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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토니의 폭스바겐 폴로
2017년 10월 03일 (화) 17:40:00 신지혜 c2@iautocar.co.kr
   
 

토니는 평범한 사람이다. 두 번의 어설픈 연애를 거쳐, 마거릿이라는 이름의 장점 많고 사랑했던, 지금은 이혼했지만 여전히 좋은 친구처럼 지내는 아내. 출산을 앞두고 있어 조금은 예민해진 딸, 적당한 집과 자동차.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딱히 비관적이거나 큰 사고 없이 잘 지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렇게 생의 끝까지 간다면 꽤 평탄하고 평범하게 잘 살아온 셈일 것이다. 


토니는 중고 카메라를 판매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서 작은 가게 문을 열고 가끔씩 진열된 엔틱 카메라에 시선이 끌려 들어오는 손님들을 상대한다. 굳이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 애쓰는 것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카메라와 함께 있어왔고 자연스럽게 상점까지 내게 된 것이리라. 


카메라는 일종의 기록을 위한 장치가 아닌가.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 지금 이 순간의 행복, 지금 이 순간의 풍광을 기록하기 위한 장치. 우리의 기억은 지난 시간을 변형시키고 왜곡하고 빛을 바라게 하며 편집하지만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그 당시의 대상을 그 당시의 무언가를 거의 그대로 남겨 놓는다. 어쩌면 토니가 카메라를 판매한다는 것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인 기억과 기록에 관한 모티브이다. 


토니에게 연락이 온다. 사라 포드가 세상을 뜨면서 그에게 돈과 편지와 유품을 남겼다는 것이다. 사라 포드.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름. 그녀는 누구인데 나에게 그런 것을 남겼을까. 그리고 토니는 기억해 낸다. 젊은 시절, 매력적인 그녀 베로니카, 그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속내를 지녔던 베로니카, 그에게 무엇 하나 명확한 말을 해 준 적이 없는 베로니카.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묵었던 일주일. 그 일주일이라는 단면에 스치듯 기록된 그녀의 어머니 사라 포드. 


노른자가 터진 달걀이 담긴 프라이팬을 싱크대로 던져 넣던 그녀, 그 뜨거운 팬이 물에 닿아 치익 소리를 내던 아침의 풍경, 이층에서 내려다보던 토니에게 크게 팔을 흔들며 인사하던 그녀, 토니가 그 집을 떠나오던 날 허리께에서 손을 흔들던 그녀. 그녀가 바로 사라 포드였다. 


그래도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왜 베로니카의 어머니는 그에게 그것들을 남겼을까. 그렇게 해서 토니는 아드리안과 함께 했던 그 시절, 베로니카에게 빠져있던 그 시절, 그녀의 집에 묵었던 일주일, 그 일주일에 포함되어 있는 기억 속의 사라 포드와 함께 많은 기억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기억 - 아드리안과 베로니카가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와 그 편지에 대한 토니 자신의 답장과 이후 들려온 아드리안의 자살 소식 등이 영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드디어 그는 결심한다. 베로니카와 만나야겠다고. 그리고 드디어 토니는 지난 시절의 기억과 실제의 편차와 치졸하고 치사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게 되면서 회한의 감정을 느낀다.


토니는 폭스바겐 폴로를 탄다. 그에게 적당하고 좋은 차이다. 스스로는 자신과 친구들이 꽤 쿨하고 멋지고 똑똑한 학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치기어린 아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는 아드리안과 베로니카에게 꽤 쿨하고 세련된 답장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저주와 분노로 뒤덮인 편지를 보냈을 뿐. 지금도 딸을 출산교실에 데려가고 꽤 쿨하고 편견 없는 아버지라 자부하지만 딸이 출산교실에 들어가기 직전 아빠에게 당부하는 말로 미루어 보면 그는 여전히, 아직도 평범한 필부인 것을.

 

   
 

그런 그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과시나 위축됨도 없이 몰고 다니기에 폴로는 꽤 괜찮아 보인다. 어쩌면 토니 자신이 느끼는 자신보다 그의 차 폴로가 받쳐주는 그의 이미지가 더 건실하고 평범하며 괜찮아 보인다. 올드해 보이지도 않고 괜히 젊은 체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가부장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나이나 행동에 비해 지나치게 나가는 것 같지도 않고. 많은 시간과 기억을 망각으로 덮어버린 지금의 토니를 평범하고 평온하게 감싸주고 채워주는 폭스바겐 폴로인 것이다. 


토니는 베로니카 아버지의 차를 떠올린다. 험버 슈퍼 스나이프. 이름부터가 도무지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마초적이고 과장되고 불편했던 포드 씨와 그의 차를 떠올려보면 토니의 폴로는 얼마나 산뜻하고 깔끔한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해서 영화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책과 영화에 등장하는 폭스바겐 폴로는 토니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네마 토커 신지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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