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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하가 만난 사람/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백정현 대표
다이내믹한 수입차시장에서 단숨에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다크호스로 만든 백정현 대표의 경영비결은 ‘즐거운 일하기’에서 찾을 수 있다
2018년 04월 16일 (월) 14:14:08 황순하 편집위원 c2@iautocar.co.kr
송정남 포토그래퍼 c2@iautocar.co.kr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1990년 첫 직장인 기아자동차에 부품수출 담당으로 입사한 후 30년 가까이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어오며 마침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의 백정현 대표를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자동차라는 게 아주 오지랖 넓고 터프한 주제인지라 지나온 그 오랜 시간이 늘 순조롭지는 않았을 것이나, 백대표에게는 진정으로 자동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숱한 고비에도 꺾이지 않고 힘든 ‘일’도 ‘놀이’로 생각하며 버텨온 것이 아닐까? 


2015년 수입차업계 최초의 내부승진 케이스로 화제를 모으며 CEO로 취임한 첫 해에 연간 판매 1만대를 돌파한 후, 작년에는 1만5000대를 판매해 단숨에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수입차업계의 다크호스로 만들어 놓은 백대표의 경영비결도 ‘즐거운 일하기’였을까? 햇살 좋은 오후, 회의실에서 변함없이 조용히 웃어가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는 백대표를 보면서 사람의 복은 타고난 사주가 아니라 자신이 풀어가는 것이라는 선친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백대표의 자동차 사랑은 언제부터였을까? 
“자동차가 귀하던 초등학교 시절 집에 신진지프가 있었는데, 참 멋있고 인상적이었죠. SUV와의 인연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웃음). 대학졸업 후 별 고민 없이 기아자동차에 들어간 것도 자동차전문기업이었기 때문이죠. 부침은 있었지만 30년간 계속 성장해 온 자동차업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만큼 매력 있는 산업이 없으니 다시 시작해도 자동차를 할 겁니다.” 


기아차가 현대차에 인수되기 전 능력을 인정받아 현대정공으로 이직, 해외 마케팅을 맡아 잘나가던 백대표는 2000년에 포드코리아 내 재규어랜드로버 사업부의 AS담당으로 돌연 이직하게 된다. 당시 국내 수입차시장은 연 4000대 규모로 전체 시장의 0.4%에 불과해 존재감이 미약했고 미래도 불투명하던 시기. 무슨 생각이었을까? 백대표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포드 뱃지를 달고 수출되던 프라이드와 아벨라용 AS 부품을 해외시장에 수출하는 일이었어요. 2000년에 포드가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국내 판매를 맡게 되면서 그쪽 AS담당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어요. 고민 끝에 수락했는데 주위에서는 다 말렸죠. 그동안 수출업무로 해외를 다녀보니 어느 나라든 소득이 올라가면 자동차 브랜드도 다양해지더군요. 그래서 우리나라 수입차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새롭게 도전을 한번 해보자 결심했어요.” 

 

   
수입차시장의 점진적인 성장을 예측하는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백정현 대표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1987년 수입자유화 이후 글로벌 딜러였던 인치케이프를 통해 각 1992년 10대, 1993년 18대가 공식 수입 판매되었다. 이후 판매가 저조했으나, 인도 타타그룹이 인수한 2008년에 연간 1000대 판매를 넘어섰고 백대표의 취임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 글로벌 판매도 작년에 총 62만대를 기록해서 2009년 대비 약 3배나 성장했다. 회사의 성장에 경영권의 안정과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될 만하다. 자동차업계의 영원한 화두인 규모의 경제에서 불리한 두 브랜드가 이렇게 급성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타타그룹이 인수한 이후 들이닥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장기 비전을 제시하면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엄청난 투자를 지속한 것이 2012년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어요. 2015년에는 연간 판매 50만대를 돌파하면서 영국 내 최대 자동차업체가 되었고 지금도 매년 4조~6조 원(7년간 30조 원/2017년 6조 원 가량)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품질이 안정되면서 소비자들의 인식도 많이 좋아졌어요. 소유와 경영을 확실히 분리한 점,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제품 디자인과 소비자 관계에서 브리티시 헤리티지(British Heritage)가 온전히 보존된 것이 판매 네트워크 확대와 함께 주효했다고 봅니다.” 

 

전 세계적인 디젤엔진 수요 감소 트렌드가 이러한 성장세에 미칠 영향은 어떨까? “전체 판매량의 70%가 SUV이고, SUV 수요에서 디젤엔진이 90% 이상이다 보니 최근의 디젤엔진 수요 트렌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영국에서 준공된 엔진공장이 디젤과 가솔린엔진 모두 생산할 수 있어 디젤엔진의 수요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고성능 프리미엄 전기 SUV I-페이스에서 보듯 고급 전기차 개발과 출시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모든 차종 라인업에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기차 등 친환경모델을 추가할 예정이라 충분히 보완이 된다고 봅니다.”

 

백대표는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대표 취임 시 다양한 신모델 출시, 서비스 네트워크 강화, 고객우선 철학으로 수입차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는 경영목표를 발표했다. 이제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자평하고 있을까? “지난 3년간 신차종들을 연이어 투입하면서 빠르게 성장했고 그에 맞추어 내부 준비도 착실히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 딜러 네트워크를 계속 늘려 왔고 AS설비에도 선행투자를 지속해서 이제 26개의 전시장과 25개의 서비스 스테이션을 갖추었고, 내년에는 모두 30개소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판매대수 대비 고객서비스 능력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봅니다. 저희를 믿고 과감하게 투자해 주신 딜러분들께 정말 감사하죠.

 

   
올 하반기 선보일 고성능 프리미엄 전기 SUV I-페이스

 

사업 파트너로서 딜러들의 수익성을 주요 KPI(Key Performance Index)로 정해서 자주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저희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판매와 AS의 현장에서 서비스질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딜러시스템은 수입차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아직 역사가 짧습니다. 그동안의 신차판매 중심에서 앞으로는 정비와 금융서비스, 중고차사업으로 수익모델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가 몇 년 전부터 인증중고차 사업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 여러 딜러분들이 주저하셨지만, 이제는 전국에 12개 사업장이 생길 정도로 좋은 비즈니스가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역에 전시장을 낼 때도 인근 지역의 기존 딜러에게 우선권을 드리고 있습니다.

 

AS설비도 공유할 수 있어 원가도 절감이 됩니다. 이해관계가 늘 같을 수는 없어 여러 가지 불만들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는 건 독일 브랜드에 쏠려있는 수입차시장에서 영국 브랜드의 존재감을 확실히 키우겠다는 의미인데, 2016년에 랜드로버로만 1만대 판매를 돌파했어요. 고객분들이 저희의 방향성을 받아주시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올해는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출범 10주년, 영국 랜드로버 본사 설립 70주년, 재규어의 최상급 차종인 XJ 출시 50주년 등 재규어와 랜드로버에게 기념비적인 해. 다양한 계획이 준비되어 있을 법 하다. “우선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랜드로버 70주년 기념 모델인 레인지로버 SV 쿠페와 XJ 50주년 기념 모델이 순차적으로 출시될 예정입니다. 레이싱 헤리티지만 내세우는 경쟁 브랜드와 달리 재규어는 레이싱 헤리티지에다 영국 왕실로 대표되는 브리티시 헤리티지를 어필하고자 합니다.

 

지금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체험 마케팅을 전 세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서 저희도 재규어의 ‘디 아트 오브 퍼포먼스’, 랜드로버의 ‘랜드로버 익스피리언스’라는 고객체험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본사 지원을 받아 서울 근처에 대규모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센터(Brand Experience Center)를 만들어 누구든지 재규어와 랜드로버 차종으로 다양한 온로드, 오프로드 주행을 경험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근교 나들이 명소가 되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 발달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차종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동안 한 지붕 두 가족처럼 같은 전시장에서 판매되어 온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경우 서로 상대방의 세그멘트에 들어가게 되면 판매 혼란과 함께 상대방의 몫을 가져가는 제살깎아먹기(Cannibalization)가 발생할 위험이 있지 않을까?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시장에서 SUV 세그먼트가 고속 성장하다보니 플레이어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재규어도 그중 하나이고요. 다만 랜드로버는 정통 SUV의 리딩 이미지가 확고합니다. 재규어 SUV는 크로스오버적인 성격에 온로드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게 다릅니다.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지만, 엔진특성이나 차 높이, 서스펜션 같은 기계적 세팅도 다르고요. 현장에서의 혼란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약간의 간섭이 있다 할지라도 두 브랜드의 차종확대는 전체 판매물량의 증대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최근 수년 간 국내 판매가 많이 신장되기는 했으나 아직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글로벌 판매에서 한국 시장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 텐데 본사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백대표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요. 한국이 전체 글로벌 판매에서 2% 정도 차지하지만 탑 10 시장에 들었고, 고가의 프리미엄 모델이 많이 팔려서 본사로부터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페이스를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이번 4월에 공개합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차종들도 한국에 우선 배정을 해주고 있어요. 한국시장을 위한 사양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줍니다. 지금은 국내 판매 차량에서 T맵을 미러링 기술로 사용하지만, 2020년부터는 아예 영국에서 차량을 제조할 때 T맵을 빌트인으로 장착하게 됩니다. 주행 시 휴대폰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거죠.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결과를 내야 해서 고민이지만요(웃음)”


지금까지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급속 성장한 수입차시장은 이제 월 2만대 판매규모로 커져 국내 자동차시장의 15%를 차지하고 국내 자동차산업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금 수입차업계는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하는 이슈로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 시장이 안정화되고 성숙해지면 브랜드 편중 현상이 사라지고 고객들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전개에 힘입어 재규어와 랜드로버 같은 니치브랜드에게 기회가 더 올 수도 있다. 백대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랜드로버 70주년을 기념해 2018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인 레인지로버 SV 쿠페

 

“수입차시장이 2015년부터 성장이 둔화되면서 이제 기반은 튼튼해졌지만 성장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천정이 어디인가라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죠. 분명 과거와 같은 고속성장은 기대할 수 없지만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 계속 올라간다고 볼 때, 수입차시장은 점진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현재는 프리미엄 모델들이 전체 시장의 60~70%를 차지하지만, 앞으로는 개성 있는 디자인의 중저가 차종들이 더 팔릴 것입니다. 당연히 시장규모가 확대될 것이고 저가 시장으로 중국산 차종들도 판매가 확대되어 수입차시장은 계속 성장하겠죠. 지금 기준으로 봐도 국내 시장의 20% 이상 성장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브랜드 편중 현상은 그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유행을 쫓아가는 소비패턴 때문이 아닐까? 한국 시장은 수요변동이 급격하고 각 브랜드의 판촉마케팅에 대한 반응이 빨라 매우 다이내믹한 시장이라는 게 백대표의 분석이다. “고객들이 여러 브랜드를 섭렵하는 것이 결국 자기 취향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머지않아 편중 현상은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니치브랜드라서 도움이 많이 되겠죠. 2019년말에 디펜더가 들어오고 계속 차종이 늘어나는 등 SUV 시장 성장세도 지속되어 재규어랜드로버의 경우 연간 2만대를 넘어 추가적인 성장도 가능하다고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백대표에게 자동차는 어떤 존재로 느껴질까? 더불어 학교를 졸업하며 자동차분야 커리어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는 해줄 조언을 부탁했다. 백대표가 환하게 웃었다. “30년간 함께 한 자동차는 저에게 일이자 취미이고 삶 그 자체입니다. 이제는 자동차가 공산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집니다.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고 때론 말썽도 피우는 존재로요. 그래서 신차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생명을 대하듯이 설레고 기대와 함께 잘 커 나갈 지 걱정도 됩니다.

 

자동차는 늘 옆에 있지만 경쟁을 통해 항상 새롭게 변화해 가니 참 익사이팅하고 매력적이죠. 매너리즘에 빠질 수가 없어요. 화려하고 스케일도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도 주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망설이지 말고 자동차업계로 오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형태와 방법은 바뀔지라도 늘 성장하는 산업이니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기회도 많으니까요. 하나 더 조언을 한다면 처음부터 다 갖춰진 곳을 찾지 말고, 고생스럽더라도 같이 성장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리스크가 있더라도 가능성을 보고 가는 삶이 더 보람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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