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일의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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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일의 실마리
  • 오토카 편집부
  • 승인 2018.05.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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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랜드로버의 기술총책 닉 로저스는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에게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신형 I-페이스의 알루미늄 부품은 조각처럼 아름답다. 슈퍼포밍 공법으로 만든 세계최초의 서브프레임이다

 

닉 로저스의 사무실은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광장 같다. 우리는 재규어 랜드로버(JLR) 그룹 기술총책과 진지한 대담을 나누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인터뷰의 성격에 비춰 차분히 앉아 기술을 둘러싼 깊이 있는 토론을 생각했는데, 그곳은 시끌벅적했다. 그 자리에는 JLR의 두 젊은 기술자 토머스와 아잠이 진을 치고 있었다. 총수 로저스를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있는 충신이다. 아울러 사내 홍보기자 해리엇도 함께 했다. 그녀는 기술문제에 관한 보도자료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펜실베니아 커피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마지막으로 사진기자인 스탠과 로저스, 그리고 내가 합석했다. 
 

이제 막 50대에 들어선 로저스는 말과 행동에 젊음이 넘쳤다. 무슨 일이든 앞장서기를 좋아하는 기질이었다. 상대를 직접 만나 설득하고 설명하는 것을 핵심적인 임무 중 일부로 여겼다. 사실 우리가 앉은 방은 사무실과는 동떨어졌다. “내 사무실은 없다.” 그가 한 첫마디였다. 그곳은 으레 회의를 여는 방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건물 안을 500m 이상 걸어야 했다. 그 건물은 ‘G-Deck’(혹은 게이든 디자인&엔지니어링 센터 줄여 GDEC)라 불렀다.

 

배기장치와 터보가 로저스의 창문턱을 장식하고 있었다

 

안에는 기술자, 책상과 스크린이 가득 차 있었다. BMW 휘하에 있을 때 지어진 넓은 건물은 대단한 야망을 담았다. 한데 지금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확대됐고, 그 매머드의 일부에서 ‘게이든 트라이앵글’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개선ㆍ확장된 GDEC는 JLR의 1만2000개가 넘는 기술공동체를 수용하고 있다. 3년 전, 로저스가 BMW의 베테랑 볼프강 지바르트를 대체하며 그룹의 최고 기술자로 취임한 뒤 이 공동체의 인력이 3000명이나 늘었다. 로저스는 이 모든 브랜드의 책임을 떠맡게 됐다. 30년 전 견습공으로 이 회사에 들어온 그에게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로저스는 영국 런던 북서 80km의 옥스퍼드의 낙농가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겨우 10살 때 건초다발 위에 앉아 두발로 클러치를 조작하며 시리즈 2 랜드로버를 몰았다. 그리고 기계나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나는 온갖 물건을 분해했고, 때로는 분해했던 물건을 재조립했다”). 16살 때 전자부문의 기술견습공으로 브리티시 릴랜드(BL)에 응시했다. 1980년대 초에는 첨단분야였다. 합격한 그는 1주일 안에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색맹시험에 걸려 단번에 쫓겨났다. “여러 가지 색깔의 배선 작업을 망칠 수 있어 자리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그때의 실망은 말로 다할 수 없다.”

 

JLR의 세이던 디자인센터는 확장중이다

 

이튿날 아침 BL에서 다른 전화가 왔다. “보디 기술자로 일해줬으면 좋겠다.” 당시 나는 보디 기술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그는 기술견습공으로 보람 있는 4년을 보냈고, 공학학사 학위를 거쳐 끝내 박사학위를 따냈다. 젊은 로저스는 보디 기술자로 CAE(컴퓨터 지원 엔지니어링) 기술을 터득했고, NVH(소음, 진동과 불쾌감) 부서로 방향을 바꿔 안전기술까지 익혔다. 그는 “실로 환상적인 터닦기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로버 미니 컨버터블의 책임을 맡았던 그는 혼다와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오스틴 몬테고의 ‘말하는 대시보드’를 재래식으로 바꿨다. 동시에 로버 200의 BMW판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일은 오리지널 프리랜더와 최초의 BMW 미니 개발을 위해 뮌헨에서 보낸 18개월이었다. 뒤이어 JLR 제작총책의 중책이 찾아왔다. “나는 생애의 마스터 플랜이 없었다. 다만 찾아오는 기회를 잡았을 뿐이다.” JLR의 정상에서 보낸 3년 동안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가 성과를 열거할 때 광채가 났다. 재규어 XF 개조와 신형 재규어 F-페이스, 신형 재규어 E-페이스, 신형 범용 인포테인먼트, 그밖에 모든 라인업의 2018 업그레이드가 포함돼 있었다. 더하여 울버햄프턴에서 계속해서 인제니움 엔진이 흘러나온다. JLR의 엔지니어링 디비전이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JLR의 과거를 상기시켜주는 상징적인 두 모델

 

이처럼 로저스 휘하에서 JLR은 뚜렷이 규모를 확대했다. 한편 그는 재규어와 랜드로버가 기동성에서 라이벌을 꺾을 확실한 강점이 있다고 믿는다. 결정과정을 단축하고 신속히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확인에 차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기업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최고의 수준에서 가장 빨리 생산하려는 싸움을 끊임없이 펼쳐나간다. 우리는 빨리 결정을 내리고, 경영구조가 아주 단순하다. 랄프 스페스(JLR CEO)는 그 점을 굳게 믿는다. 우리 고위 인사 7명이 2주마다 월요일에 모여 주요문제를 논의한다. 거기서 지체 없이 결정을 내리고 있다.”
 

모든 일은 기술에 대한 로저스의 변함없는 정열이 밑받침되고 있다. 새로운 건설 부지가 내려다 보이는 ‘회담용 사무실’ 창문턱에 그 증거들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신형 I-페이스의 전기모터가 놓여있다. 그 옆에는 각종 냉각장치와 값비싸 보이는 알루미늄 조절장치가 있다. 그중 핵심은 신형 전기차 I-페이스에서 나온 서스펜션 서브프레임이다. 슈퍼포밍이 세계최초로 만든 제품으로 생산과정을 아주 단순화했다. 우리는 1~2분만에 이 장치를 조작할 수 있었고, 구조적인 매력에 흠뻑 빠졌다. 

 

로저스는 I-페이스가 JLR의 기동성 있는 전략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기술상의 난관과 도전으로 화제를 돌렸다. 로저스는 어려움이 상당히 많았다고 거침없이 털어놨다. 하지만 이 같은 규모의 엔지니어링 그룹의 수장이 되면 로저스처럼 낙관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CEO 스페스와 라탄 타타(당시 JLR의 모기업 타타 그룹 회장)가 로저스에게 중책을 맡길 때 명심해야 할 사실이기도 했다. 지난날 로저스는 상당히 큰 난관을 뚫어야 했다. 한번은 미국으로 가서 포드(당시 JLR의 오너) 경영진에게 축소형 포드 익스플로러가 차세대 랜드로버가 될 수 없다고 설득했다. 그 다음에는 유럽의 최고 강철 메이커(타타)에게 앞으로 JLR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나는 기술진과 디자인팀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좀 더 깊숙이 알고 싶었다. 현대에는 디자인팀이 영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이 문제에도 아주 느긋했다. 그런 다음 JLR의 단순한 경영조직 내부의 상호관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는 제리 맥거번과 이언 캘럼을 옛날부터 알고 있다. 그들의 성격은 아주 다르고 제각기 독립성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잘 어울리고 있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JLR 라인업의 여백을 채워준다

 

디젤차의 수요가 뚝 떨어져 독자적인 디젤엔진을 만들고 있는 메이커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JLR은 가솔린엔진도 만들고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로저스는 “20~3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디젤에 대한 인식이 유감스럽다. 현행 엔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하다. 우리의 제작 방식에는 빈틈이 없다. 우리에게 엔진은 항상 한 가족이었다. 가솔린과 디젤이 똑같은 생산라인을 흘러나온다. 따라서 언제나 두 버전의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었다. 어느 특정 지역의 급변에 흔들리지 않고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JLR의 창의적인 돌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JLR은 재래식 모델의 여백을 파고드는 전략에 앞장서고 있다.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탄생시킨 환경은 예측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다시 기대할 수 없을까? 로저스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신형 인포테인먼트가 굴러 나오고 있다

 

“이보크의 성공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 우리는 수많은 성과를 보여줬다. 재규어 SUV의 선두주자 F-페이스가 본보기다. I-페이스는 어떤가?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앞으로도 획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선반으로 갔다. 로저스는 랜드로버의 걸작 ‘90 클래식’ 모형을 들고와 내 앞에 내려놨다. 그리고는 “우리는 이와 같은 걸작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로저스가 이전에 만든 작품

닉 로저스는 최근 경매에서 미니 컨버터블 한 대를 샀다. 1990년대 초 개발된 그 차는 로저스가 젊은 BL 기술자일 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그는 ‘프로젝트 트로이’라는 개발 계획의 보디 기술 책임자였다. “나는 보디 기술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맡고 보니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로저스의 자동차 컬렉션은 JLR이 중심을 이룬다. 그중 스타는 재규어 XK120과 랜드로버 시리즈 1이다. 둘 다 1940년대 말 비범한 창의력이 돋보이던 차량이다. 로저스는 그 시대를 경외감으로 되돌아봤다. “세계적인 현상이 된 실용적인 차를 디자인한 것은 윌크스 형제가 에너지 산업계에서 거둔 성과와 같다.” 그렇다고 로저스가 과거에 얽매인 것은 아니다. 그의 회의실 벽에는 아인슈타인의 명구가 걸려 있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그 문제를 만들어냈을 때의 사고수준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로저스가 말한다>

디젤엔진 논란
“최신 디젤을 둘러싼 논란은 정확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깨끗한 디젤을 만들기 위하여 밤낮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디젤에 대한 인식은 20~30년 전으로 돌아가 헤매고 있다.”
 

사랑스러운 미학
“차를 달라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 더 큰 휠을 다는 것이다. 런던에서 I-페이스를 발표했을 때였다. 독일에서 온 참석자들이 왜 21인치 휠을 달았느냐고 물었다. 한데 그들은 완벽한 기술적인 설명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멋져 보이니까 그랬다고 말했다.”
 

엔진 만들기
“일찍이 지금처럼 기술자가 되어 보람 있는 시대가 없었다. 우리는 가솔린과 디젤 기술을 한계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따라서 능률적인 3, 4, 6기통과 V8 엔진을 확실히 내놔야 한다. 아울러 마일드/풀 하이브리드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배터리 전기 혁명에 동참해야 한다.”
 

자체 제작 늘리기 
“지금까지 공급업체는 우리 기술제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한데 우리는 그중 일부를 사내로 끌어들였다. 시대의 대세를 거스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부품과 공정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래서 한층 쉽게 혁신할 수 있다. 물론 지금과 마찬가지로 파트너는 필요하다.”
 

독특한 재규어와 랜드로버 만들기
“우리의 최신 모델 중 상당수는 전혀 새로운 시장에서 뛰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 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우리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라이벌을 예의 주시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우리는 라이벌을 뒤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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