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닉이 손질한 635마력 페라리 512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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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닉이 손질한 635마력 페라리 512BB
  • 오토카 편집부
  • 승인 2018.05.3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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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형’ 페라리가 좀 지나치게 느리다는 느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리처드 헤슬라인(Richard Heseline)이 코닉 BB를 몰아본 뒤 의견을 내놨다. 터보 2개를 달자

가장 중요한 주목의 대상은 계기였다. 특히 섭씨 온도와 기압을 측정하는 계기가 눈길을 끌었다. 이 차가 꾸물거리고 있을 차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트윈터보 수평대향 12기통, 곰잡이덫 클러치와 초민감 액셀을 자랑했다. 사실상 스톱/스타트 모터링과는 인연이 멀었다. 불행히도 지금 당장은 도로공사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따라서 언제든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근데 아니었다. 핸들을 잡은 드라이버만은 부글부글 끊어오르고 있었다. 차마 옮길 수 없는 욕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한편 다른 운전자들은 핸드폰을 들고 노닥거렸고, 병목을 누비고 들어가기보다는 옆으로 빠졌다. 

 


한 시간동안 꿈틀거리며 나가다보니 이야기는 달라졌다. 이 코닉형 페라리 512 베를리네타 복서보다 빠른 차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한가한 B급 도로에 이처럼 고혹적이고 자극적인 차는 거의 없었다. 이 차가 미사일처럼 빠른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출력은 635마력(그보다 더 나온다는 의견도 있다). 이 1980년대의 복고형은 드라이버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 그냥 다소곳하다고 할 만했다. 코닉 BB를 타고 나올 때는 신경이 거의 누더기가 되어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할 처지가 된다? 그렇지 않았다. 그 시절은 애프터마켓에서 어느 차에나 닥치는 대로 터보를 추가했다.

 

대담한 튜닝만으로 코닉의 잠재력을 알 수 없을까봐 불안했나? 트윈 쿨러가 뒤로 빠져 나와 위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부풀어오른 휠아치를 꽉 채우지 못한 타이어가 아쉬웠다

 

그래서 운전성능이라는 사소한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차의 수명 따위도 무시했다. 황당한 성능을 주장했다. 그런 개조작업은 곧잘 과대출력으로 끝났고, 고객의 지갑에 그보다 더 큰 구멍을 냈다. 하지만 이 차의 경우는 달랐다. 이 특별한 차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으나 속살을 손질했다는 것과는 무관했다. 그보다는 보디패널이 더 큰 문제였다. 일각에서는 취향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봤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노골적으로 그 한계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페라리 스타일에는 섬세한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근육질 추가장비는 순수파의 비위를 거슬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차는 새롭지도 않았다. 당시에 페라리 최고경영자는 그처럼 변조된 스타일에 노발대발했다. 그래서 코닉이 페라리 로고를 달고 시장에 나가지 못하게 법적으로 막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코닉은 이미 타오르던 모닥불에 기름을 부었다. 페라리 배지와는 상관없이 한층 극단적인 변형을 내놨다. 나아가 그런 차들이 전세계에서 자동차잡지의 표지에 스타로 등장했다. 페라리 경영진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어쨌든 창업자 빌리 코닉은 그들이 손질한 모델이 두각을 드러내자 몹시 즐거워했다. 출판계의 전직 거물이었던 코닉은 젠틀맨 드라이버로 모터스포츠에 나가 성공을 거뒀다. 그뒤 1977년 코닉 페라리 스페셜을 창립했다.

 

코닉은 다양한 실내 옵션을 내놨다. 그럼에도 이 차는 차분하게 분위기를 잡아 상쾌하다

 

회사명 가운데 ‘페라리’는 곧 탈락했다. 그가 창업한 것은 365GT4 한대를 구입한 뒤였다. 한데 그 성능과 핸들링에 크게 실망하고 단점을 바로잡기로 했다. 그런 노력이 다른 오너들에게 큰 감명을 줘 그의 여가시간에 즐기던 취미가 사업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초 코닉 스페셜은 개성이 뚜렷한 3대 개조 모델을 선보였다. 모두가 상대적이었지만 기본 모델은 가볍게 튜닝한 512BB였다. 훨씬 잘 빠지는 배기관을 비롯해 새 장비를 달아 출력은 약 370마력. 그뒤 말레 피스턴과 개조형 실린더헤드를 달아 출력을 450마력으로 끌어올렸다. 1982년에 나온 최고 버전은 최고 시속 331km이고 0→시속 100km 가속에 3.9초였다.

 

독일 뮌헨에서 활동하던 코닉 스페셜의 주요 협력업자는 오스트리아의 엔진메이커 프란츠 알버트였다. 베테랑 드라이버로 한쌍의 라자이 터보, 2개의 에어투에어 인터쿨러와 2개의 웨이스트게이트에다 오일쿨러, 드라이섬프 시스템과 트랜스미션 오일쿨러를 추가했다. 페라리 모델의 개조작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토리오 스트로섹은 루이지 콜라니의 제자였다. 콜라니는 자기 이름으로 포르쉐 튜닝카를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그 스승과는 달리 스트로섹은 페라리 개조작업을 도왔다. 보디에 접착하는 글라스파이버 보디키트를 고안했다. 이로써 새로운 삽모양 앞범퍼/스포일러를 만들어 부력을 30%나 줄였다.

 

큼직한 뒷스쿠프가 트윈터보 수평대향 12기통에 공기를 쏟아붓는다

 

더하여 크게 부풀어오른 뒷아치, 뭉특한 뒷범퍼와 기능적인 사이드 스쿠프를 달았다. 아울러 카운타크형 윙과 결합한 통합 뒷스포일러를 만들었다. 게다가 일부 튜닝카는 팝업 헤드라이트를 제거하고 페르펙스 커버를 씌운 2개의 고정 라이트를 달았다. 나아가 페라리 테스타로사의 출현을 알리는 사이드 스트레이크를 고를 수 있었다. 게다가 NACA 덕트를 비롯해 수많은 구멍을 냈다. 실내는 무제한으로 개조할 수 있었다. 페라리를 그대로 지킬 수 있었고, 완전한 경주차로 속을 몽땅 들어낼 수도 있었다. 대다수 고객은 가죽에 다시 가죽을 씌우기를 좋아했고, 곧잘 요란한 색상을 선택했다.

 

코닉도 페르샤 카펫을 비롯한 호화장식을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얼마나 많은 BB를 개조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사실 코닉 스페셜이 제대로 튜닝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탓이었다. 가장 많이 나도는 어림숫자는 약 50대. 완전한 터보/보디 개조작업에 13만 독일 마르크가 들었기 때문에 그 숫자는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런 어림짐작을 헷갈리게 만든 요인이 있었다. 똑같이 개조한 차가 단 한 대도 없었다. 가령 와이드-아치 터보카가 모두 터보를 달았던 것도 아니었다. 코닉은 몇 대를 와이드보디로 개조하면서도 자연흡기를 그대로 뒀다. 그 정도로도 모자라는 듯 개조 패키지를 팔았다. 따라서 해외 전문업체들은 각기 다른 튜닝카를 만들 수 있었고, 일부 터보 버전은 성능과 품격이 떨어지기도 했다. 

 

플라스틱 다이얼이 허약한 모터를 조작한다

 

튜닝카 몇 대가 영국에 상륙했다. 그중에도 엽기적인 모델은 진주빛 화이트에 립스틱처럼 빨간 가죽 내장을 덮었다. 사우디 왕자가 런던에서 몰고다니기 위해 사들였고, 영국에 등록했다. 그 이전에 왕자가 충돌사고를 일으켰던 512를 바탕으로 했다. 영국 면허를 받은 또 다른 차는 <스트리트 머신> 잡지에 나왔다. 1980년대 중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초고가 이색차 전문지였다. 황금색 BBS 휠을 단 검은 차도 완전한 터보차로 전문업체 오토모티브 디자인 컨설턴트(월우드 스크럽스 교도소 바로 이웃에 있는)가 손질했다. 

 


그뒤 우리가 시승한 바로 이 차가 나왔다. 오너는 악셀 폰 슈베르트로 파격적인 슈퍼카에 도통한 인물이었다. 그에 앞서 생산공장에서 튜닝한 오직 한대뿐인 타르가톱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를 갖고 있었다. 우리 시승차는 1978년 카뷰레터식 512BB로 시작했고, 독일 기업가가 이탈리아 볼차노의 페라리 딜러에서 새차를 사들였다. 그뒤 1982년 뮌헨 슈바빙거리의 보헤미아 구역 부근에 있던 코닉의 소규모 지하시설에서 손질했다. 뒤이어 몇 번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스페인계 오너가 사들여 스위스 발라이스의 페라리 딜러에 맡겨뒀다. 그러나 배기기준에 걸려 도로주행 허가를 받지 못했고, 딜러의 번호판으로 단거리를 오갔을 뿐이었다. 

 

코닉이 손질한 페라리: 512BB의 4942cc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을 바탕으로 코닉의 인터쿨러 트윈터보가 기본형 베를리네타 복서의 340마력을 아찔한 635마력으로 끌어올렸다

 

이 차는 3년전 영국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드라마틱했다. 스타일의 변화가 좋은지 나쁜지는 미학적 관점에 따라 달랐다.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가 그린 스타일은 수많은 사람에게 걸작으로 보였으나 플라스틱 장식이 완벽한 디자인의 티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차는 한층 공격적인 인상을 줬고, 아름답기보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으며, 현대적 디자인 언어를 빌리면 ‘도전적’이었다. 어느 편에 서든 개성이 뚜렷하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우리는 에식스의 몰던에서 촬영중 의견을 들어봤다. 코닉에 대한 반응은 단연 긍정적이었다. 심지어 1980년대를 알고 있는 구경꾼들도 경탄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면 색상이 야한 OZ 휠이 가장 격렬하게 의견을 갈랐다. 뒤쪽에는 괴물같은 345/35 피렐리 타이어를 신었다. 자동차 잡지 <톱 휠스>에 따르면 포뮬러 2 경주차의 뒷바퀴와 같았다. 우리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F1 머신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 다음으로 뒷범퍼 아래로 나와있는 배기관이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는 신중한 기미는 볼 수 없었고, 야성적 의도를 드러내는 또 다른 증거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몸을 굽히고 실내에 들어가자니 폼을 잡기 힘들었다. 모두가 사무적이었고, 눈에 익은 계기들은 오렌지색 문자판이었다. 거기에다 되는대로 달아놓은 듯한 제2의 계기 클러스터가 있었다. 실내는 딱히 넓다고 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비좁지도 않았다. 옵셋 페달은 우리가 기억하는 그대로였지만 시트는 달랐다. 막연히 BMW 2.0 CSL의 셸 시트를 연상시켰고, 안락했다. 하지만 매력적이라 할 수는 없었다. 

 

개량형 엔진 커버는 루버를 추가하여 터보엔진의 온도를 낮췄다

 

냉각상태에서도 수평대향 12기통은 투덜대지 않고 점화됐다. 소용돌이나 캑캑대지 않고 노이즈가 있을 뿐이었다.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고, 공회전때 최신 페라리가 내는 평판 크랭크가 토하는 괴성에 대한 진정제였다. 한데 양판 유기 클러치는 같잖게 무거웠다. 적어도 기어박스가 더워질 때까지 1~2단의 변속이 껄끄러웠다. 처음 달린 구간이 주로 공단 도로였고, 잠자는 경찰과 포트홀이 듬성한 주택가였다. 우리 차는 이 구간을 잘 요리했다. 하지만 제대로 살아난 것은 탁트인 시골길에서 단 한번이었다. 이 페라리 핫로드는 빠르리라 기대했다. 한데 직선적인 파워전달방식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거의 터보카는 액셀을 밟고 원…투…쓰리…를 센 뒤에야 파워가 터졌다.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기본형 512BB는 구식 슈퍼카 기준에 따라 언제나 즉시 폭발했다. 코닉은 약 3000rpm까지 일반차와 다름없이 끌었다. 때문에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6000rpm 이상으로 올라갈 필요도 없이 추진력은 즉각적이었고 난폭했다. 수많은 현행 슈퍼카는 이 공룡만큼 빠르다. 그중 대다수는 더 빠르다. 하지만 고삐 풀린 광기에서 코닉에 맞설 적수가 없었다. 아무리 깔끔하게 변속을 해도 상관없었다. 예외없이 드라이버의 머리는 앞으로 고꾸라진 다음 뒤로 휙 넘어갔다. 목청껏 웃지 않을 수 없었고, 뒤이어 짧고 쌍스러운 절규가 터졌다. 별로 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평대향 12기통은 하늘이 내린 소음기능 앞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OZ 휠은 뒤쪽에 345/35 피렐리 타이어를 신었다. 카발리노 윤곽이 깔끔하다

 

코닉 BB는 스프링이 단단했으나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상과는 달리 레일타기 소동은 없었다. 한편 랙&피니언 스티어링은 감각이 풍부했다. 오리지널의 높은 엔진과 좁은 트레드가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 차는 무게 이동이나 변덕이 없었다. 트랙에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사이드를 눌러주는 힘은 브레이크뿐이었다. 제대로 말을 들었으나 모든 ‘감각’이 페달의 밑바닥 3cm쯤에 갇힌 느낌을 줬다. 사실 이 차는 투박한 도구였다. 한데 선입견과 달리 호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코닉은 몰기 쉬웠고, 대단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호일-폭스 클래식스의 튜닝팀은 오너에게 넘겨줄 차를 손질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투입했다. 업그레이드 항목은 실로 폭이 넓었다. 가령 원래 그룹 B 출전용 아우디 콰트로 워크스 경주차에 사용했던 3단계 부스트 강화 시스템이 들어갔다.

 

그리고 업그레이드 인젝트, 고성능 점화 앰플리파이어와 코일을 비롯해 수많은 튜닝 부품을 사용했다. 여기서 업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코닉의 튜닝작업이 성공적이었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차를 둘러싼 평가는 계속해서 양극화할 수밖에 없다. 반세기전 차체 제조업체가 만든 숱한 페라리도 마찬가지였다. 평가기준은 달라지고, 1980년대의 ‘튜닝카’는 요즘 시장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코닉 BB가 정교함에서 끝판왕은 아니다. 한데 운전성능은 통쾌하고 그래서 눈에 확 띄게 마련이었다. 일부 마니아들에게는 그게 전부다. 호일-폭스 클래식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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