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벨라 D300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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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벨라 D300 SE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7.12.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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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로드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여주는 벨라. 다양한 매력을 뽐내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세그먼트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크게 보면 세단과 SUV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중 SUV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한번쯤 랜드로버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이 지금 또는 나중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흔히 말하는 그것. 위시리스트에서 자동차는 항상 주요한 목표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의 관심이란 결국 나의 위시리스트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나 확인하기 위한 과정. 이런 관심은 기존 모델의 페이스 리프트나 풀 체인지보다 틈새를 파고드는 새 모델일 때 더 커진다.

 

주행중 회전 질감이 부드럽고 안정적인 자세가 유지된다

그런데 틈새 모델은 그 관심도에 비해 의외로 성공하기 쉽지 않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기존 재료를 사용해 새 메뉴를 내놓는 셈인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실망이 크다면 관심도 그만큼 빨리 시들어버리고 만다. 그냥 다시 예전 목표로 돌아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늘 만나는 벨라는 레인지로버의 네 번째 신메뉴다. 예전에 레인지로버라고 하면 그냥 레인지로버였고, 그 이름만으로 최고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제는 설명이 필요하다. 가령 레인지로버 벨라는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사이에 위치하는 모델이라고. 그리고 덧붙이자면 벨라는 1969년 레인지로버의 프로토타입에 붙은 이름이었다.

프로토타입 벨라가 레인지로버 이름을 대신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을까. 적어도 오늘날 레인지로버의 유명세에 비춰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네 번째 레인지로버에 쓸 이름을 찾기 위해 더 낳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사실 벨라는 라틴어로 ‘숨기다’, ‘장막’ 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로 장막에 감춰진 비밀 프로젝트, 프로토타입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레인지로버의 막내, 이보크는 쿠페형 SUV라는 캐릭터가 분명했다. 틈새 모델로 기대했던 가격대보다 높았지만 거부하기 힘든 디자인으로 어필했다. 그에 반해 벨라는 성격이나 포지션이 또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랜드로버가 내세운 것이 브랜드 사상 최고의 온로드 성능을 지닌 레인지로버라는 것. 

 

앞모습과 일체감을 보여주는 LED 테일라이트가 세련미를 뽐낸다

아마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왠지 궁색하게 들린다. 적어도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훈장을 자랑스레 어깨에 매단 레인지로버가 강조할 문장으로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시대는 변했고, 찾아갈 오프로드도 얼마 없는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여기에 노림수가 있다. 어차피 라인업을 넓힌 마당에 그 안에서 원하는 타입을 고르라는 얘기다. 온로드 성격을 강조한다고 해서 오프로드 성능이 약하다는 메시지는 아니다. 

도강능력은 깊이 650mm에 달한다

최근 SUV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은 헤드램프를 점점 더 가늘게 만들고 싶은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벨라의 눈매도 가는 편으로 간결하고 샤프한 인상을 준다. 작아진 눈 속에 더 많은 기능을 담기 위해서는 더 높은 기술이 요구될 것이다. 랜드로버는 이를 위해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를 달았는데, 브랜드 최초다. 이와 함께 인테리어의 변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벨라는 향후 레인지로버 또는 랜드로버 전 모델의 디자인과 기술 방향성을 보여주는 모델로 의미가 있다. 그 옛날 프로토타입으로 기능했던 그 이름, 그 역할처럼.             

 

리트랙터블 도어 핸들은 달리기 시작하면 쓱 들어간다

매트릭스 LED는 각각의 LED 모듈을 개별 제어함으로써 최적의 빛 분포를 유지하는 기술이다. 이는 야간주행 시 하이빔을 켜도 상대차에 눈부심을 주지 않는다. 이와 함께 제공되는 어댑티브 헤드램프 시스템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방향에 따라 빛을 비춰준다. 앞모습과 일체감을 보여주는 LED 테일라이트 또한 어둠 속에서 정교하고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기본 LED보다 5배나 밝다는 매트릭스-레이저 LED 헤드램프는 D300 퍼스트 에디션에 기본 적용된다.   

앞뒤 램프를 기점으로 부드러운 라운드를 제외하면 어깨선이 높은 수평 기조의 당당한 라인은 전통적인 레인지로버의 헤리티지를 그대로 잇는다. 누가 봐도 첫눈에 레인지로버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디자인. 다만 떠있는 듯한 플로팅 루프와 면적이 좁아 보이는 승객석은 초창기와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디자인 언어다. 대자연을 누비는 호방함 대신 도시형 SUV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오너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차에 숨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대성을 추구하는 차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결국 익명성을 원하는 현대인의 특징을 반영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보크보다 214mm 길고, 레인지로버 스포츠보다 49mm 짧은 휠베이스는 상급 모델에 좀 더 다가가는 프로포션으로 한층 당당한 자세를 보여준다.  

 

듀얼 스크린 등 새로운 실내 디자인은 향후 레인지로버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시승차로 만난 D300 R-다이나믹 SE(1억1530만원)는 기본형 D240 S(9850만원)부터 최상위 D300 퍼스트 에디션(1억4340만원)에 이르는 7가지 트림 중 가운데 위치하는 모델이다. 한급 위 D300 HSE(1억2620만원)와는 1090만원 차이. V6 디젤 터보 3.0L 300마력 엔진과 자동 8단 변속기 조합, 4WD를 비롯한 주요 메커니즘은 모두 같다.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 즉, 오프로드에서의 저속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 빠져 있는 것은 SE와 HSE 마찬가지. 이 장치는 D300 퍼스트 에디션에만 달린다. HSE는 21인치 휠, SE는 20인치 휠이 기본인데, 시승차인 SE는 21인치 휠을 달고 나왔다. 이 경우 161만원을 추가해야 한다. 그밖에 외관에서의 차이는 없다. 주요 차이는 실내에서 드러나는데, HSE의 가죽 시트에 비해 SE는 가죽+스웨이드 시트, HSE가 앞좌석 파워 시트를 20방향으로 조절 가능한데 반해 SE는 10방향 등이다.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장비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빠진다는 것.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도 HSE에만 달린다.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 바디는 벨라의 온로드 중심 성격을 반영한다. 전체 82% 이상에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는데, 특히 차체 측면을 6000 시리즈 이상의 고강도 알루미늄으로 구성했다고. 그밖에 마그네슘 크로스빔, 탄소 복합 소재 등 경량화와 함께 강성을 보강하면서 안전에 대비했다는 설명이다. D300 SE의 공차중량은 2160kg. 달리기 시작하면 우선 가뿐한 가속력과 더불어 가볍다는 느낌을 주는데, 빠르게 안정감을 찾는 모습이다. 덩치를 생각하면 확실히 무게중심이 낮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탄력적인 에어 서스펜션이다. 21인치 타이어 또한 든든한 접지력으로 안정감을 더해준다. 

 

뒷좌석은 쾌적하고 적당한 공간이다

D300의 V6 3.0L 디젤 터보 300마력 엔진은 파워도 모자람이 없지만 71.4kg·m에 달하는 위력적인 토크가 1500rpm부터 발휘된다. 그만큼 출발 가속이 시원하게 이루어지고 중속에서 고속으로의 연결이 자연스럽다. 매끄러운 변속 질감이 순조로운 가속을 돕는다. 무엇보다 회전 질감이 부드럽고 안정적인 자세가 유지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론 조용하고 편안한 승차감이 동반된다. 온로드 성능을 강조한 까닭을 수긍할 수 있다. 에어 서스펜션은 버튼으로 차체를 낮출 수도 있지만 시속 105km 이상으로 달리면 자동으로 10mm 낮아진다. 공기저항계수 0.32Cd를 바탕으로 0→시속 100km 가속 6.5초의 실력을 발휘한다.    

단지 조용하고 매끄러우며 빠른 달리기만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정교한 스티어링과 정확한 핸들링이 온로드에서 날렵한 재규어의 DNA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런 유전자를 이식한 재규어의 SUV, F-페이스의 느낌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벨라는 F-페이스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벨라의 주행 감각은 확실히 기존 레인지로버보다 F-페이스에 가깝다. 몰아붙이면 그에 걸맞게 억세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품어버린다. 좋게 보면 세련된 감각이지만 조금 거친 야성을 원할 때의 감성은 아니다. 물론 다이내믹 모드를 누르면 순간적으로 그 감성에 살짝 다다르기는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벨라의 선택지에 F-페이스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선택지가 넓어지는 경쟁의 경우, 시선이 내부로 향한다면 그리 나쁠 것은 없다. 항상 의도대로 굴러가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최대 1731L의 적재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이번에는 오프로드를 찾아 나섰다. 운전하는 내내 새롭게 적응해야했던 듀얼 스크린 아래쪽을 터치해 전지형 반응 시스템을 찾는다. 지형을 살펴 잔디/자갈/눈길 모드를 선택한다. 다이얼을 이용해 드라이브 모드 전환을 할 때는 조금 예민해서 두 칸이 넘어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에어 서스펜션은 이번에도 제몫을 한다. 버튼을 위로 당기면 46mm 올라가는데 이때 최저지상고는 251mm로 동급 최고라고 한다. 하체를 높이고 울퉁불퉁한 지면을 가뿐하게 내달린다. 속도를 높여도 출렁거림은 크지 않다. 액티브 리어 로킹 디퍼렌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차체 움직임과 더불어 계기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속도가 시속 50-80km 영역에 들어서면 높이가 저절로 18mm 낮아지는데 그 정도 속도라면 장애물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더 안정적이고 편안해진다. 얕은 물웅덩이도 거침없이 돌파한다. 실제 도강능력은 깊이 650mm까지라고 하니 상당하다.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HDC(Hill Descent Control) 버튼을 누르고 페달에서 발을 떼었다. 오프로드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하는데, 천천히 미끄러지지 않고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V6 3.0L 디젤 터보 300마력 엔진은 최대토크 71.4kg·m를 낸다

쾌적하고 여유 있는 뒷좌석은 40:20:40으로 접어 쓸 수 있고 넉넉한 트렁크와 더불어 최대 1731L의 적재 공간이 나온다. 앞뒤로 쓰임새 좋은 수납공간 등 SUV로서의 실용성은 나무랄 데 없다. 매끈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리트랙터블 도어 핸들, 미래적인 인테리어 등 벨라의 차별화된 가치는 분명 두드러져 보인다. 근데 만약 구매를 고려했을 때 시승차인 SE를 놓고 보면 상위 트림 HSE와의 장비 차이에 1천만원이 넘는다는 데 고민이 깊어진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만 포기하면 1천만원을 아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모아진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고민은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HSE 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기능은 오직 D300 퍼스트 에디션에만 달린다. 1억원이 넘는 찻값을 생각하면 이건 좀 납득하기 어렵다. 여러모로 매력적인 벨라이지만 옵션 구성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 까닭이다. 

D300 R-Dynamic SE
가격 1억1530만원
크기(길이×너비×높이) 4803×1930×1665mm
휠베이스 2874mm
엔진 V6 2993cc 디젤 터보
최고출력 300마력/4000rpm
최대토크 71.4kg·m/1500-1750rpm
연비(복합) 12.8km/L
변속기 자동 8단
0-시속 100km 가속 6.5초
서스펜션(앞/뒤) 더블 위시본/인테그럴 링크(에어)
브레이크(앞/뒤) 모두 V 디스크
타이어(앞/뒤) 모두 255/50 R20 시승차= 265/45 R21(옵션, 16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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