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했던 랠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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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했던 랠리의 추억
  • 리처드 헤슬타인(Richard Heseltine)
  • 승인 2018.07.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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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랠리는 너무나 가혹했다. 때문에 경주차마다 경호 헬리콥터가 따라붙었다. 댄 프로서(Dan Prosser)가 최악의 WRC를 기억하는 주역들의 회고담을 들었다

일각에서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은 그 정수인 모험정신을 잃었다고 개탄한다. 한때 위험이 곳곳에 도사렸던 사파리 랠리가 WRC 시리즈에 들어있었던 사실을 생각할 때 실감이 나는 말이다. 마구잡이로 달려오는 현지 차량들, 숨겨진 거대한 바위, 차 한 대를 그대로 삼킬 도로의 싱크홀, 기린떼, 코끼리들. 어느 정도 안전하게 경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헬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 위에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WRC 경기에는 헬기가 등장한다. 경기 장면을 촬영하고 차내 추적기의 신호를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동아프리카 사파리 랠리와 비교한다면 긴장ㆍ공포ㆍ스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2002년 사파리는 시즌 최종전이었다. 당시 영국 랠리 전문업체 프로드라이브가 운영하던 스바루 월드랠리 팀은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1980년대의 그룹 B 이후 경기규칙에 따라 선두그룹 팀들은 경주차 한 대마다 경호 헬기를 붙여야 했다. 랠리 스테이지가 너무 방대하고 통제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스바루팀의 전직 운영이사 폴 하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끔찍하게 값비싼 작전이었지만 그 재미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우리는 미캐닉을 헬기에 태우고 다녔다. 그밖에 수많은 부품도 실었다. 한데 그런 관행은 결국 금지되고 말았다.” 하워스가 말했다

 

하워스는 WRC 명드라이버 페터 솔베르그의 경호 헬기에 4번이나 탑승했다. “랠리 중에는 조종사, 나와 노련한 비상의료사가 헬기에 함께 탔다. 페터가 사고를 당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현장에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WRC 시리즈 중 사파리가 개방된 도로를 이용하는 유일한 랠리였다. 따라서 랠리 스테이지에는 현지 차량이 마음대로 들락거렸다. 랠리카가 달려올 때는 주민과 차량에 사전경고를 했다. 기술진의 지시를 전달하고, 야생동물을 몰아내야 했다. 거의 모든 동물이 달아났지만, 당나귀는 달랐다.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꿈쩍하지 않았다. 우리는 헬기 스키드로 그놈들의 머리를 거의 쓸다시피 하는데도 달아나지 않고 버텼다.”

 

랠리 스테이지의 어떤 곳에서는 시속 20km로 바위를 타고 올랐다. 그럴 때면 상공에서 제법 오랫동안 정지비행을 했다. 뒤이어 고속 구간에서는 500m 전방을 날면서 위험한 장애물이 없는지 살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사실상 내가 랠리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온갖 야생동물 무리는 실로 장관이었다.” 그렇다면 경호 헬기는 얼마나 중요한가? 니키 그리스트는 콜린 맥레이의 코드라이버로 3승을 거둔 베테랑이었다.

 

경호 헬기는 경주차 고장과 위협적인 야생동물을 경계했다

 

그는 헬기의 중요성을 부각한 3대 사건을 회고했다. “우리는 테스트 중이라 헬기가 따르지 않았다. 평원을 달리다 좌회전 코너에 들어갔는데 그 순간 갑자기 기린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우리와 나란히 달리다 우리 앞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탄 쪽 창문에 그놈의 한발이 올라왔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우리와 떨어져나갔다. 그 속도로 기린과 부딪치면 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경호 헬기가 있었다면 경주차가 오기 전에 기린을 쫓아버렸을 것이다. 

 

 

“1997년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우리 차가 기계고장을 일으켰다.” 그리스트가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는 잘 달렸고, 2위를 지키고 있었다. 스테이지 종점과는 80km밖에 남지 않은 거리였다. 갑자기 발전기 경고등이 들어왔다. 우리는 그 문제를 상공을 날고 있는 헬기에 알렸다. 그들은 높이 올라가 기지와 무전연락을 했다. 그리고 기지의 지시를 우리에게 전했다. ‘연료펌프를 꺼라, 이걸 꺼라 저걸 꺼라.’ 우리가 스테이지 끝까지 갈 수 있게 배터리 전력을 절약하라는 지시가 잇따랐다. 그러다 이런 지경까지 갔다. 좋다, 무전기도 꺼라. 전할 말이 있으면 차 위로 내려가겠다.’ 우리는 간신히 스테이지를 마쳤고, 그 자리에는 서비스가 있었다. 거기서 발전기와 배터리를 갈았고, 콜린과 나는 사파리 첫 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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