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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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사나이
  • 조슈아 다울링(Joshua Dowling)
  • 승인 2018.01.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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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은 프랑크 베르너몬이 얼어붙은 도랑에 앉아 전자제어 주행안정 장치를 발명한 덕택이다. 조슈아 다울링(Joshua Dowling)이 그 기술이 탄생한 곳을 거슬러 올라갔다

주행안정시스템은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스티어링 휠 각도, 타이어 접지력, 코너에서 차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주시하는 그 수호천사는 요즘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안전벨트가 등장한 이래 교통안전에서 가장 크게 이루어진 진보로 널리 여겨지고 있다. 다만 그 기술이 우연히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89년, 메르세데스-벤츠의 젊은 엔지니어 프랑크 베르너몬(Frank Werner-Mohn)은 스웨덴 북부에서 겨울 시험주행을 하던 중 빙판길에서 차가 미끄러졌다. 처박힌 차에 앉아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달려오는 견인트럭을 기다리는 동안(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아직 발전단계에 있는 기술이었다), 그는 묘안이 떠올랐다.

만약 갓 발명된 브레이크 잠김방지 시스템 - 브레이크가 잠기지 않도록 제동압력을 빠르게 맺고 끊는 기술 - 이 차의 스티어링 휠 각도와 미끄럼각을 1000분의 1초 단위로 측정해 차 내 컴퓨터에 어떻게든 알려준다면 어떨까?

 

이 사고가 테스트 드라이버 베르너몬이 ESC를 만들도록 부추겼다

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엔진출력과 각 바퀴의 브레이크 작동을 동시에 또는 개별적으로 적절하게 조절한다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부품업체 보쉬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보쉬의 시스템은 긴급상황에서 브레이크페달을 밟았을 때에만 작동하는 것이었다. 베르너몬의 아이디어는 항상 작동하고 노면조건과 차의 움직임을 계속 감지하는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 이 미묘하지만 뚜렷한 차이로부터 베르너몬의 아이디어가 오늘날 쓰이고 있는 모든 전자제어 주행안정시스템의 바탕이 되는 시발점이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본사로 돌아온 뒤, 베르너몬과 그의 엔지니어 팀은 그들의 이론을 시험할 시제차를 만들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았다. 가장 먼저 직면한 어려움은 옆방향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자이로센서를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장난감가게로 가 원격조종 헬리콥터를 샀다. 분해해서 필요한 부품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이론이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지만, 장난감에 있는 것보다 처리속도가 빠른 자이로센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커드미사일에 있는 것을 구해 내구성이 더 뛰어난 시험용차를 만들었다. 물론 미사일은 탄두를 제거한 것이었다.

 

A-클래스는 얼리 어답터로서 주행안정성 문제를 잠재웠다

처음에는 몇몇 동료들이 무시한 아이디어였지만, 작지만 헌신적인 팀이 2년 동안 집요하게 개발한 끝에 1991년 3월 그 기술의 양산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 결정은 운전을 소심하게 한다고 알려진 메르세데스-벤츠 최고위 임원 중 한 명이 얼어붙은 호수 장애물 코스에서 전문 테스트드라이버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빨리 달린 뒤에 내려졌다. 장치를 끄면, 초보운전자들은 코스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이탈하지 않고 첫 번째 코너를 지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를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일단 코너 하나를 도는 사이에 이 기술이 미끄러지는 것을 안전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더니 이사회가 즉시 승인하더군요.” 베르너몬의 말이다. “당시로서는 이것이 신의 계시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기술은 1995년에 최고급 세단인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에 처음 탑재되었다. 그러나 1997년에 스웨덴의 기술전문지 <테크니켄스 바를드 Teknikens Varld>가 ‘무스 테스트’(moose test)로 알려진 충돌회피시험을 하면서 당시 새로 나온 A-클래스 해치백을 전복시켰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모델을 위해 예비해 두었던 새 주행안정성제어기술을 다른 모델에 확대 적용하기도 전에 가장 저렴한 모델에 다는 것으로 대응했다.

베르너몬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 시험을 한 저널리스트가 고맙습니다. 우리 기술이 빠르게 적용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었지요.” 그러나 오래지 않아 메르세데스-벤츠가 특허를 기술협력업체에게 넘겨주고 한 푼도 받지 않았을 때, 발명한 사람들의 감정은 복잡했다.

자동차 관련 업계에서 자동차회사들은 그들이 고용하고 있는 수천 명의 엔지니어들이 발명한 것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새 주행안정시스템을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빨리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노하우를 다른 기술 업체에 주었고 그 업체들이 경쟁 자동차 브랜드에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허락했다. 기술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무스 테스트는 이제 메르세데스-벤츠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어쨌든, 10년 사이에 독일 관계기관들은 주행안정시스템을 단 차들에서 단독사고 피해가 줄어들었음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몇몇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세계적 규모로 주행안정시스템 덕분에 생명을 구한 사람들의 수가 이제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몇몇 선진국에서는 이 기술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장 저렴한 새 차에도 설치하고 있다.

수많은 운전자들이 당연히 여기고 있는-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실감조차 하지 못한다-기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자동차 안전의 흐름을 바꾼 사고현장을 찾으러 스웨덴으로 갔다.

우리의 여정은 아르예플로그(Arjeplog) 부근의 얼음호수 한가운데에서 시작했다. 아르예플로그는 북극권 가까이에 있는 스웨덴의 작은 마을로, 겨울에는 거의 모든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혹한기 시험을 위해 캠프를 차리는 곳이다.

눈이 내리는 시기에는 매 월요일과 금요일에 엔지니어로 가득한 십여 개가 넘는 항공편이 작은 마을에 내리고 뜬다. 그들은 주중에 미래에 우리가 사게 될 차들이 미끄러운 상황에서,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그야말로 쳇바퀴 돌 듯 운전을 한다.
동네 몇 개를 합쳐 놓은 정도 크기의 버려진 얼음호수에서 기술시연을 마친 후, 우리는 베르너몬이 거의 30년 전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외딴 마을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1989년에 부르스트롬과 그의 아들은 베르너몬을 도우려 달려왔다

사고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아르예플로그에서 남서쪽으로 약 290km 떨어져 있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트럭 대열과 제설차가 발목을 잡은 탓에 우리는 얼어붙고 기복이 심한 일차로 길에서 여섯 시간을 보내야 했다. 노면은 아주 미끄러워서,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곧고 좁은 길에서 주행안정장치가 조심스럽게 우리를 지켜준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스트롬순드(Stromsund)에 도착했다. 그러나 눈과 얼음이 덮인 길과 지형은 마을 남북이 한결같아 보였다.

신이 도운 덕분에 우리는 3500명이 사는 이 작은 마을에서 그 옛날 베르너몬을 구출하러 왔던 견인업체를 찾았다. 지금은 새 사업주가 운영하고 있지만, 그들은 1989년 그날에 조금은 멋진 신형 메르세데스-벤츠를 견인하려 아버지와 함께 나섰던 젊은이 토미 부르스트롬(Tommy Bjurstrom)을 찾을 방법을 알고 있었다.

독일어, 스웨덴어, 영어 사이의 언어장벽에도, 부르스트롬은 어느 순간 왜 우리가 이곳에 왔으며 1989년에 찍은 사진을 뽑아 들고 젊은 토미와 그의 아버지, 견인트럭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눈은 빛났고 자신을 따라오라며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마을 남쪽으로 약 4km 거리의 특징 없는 직선도로를 향해 달렸다. 노면은 재포장된 지 오래된 상태였고 스칸디나비아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베르너몬과 부르스트롬이 원래 사고지점에서 서로 안아주고 있다

부르스트롬이 차를 세우고 창밖으로 팔을 흔들었다. 여전히 커다란 도랑이 있었지만, 큰 나무들은 길 가장자리에서 치워져 있었다. 1989년에 있었던 사고가 벌어진 곳에서 베르너몬의 차가 자칫 집과 부딪칠 수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스노자켓을 입은 채 어색하게 끌어안았다. 베르너몬은 부르스트롬이 정확한 지점을 찾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견인트럭 운전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그에게 사고 이후로 일어난 일들과 얼마나 많은 생명이 구조되었는지 설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베르너몬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마음속에 아주 큰 상처를 입었어요. 그것은 제가 발명한 기술이었는데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기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모든 차로 확대하는 과정은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베르너몬이 지금 하고 있는 일
35년 동안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일한 프랑크 베르너몬은 올해 말에 퇴직할 예정이다.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동료 엔지니어들과 더불어 앞으로 몇 년은 지나야 볼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개발되고 있는 자율주행기술은 그가 전자제어 주행안정장치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베르너몬은 몇몇 사람들이 운전자로부터 차의 통제권을 빼앗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한다고 한다. “운전자는 항상 그 자리에서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행안정장치가 있기 때문에 운전자가 알아차리지 않고도 여러분의 안전을 지키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겁니다.” 그의 이야기다. “기술이 없다면 우리는 오늘날만큼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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