명확한 정책방향입니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43%을 가진 최대 제조업체로서 혼다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죠. 운전 교육과 기본 룰의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결국 문화를 키워야 시장이 커지니까요.”

 

개인적인 질문 하나. 요즘 워라벨이 대세다. 일과 가정의 라이프 밸런스가 궁금했고, 세컨드 라이프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 대표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라이프 밸런스라는 건 평생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는 헬스클럽에 간다는 마음으로 주말에 등산이나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서 지냈죠. 앞으로도 계속 일할 거니까 세컨드 라이프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언젠가 현직에서 물러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연에 묻혀 생활하고 싶네요. 사회를 벗어나 개인을 돌아보는 생활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자동차업계의 대선배인 정 대표는 자동차를 좋아하며 자동차와 함께 하는 커리어를 꿈꾸고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을까? “신입사원 면접 때 왜 혼다코리아를 지원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자동차를 좋아해서라고 답을 합니다. 구체적으로 자동차의 어떤 면을 좋아하냐고 다시 물어보면 답을 잘 못합니다.

 

만드는 걸 좋아하면 상품기획이나 연구개발로 가야 하고 타는 걸 좋아하면 시승 쪽으로 가야죠. 파는 걸 좋아하면 영업으로 가야 하고요. 저도 어찌 하다 보니 내연기관이 제 인생의 모든 것이 되었는데, 초기에는 모터사이클 제조현장에서 만드는 걸 좋아했고 지금은 판매회사 사장으로 파는 걸 좋아하고 있습니다. 막연히 지동차를 좋아한다고 하지 말고 자동차의 어떤 걸 하고싶어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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