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지지 않는 경쾌함, 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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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지지 않는 경쾌함, 클리오
  • 류청희
  • 승인 2018.06.16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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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실용성과 경제성, 알찬 달리기라는 뚜렷한 장점을 지닌 클리오가 국내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자동차 평론가 류청희가 확인해봤다
삼성자동차가 르노에 인수되어 르노삼성이 된 지도 17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국내에서는 르노 이미지보다 삼성 이미지가 강하다. 삼성이 관여하는 일이 전혀 없는데도 아직까지 브랜드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던 르노삼성이 새 차를 내놓으며 작심하고 르노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새 차의 이름은 클리오. 르노삼성 클리오가 아니라 르노 클리오다. 심지어 '대한민국 첫 번째 르노’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수입차 개방 초기에 쌍용이 잠시 르노 차를 판 적이 있고, 최근에 르노삼성이 판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도 르노 브랜드를 달았다. 그럼에도 클리오에서 르노라는 브랜드를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클리오를 제발 수입차라고 생각해 주세요’라는 무언의 호소인 것이다. 클리오에 수입차 이미지를 입혀야 하는 이유는 글을 마무리할 무렵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배경 이야기를 계속하다가는 차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
 
 
클리오는 유럽의 베테랑 해치백이다

 

클리오의 정체성을 짧게 표현하면 '전형적인 유럽 B 세그먼트 해치백’이다. 국내에서야 갓 선보인 새 모델이지만, 유럽에서는 1990년에 등장해 세 번의 세대교체를 거친 베테랑이다. 국내에 견줄 만한 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규모로 보면 주력 시장이 다른 현대 엑센트 위트(5도어)와 쉐보레 아베오 해치백 같은 국내 생산 모델이 있는가 하면, 유럽에서 정확히 같은 시장을 놓고 싸우는 푸조 208도 있다. 국내에서 어렵게 나름의 자리를 찾았던 폭스바겐 폴로는 사정상 한 발 물러나 있다.


 
사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브랜드와 모델이 손꼽을 정도여서 그렇지, 유럽 본토에서는 피튀기는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 클리오가 속한 B 세그먼트다. 20여 개 모델이 영역다툼을 펼칠 정도로 판매량이 많고, 그 가운데 클리오는 폴로, 포드 피에스타와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해 왔다. 이번에 국내 판매가 시작된 클리오는 2012년에 처음 나와 2016년에 페이스리프트된 4세대 모델이다. 보통 소형차 세대교체 주기가 5~7년이라고 보면 5세대 모델이 나올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어쩌면 늦어도 내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는 다음 세대 모델의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모델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얘기다. 판매를 반 년만 일찍 시작했어도 조금은 피할 수 있었을 논란이다. 국내에는 5도어 해치백에 같은 파워트레인을 쓰는 젠과 인텐스 트림이 팔린다. 주요 시장에서 전체 클리오 트림 중 고급스러운 쪽에 가까운 모델이다. 데뷔 6년차인 '중고 신차’지만, 겉모습은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차이기도 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이 차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영향도 있다.
 
형태 자체는 거주공간을 키운 1.5박스다. 바퀴 주변에 굴곡이 도드라져 작은차 답지 않게 분위기는 꽤 당당하다. 특히 옆모습은 큰 바퀴, 유리 끝에 숨긴 뒤 도어 핸들과 더불어 날렵한 느낌이 든다. 커다란 헤드램프와 작고 각진 테일램프가 동떨어진 느낌이기는 해도 특이하게 어색하지는 않다. 뒤 범퍼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번호판 주변의 검은 장식도 차를 넓어보이게 한다. 실제로 뒷모습은 차체 굴곡이 주는 착시 효과로 상당히 넓어 보인다. 실제 수치상 너비는 현대 엑센트보다는 100원짜리 동전 지름만큼 넓고 푸조 208보다는 연필 한 개 굵기만큼 좁다.
 
 
실내는 QM3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운전석에 앉으면 데자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QM3과 비슷한 분위기다. 물론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같은 플랫폼을 쓰는 이상 공통점은 많을 수밖에 없다. 대시보드는 떠있는 듯한 센터 페시아를 빼면 평범하고,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도 QM3과 같은 구성이다. 내장재는 검은색 플라스틱을 바탕으로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에 부분적으로 쿠션이 들어간 소재가 쓰였다. 표면 패턴이 지나치게 도드라져 값싼 느낌을 주는 것이 아쉬운 데, 좌우 공기배출구의 반광 빨간색 치장과 센터 페시아 등에 쓰인 유광 검은색 치장이 심심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앞좌석 공간은 소형 해치백으로는 무난한 수준. 뒷좌석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앉는 부분 높이와 등받이 각도, 천장 굴곡 등을 세심하게 신경 쓴 덕분에 웬만큼 키가 큰 사람이 앉아도 답답하지 않을 수준이다. 앞좌석은 앞뒤로 움직이는 범위가 꽤 큰 대신 등받이 각도 조절 다이얼이 센터 콘솔 쪽에 있어 불편하다. 시승차에는 운전석에 접이식 콘솔박스 겸 팔걸이가 달려 있어 불편함을 더한다. 좌석 재질은 안쪽이 벨벳 느낌을 주는 직물, 테투리는 인조가죽이다. 쿠션 탄력과 굴곡은 부드러운 편이고, 옆구리와 허벅지 바깥쪽이 제법 튀어나와 있어 몸을 잘 잡아주면서도 스폰지가 부드러워 답답하지 않다.  
 
 
풀 미러링 시스템으로 스마트폰 속 모든 앱을 구동한다

 

터치스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외에는 특별한 장비가 없는 덕분에 실내에 남아 있는 스위치류는 공기조절장치와 스티어링 휠 뒤의 오디오 리모컨, 스티어링 휠 스포크와 기어 레버 뒤에 분산된 크루즈 컨트롤 스위치, 파워 윈도우와 실내 조명 스위치 정도가 전부다. 시동 버튼은 센터페시아 아래에 있다. 작은 수납공간이 동반석 대시보드 한가운데에 열려 있는데, 그만큼 글로브 박스 크기는 줄어들었다. 전반적으로 수납공간은 있어야 할 곳에는 꼭 있어 불편하지는 않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크기가 작다는 인상을 준다. 

 
 
프랑스차 답게 컵홀더는 없는 셈 치는 것이 속편하다. 전반적인 편의 및 안전장비는 필수적인 것 중심으로 갖췄다. 시승차는 상위 트림인 인텐스인데, 선루프가 선택사항으로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국산 경차에서도 초보적인 것 몇 가지는 선택해 넣을 수 있는 ADAS 기술이 클리오에는 거의 없다는 것은 아쉽다. 유럽 대표 해치백 중 하나인 만큼, 달리기에서는 만만찮은 공력을 느낄 수 있다. 1.5L dCi 디젤엔진은 최고출력 90마력, 최대토크 22.4kg·m의 성능을 낸다.
 
 
7인치의 터치스크린을 통해 멀티미디어 기능을 활용한다

 

숫자로 보나 실제 성능으로 보나 고성능 축에 끼워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힘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엔진 회전계 바늘이 초반에 약간 더디게 움직일 뿐, 2000rpm에 다가가면서 제대로 힘이 붙기 시작하면 시원시원하게 가속이 이루어진다. 달리다가 신호등을 만나 완전히 섰을 때 작동하는 스톱/스타트 기능은 출발할 때 반 박자 쉬고 엔진에 시동을 건다. 게트락이 공급하는 6단 DCT는 정지하기 직전과 출발한 직후를 빼면 비교적 매끄럽게 작동한다.

 
기어 레버를 D 위치에서 왼쪽으로 빼면 수동처럼 한 단씩 밀고 당겨 변속할 수 있고, 수동 모드에서도 비교적 매끄러우면서 확실하게 변속한다. 기어 레버는 왠지 센터 콘솔에서 길게 솟아오른 듯하지만, 길이가 아주 긴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달리기 특성은 경쾌하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 기어 레버의 조작감은 물론이고, 가속과 감속, 차의 몸놀림까지 달리기와 관련된 모든 부분이 가볍고 시원시원하다. 스티어링 휠은 고속으로 갈수록 가벼운 느낌이 들기는 해도 차의 움직임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차의 반응과 움직임을 표현하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발랄하다’다. 모든 움직임이 가벼운 데도 몸놀림은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칼날 같지는 않아도 제법 날카로운 스티어링, 초기 반응이 조금 더디긴 해도 비교적 고른 가속감, 깔끔하게 앞바퀴의 흔적을 따르는 뒷바퀴 등 달리기를 좌우하는 특성들이 잘 조화를 이뤄 일상에서는 다루기 쉽고, 적극적으로 몰 때에는 스포티함을 느낄 수 있다. 가볍고 고르게 속도를 줄이는 브레이크는 운전에 안심을 더한다.

 
 
6단 듀얼클러치는 비교적 매끄럽게 작동한다

 

독일차들처럼 진지하고 차분한 움직임과는 뚜렷하게 다르지만, 다른 차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경쾌함은 클리오 특유의 재미 포인트다. 시속 100km로 달릴 때 엔진 회전수는 2000 rpm 남짓이다. 디젤엔진과 6단 변속기가 결합한 구성에서 나오는 회전수 치고는 높은 편이다. 낮은 회전수를 유지하도록 기어비를 구성한 것은 실제로 낼 수 있는 최고속도가 예상을 밑도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연비와 가속력을 모두 고려한 결과다. 펀치력이 대단하지는 않아도, 일반적인 도심 제한속도 영역까지는 가뿐하게 가속한다. 


 

파워트레인 구성이 같은 QM3이 주었던 답답한 느낌과는 대조적이다. 대중적인 소형차라는 사실은 타이어를 비롯해 하체 쪽에서 꾸준하게 올라오는 소음에서도 잘 드러난다. 콘크리트 포장된 고속도로에서는 속도에 비례해 소음이 저절로 커진다. 속도를 높이면 엔진 소음이 조금씩 커지지만,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소음에 묻혀버린다. 어쨌든 실내가 조용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승차감도 조금 덜 정제된 듯한 진동이 꾸준히 이어지지만, 전체적인 달리기 느낌에 방해를 줄 정도는 아니다.

 

62km 구간을 달리며 얻은 연비는 17.5km/L. 공인 표준연비를 살짝 밑돌지만 다양한 조건을 두루 겪으며 얻은 연비로는 나쁘지 않다. 직접 차를 몰아보니 기본에 충실하고 실용성 높은 소형 해치백으로서 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제일 잘 나가는 차’라는 말이 과연 국내 소비자를 설득하기에 충분한 힘을 담고 있을까? 소비자들은 2000만 원대 초반인 값에 가장 먼저 망설이게 될 것이다. 르노삼성은 클리오에 르노 브랜드를 내세운 데에는 국내 업체 동급차와의 값 차이를 수입차 이미지로 상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렁크 공간은 2열을 모두 접었을 때 최대 1146L까지 확장된다

 

터키 공장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수입해 파니 수입차가 맞기는 하다. 그러나 르노삼성 브랜드의 다른 모델과 같은 매장에서 같은 영업사원이 파는 차를 소비자가 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수입 해치백 시장에서 골프나 폴로 같은 성공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나름의 자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의 후광이 컸다. 상대적으로 많은 국내 소비자에게 아직 르노도, 클리오도 생소하다. 

 
 
이미 소형 해치백 수요가 대부분 소형 SUV로 옮겨간 지금, 골프나 폴로가 다시 팔린다고 해도 예전만큼 인기를 얻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틈새로 시작한 소형 SUV가 대세가 되었고, 이제는 반대로 소형 해치백이 틈새 모델 역할을 하는 형편이다. 클리오에게 대중차이면서도 개성이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 개성이 대중차의 특성 안에서만 맴돈다는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 클리오는 유럽 사람들의 입맛에는 아주 달콤하게 느껴질 만하다. 취향이 비슷한 국내 소비자들도 만족할만 하다. 
 
그러나 보편적 국내 소비자의 취향을 채우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적지 않다. 결론적으로 클리오는 르노라는 브랜드를 국내 소비자에게 알리는 역할이 가장 크다. 설령 많이 팔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나라 소비자의 입맛만 탓할 일은 아니다. 잘 만든 소형 해치백이 시장 판도를 뒤집을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할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 르노는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뎠고, 갈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클리오도 마찬가지다. 
 
 
Renault Clio 1.5 dCi Intens
가격 2320만원
크기(길이×너비×높이) 4060×1730×1450mm
엔진 1.5L dCi 디젤
최고출력 90마력/4000rpm
최대토크 22.4kg·m/1750~2500rpm
변속기 6단 더블클러치
무게 1235kg
최고시속 -
연비(복합) 17.7km/L
CO2 배출량 104g/km
서스펜션(전/후) 맥퍼슨 스트럿/토션빔
브레이크(전/후) V 디스크/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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