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7호실:기구한 운명의 흰색 마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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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7호실:기구한 운명의 흰색 마티즈
  • 신지혜
  • 승인 2017.12.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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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차 신세도 서러운데 시체 운반용이라니!

풍채가 좋은 건 아니지만, 외양이 화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순결한 백색 마티즈는 자신의 운명이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두식과 태정의 일에 휘말려 엉뚱한 무엇을 트렁크에 싣게 될 줄이야!

두식은 오늘도 대리운전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표정과 행실이 그다지 건실해 보이지 않는 두식. 그가 향한 곳에서 그의 행동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밤새 운전을 한 뒤 그가 들어간 곳은 DVD방. 두식은 그곳의 사장이다. 두식은 그곳에서 기거하며 일상을 버티는 중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의 삶이 그렇게 고달픈 건 아니었을 터. 평범하지만 단란한 가정도 꾸렸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금 그는, 이혼을 했고 전재산을 다 털어 건물 한 층을 임대한 뒤 DVD방을 열었지만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다. 

 

월세는 밀리고 보증금은 까먹고 있으며 DVD방을 내놓은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게는 나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정에게 줄 월급도 밀린 상태. 태정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으니 두식의 삶이 답답할 만하다. 

태정은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DVD방에 나왔다. 하지만 손님은 거의 없고 아무리 둘러봐도 장사가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월급이 밀린 지 이미 오래, 사장은 그에 대해 미안한 기색도 없으며 가게는 안 나가고…. 무엇보다 태정은 말 못할 비밀을 안고 있다. 학자금 때문에 급전으로 빌렸던 사채업자 돈은 불어나기만 하는데, 탕감 받기 위해서 ‘물건’을 잠시 맡아 두기로 한 것. 

그런데 가게를 빨리 처분하기 위해서 잘 되는 것처럼 꾸며야 할 필요를 느낀 사장 두식이, 조선족 청년을 주간 아르바이트로 들이면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난다. 물건을 감추기 위해 7호실을 잠가야 하는 두식과 물건을 빼내기 위해 7호실을 열어야 하는 태정의 말 못할 분투기가 시작되다.

영화 <7호실>은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소재의 영화다. 관객들에게 쫄깃쫄깃한 긴장감과 짜릿한 스릴을 선사하기에 밀폐된 공간, 비밀, 이해관계가 상반된 두 캐릭터는 좋은 소재다. ‘7호실’을 둘러싸고 두식과 태정이 상반된 입장에서 벌이는 고군분투가 재미를 배가시킨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주변 캐릭터들의 에피소드가 현 사회의 일면을 블랙코미디로 보여주면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흰색 마티즈에게 눈을 돌려보자. 좋은 주인을 기다리던 마티즈는 무슨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포차가 되어버렸다. 두식과 만났을 때 외관은 멀쩡하지만 속내는 대포차였던 마티즈. 어쨌든 새 주인을 만나면서 그런대로 좀더 나은 삶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두식이 마티즈 트렁크에 넣은 건 조선족 아르바이트생의 사체다. 물론 살해가 아닌, 단순한 사고사이긴 하지만 두식은 그의 시체를 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시체는 7호실에서 마티즈 트렁크로 옮겨지고, 마티즈는 두식, 태정과 함께 시체를 은닉해야 하는 공범자 신세가 된다. 

이런 어이없는 운명이라니! 마티즈는 단란한 가족이 나들이를 떠나면서 자신을 타리라 상상했으리라.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순수한 젊은이가 자신을 몰리라 꿈꿨으리라. 그런 소시민들의 발이 되어 부지런히 성실하게 살아가리라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마티즈는 대포차였다가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니, 참 기구한 운명이다. 
영화는 한정된 공간, 상반된 행동을 해야 하는 두 사람에 집중하면서 몰입도를 높이고 부수적으로 사회의 이모저모를 블랙코미디로 승화시킨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마티즈는 이런 상황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존재다. 

두식과 태정으로 대변되는 이 사회의 소시민들,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 무언가에 막히고 좌절하는, 하지만 다시 일어서고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덕목을 잊지 않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우리 모두들. 그들과 함께 하는 차로서 마티즈는 딱 어울린다. 좋아 보인다. 

 

시네마 토커 신지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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