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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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신지혜
  • 승인 2018.05.1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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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밤 : 그 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형사 중식의 차 현대 쏘나타 F24

진한은 생각했다. 이제 아내의 굴레를 벗어났다고. 미모와 강인함, 재력과 힘을 모두 가진 아내. 언제부터였을까. 아내의 눈빛과 아내의 말투와 아내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진한은 도망치고 싶었다. 아내로부터. 그리고 드디어 그 바람을 이루었고 지금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혜진이 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진한에겐 알리바이가 있고 혜진과의 관계를 아는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결말을 이루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진한은 국과수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아내의 시체가 사라졌다. 허둥지둥 국과수로 달려간 진한은 알 수 없는 말들을 들으며 알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빠져간다. 게다가 중식이라는 이름의 형사는 멍청한 표정으로 계속 횡설수설하며 진한의 정신을 긁고 있다. 그리고 진한에게 도착한 메시지들은 그를 혼란과 두려움으로 밀어 넣고야 만다. 

 

도대체 나는 이곳에서 언제쯤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아내의 시체는 어디로 간 걸까. 혹시 살아 있는 걸까. 그래.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나에 대해서, 혜진에 대해서. 그래서 와인을 바꿔치기 한 거야. 와인을 마시지 않았다고. 이제, 어떻게 하지? 진한이 점점 혼란에 빠져드는 동안 중식의 표정과 태도가 조금씩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동료들조차 중식의 모든 것에 시큰둥했지만 변해가는 상황은 진한과 중식의 무게와 위치를 맞바꾸어간다. 
 

중식은 현대 쏘나타 F24를 탄다. 중식과 함께 국과수에 도착한 그 차를 보면서 모두들 혀를 끌끌 찬다. 주차라인에 제대로 주차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쿵쿵거리는 중식. 또 어디선가 가벼운 소리를 입에 담으며 술을 마신 것은 아닌지. 시체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남편 진한에게 혐의가 갈 부분은 전혀 없는데 중식은 계속 진한에게 집착하고 이런 상황들은 동료들에게조차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중식의 차는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중식이 국과수에 도착하면서 연석에 범퍼를 부딪칠 때도, 중식이 자신을 몰고 진한을 따라갈 때도, 자신의 트렁크에 중식이 무언가를 실을 때도 중식의 차는 중식과 함께 해 온 시간만큼이나 그를 잘 알았고 그의 행동을 알았고 중식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무언가를 완성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식의 쏘나타는 단순한 형사의 차가 아니었다. 중식의 쏘나타는 중식의 아픈 기억을 알고 있었고 중식이 오랜 시간을 들여 누구를 찾고 있었는지,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중식의 차는 그의 계획을 완성시키는 데 일조한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진실,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진실, 아무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중식의 계획과 실행을 아마도 중식의 차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라진 밤>은 원작 영화가 있다. 스페인의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영화 <더 바디>. 이창희 감독은 잘 짜여진 원작을 자신의 스타일로 훌륭하게 재해석했고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극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원작이 워낙 흥미롭고 탄탄해서 각색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영화 <사라진 밤>은 잘 소화된 각색과 연출을 바탕으로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완성도 높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더 바디>와 더불어 <인비저블 게스트> 또한 비슷한 전개를 가지고 있는 영화로 국내 개봉 때도 호평을 받았다. 진한 역으로 출연한 배우 김강우 씨는 <인비저블 게스트>가 국내에서 리메이크된다면 그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영화는 스릴과 긴장감이 살아있다. 이 매력적인 영화를 조금 더 감성적으로 조금 더 애잔하게 그려내며 진한과 중식의 마음과 감정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은 물론 이창희 감독 연출의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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