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 피스타, 엔진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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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피스타, 엔진의 노래를 들어라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8.06.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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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막을 쓴 페라리 488 피스타를 타고 피오라노 서킷을 달렸다. 사상 최강의 V8 사운드는 마치 복면가왕의 노래를 듣는 듯 했다

마라넬로에서의 초대는 100% 페라리를 만나는 일인데, 처음엔 어떤 모델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측하건데 제네바모터쇼에서 데뷔를 앞둔 488 피스타(Pista)가 아닐까.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488 피스타(Pista). 그런데 왜 피스타일까. 점 하나만 찍으면 우리가 즐겨먹는 이탈리아 음식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레이싱 ‘트랙’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수긍이 간다. 트랙이야말로 페라리에 잘 어울리는 이름. 488 피스타는 페라리 V8 엔진의 '최종 진화 버전'이라고 불릴 만큼 라인업 사상 최강의 성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이번 행사는 기승전 엔진으로 마무리되었을 만큼 온통 엔진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토록 엔진에 집착하고 엔진을 강조하는 브랜드는 아마 페라리 외에는 없지 않을까.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자동차의 고성능에 천착하고 계승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외고집의 표현이다. 그래서 페라리라는 생각이다.

 

시작은 역시 엔진 프리젠테이션부터. 이전의 458은 4.5L 8기통을 의미했지만 488은 8기통 엔진의 각 실린더당 배기량이 488cc라는 뜻. 3.9L로 배기량은 작아졌지만 트윈터보를 써 더더욱 강력해진 파워를 내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488 GTB는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으로 ‘올해의 엔진상’(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 Awards) 대상을 수상했다. 오늘 만나는 488 피스타는 V8 3.9L 트윈터보로 배기량은 같지만 최고출력은 GTB보다 50마력 높은 720마력. 기존 스페셜 시리즈인 458 스페치알레보다는 115마력이나 높은 수치다. 도대체 엔진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페라리는 양산차를 베이스로 별도의 트랙 전용 모델을 만들어왔다. 트랙 전용이므로 공도를 달릴 수 없다. 그런 만큼 특별한 기술과 장비가 추가되어 성능이 강화된다. 바로 챌린지 모델이다. 페라리는 이를 바탕으로 3개 대륙에서 페라리 챌린지 원메이크 시리즈를 운영해왔다. 1993년 348을 기반으로 한 348 챌린지를 시작으로 355, 360, F430, 458, 488 챌린지로 이어져왔다. 모터스포츠에서 명성을 높여온 브랜드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레이스카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레이스카에 쓰인 특별한 기술을 다시 양산차에 적용하면서 선순환을 이룬다. 

 

프로토타입을 몰고 공도를 달리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488 피스타 엔진의 성능이 강화된 것은 바로 488 챌린지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488 GTB 대비 50% 이상의 부품이 새로워졌다. 그리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인코넬’(Inconel) 배기 매니폴드, 경량 크랭크 샤프트, 플라이휠, 티타늄 커넥팅 로드, 탄소섬유 흡기챔버 등 488 챌린지 레이싱카에서 가져온 부품을 적용했다. 이같은 레이싱 기술 및 소재 적용을 통해 488 피스타의 전체중량은 488 GTB보다 90kg 감소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공력성능 개선이다. 레이스에 출전하는 488 GTE와 F1의 기술을 토대로 전면의 S-덕트와 리어 스포일러, 디퓨저를 손봐 488 GTB보다 다운포스를 20% 더 끌어올렸다. 더 좋은 공기 흐름을 만들기 위해 리어 윙과 옆에 달린 에어 인테이크의 바는 없앴다. 페라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탄소섬유로 만든 20인치 휠을 만들었고 엔진 커버, 범퍼, 리어 스포일러에도 탄소섬유를 썼다. 이를 통해 L당 출력은 488 GTB의 172마력에서 185마력으로 상승했다. 0→시속 100km 가속은 3.0초에서 2.85초로. 0→시속 200km 가속은 8.3초에서 7.6초로 줄었다. 

 

페라리 사상 최강의 V8 엔진은 720마력을 낸다

 

이윽고 488 피스타를 만날 시간. 다시 보는 피오라노 서킷이 반갑다. 사전에 예고되기는 했지만 엠바고 때문에 촬영금지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에도 스티커를 붙인 덕분에 주변 풍경조차 찍을 수 없었다. 피스타는 위장막을 씌운 프로토타입 모습으로 나타났다. 

 

피스타는 테이핑으로 속살을 감추기는 했으나 앞 보닛 라인이 깊숙이 아래로 들어가고 리어 펜더 위에서 뒤쪽 라인이 상당히 두툼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한층 더 공격적인 자세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헤드램프가 488과의 연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블로운 스포일러 시스템과 더불어 후면부에는 범퍼 양 끝단으로 과감하게 공기배출구를 내 다운포스 강화에 집중했음을 보여준다. 몸에 꽉 끼는 시트에 앉으면서 익숙하지만 달라진 디테일을 확인한다. 알칸타라는 좀 더 풍부해진 느낌. 센터 패널의 R, 오토, 론치 버튼 라인을 옆에서 보니 마치 탄창 같다.

 

총알 같은 가속의 단계는 세련되게 이루어진다

 

물론 실질적인 방아쇠는 모두 스티어링 휠 안의 마네티노 스위치에 모여 있다. 대시보드 패널의 변화를 더 살필 겨를도 없이 출발이다. 첫 랩은 으레 그렇듯 컨스트럭터가 운전대를 잡고 그 옆자리에 앉는다. 서킷 코스를 파악하기 위함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속도가 빠르다. 마치 롤러코스트를 탄 것처럼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머리가 앞으로 그리고 뒤로 용수철처럼 움직인다. 자랑하지 않아도 알 만한 운전 실력이지만 사실은 이렇게 극한으로 몰아붙여도 차체가 받쳐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렇긴 해도 늘 서킷에서 사는 드라이버처럼 운전하긴 어렵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달려야 한다. 주어진 랩은 3바퀴. 마지막 랩은 엔진을 식히기 위해 천천히 돌라는 주문이다. 첫 랩에서 탐색만 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도 피오라노 서킷이 낯설지 않아 긴장감은 덜하다. 파란 하늘과 서킷 주변의 푸른 잔디, 낮은 지붕 너머 야트막한 산들이 변함없이 고요하다. 다시 최강 V8의 강렬한 배기음이 적막을 깬다. 터보의 특성이 묻어나는 간헐적인 쇳소리는 날카롭지만 낮게 깔린다. 마치 제트기가 내는 소리와 흡사하다. 이대로 달리다가 날개만 달면 이륙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노면을 움켜쥐는 접지력과 균형감각이 발군이다

 

그러나 네 바퀴는 지면에 바싹 붙어서 좌우의 한계치 안을 정확하게 넘나든다. 마치 자석의 움직임처럼. 주행 모드는 레이스. 트랙션 컨트롤의 간섭을 최소화하지만 완전히 꺼버린 것은 아니다. 코너를 감아나가는 세밀한 콘트롤에서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변속은 빠르고 댐핑은 더 단단해졌다. 순식간에 레드존을 치고 올라도 너끈하게 받아주는 차체는 그 한계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앞이 보이지 않는 구배에서 속도를 줄이고 다시 맹렬하게 가속한 다음 코너를 향해 돌진한다. 다시 브레이크. 잘 달리는 만큼 제동에서도 페라리의 진가는 확연하다.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가파른 코너를 잽싸게 감아나가는가 하면 멈춰야 할 지점을 한 치도 놓치지 않는다. 사이드 슬립 컨트롤 시스템(SSC 6.0) 진화를 통해 제동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인 것도 피스타의 특징이다. 

 

V8 사운드는 제트기의 금속성처럼 들린다. 날개만 달면 날아오를 것 같다

 

일정한 멜로디로 반복되는 엔진 소리는 속도와 무관하게 평화롭게 들렸다. 트랙이라는 공간이 고향처럼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던 까닭이다. 조금씩 익숙해지며 조금 더 몰아붙여볼까 하는 순간 이미 정해진 시간은 끝을 향한다. 서킷에서의 아쉬움은 일반도로 달리기로 조금 풀어냈다. 피오라노 서킷에서 가까운 언덕까지 돌아오는 30분 코스. 차들이 많았지만 구간구간 속도를 내며 와인딩 로드를 달릴 수 있었다.

 

번잡한 도로에서 V8의 사운드는 무게감 있고 활기찼다. 천천히 달리는 구간에서도 힘을 과도하게 쏟지 않고 편안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488 GTB와 비교해서 어떠냐고?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어때 이 정도면 놀랍지 않아?” 하며 엔진을 거듭 담금질 하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다. 물론 빠르고 강력하면서 압도적이다. 한계치의 몇 %나 즐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뛰어난 반응성과 폭발력에 두손 들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엔진. 가면을 쓰고 나오기는 했지만 가왕의 포스는 확실한 느낌처럼 말이다.   

 

Ferrari 488 Pista
가격 미정
크기(길이×너비×높이) 4605×1975×1206mm
휠베이스 2650mm 
엔진 V8 3902cc 트윈터보
최고출력 720마력/8000rpm
최대토크 78.5kg·m/3000rpm
연비(복합) 11.5L/100km(유럽 기준)
변속기 F1 7단 듀얼 클러치
0→시속 100km 가속 2.85초
서스펜션(앞/뒤) 모두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앞/뒤) 모두 V 디스크
타이어 앞 245/35 ZR20, 뒤 305/30 Z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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