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웃게 만드는 마이크로카, 필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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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웃게 만드는 마이크로카, 필 p50
  • 오토카 편집부
  • 승인 2018.04.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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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작은 차가, 급성장하는 재생산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리처드 웨버(Richard Webber)가 확인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새’ 필 P50 마이크로카에 몸을 구겨 넣었다
0.4kg·m, 49cc 혼다 엔진이 8200rpm에서 내는 최대토크. 연비는 41.8km/L라고 한다

지난 여름, RM 소더비가 주최한 몬테레이 경매에서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한 대뿐인 애스턴마틴 DB4 GT 시제차에 500만 파운드(약 75억3500만 원) 남짓한 금액을 불렀다. 양산된 모델조차도 300만 파운드(약 45억2100만 원) 정도로 호가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금 애스턴마틴 워크스가 만들고 있는 ‘재생산’ DB4 GT들은 150만 파운드(약 22억6000만 원)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가치가 매겨질 듯하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애스턴마틴의 낙찰을 알리는 망치소리가 들리기에 세 건 앞서, 희귀하게 남아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차 한 대 역시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볼품없고, 솔직히 말해 우스꽝스러운, 길이가 1.37m에 불과한 P50이 10만5000파운드(약 1억5800만 원)에 팔린 것이다. 원래 값이 199파운드(약 30만 원)에 불과했던 1인승 단기통 3륜차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과다.

사실, P50은 13만 파운드(약 1억5900만 원)가 넘는 값에 팔렸다. 그리고 애스턴마틴과 재규어가 다시 만들고 있는 라이트웨이트 E-타입과 재규어 최초의 수퍼카 XKSS처럼 이제야 재생산되는 옛 차들과는 달리, 런던에 있는 필 엔지니어링(Peel Engineering)은 2011년부터 재미삼아 P50을 만들어 왔다. 기본가격이 1만3679파운드(약 2060만 원)로 지금 거래되는 오리지널 모델 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한 ‘새’ P50은 급성장하는 재생산업계에서 엄청나게 저렴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6.4km, P50을 시승하며 실제로 달린 거리. 그 정도면 충분하다. 달리면서 이렇게 자주 웃은 차는 없었다

<오토카>가 그렇게 동급을 선도하는 차를 다루지 않을 수 없지만, 시승에 앞서 역사를 조금 짚어보자. 만섬에 있는 필(Peel)이라는 마을의 항구 옆에서 출발한 필 엔지니어링 컴퍼니는 배와 노튼(Norton), 그리고 BMW 같은 회사의 모터사이클 페어링(유선형 덮개)을 만드는 유리강화플라스틱(GRP) 전문업체였다. 회사를 설립한 시릴 커넬(Cyril Cannell)이 꿈꾸던 P50은 한 사람(과 쇼핑한 물건)을 위한 시속 85km급 도심형 차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1962년 얼즈 코트(Earl’s Court)모터쇼에서 앞바퀴 한 개, 뒷바퀴 두 개인 모습으로 공개되었다.

차 구성은 곧 바뀌었고, 2행정 49cc 츠바이라트 유니온(Zweirad Union)/DKW제 엔진이 3단 수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리는 양산모델은 1963년에 나왔다. 모페드(엔진 달린 자전거) 값으로 자동차의 편안함을 준다고 광고했던 차는 2년 뒤 생산을 중단할 때까지 50여대가 나왔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만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 차들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불만스러웠던 애호가 개리 힐먼(Gary Hillman)은 새로 꾸린 필 엔지니어링에서 다시 한 번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 권리를 확보했다.

지금은 연간 약 15대의 P50과 필의 2인승 버블카인 트라이던트(Trident)의 재생산모델을 10대 남짓 판매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전통적인 P50 가솔린 버전의 인기가 더 높고 1만4879파운드(약 2240만 원)에 팔리는 반면, 최대시장인 미국에서는 배출가스규제를 피할 수 있는 전동모델이 1만3679파운드(약 206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물론 아주 저렴한 가격에 완벽한 차를 경험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그 중에는 5대의 P50과 5대의 트라이던트를 산 두바이 왕세자(1대는 자신이 타고 나머지 9대는 베일을 쓴 건장한 경호원들이 호위용으로 쓴다고 상상해보고 싶다), 아부다비의 자동차수집가 ‘레인보우 셰이크’, 자신의 엄청난 펜트하우스를 돌아보는 데 전동 P50를 쓴다고 알려진 소유자 1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동용 스쿠터로 쓰기보다 1960년대 배경의 희극용 소품에 더 잘 어울린다

DB4 GT 재생산모델처럼, 지금의 가솔린 P50은 크기에서는 오리지널 모델과 비슷하다. 이색적인 차라는 점에서는 꽤 비슷한 BMW i8처럼, 가솔린 P50은 자동변속기를 통해 동력을 뒤쪽으로 전달한다는 이유로 필이 ‘미드십 배치’라 표현하는 엔진을 쓰고, 앞뒤 무게배분 비율이 50:50이며, 연비는 38.9km/L 이상이다. 그러나 BMW i8과 다른 점도 있는데…, 사실 그 밖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렇다.
단기통 공랭식 혼다 4행정 모터사이클 엔진은 실제로 운전자 뒤에 놓이고 1만 rpm에서 최대 4.9마력의 힘을 낸다. 동력은 CVT와 구동체인을 거쳐 뒷바퀴로 전달된다. 오리지널보다 개선된 지금의 차에는 호화롭게도 후진기어가 달려 있다. 싱글 위시본 구조와 댐퍼가 앞바퀴를 지지하고, 뒤 트레일링 암 서스펜션에는 코일오버 스프링을 쓴다. 내가 타면 2배가 되는 78kg짜리 P50의 속도를 줄이는 것은 케이블로 작동하는 드럼 브레이크다. 최고속도는 시속 45km. 

전체가 한 덩어리로 된 작은 크기의 유리강화플라스틱 차체는 1371mm 너비와 거의 같은 높이고 너비는 겨우 1m다. 키가 1.9m인 내가 하나뿐인 문을 통해 차에 들어간다는 것은 양쪽 다리를 뒤틀어 넣기 전까지는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다리 없는 식탁처럼 보이는 자세로 안전벨트를 채우고 앉으니, 차에 탔다기보다 차를 입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지나치게 큰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45°쯤 되는 각도로 달렸는데, 마치 수직으로 서있는 듯하다. 바로 아래에는 속도계가 있는데, 놀랍게도 불가능할 것 같은 속도인 시속 260km까지 나와있다. 
 

4.9마력짜리 P50에는 쇼핑카트 크기인 6인치 휠이 달려 있다. 무게는 운전자와 엇비슷한 78kg이다. 너비는 1m로 뒤쪽 번호판을 붙이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작은 카페트 조각이 실내에서 유일하게 튀는 부분이고, 스위치는 당연히 가장 기초적인 것뿐이다. 막대기처럼 생긴 주차브레이크 레버가 왼쪽 아래에, 작은 브레이크 및 액셀페달이 오른발 옆에, 커다란 금속제 기어레버가 왼쪽 다리 아래에, 초크, 조명, 시동버튼이 오른쪽에 있다. 유리가 많은 덕분에 시야는 훌륭하다. 다만 바로 앞에 있는 유리는 예외다. 와이퍼 조절장치는 시선이 바로 닿는 곳에 툭 튀어나와 있다. 룸미러가 있다면 운전자 얼굴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달지 않았지만, 안테나처럼 삐죽 솟아 있는 크롬도금 사이드미러는 뒤쪽을 잘 보여준다. 

시동버튼을 누르면 P50은 단기통 엔진의 펑펑거리는 소음이 실내에 메아리 칠 때마다 커다란 진동이 몸을 통과하는 것 같다. 기어레버를 주행위치에 놓으면 아기가 모험에 나서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회전수가 높아질수록 CVT 소리가 요란해지면서 불협화음은 절정에 이르고, P50이 앞으로 달리는 동안 계속 그 상태가 이어진다. 스티어링은 민감하고, 커브를 돌 때에는 차가 전복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고속형’ 타이어를 끼운 초소형 6인치 휠은 모든 요철이 언덕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한 바퀴가 파인 곳을 지나면 차 전체가 비틀린다. 어리석게도 파인 곳 사이로 지나가려고 하면 금세 뒷바퀴가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떠오를 테니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기는 쉽다. P50을 몰고 있으면 차로 하나 뿐인 길이 텅 빈 아우토반보다 넓어 보이기 때문이다.
 

시속 260km짜리 속도계에서 시속 32km를 넘기지 못했다

시속 32km가 되면 주행안정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도를 실질적인 최고속도로 정했다. 사진기자 윌 윌리엄스의 안내로, 우리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들어서는 모험에 나섰다. 갑자기 고래떼 사이에 끼어든 멸치가 된 느낌이었다. 차 안에서 나는 진동, 잡음, 집중력은 200kg이 아니라 2톤쯤 되는 무게로 느껴지고, 추월하는 차마다 개기일식 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윌리엄스가 예기치 않게 방향을 틀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별 변화가 없어 더 강하게 밟으니 그제야 갑자기 P50이 멈춘다. 직진하다가 시속 32km로 충돌했다면 분명히 경력에 흠집이 났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P50은 원래 의도대로 도심지를 누볐다. 차간거리가 좁게 느껴지지도, 진입차단봉이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사람이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P50으로도 지나갈 수 있다. 분주한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걷는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우리가 멈추면 사람들이 밀려와 작은 인파를 이루었다. 호기심 많은 정육점 주인은 좌석 뒤 적재공간을 시험하도록 커다란 스테이크와 키드니 파이를 빌려줬다(알맞은 크기였다).

P50이 어떤 차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대부분 모양을 알아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시대였던 1960년대를 떠올렸다. 필의 친근하고 티끌만한 크기를 옛 향수와 연관짓는다면 그만큼 사람들의 호감을 끌만한 차도 없다. 필 P50은 1만5000파운드(2260만 원)짜리 이동용 스쿠터라기보다 4.9마력짜리 행복제조기라고 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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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치 모페타(BRUTSCH MOPETTA)
P50보다 6년 앞서 선보였고, 필의 배치를 뒤집어 두 개의 뒷바퀴를 굴리고 한 개의 앞바퀴로 방향을 바꾸는 컨버터블. 모페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마이크로카 설계자 에곤 브뤼치(Egon Brutsch)가 만들었다. 매력 넘친 스타일과 좀처럼 찾기 어려운 희소성 덕분에 몇 종류의 복제차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영국 마이크로카 전문가 앤디 카터(Andy Carter)가 만든 것도 있었다.

FMR TG500
2차세계대전 후 항공기 제작을 할 수 없게 된 메서슈미트(Messerschmitt)는 펜드 플리처(Fend Flitzer) 장애인용 3륜차를 바탕으로 여러 3륜 카비넨롤러(Kabinenroller, 폐쇄형 차체 스쿠터)를 만들었다. 2명이 앞뒤로 앉는 좌석구성을 비롯해 카비넨롤러의 여러 설계요소를 이어받은 FMR의 스포티한 모델 Tg500 4륜차는 최고출력이 20마력쯤 되는 494cc 2기통 엔진을 단 괴물이었다. 2013년에 1대가 32만2000달러(약 3억4940만 원)에 거래되었다. 

후지 캐빈(FUJI CABIN)
전후 항공산업 금지조치의 또 다른 산물인 후지 캐빈은 1955년부터 1958년까지 일본 도쿄에서 생산되었다. P50과는 구조, 서스펜션, 브레이크, 외눈 헤드램프가 비슷하지만, 후지 캐빈의 단기통 122cc 5.6마력 엔진을 차체 뒤에 설치했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두 개의 좌석을 마련했다. 깜짝 놀랄 아이디어였다. 길이가 2.9m나 되어 휠베이스가 긴 거대 괴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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