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베이비 드라이버 : 베이비의 스바루 WRX
상태바
[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베이비 드라이버 : 베이비의 스바루 WRX
  • 신지혜
  • 승인 2017.10.31 1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에 맞춰 핸들과 대시보드를 두드리는 청년. 그의 입은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bellbottoms’ 에 맞춰 움직이고 자동차의 와이퍼는 그의 귀에 들리는 리듬을 타고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맞춘다.

곧바로 튀어나온 세 명의 갱들이 그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질주하기 시작한다. 빨간색 스바루 WRX. 엄청난 수의 경찰차를 따돌리며 곡예에 가까운 드라이빙을 펼친다. 그 와중에도 청년은 귀에서 이어폰을 뽑지 않고 표정엔 변화가 없다. 마치 음악을 들으며 스바루와 춤을 추는 듯 재빠르고 민첩하게, 과감하고 대범하게 자동차를 몬다. 

공중에 뜬 헬기가 드디어 빨간색 스바루를 포착한 순간 스바루의 양 옆으로 빨간색 차량 두 대가 호위하듯 감싼다. 그렇게 몇 번 도로를 바꾸고 터널을 지나고 나니 더 이상 빨간색 스바루는 보이지 않는다.

 

청년의 이름은 베이비. ‘아기’ 할 때 B.A.B.Y, 베이비. 어릴 때 차 사고로 부모를 잃고 트라우마를 입은 베이비는 이명 때문에 언제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베이비는 언제나 아이팟에 잔뜩 저장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몬다. 천재적인 운전실력을 가진 베이비는 늘 남의 차를 슬쩍 몰고 거리를 폭주하는 소년이었고 그러다 지금의 ‘닥터’를 만나 범죄자들과 돈을 실어 나르는 ‘드라이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제 딱 한 번, 닥터의 드라이버가 되면 빚은 탕감된다. 늘 해오던 대로 그렇게 베이비는 자동차를 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닥터는 베이비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다. 데보라와 사랑에 빠져버린 베이비는 닥터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닥터의 드라이버가 되지만 새로 합류한 갱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돌발적인 상황은 모두를 위험 속으로 밀어 넣는다.

팽팽하다. 화끈하다. 스피디하고 리드미컬하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깔려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작정하고 이 영화를 만든 듯하다. 음악과 자동차와 드라이버와 상황이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다니. 영화를 보고 나면 한 편의 긴 뮤직 비디오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하긴, 에드가 라이트는 사운드 트랙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감독으로 손꼽힐 정도로 음악과 영상의 균형과 어울림에 신경쓰는 사람이니 말이다. 

베이비의 차는 엄밀히 따지면 한 대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으로 베이비의 차는 닥터의 플랜에 속한 모든 차량을 포함해서 상황에 따라 도로에 있는 모든 차들이다. 타고난 운전실력은 ‘발이 페달에 닿을 때부터’ 운전을 했다는 말처럼 천재적으로 발전했고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도로망과 함께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덧붙여 언제나 상황에 따라 선곡되는 베이비의 아이팟 속 노래들은 닥터의 플랜을 깔끔하게 마스터할 수 있도록 돕는 박자와 가사를 지녔다. 또 언제나 베이비의 귀를 감싸며 그의 이명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면서 베이비가 자동차와 호흡과 박자를 맞춰 잘 짜여진 안무대로 춤을 출 수 있도록 해 준다.

도로의 모든 차가 베이비의 차가 될 수 있기에 이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에는 자동차들의 비중이 꽤 높다. 도주하면서 수시로 갈아타는 차량들은 닥터의 계획대로 놓여진 것도 있지만 상황이 절박하고 위태해지면서 계획되지 않은 차량들, 그러니까 닥터의 계획이나 예상과 무관한 일반 시민의 차량들이 베이비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손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각종 차량들이 수시로 바뀌면서 이 또한 음악과 함께 영상에 리듬감을 불어 넣는다.

오프닝 씬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감탄을 자아내던 스바루 WRX를 비롯해 1954년형 캐딜락 엘도라도, 벤츠 S550 등 베이비와 닥터, 갱들의 손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들을 비롯해 이 영화를 위해 150대 이상의 차량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규모면에서도 대단하다. 유머감각이 있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이 차량들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차량목록을 참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 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는 차량은 맨 처음 베이비와 함께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빨간색 스바루 WRX임에 틀림없다. 그처럼 강렬한 오프닝 씬을 함께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장 긴 시간 베이비와 함께 춤을 추는 차이기 때문이리라. 

시네마 토커 신지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