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로 달린 스코틀랜드의 대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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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로 달린 스코틀랜드의 대자연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12.2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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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대자연을 2012년형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디펜더, 레인지로버를 타고 달렸다. 어떤 길이든 달릴 수 있다는 말을 문장이 아닌 온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오프로드가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서 랜드로버는 그저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는 존재에 머물고 마는 것은 아닌가. 가끔씩 품었던 이런 의문은 스코틀랜드의 광활하고 거친 자연 앞에서 바람 앞의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길을 랜드로버가 아닌 무엇으로 달릴 수 있단 말인가. 간사한 마음은 어느새 랜드로버의 포로가 되어, 아니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스코틀랜드의 깊숙한 속살을 헤집고 다녔다.

자연이 허락해준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순간에도 두려움은 없었다. 이러한 신뢰감이야말로 랜드로버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자연 앞에 숙연해졌다. 그것은 마치 고난을 함께한 말 위에 홀로 앉아 지는 석양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옛 기사의 심정과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정서야말로 랜드로버의 역사를 관통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것은 또한 미래에도 손상되지 않을 랜드로버의 존재감일 것이다.

지난 11월 6~7일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2012년형 랜드로버 글로벌 미디어 시승회에 참석했다. 인천공항에서 파리 드골공항까지 11시간, 그리고 파리에서 1시간의 대기 후 2시간을 비행했다. 북해의 포스만 남안에 자리한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에든버러(현지 사람들은 에든버흐라고 발음했다)는 다른 유럽의 도시들보다 사뭇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날 파리의 날씨는 영상 16℃였는데 에든버러에 도착했을 때는 영상 3℃, 밤이 되자 0℃로 떨어졌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탓에 지구의 아주 북쪽으로 이동해온 것을 실감했다. 늦은 오후 햇살은 영롱하면서도 강렬했고, 생경한 나무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에서 첫날밤을 보낼 타코타(DAKOTA) 호텔은 공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영국과 스코틀랜드, 프랑스 등지에서 온 기자들과 함께 2012년형 뉴 디스커버리4, 디펜더, 레인지로버 등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과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승에 나섰다. 먼저 탄 차는 디스커버리4 HSE 3.0 SDV6. 1차 시승 코스는 에든버러 시가지 외곽으로 빠져 내륙 깊숙한 남동부 지방 켈소(Kelso)에 있는 플로어스 성(Floors Castle)까지 달리는 186km 거리. 18세기에 건축된 고택에서 점심을 먹고 플로어스 성에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꽤 먼 거리지만 낭만적인 여정이다. 목적지로 가는 곳에 오프로드 코스가 준비되어있다는 설명이다.

 

 

 

 

2012년형 뉴 디스커버리4는 배기량은 같은 3.0L 디젤 엔진이지만 최고출력이 245마력에서 256마력으로 높아졌다. 그러면서 CO₂배출량이 244g/km에서 230g/km로 낮아졌다는 게 포인트다. 2,000rpm에서 발휘되는 61.2kg·m의 최대토크는 기존과 같다. 2개의 터보가 작동하는 병렬식 시퀀셜 터보차저 시스템이 출발과 동시에,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0.5초)에 최대토크에 도달하게 해준다. 그만큼 가속은 가볍고 빠르다.

 

 

 

 

 

오른쪽 핸들, 왼쪽 차선 주행은 낯선 풍경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디스커버리4의 폭넓은 시야가 확실히 도움을 주었다. 내비게이션 길 안내에 익숙해질 무렵 실내가 무척 조용하다는 걸 깨닫는다. 디스커버리4가 이렇게 조용한 차였던가. 신형 ZF제 8단 자동변속기는 부드럽고 빠른 변속으로 엔진의 파워를 조율한다. 다이얼식 기어 레버를 오른쪽으로 돌려 스포트 모드(S)에 맞춘다. 활시위를 바짝 더 잡아당긴 것처럼 하체의 긴장감이 팽팽해진다. 변속타이밍이 더 빨라지는 만큼 응답력과 가속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낀다. 패들 시프트를 통한 기어 변속도 정직하게 반응한다. 제법 거칠게 몰아붙이는 순간에도 쾌적함을 잃지 않는 자세에서 디스커버리4의 매력을 발견한다. 은근히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윽고 장면은 바뀌어 산과 호수가 이어지는 스코틀랜드의 대자연이 펼쳐진다. 아, 하는 짧은 탄성은 시작에 불과했다. 광활한 목초지 어디에서나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본다.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석재로 지은 집들이 그림처럼 서 있을 뿐. 창문을 열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폐부 깊숙이 신선한 공기에 감염되는 듯했다. 디스커버리4는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자연 속으로 스며들었다. 우리가 감상에 젖어있는 순간에도 디스커버리4의 메커니즘은 냉철하게 작동했다. 굽이진 연속 커브를 손쉽게 돌아나가는 순간에는 커브 디텍션 시스템이 기어를 고정단에 유지시키는 방식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랜드로버 오프로드 지원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본격적인 오프로드 주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하얀 이를 드러낸 인스트럭터는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작동방법이 회전식에서 버튼식으로 바뀌었다)의 세팅을 주문했다. 먼저 기어를 중립에 놓고 하이 레인지에서 로 레인지로 바꾼 다음, 에어 서스펜션 버튼을 눌러 지상고를 높인다. 그런 다음 주행 모드를 일반에서 그라스(풀, 자갈, 눈) 모드로 바꾼다. 머드(진흙, 바퀴자국)와 모래, 바위 등의 모드는 노면상황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지옥의, 아니 야생의 오프로드 코스는 아름다웠다(전체 코스를 돌아보면 가장 평이한 코스이기도 했다). 오프로드에 들어섰을 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마찰력이다. 타이어가 마찰력을 잃지 않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개의 바퀴에 동력을 모두 전달하는 4WD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다음이 구동력이 아닐까. 로 기어에서 디스커버리4의 구동력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웬만한 오르막은 그냥 두어도 스스로 올라갈 기세다. 구동력이 크기 때문에 경사가 심한 내리막에서는 어떠한 페달(특히 브레이크)도 밟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한 내리막길 주행제어장치(HDC)가 75˚ 경사에 달하는 내리막길에서도 안정적인 하강을 도왔다.

 

 

 

 

플로어스 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위가 어두워진 뒤였다. 북유럽의 해는 일찍 저물었고 숲속에서 그 속도는 더욱 빨랐다. 1721년 록스버러 공작이 건설했다는 이 성은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집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고. 성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서둘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음 시승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디펜더다.

 

 

디펜더를 타본 적이 언제였던가. 직선 위주의 투박한 외모에 크고 단순한 계기, 그리고 플로어에서 길게 솟아오른 수동 6단 기어 레버와 그 아래로 짧은 트랜스퍼 기어. 순수 오리지널리티를 간직한 전설의 오프로더는 날것의 느낌이 툭툭 묻어났다. 현대적인 디스커버리4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2012년형 디펜더는 신형 2.2L 디젤 엔진을 쓴다. 기존 2.4L 디젤 엔진을 대체하는 것으로 최고출력 122마력, 최대토크 36.7kg·m의 성능은 그대로. 최고시속은 시속 132km에서 145km로 향상되었고, 배출가스 수준은 낮아졌다. 더불어 다양한 옵션으로 선택 폭을 넓힌 게 포인트다. 왼쪽 핸들 모델이라 더 반갑다. 아무래도 수동기어를 다루기에는 오른손이 익숙하므로.

오프로드 코스는 곧바로 나타났다. 아마 플로어스 성의 영지 안에 이 코스가 있는 듯했다. 트랜스퍼 기어를 이용해 디퍼렌셜을 잠그고(locking) 험로주행에 대비한다. 야간 오프로드 주행은 처음이다. 그것도 디펜더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어둡고 음습한 숲속을 지난다. 설레임은 곧 긴장감으로 바뀌었지만 들뜨지는 않았다. 나무 사이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과 차가 기우뚱할 정도로 움푹 페인 곳에서도, 심지어 깊이를 알 수 없는 개울을 지날 때조차도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디펜더에 대한 신뢰감은 물론 랜드로버가 준비한 코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길을, 디펜더는 말도 안 되는 각도로 진입하고 진출했다. 램프 앵글 역시 눈으로 보는 것보다 조금 여유가 있었다. 압권은 진창에서 벌어졌다. 도저히 마찰력을 확보할 수 없을 것 같은 진창에서 인스트럭터는 차를 세운 다음 앞 범퍼 아래에서 윈치를 빼냈다. 비상탈출요령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우선 오른쪽 코너를 돌고나서 오르막에 차를 세워야 한다. 기어는 1단.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앞에서 윈치의 손잡이를 잡은 인스트럭터가 디펜더와 함께 뛰었다. 코너를 도는 순간 열려있던 차창으로 진흙이 얼굴을 때리며 실내로 들이닥쳤다. Go! Go! Go! 사람들의 함성이 진흙과 함께 흩어졌다. 유쾌했다. 성공이다.

 

 

 

 

 

윈치는 이제 급경사 오르막이 끝나는 길 위의 또다른 랜드로버에 연결되었다. 천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구동력을 유지한다. 아주 조금씩 디펜더는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위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고도 오프로드 코스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오프로드를 달려봤지만 ‘모험’이라는 말을 실감하기는 처음이다. 모험의 의미는 온몸으로 그 대상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얼마간의 평지가 나타나 이제 코스가 끝났는가 싶었는데, 인스트럭터의 등장과 함께 양쪽의 바퀴를 올려놓을 수 있는 철제 구조물이 나타난다. 바퀴를 맞추어 차를 올려놓으니 고압분사 호스를 이용한 물세차가 시작된다. 낯설고 어두운 숲속에서 세차 서비스를 받고 있는 풍경이라니. 물탱크에 랜드로버 오프로드 지원팀이라고 쓰여 있다. 차도 차지만, 랜드로버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야간 오프로드 주행이 끝나고 숙소인 록스버러 호텔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였다. 고성호텔에서의 만찬은 근사했다. 체크무늬 스커트의 스코틀랜드 전통의상 킬트를 입은 한 남자가 백파이프를 불었고, 가까이서 그 소리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음식에 부어 먹는 스카치 위스키가 나왔고, 스트레이트로 마신 위스키는 혈관 속을 시속 250km로 질주했다. 별이 빛나는 밤은 차가웠고, 창백한 달은 더욱 더 창백해졌다. 밤이 깊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고성의 앞마당은 랜드로버들로 줄 지어 섰다. 이제 돌아가야 하는 길이다. 올 때와 전체 거리는 비슷하지만 동북쪽으로 휘어지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이 길의 동행은 레인지로버다. 2012년형에서는 헤드라이트 및 미등 백 플레이트가 글로스 블랙으로 마감되는 등 세부적인 스타일 변화가 이루어졌다. 준비된 두가지 모델 중 오토바이오그래피 4.4 TDV8의 시동을 먼저 걸었다. 오토바이오그래피는 프레스티지, 다이나믹, 테크놀로지 등 새로운 3가지 옵션패키지로 구성된다. 313마력의 최대출력을 내는 4.4L TDV8 엔진은 그대로. 강력하고 넉넉한 힘을 내는 이 디젤 엔진은 1,500rpm~3,000rpm 사이에서 최대토크 71.3kg·m을 발휘한다. 디스커버리4보다 빠른 가속력과 편안함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레인지로버의 경쟁차를 말할 때 왜 다른 SUV가 아닌 고급 세단을 말하는지 수긍할 수 있다. 디스커버리4와 비교해서도 레인지로버는 확실히 승용 감각이 물씬하다.

 

 

 

 

 

이 코스에서도 오프로드는 제법 긴 구간에 걸쳐 있다. 아직 아침이라 서리가 내려앉은 풀밭은 미끄러웠고, 그라스 모드에서 레인지로버는 미끄러지지 않고 달렸다. 차체가 저절로 어깨춤을 추는 깊은 도랑을 지나 한쪽이 벼랑 가까운 능선도 통과했다. 특히 오토바이오그래피 모델은 계기판에 앞바퀴의 방향이 나타나 험로를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새끼 노루 두 마리가 이쪽을 한 번 보더니 사뿐하게 내달린다. 야생의 오프로드는 앞서 차가 달렸기에 흔적이 있을 뿐 길은 곧 사라질 것이다.

 

 

 

 

 

초원 위의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2012년형 레인지로버 스포트 3.0 SDV6로 갈아탔다. 새로운 파워 테일게이트 등 외관과 실내에서의 인포테인먼트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V6 3.0L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이 245마력에서 256마력으로 높아졌고, CO₂배출량은 243g/km에서 230g/km로 낮아졌다. 새로 매칭한 8단 자동변속기 역시 패들 시프트로 조작할 수 있다. 인테리어의 고급감은 오토바이오그래피보다 떨어지지만(계기판에서 바퀴의 방향을 표시하는 그래픽이 없다) 스포티한 감각은 오프로드에서 한층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험난한 오프로드를 지나 온로드를 달리는데, 바다가 보인다. 북해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며 모처럼 시가지의 모습을 본다. 그 풍경이 낯설게 여겨질 만큼 자연 속으로 내달렸다. 어느새 여정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짙은 안개에 휩싸여 길을 잃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안개 속에서 길을 헤매다 잠시 공상에 빠졌던 게 아닐까. 지금 서울에서의 회상은 그 안개를 벗어나 푸른 초원을 향해 달려간다. 헌신적이며 열정적으로 우리를 안내했던 모든 랜드로버 오프로드 지원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글 · 최주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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