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 기블리
나쁜 녀석, 기블리
  • 안정환
  • 승인 2018.02.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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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블리의 섹시한 배기사운드는 말초신경을 강렬하게 자극하며, 마세라티 중독에 빠져들게 한다. 나쁜 녀석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걸핏하면 여자친구를 갈아치우는 녀석이 있다. 자기는 한 여자에게 오래 머물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며, 쉽게 이별하고, 또 금세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 그 녀석을 거쳐 간 여성들을 불러 한 줄로 줄지어 세운다면, 웬만한 맛집 웨이팅 줄보다 길 것이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훈남 스타일이냐고? 그와 정반대의 이미지다. 머리도 길고, 수염까지 덥수룩하다. 패션스타일도 깔끔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범죄도시>의 주인공 장첸과 꼭 닮은 이미지다. 그렇다고 고액 연봉의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부모의 재력을 물려받을 금수저도 아니다. “만나는 여자친구에겐 잘 대해주냐?”라는 질문에는 “카톡도 자주 씹고, 내 멋대로 하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 녀석은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다. 


자동차세계에서도 그런 나쁜 놈(?)이 존재한다. 내 기준에선 비싸기만 하고 상품성은 그에 못 미치는 차들이 그렇다. 그런데 간혹 그런 차 중에서도 묘한 매력을 어필하는 차들이 있다. 값비싸고 허점투성인데도 나도 모르게 끌리는 차. 다른 대안이 많은데도 왜 그런 나쁜 차에 끌리는지 살짝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나쁜 남자에 끌리는 여자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최근 내가 매우 나쁜 녀석에게 홀려버리고 말았다. 바로 마세라티 기블리에게 말이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맞춰본 호흡이지만, 말초신경을 휘저어 놓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고성능 모델 기블리 SQ4라서 그 매력이 더욱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저 삼지창 엠블럼 안에는 ADAS 시스템에 필요한 각종 센서가 들어간다


기블리가 착한 놈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가격도 비싸고, 연비도 나쁘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별로다. 또 실내 곳곳에선 원가절감의 흔적도 많이 보인다. 같은 가격대에 상품성 좋은 모델들이 즐비한 점도 기블리 구매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이는 기블리에만 국한되는 소리가 아니다. 마세라티의 모델 대부분이 그렇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도대체 왜 기블리에게 마음을 뺏겼단 말인가? 나쁜 남자가 안 좋은 줄 알면서도 계속 매달리는 여성들의 심리가 바로 이런 것인가?


가성비로만 놓고 봤을 때 기블리는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손에 꼽히는 매력이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특히 섹시한 배기사운드를 듣고 있노라면 측두엽이 자극받아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듯한 느낌이다. 무조건 큰 소리로 울부짖는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마세라티의 엔진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가 세심하게 조율한 명품 사운드다. 터널이라도 지날 때면 그 배기 음향이 더욱 증폭돼 오케스트라 공연을 방불케 한다. 연료를 야무지게 마셔대는 타입이라 급가속을 절제해야 하는데 이게 결코 쉽지만 않다. 마세라티 특유의 엔진음과 배기음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가속페달에 힘을 가하게 된다. 중독성 강한 마약과도 같다. 

기블리의 듀얼 타입 트윈 머플러는 최고의 금관악기다


기블리 SQ4의 파워트레인은 윗급 모델인 콰트로포르테와 공유한다. V6 3.0L 가솔린엔진과 ZF 8단 자동변속기 조합이다. 그리고 차명에 붙여진 숫자 4는 네바퀴굴림을 의미한다. 특히 엔진은 페라리 마라넬로 공장에서 마세라티만을 위해 독점 제조된 것으로 이탈리아 명품 종마의 피가 흐른다. 엔진의 활력을 제대로 일깨우고 싶다면,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rpm 게이지 바늘을 4000 언저리로 끌어올려 보자. 한층 카랑카랑해진 배기사운드와 최고출력 430마력, 최대토크 59.2kg·m의 강력한 힘으로 보답한다. 0→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에는 4.7초면 충분하다. 스티어링 휠 뒤편에 달린 패들시프트를 사용하면 운전의 맛은 더욱 깊어진다. 정밀하게 세공한 금속 패들이라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촉도 매끈하며, 철컹하는 소리도 매력적이다. 
 

연석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하자, 550만 원짜리 휠이다


모터스포츠 DNA를 품은 브랜드기에 운동성능 역시 모자람이 없다. 강인한 엔진은 지칠 줄 모르고 공차중량 2톤이 살짝 넘는 차체를 시종일관 가볍게 이끈다. 스포츠카처럼 낮은 밸런스를 자랑하는 차가 아닌데도 급선회 시 차체 기울어짐이 크지 않다. 앞 더블위시본, 뒤 멀티링크의 서스펜션 구조가 차체를 단단하게 떠받치며, 나름 경쾌한 몸놀림을 구사한다. 여기엔 피렐리 P 제로 타이어도 한몫 거든다. 앞 245/35 R21, 뒤 285/30 R21 사이즈의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꽉 움켜잡고 거칠게 뿜어지는 출력을 노면으로 골고루 전한다. 제동성능 또한 탁월하다. 흐트러짐 없이 단번에 속도를 줄여내는 느낌이 상당히 쫀쫀하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이라는 뜻을 갖는 기블리답게 겉모습은 바람이 스쳐 지나간 듯 매끄럽고 유려하다. 더욱이 시승 모델은 ‘로소 에네르지아’(Rosso Energia) 레드 컬러를 입혀 고혹적인 카리스마가 더욱 배가 됐다. 또한, 2018년형 뉴 기블리는 그란루소와 그란스포트 두 가지 트림 전략을 통해 럭셔리와 스포티함을 구분 짓는다. 두 개의 스타일로 두 가지 매력을 어필하겠다는 전략. 그란스포트 트림인 시승차는 날카롭게 돋은 라디에이터 그릴을 검게 칠하고, 앞뒤 범퍼를 보다 역동적으로 디자인해 전체적인 모습이 박력 넘친다. 이는 심미성을 높이는 역할도 하지만 기능성에도 기인한다. 기존 0.31Cd였던 공기저항 계수를 0.29Cd로 떨어뜨렸다. 미묘한 변화로 보여도 나름 세심한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나쁜 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기면서도 섬세함이 묻어나는 모습이 마치 ‘츤데레’ 같기도 하다. 
 

최고급 가죽으로 도배된 실내


실내는 질 좋은 가죽으로 가득하다. 시트는 물론 스티어링 휠, 도어트림, 대시보드 등을 아낌없이 가죽으로 마감했다. 또 머리 위로는 알칸타라 소재로 마무리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대충 훑어봤을 때 얘기.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면, 부족한 점들이 속속 드러난다. 곳곳에 들어간 플라스틱 마감이 대표적인데 그야말로 ‘싼티’가 난다. 눈을 감고 버튼류 등을 더듬어 보면 이차가 1억4000만 원에 달하는 차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신형 기블리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바로 업그레이드된 안전사양이다. 마세라티는 럭셔리카 중 최초로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를 심었다며, 보다 안정감 있는 주행을 선사한다고 설명한다. 기존 제공되던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에 차선유지기능, 사각지대경고기능이 추가된 것. 물론 운전자의 안전을 배려한 부분이 고맙긴 하지만, 1억 원이 넘는 가격을 감안하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2000만 원대 국산 소형 SUV에도 들어가는 시스템인데 말이다. 또, 차선을 유지해주는 기능도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LKAS 기능이 들어간 대부분 차량이 스티어링 휠에 손을 놓고도 10초 이상은 버텨주는데 기블리는 8초도 못 버티고 경고음을 울려댔다. 
 

엔진만큼은 제대로 된 명품

뉴 기블리는 상품성을 더욱 강화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았다. 대부분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이라 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시승 내내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기블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성에 차지 않지만, 계속해서 시동을 걸게 되고 가속페달에 발을 얹었다. 그리고 윈도를 살짝 내린 채 기블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이 시승기를 쓰면서도 귓가에 기블리의 포효가 들려온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그 감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 독하다던 마세라티 바이러스에 감염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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