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하가 만난 사람] 금호클래식카 백중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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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하가 만난 사람] 금호클래식카 백중길 대표
  • 황순하 편집위원
  • 승인 2017.11.06 17: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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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화 속 오래된 자동차를 볼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클래식카의 대부 덕분이다. 자동차박물관을 꿈꾸고 있는 금호클래식카 백중길 대표와 올드카, 그리고 자동차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뚝심과 열정. 사람이 태어나 일생 동안 무엇이라도 하나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충분치는 않아도 꼭 필요한 요소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태동기였던 196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자동차 수집에 몰두해 온 백중길 대표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여주로 향하는 길은 단풍으로 물들었다. ‘금호클래식카’ 간판이 보였고, 바로 우회전해 언덕을 오르니 오랜 세월을 견뎌온 자동차들이 가득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 자동차박물관을 꿈꾸며 자동차를 수집했고, 우연히 외부에 올드카를 대여했는데, 또 이게 주요사업이 되기도 했다. 국내 영화와 드라마 제작의 급성장 덕분이다. 

백중길 대표의 평생 자동차사업이 우리나라 영상산업의 기초가 된 걸 보면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영화 <밀정>을 비롯해 이젠 전설이 된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야인시대> 등의 드라마에 나왔던 자동차들이 모두 백중길 대표의 수집품들이었다. 강단 있는 성격이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하는 모습 또한 변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동차도 흔치 않았던 시절, 어떻게 자동차를 수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선친께서 해방 이후 택시사업을 했는데,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핸들을 돌리며 놀 만큼 자동차와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정비를 위한 부품이 필요해 월남에 기술자로 가서 번 돈을 모아 신당동에서 자동차부품 수입과 재생사업을 시작했고요. 그러다 1960년대 들어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생산되기 시작한 새나라, 코로나, 코티나 등 국산 자동차들이 하나 둘 도로 위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누군가는 모아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들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자동차역사의 산 증인 아닙니까? 사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죠.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시장이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웃음). 지금 600대 정도 모았습니다” 

백 대표의 컬렉션을 둘러보니 놀랍게도 외국에서도 보기 힘든 70~80년 전 다른 나라 모델들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고. 자동차 수입이 엄격히 금지되던 시대였는데 말이다.  

”막상 수집을 시작하고 보니, 당시 국산차 품질이 좋지 않아 정비를 해도 쉽게 망가졌습니다. 내구성이 형편없던 거죠. 그래서 방향을 틀어 대기업 회장이나 외교관, 연예인들이 개인적으로 수입해 타고 다니던 수입차를 모으기 시작했죠. 저 외에는 수집하는 사람도 없다보니 알음알음 소문이 났죠. 정비를 해야 하니 부품사업도 같이 할 수밖에 없었고요, 또 그들이 차를 팔 때가 되면 제가 구입하는 식이었죠. 미국까지 가서 구입한 차도 있습니다. 개인들이 국내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채 들여오다가 세관에 걸려 압류된 차들도 있다는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가 손에 넣은 것들도 꽤 됩니다. 주한미군들 차도 많이 샀고요.” 

 

백 대표가 열정적으로 풀어 놓는 구매 스토리는 행운과 우연, 그리고 끈기가 어우러진 한편의 드라마였다. 

“차를 판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면, 먼지구덩이 속에 차를 처박아 두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팔지 않는다고 하거나 가격을 확 올려요. 자동차에 ‘자’자도 모르던 사람들이 제가 수집하는 걸 보고 자기도 한다면서, 수집광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았고요(웃음). 물론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하죠. 차 한 대 사는데 몇 년씩 걸린 경우도 많았어요.” 

힘들게 모은 자동차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모델이 있을까? 백 대표가 잠시 뜸을 들인다. 

“흠…, 오래될수록 애착이 가긴 하는데, 제일 오래된 차는 1925년식 영국 스위프트입니다. 그래도 하나만 고르라면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기틀을 닦은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탔었던 1968년식 캐딜락이에요. 이승만 대통령의 첫 리무진이었던 1960년식 캐딜락도 참 마음에 듭니다.”  

 

꼭 손에 넣고 싶은 차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1962년 닛산 블루버드를 들여와 조립생산을 개시했던 신진의 새나라죠. 당시 드럼통을 두드려 만든 각진 시발차 같은 자동차만 보다가, 처음으로 공장에서 제대로 만든 유선형 디자인에 푹 빠졌습니다. 많은 모델을 모았는데, 또 새로운 차를 찾았는데, 이것만은 없더군요. 그런데 지방의 한 자동차 정비학원에서 교육용으로 철판과 부품을 다 들어낸, 그러니까 달랑 섀시 상태의 한 대가 나타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구매를 망설이는 와중에 사라졌어요. 얼마 전, 일본 클래식카 페스티발에서 한 대 발견했어요. 오른쪽 핸들이지만 꼭 구입해서 왼쪽 핸들로 복원할 겁니다. 우리나라 자동차역사에서 중요한 차니까요.”

교육과 전시를 목적으로 수집하다가 어떤 연유로 계획에도 없던 자동차소품 대여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1981년일 겁니다. 홍콩영화 촬영이 한국에서 있었어요. 차를 쓸 수 있냐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고, 그냥 도와주는 마음으로 몇 대 대여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KBS에서 삼일절 기념프로를 만들면서 그 당시 차들이 꼭 필요한데 이곳 외에는 빌릴 곳이 없다고 하면서 여러 번 부탁을 해요. 어쩔 수 없이 또 사용하게 해주었는데, 이후 여기저기서 소문 듣고 오더군요.” 

그래도 낡을 대로 낡아 제대로 운행하기도 힘든 차들을 사고위험이 높은 촬영현장에 빌려주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터. 더욱이 값을 따지기 어려운 귀한 차를 대여해주면서 걱정이 산더미였을 텐데,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을까? 

“어차피 직원들 월급도 주어야 했고, 빠듯한 살림에 자동차를 계속 구입하기 위해 자금도 필요했으니까요. 고맙다고 빌려가는 걸 보면서 보람도 있었지요. 차에 문제가 생기면 보상받기로 하고 대여하니까 관리문제는 크게 없었어요. 단지 차들의 나이가 많다 보니 대여 전날 정비를 완료해서 내보내도 제대로 작동 안 되는 경우가 있어 현장에 정비팀이 항상 대기해야 했죠. 워낙 구식 모델들이라 익숙하지 않아 연기자들이 고장을 내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도 나이가 지긋한 감독들은 이런 오래된 차들을 빌려줘서 고맙다며 이해를 많이 하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젊은 감독들은 오래된 차들이 마음에 들 리 없죠. 고장 때문에 촬영도 지연되니까요. 사실 대여료를 받아봐야 오래된 차들이기에 관리비도 안 나오고 복원비용도 생각 외로 많이 듭니다. 작년부터 차고지에 큰 가건물 두 개를 지어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스튜디오로 대여를 해줍니다. 평소에는 자동차 보관장소로 쓰고요. 사실 가건물 안을 층층구조로 만들어 야외에서 눈비 맞고 있는 모델들까지 보관해야 하는데….” 백 대표의 말꼬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백 대표의 남은 꿈은 이 차들을 제대로 보관할 자동차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은 600여 대 중 그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밑에 있는 건 200대 정도. 나머지는 그냥 외부에 휑하니 노출된 상태다. 이곳도 좁아 100여 대는 양수리에 있고 50여 대는 근처 나대지에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2010년 수해로 양수리에 있던 100여 대가 물에 잠겨 반 정도 폐차해야 했던 쓰라린 경험도 있다. 관리여력이 모자라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백 대표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죠. 어떻게 모은 차들인데. 차를 깨끗하게 정비해도 밖에 놔두고 1~2년만 지나면 또 원상태가 돼요. 안타깝지만 차 하나 정비하고 복원하는데 2천만~3천만 원이 듭니다. 지금까지 판매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많이 모으고, 또 제대로 복원해서 자동차박물관 하나 제대로 운영해볼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게 규모가 커지니 개인 역량으로는 역부족이더군요. 그동안 여러 지자체나 대기업들과 협조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냥 흐지부지되는 것 같네요. 일단 모든 차들은 한 군데 모을 수 있는 넓은 장소가 필요합니다. 사실 여주시에서 지역 명물로 자동차박물관 설립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겠다고 해서 이곳으로 옮겼는데, 몇 개월 뒤 선거에서 지자체장이 바뀌니까 없었던 이야기가 된 것 같고…. 결국 자금 문제입니다. 1993년에 대우그룹에서 박물관을 지어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제안이 와 컬렉션 전체를 넘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직원들 고용승계도 문제였지만 촬영소품 대여사업이 문제가 되어 결렬되었어요. 대우측은 박물관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하는 것이니 대여사업은 안된다고 하더군요. 고민 끝에 안하기로 했죠. 그쪽에 넘기면 저야 개인적으로 돈도 벌고 편하게 살았겠지만, 당시 우리회사 외에는 올드카를 모아 놓은 곳이 없었어요. 당장 촬영현장에 문제가 생기니 신뢰를 쌓아온 사람들에게 못할 짓이라 생각해 계속 제가 맡아 지지고 볶기로 했죠. 인생이 원래 지지고 볶아야 재미있지 않습니까(웃음).” 

 

자동차생산 세계 5위라고 그렇게 자랑하고 떠들어대면서 한국에는 왜 번듯한 자동차박물관이 하나 없을까? 자동차뿐만 아니라 관련 생활역사 유물까지 방대하게 갖춘 디트로이트의 포드 뮤지엄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토요타 등 대다수 글로벌 브랜드들은 자사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소위 뼈대 있는 집안임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이런 당연한 일들이 자동차생산 역사 반세기를 넘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 아닐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자동차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브랜드 이미지와 역사, 사회 기여도 같은 감성적 요인들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하드웨어와 단기 성과에만 목을 맨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 자동차 수집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돈벌이를 목적으로 했다면 이렇게 많이 모으지 못했겠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팔지 않고 모으기만 했으니까요. 상태가 좋지 않은 차들이 대부분이라 복원에도 비용이 많이 들어요. 무슨 원대한 꿈 때문은 아닙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들, 우리나라를 돌아다닌 차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자동차 생산과 판매에만 힘쓸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교육장소가 필요하고, 어른들도 과거 함께 했던 자동차를 보면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소중한 역사이니까요. 제 자동차 수집에는, 우리나라 자동차역사에 의미가 있어야 하며, 또 자력으로 운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차는 움직여야 가치가 있고 애들이 타고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승용차, 트럭, 버스, 특장차 다 모으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동차박물관을 꼭 만들 겁니다.”  

가장이 한 가지에 꽂혀 앞만 보고 달릴 때 제일 피곤하고 괴로운 건 옆에서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가족이다. 

”사실입니다. 가족이 많이 힘들었죠. 장마철 집에 물이 새도 그걸 고칠 돈이 있으면 차를 샀으니까요. 그때는 원망도 많이 하더니 그래도 이제는 이해해주고 많이 도와줍니다. 셋째 딸이 사위와 함께 가업으로 이어주고 있어 든든합니다. 손주들도 할아버지가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면 최고라고 으쓱해 합니다(웃음). 보람을 느끼죠.”

 

수집품 하나마다 애정과 사연이 깃들어있다

백 대표의 수집품 중에는 필자의 대학시절 인생 첫차였던 포니2와 사회에 나와 처음 샀던 프라이드도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오래된 차체를 쓰다듬으며 그 당시의 흥분과 설렘, 얼굴에 로션은 바르지 않아도 차는 매일 쓸고 닦고 왁스칠하며 아꼈던 즐거움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이 차를 타고 다니며 지금 차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그 시절 향수에 젖고 싶었다. 사실 우리나라 도로에서는 오래된 모델을 정성스레 손질해서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드물다. 꼭 자동차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집도 그렇고 우리는 너무 새롭고 편한 것만 찾는 경향이 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의 자동차문화 수준이 아직 충분히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오래된 국산차를 몰고 나가면 길에서 손가락질 많이 받아요. 낡아빠진 차를 타고 다니니 좀스러워 보이고 빨리 못 가니 길 막힌다고 그러겠죠.” 

먹고 살기에 바쁘기 때문일까? 아직 우리는 메인스트림을 벗어난 것들에 대한 관용과 인정이 많이 부족하다. 혹시 올드카 운행을 막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지는 않을까? 백 대표의 말이 갑자기 빨라졌다. 

“일단 자동차업체에서 단종 후 몇 년 지나면 부품공급을 하지 않아요. 중고부품을 비싸게 사거나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옛날 국산차들은 지금과는 달리 철판도 약하고 도색도 부실해요. 사고라도 나면 정비하기가 정말 어렵죠. 세컨드카로 보유하고 싶어도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요. 결국 자금과 장소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어렵죠. 올드카별로 동호회가 있기는 한데 그룹 라이딩 같은 활동은 잘 안 하고 서로 매매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300SL 등 진귀한 외제차도 많다

해마다 여름이면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 영국의 굿우드 페스티벌 같은 클래식카 행사들이 열린다. 비싼 차들의 매매를 위한 비즈니스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또 차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오래된 모델들을 서로 둘러보고 타보는 축제의 한마당이기도 하다. 또 수십 억 원씩 하는 클래식카뿐 아니라 오래된 저가의 보통차(ordinary car)들의 축제도 지역별로 흔하게 열린다. 각자 튜닝하거나 새롭게 꾸민 차들을 서로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도 예쁜 차들을 타보고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 자동차를 친구처럼 훨씬 친근하게 느낄 것이다. 이런 행사들을 통해 올드카들이 시장의 한 세그멘트로 정착되면 정비, 관리, 매매, 운송, 튜닝 등 다양한 부대사업들이 발전하면서 일자리도 생기고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페스티벌들이 그 나라 자동차문화 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축제들을 볼 수 있을까? 

“글쎄요. 요즘은 자동차 수집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소규모 모임들도 많이 하고 있더군요. 올드카 문화가 올라오고 있기는 해요. 그래도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우선 수십 년씩 된 차들을 운행하기 위해 인증을 신청하면 신차 수준의 배기가스와 안전기준을 적용합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이야기죠. 그냥 세워 놓을 수밖에 없어요. 수입도 안 됩니다. 정부 입장도 이해하지만, 도로에서 일반 신차들과 같이 다니겠다는 게 아니거든요. 제한된 지역과 거리를 달리기 위한 특별허가면 됩니다. 선진국에서 페스티벌 할 때 그 주위 몇 백 미터 정도의 도로를 다같이 천천히 달리면서 분위기를 띄우죠. 다들 옆에서 환호를 해요. 그 정도면 되는 겁니다. 사실 오래된 차들이라 사고위험도 많고 멀리 가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올드카에 대해서 생산 당시의 기준을 적용하거나 아예 면제를 해줍니다. 오래된 차를 정비하면서 내외부를 바꿔 보려고 해도 튜닝규제가 엄격해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튜닝산업을 활성화한다고 했는데, 된 건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정부가 관심을 가지니 더 하기 어려워졌다고들 합니다. 정부가 공인한 인증업체가 있어서 완화된 기준으로 심사해서 인증을 주고 사후 관리를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네요. 자동차문화의 기초가 되는 동호회 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페스티벌 같은 걸 정부가 나서서 몇 번만 해 주면 스폰서도 붙고 불이 붙을 겁니다.”

자동차 수집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니 이 기회에 자체 복원팀을 활성화해서 사람들이 가져오는 올드카를 복원해 주면 어떨까. 그들도 좋아할 거고, 신규 사업으로 자금융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백 대표가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수십 년 된 차를 복원하려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판금을 해야 하고 도면도 없으니 눈대중으로 부품도 깎아야 하는데, 숙련된 기술자들만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 복원팀은 자체 물량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걸요. 나이들도 많아서 그런 걸 시작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어요. 젊은 사람들은 힘들고 전망 없다고 하려 하질 않으니, 이제 저 사람들 은퇴하고 나면 우리나라 자동차 복원사업은 끝이죠.”

 

화랑들이 그림을 사고팔면서 시장을 활성화시키듯 해외에서는 올드카들이 비싸게 팔리고 있으니 백 대표도 수집품을 잘 손질해서 판매하면 어떨까? 올드카 수집으로 큰 돈 번다는 소문이 돌면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어 시장도 커질지 모른다. 브뤼셀의 국제클래식자동차연맹(FIVA)에 등록해 인증을 받아 놓으면 해외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백 대표가 귀한 외제차 수집품들을 인증받아 고가에 수출한다면 우리나라 올드카 수집문화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백 대표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팔기 위해 모은 게 아니니 그럴 생각 없습니다. 어차피 살 사람도 없으니까요. 운행허가를 낼 수 없는데 그냥 세워 두기 위해 올드카를 사는 사람은 없거든요. FIVA 인증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요. 수년 전에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창업주가 사업 초기 타고 다녔던 1933년식 영국 나쉬와 1935년식 미국 포드를 그룹 연수원에 두기 위해 특별히 부탁을 한 일이 있었죠. 의미가 있는 일이니 잘 정비해서 팔았지만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래도 수집품 중 국산 4개 차종(1937년산 소방차, 기아 경3륜 트럭, 신진 퍼블리카, 현대 포니1)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다행이고 보람을 느낍니다.” 

 

아직 자동차박물관까지 못 갔으니 목표를 이룬 건 아니지만,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갖은 고생을 겪으며 혼자 힘으로 이만큼 이루어 낸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감회가 어떠할까?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면 똑같은 길을 걷고 싶을까? 지금 자동차 수집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는 어떤 얘기를 해 주고 싶을까? 

“다시 한다면 못 하죠! 그저 자동차를 좋아하니 몇 대 모아 놓자고 시작한 건데 박물관까지 하려 하니 한 개인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동차는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넓은 장소가 필요하고, 구입 시 값도 비싸지만 유지보수를 늘 해야 해서 자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그동안 편하게 살지 왜 바보처럼 낡은 차들만 힘들게 모으고 있냐고 비웃고 놀리던 사람들이 요새는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냈다고 칭찬하고 격려도 해 줍니다. 이렇게 미디어와 인터뷰도 하고요. 그래서 바르게 잘 살아 왔구나 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여유가 있다면 취미로 자동차를 모으는 건 얼마든지 찬성하지만,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하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그리고 너무 비싸고 유명한 자동차만 고집할 필요도 없어요. 가족의 추억이 들어 있고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함께 한 차라면 그게 그 사람에게는 명차이고 세월을 이겨 낸 클래식카가 되는 거죠.” 

옛말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는데(不狂不及), 아직 최종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자동차 수집에 미쳐 일생을 바친 백 대표의 작지 않은 체구가 더욱 커 보였다. 

 

황순하/ 본지 편집위원. 자동차 칼럼니스트.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미시건대 MBA 졸업.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GE코리아 근무. 
前 UL 한국담당 사장 및 글로벌 오토모티브 산업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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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 2018-06-29 16:05:20
안녕하세요.
88년식 소나타를 타고 있는데 폐차를 시키기엔 좀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골동품 자동차 수집가를 검색 하다가 예까지 와서 기사 잘 읽었습니다.
기사의 주인공 백대표님과 연락이 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의견을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