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오 회장, 토요타의 가치와 신뢰를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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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오 회장, 토요타의 가치와 신뢰를 키우다
  •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
  • 승인 2018.07.2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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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토요타 총수 토요다 아키오는 유럽 자동차산업의 건강·수월성·경쟁력에 누구보다 빛나는 공헌을 했다. 그에게 <오토카>가 수여하는 2018 이시고니스 트로피가 돌아갔다

국제자동차계에서 토요다-상(樣: 우리나라의 ‘님’보다 정감이 가는 호칭)은 토요타의 명망 높은 창업자 토요다 키이치로의 손자 토요다 아키오를 뜻한다. 토요다 아키오는 지금까지 9년간 세계정상급 일본 메이커 토요다 사장 겸 CEO로 활약하며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다. 그가 <오토카>의 2018 이시고니스 트로피의 빛나는 영광을 안았다. 토요다는 그 유명한 ‘토요타 스캔들’이 터졌을 때 사장으로 임명됐다. 2009년 그가 다시 토요타의 사령탑에 오른 뒤 몇 달 뒤 미국시장에서 ‘불의의 급가속’이라는 파국적 위기가 닥친 것이다.

 

토요다는 “그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한 자신의 자세가 옳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당시 그는 세계 매스컴에서 끊임없이 조롱을 당했고,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자동차계에 무지한 정치인들의 호된 공세에 시달렸다. 그들은 토요타 자동차가 ‘안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윽박질렀다. 2년이 지나자 악의에 찬 비난공세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본격적인 기술조사가 끝나자 당초의 과열된 보도와는 달리 토요타의 과오는 훨씬 작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에 따라 사태를 공정하게 보려는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호의적인 세력이 늘어났다.

 

이시고니스상 수상자에게 딱 들어맞는 차

 

그 뒤 토요다는 거듭 자기 실력을 입증했다.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리더십으로 이름을 떨쳤고, 보기 드문 자동차 사랑으로 회사 곳곳에 수많은 충성파 제자를 거느렸다. 이로써 토요타, 렉서스와 다이하쓰 브랜드는 ‘관제 자동차’라는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졌고, 그보다 훨씬 매력적인 일련의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2012년의 토요타 GT86 스포츠카는 그 출발점이었다. 그 뒤 한층 ‘정서적인’ 차들이 이어서 출시됐다. “처음 4년은 어려웠다.” 토요다가 설명했다.

 

“일본에는 이런 속설이 돌고 있다. 나와 같은 3세 경영자는 기업을 망치게 마련이라고.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서 난관에 부닥치면 무릎을 꿇고 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위기뿐만 아니라 그런 속설과도 싸워야 했다. 그런데 내가 무난히 위기를 극복하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게다가 위기를 통해 사장인 나에게 어떤 기대가 걸려있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대단히 긍정적인 현상이었다.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고, 이를 통해 우리 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는 차에 대한 사랑으로 한평생을 살았다. 토요타가 신뢰성과 가치 있는 차를 만드는 메이커로 탈바꿈한 힘이 거기서 나왔다

 

기업의 위기 속에서도 토요다는 일찍부터 자동차 사랑을 실천할 조직을 만들었다. 뜻을 같이하는 사원들의 제품 사랑과 개발열기를 북돋기 위해 만든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이라는 모터스포츠팀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는 ‘드라이버 모리조’(Driver Morizo)라는 가명으로 출전했다. 어정쩡하게나마 익명으로 나가겠다는 의도였지만, 토요다가 몰고 다니는 군단의 엄청난 규모 때문에 숨어서 넘어갈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뉘르부르크링 24시간에 출전하면서 그의 정체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시 토요다는 애스턴마틴 총수 울리히 베즈와 한 조를 이뤄 대담하게 정상에 도전했다. 그 뒤 가주 레이싱팀은 토요타의 주력 레이싱 브랜드로 떠올랐다. 토요다 자신은 유명 만화의 스타가 됐다. 이제 그는 모리조 레이싱 브랜드를 더욱 알차게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전에 내가 만난 토요타의 최고경영자는 예외 없이 근엄하고 사무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는 그의 사무실에 자리 잡은 뒤 말문을 열었다. 우선 토요다의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토요타의 미래가 모빌리티라면 수프라와 같은 스포츠카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토요다는 그들이 자신의 영웅이었다고 주저 없이 밝혔다. 아울러 레이싱 동료 히로무 나루세를 회고할 때는 눈가를 붉혔다)는 굳건하고 건실한 경영정신을 물려줬다. 기업을 강화하고 고객을 위해 믿음직하고 가치 있는 차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내 성장기에는 주위에 차가 많았다.” 토요다의 회고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밝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장이 되고 가즈 레이싱을 창설하면서 내 결의는 더욱 굳어졌다.”

 

토요타는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메이커로 꼽힌다. 그렇다고 해서 운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자세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토요타맨들은 오래 전부터 ‘무사고’, ‘무배기’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일본을 수소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양산 수소차 미라이가 그 단적인 사례다. 미라이는 차에 실린 연료전지를 통해 전력을 만들어 차를 움직인다. 일반 전기공급이 중단됐을 때는 이 전지가 대체 전력공급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좀 더 좋은 차’(토요다와의 대화에 뻔질나게 등장한 이전 세대의 모토다)를 추구하려는 끈질긴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미라이와 대량판매형 프리우스 하이브리드(미라이에 많은 구동장비를 제공한다)는 토요타 제품 중 기술적으로 가장 복잡한 모델에 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보증기간 중의 무상 수리 요구가 제일 적은 부류에 속하기도 한다. 우리는 미래로 말머리를 돌렸다. 토요타는 머지않아 신형 수프라 스포츠카(신형 BMW Z4와 많은 부품을 함께 쓴다)를 내놓는다.

 

그리고 3단계 스포츠카 신형 MR2가 뒤따라 등장한다. 토요다는 토요타와 같은 기업들이 차량판매에서 모빌리티 제공자(거의 모든 대형 메이커는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다)로 전환되는 시점을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차는 결코 단순한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며, ‘파트너’ 또는 ‘친구’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토요다가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는 10~20년 뒤의 자동차 환경은 어떨까? “그 문제에 대해서라면 내가 준비한 대답이 있다. 다만 내가 워런 버핏에게 한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최근에 그는 바로 당신이 앉은 자리에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토요타는 미라이 수소차와 같은 대체연료차로 자동차계를 이끌고 있다

 

나는 온 신경을 귀에 모았다. 그리고 토요다가 전설적인 세계의 대부호에게 털어놓은 견해를 듣게 된  순간 짜릿한 흥분이 밀려왔다. “버핏에게 말했듯 나는 먼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토요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버핏은 내 말을 듣고 찬사를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기업가는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마련이다. 그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기뻐했다.”
토요다는 미래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이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변화에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다른 모든 메이커처럼 우리도 목표가 있다. 그런데 미래의 시장이 오늘날과는 전혀 달라질 것만은 확실하다.”

 

이처럼 변화를 주제로 한 대화가 계속되자 토요다가 할아버지 키이치로의 경영원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그 원리가 통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토요다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자동방직공장을 자동차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지금 우리는 자동차회사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는 유사성이 많다.” 토요다는 말을 이었다. “57세에 일생을 마친 할아버지는 자신의 회사와 자동차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몹시 아쉬워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벌써 62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요즘 가끔 내가 할아버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내가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지만 부모님을 통해서 그를 잘 알고 있다. 수많은 딜러 및 공급업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수없이 들었다.” 인터뷰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남겨뒀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토요다 자신의 장래 계획은 무엇인가? 그는 ‘기업가문의 3세대는 회사를 몽땅 망친다’는 일본의 속설을 앞서 소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4세대에 관해서는 일본에 어떤 속설이 있는가? 그리고 후계자를 키우고 있는가?

 

토요다는 이 질문을 능란하게 받아넘겼고, 자신의 경영방식과 업적에 슬쩍 자부심을 내비쳤다. “3세대가 성공했다면, 4세대는 후계자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은퇴하기 전에 이루고 싶은 특별한 목표가 있는가에 대해서, 그는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수많은 일본 기업가 중에서 62세의 토요다 아키오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며 “목표는 움직이게 마련”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에 착수하면 끝없는 여행을 하게 마련이다.” 

 

토요다 아키오를 만나다
 

기념품 가운데 그의 멘토 히로무 나루세의 사진이 있다

 

토요타 사장 토요다 아키오는 강철 같은 의지를 숨긴 상냥하고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사무실이 있는 본사 건물 앞에서 나를 맞았다. 우리가 수여하기로 한 상은 이시고니스 트로피. 1980년대 토요타 아키오가 직접 몰고 돌아다닌 차가 오리지널 미니였다. 당시 그는 런던의 어느 상업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다. 따라서 깔끔한 빨간색 미니쿠퍼는 완벽한 촬영용 소품이었다. 토요다는 카메라 앞에서 신바람 나게 몰고 다녔고, 운전석에서 유쾌하게 엄지를 세우고 포즈를 취했다. 우리의 대담은 예정시간을 훨씬 넘겼다. 우리가 만났던 사무실은 실로 비범했다.

 

사방에 가득 찬 골동품, 토요타 나스카(NASCAR) 출전 트로피, F1 영웅들의 메시지. 토요다와 명성을 다툴 인사들이 서명한 100장의 사진과 회화가 눈길을 끌었다. 토요다의 수많은 모형(과 그의 멘토 히로무 나루세의 모형 몇 점)이 온갖 모양과 크기의 카 모델과 함께 줄을 서 있었다. 심지어 폭발한 경주용 타이어로 만든 커피 테이블도 있었으며, 어느 트로피 캐비닛 위에는 특별한 경기용 색상을 입힌 서프보드가 버티고 있었다. 하와이의 토요타 딜러가 감사의 표시로 보낸 선물이었다. 나는 이 가운데 어느 게 가장 소중한가를 묻는 걸 깜빡했다. 한데 우리는 그곳을 떠난 뒤에야 그에게는 이보다 더 많은 기념품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는 모두가 소중했다. 토요다와 그의 측근인사들은 그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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