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기억, 재규어 XJ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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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기억, 재규어 XJ220
  • 알렉스 로빈스(Alex Robbins)
  • 승인 2017.10.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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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화제를 낳은 XJ220 슈퍼카는 재규어의 절정을 장식한 위업이었다. 동시에 그 목에 걸린 맷돌이기도 했다. 25년 전 알렉스 로빈스(Alex Robbins)가 이 차가 위대한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지를 판가름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돈 로가 내게 거듭 충고했다. 그는 내가 곧 몰게 될 재규어 XJ220의 조절장치를 일일이 설명했다. 사실 그렇게 소심하게 군다고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대형 재규어는 최고출력 557마력에 뒷바퀴굴림이고 운전보조장치가 전혀 없다. 심지어 파워 스티어링마저 갖추지 않았다. 말을 바꿔, 재규어의 최신 비밀작품 XE SV 프로젝트 8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차를 제법 몬다고 자부하지만 잘난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내가 존 로의 위치에 있더라도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재규어는 XJ220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그뒤 지금까지 돈 로는 영국의, 아니 전세계에서 XJ220의 최고권위자로 군림하고 있다. 로와 그의 아들 저스틴은 그 사업을 일일이 챙겼다. 그에 발맞춰 재규어는 고객들을 그쪽으로 안내했다. 덕분에 영국 스태퍼드셔에 있는 로&저스틴의 업체는 사실상 공식 XJ220 서비스센터로 탈바꿈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 작업장에는 줄잡아 26대의 XJ220이 버티고 있었다.

 

아울러 우리 방문중 그 자리에 재규어 전직 엔지니어링 총책 짐 랜들이 나왔다. 그의 휘하에서 XJ220이 태어났다. 1987년 크리스마스에 랜들은 집에서 중대한 구상을 했다. 톰 워킨쇼 레이싱이 만든 V12 XJR-8이 월드 스포츠-프로토타입 챔피언십을 휩쓴 뒤였다. 랜들은 재규어가 독자적인 로드 레이싱카를 개발할 방안을 찾았다.

“당대 최고의 다운포스를 자랑했던 워킨쇼 머신만큼 지상고를 낮출 수 있어야 했다. 그것도 버튼 하나로 조절하는 방안을 찾았다.” 랜들의 말.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날 즈음 판지로 만든 모델이 탄생했다. 미드십 벤튜리 바닥의 4분의 1 모형이 나왔다.”

그 차를 개발하는 데는 200만파운드(약 29억원)남짓 들어갈 전망이었다. 재규어가 그런 돈을 내놓을 리 없기에 랜들은 공짜로 그 일을 해내기로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브리티시 레일랜드 부품을 이용해 XJ220의 실내를 꾸몄다

“나는 그 일을 할 지원자를 모았다. 돈을 받지 않고, 직장 근무시간 이후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12명이 모였다. 아울러 몇 개 기업의 지원을 받아냈다. 파크 시트 메탈, FFD, QCR, TWR, 트라이플렉스, 던롭, 걸링을 비롯해 몇 개 기업이 참여했다. 무상이기는 하나 기여한 기업을 알리고, 생산에 들어갈 때 관련 작업물량을 최대한 배정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모인 그룹을 ‘토요클럽’(the Saturday Club)이라 불렀다. 토요일 아침에 모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XJ220 쇼카가 태어났다. 이 차의 디자이너 키스 헬퍼트는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는 개발이 중단된 XJ13 레이서에서 보디 제작의 영감을 받았다. 

“XJ13 레이서를 직접 본 재규어 이사는 보브 도버뿐이었다. 그는 당시 제작이사였다.” 랜들이 말했다. “나는 영국 모터쇼 2주일 전 재규어 회장 존 이건에게 차를 보여줄 채비를 마쳤다. 회장 이건과 판매+마케팅 이사 로저 퍼트냄이 모터쇼 출품을 결정하는 데 30분이 걸렸을 뿐이었다. 존이 OK 사인을 보내면서 일은 끝났다.”

랜들의 작품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차를 공개한 첫날 40명이 계약금을 내놨다. 그뒤 몇주일 사이에 수많은 고객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뒤 밝혀진 내용이 XJ220의 광채를 흐리고 말았다. 오랜 개발기간을 마치고 등장한 차는 약속했던 네바퀴굴림과 V12가 아니었다. 그 대신 V6 트윈터보에 뒷바퀴굴림이었다. 

 

XJ220을 예약한 고객들은 V6 트윈터보이 아니라 V12를 기대했다

이 프로젝트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래서 더 좋은 차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당시 XJ220은 세계 최고속 양산차 기록을 세웠다. 그럼에도 많은 고객이 불만을 표시했고,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더구나 법정소송이 잇따라 차는 팔리지 않고 시들었다. 그래서 XJ220은 재규어가 잊고 싶은 슈퍼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날 XJ220은 어두운 창고를 벗어났다. 헬퍼트의 화려한 보디라인은 제도실을 갓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뛰어났다. 도로에서 재규어는 여전히 당당하고 넓고 낮고 사운드가 환상적이었다. 계약을 포기했던 고객들이 과연 옳은 결정을 내렸던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내가 진실을 밝힐 기회를 잡았다. 그러기 위해 벌써 얼마쯤 땀을 흘렸다. “트윈플레이트 레이싱 클러치다.” 로가 말했다. “100 경기쯤은 제대로 출발할 수 있다. 한데 그 이상이면 과열할 위험이 있다.” 그러니 이 약점을 바로잡아야 했다.

나는 별 탈 없이 출발했다. 하지만 출발한 뒤에도 XJ220은 녹록치 않았다. 변속기는 트윈 싱크로메시여서 서서히 신중하게 다뤄야 했다. 예상대로 스티어링은 무거웠다. 게다가 도로의 바퀴자국, 범프와 차선페인트를 느낄만큼 피드백이 뚜렷했다. 하지만 승차감은 놀라웠다. 미세한 잔물결을 느낄만큼 팽팽했으나 더 큰 범프를 타고넘는 재주는 인상적이었다. 장거리를 달리기에 알맞은 차였다. 

 

1990년대 초 불경기가 닥쳐 XJ220의 전망이 흐려졌다

그렇다, 사운드는 현란할 만큼 우렁찼다. 수많은 최신 고성능차와는 달랐다. 뒤에서 터트리는 꽝꽝거리는 음향효과가 화끈했다. 사운드는 난폭하게 야성적이었고, 매섭게 날이 서 매정했다. 이 차가 골수 레이싱카임을 일깨우는 경고였다. 

내가 처음으로 액셀을 밟을 때 사단은 벌어졌다. 터보가 뛰어들자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터보래그는 엄청났고, 파워는 한꺼번에 터졌다. 그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나는 핸들을 힘껏 잡았다. 큰 물웅덩이라도 치고 나가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게 분명했다. 다음 기어에 올라가서야 아직 액셀을 바닥까지 밟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빗길에서 20분을 달려 정체를 알기에는 너무 까다로운 차였다. 예상대로 무척 겁이 났다. 하지만 그립은 실로 비범했고, 페이스와 파워는 광적이었다. XJ220은 대단한 스피드와 환상적인 야성을 자랑했고, 동시에 놀랍도록 편안했다. 

 

디자이너 키스 헬퍼트(왼쪽)가 짐 랜들과 메모를 주고 받았다

한편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스위치기어와 주요 조절장치의 투박한 기능이 실망스러웠다. 페라리 F40만큼 예리하지 않고, 맥라렌 F1만큼 세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매력적이었다. 하루 종일(가능하다면 맑은 날) XJ220과 함께 하며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게다가 XJ220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기뻤다. 짐 랜들과 키스 헬퍼트를 비롯한  토요클럽의 모든 회원이 자발적으로 20세기 최고로 꼽히는 경이적 슈퍼카를 세상에 내놨다. XJ220의 생일을 축하한다. 

 

가장 야성적인 재규어

XJ220은 비주류 재규어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오늘날의 XE SV 프로젝트 8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당대 모델 몇 대가 나왔다.

XJ13(1966년)
원래 의도는 레이스에 나가는 미드십 V12 슈퍼카를 노렸다. 그러나 XJ220과는 달리 XJ13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지 못했다. 환상적인 스타일을 끝내 살리지 못해 아쉬웠다

 

XJR-15(1990년)
TWR의 산하 메이커 재규어스포츠가 개발한 재규어의 비공식 슈퍼카였고, 보디를 개조한 XJR-9 레이서였다. XJ220과는 달리 V12를 탑재했다. 그러자 야수로 바뀌어 도로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C-X75(2011년)
중도탈락한 또 다른 재규어 슈퍼카. 하이브리드 C-X75는 포르쉐 918 스파이더, 맥라렌 P1, 페라리 라페라리와 막상막하의 성능을 담았다. 그러나 재규어는 세계금융위기 속에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F-타입 프로젝트(2015년)
출발 당시 최고속 최강력 재규어였다. 트랙 중심이었던 로드스터는 250대가 세상에 나왔다. 딱딱하고 시끄럽고 날씨에 취약했다. 그러나 스타일이 화려하고 운전성능이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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