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테스타로사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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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테스타로사의 계보
  • 마크 휠러(Mark Wheeler)
  • 승인 2017.10.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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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에서 큰소리 치는 허풍에 넘어가지 말라. 우리 마크 휠러(Mark Wheeler)가 테스타로사, 512TR과 F512M을 직접 몰아보고 하는 말이었다. 페라리 수평대향 12 핀업은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선사했다

눈부시게 빨간 페라리 테스타로사가 마당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미학적 드라마, 프로포션, 넘치는 호사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절실하게 필요해서 만든 차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꼬박 하루를 함께 할 야수들 가운데 하나였다. 뿐만아니라 저절로 뜨겁게 솟구치는 갈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미 30여년이 지났으나 수평대향 12기통 페라리는 여전히 황홀한 꿈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진정한 슈퍼카다운 마력을 발산했다.  

테스타로사와 그 뒤를 이은 512TR과 F512M. 이들은 최근 클래식카 붐을 타고 아주 잘 나가고 있다. 그다지 오래지 않은 과거에 특히 오리지널이 놀랍도록 쌌고, 마니아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났던 때가 있었다. 펍에서 자동차를 안다는 취객들은 곧잘 이렇게 떠들어댔다. “그들은 발상부터 페라리 슈퍼카의 위상에 미치지 못했을 뿐아니라 운전성능도 별로 좋지 않았다. 페라리가 헛발질을 거듭 거듭하던 시절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넓은 슬랫 테일은 옆구리의 스트레이크와 비슷하다

그와는 달리 페라리의 골수 충성파는 그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나처럼 30대 후반이라면 그들의 믿음에 동조할 것이다. 테스타로사는 영원히 쿨하고, 레이싱 어드벤처 <아웃런>의 영원한 드롭톱이다. 1980년대 미국 마이애미의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던 차. 이제 1980년대가 다시 멋지게 돌아왔다. 

 

테스타로사의 장쾌한 4943cc 48밸브 수평대향 12는 아주 강력한 390마력과 49.8kgㆍm를 내뿜는다

그 동안 고객들만이 아니라 페라리 내부에서도 슈퍼카의 ‘복서’ 시리즈를 비판하는 소리가 적잖았다. 이들에 대한 응답이 프로젝트 F110AB였다. 1978년에 시작한 새 모델은 먼저 파워 강화와 핸들링 개선을 겨냥했다. 나아가 짐칸을 넓히고 난방+환기를 개선하며 미국 배기ㆍ안전법에 대처하는 데 목표를 뒀다. 숫자만 아니라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어 페라리는 지나간 카탈로그를 뒤져 가장 유명한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테스타로사(Testarossa). ‘빨간 머리‘라는 이탈리아의 합성어. 페라리의 50년대말 스포츠 레이서의 로소 코르사 캠커버의 뒤를 따랐다. 

테스타로사에 참여한 인력의 상당수는 신진이었으나 노장들이 프로젝트에 앞장섰다. 프로젝트 매니저 안젤로 벨레이 박사는 1964년 존 서티스를 F1의 정상으로 실어올린 158을 감독했다. 엔지니어 니콜라 마테라치는 신형 F113A 엔진 제작 총책으로 활약했다. 그의 경력은 실로 경이적. 란치아 스트라토스, F40, 오셀라 F1을 비롯해 그의 작품리스트는 끝이 없었다. 수많은 부문 가운데 디자인 그룹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도 피닌파리나의 전설 레오나르도 ‘미스터 데이토나’ 피오라반티를 꼽지 않을 수 없다. 

 

80년대에 그 이전의 아이콘에 붙었던 이름이 되살아났다

에마누엘레 니코시아가 그린 디자인이 선택됐다. 새차가 복서와 차별화되는 핵심적인 특징을 잘 살렸다. 라디에이터가 앞머리에서 옆구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짐칸이 늘어났고, 차폭이 넓어졌을 뿐아니라 독특한 프로포션이 등장했다. 니코시아는 스트레이크를 통해 공기를 흘려보냈고, 여기서 1980년대를 주름잡은 스타일이 태어났다. 

마테라치의 새 엔진은 대형 수평대향 12기통에 4밸브 헤드를 달았다. 그리고 F113A의 크랭크로부터 벨트구동식 캠이 바로 작동했다. 1981년 새 엔진이 등장했다. 최초의 풍동 모델이 나온 지 3년만인 1982년 처음으로 이 엔진을 장착한 프로토타입이 출현했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ITCA는 마침내 30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게 됐다. 그중 3대가 아직도 남아있다. 1984년 1월 이 차는 양산전 단계에 이르고, 같은 해 7월 양산에 들어갔다. 

 

초기의 단일 휠너트형이 1988년 5개 스터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1984년 파리 모터쇼 전야 샹젤리제의 리도 호텔에서 신형 페라리의 매스컴 발표회가 열렸다. 거기서 실로 선풍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상큼하게 네모나고 의도적으로 기능적 라인과 최고의 기계스펙 앞에서 512BBi는 70년대의 구닥다리로 밀려났다. 테스타로사는 참신하고 전향적이었다. 전체 스타일에서 복고적 라인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뒤 페라리는 테스타로사 7177대를 판매하는 경이적 기록을 세웠다. 80년대를 통틀어 이 모델의 꾸준한 인기를 그대로 말해줬다. 영국에서는 84년부터 6만2666파운드(약 9299만원)에 팔렸다. 이들 초기 모델은 높이 달린 단일 도어미러 때문에 오늘날 ‘모노스페키오’로 알려졌다. 그 별난 특징은 1986년 제네바 모터쇼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테스타로사의 특징인 단일 너트 ‘모노-다도’ 휠은 88년 6월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원래 3가지 타입의 휠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미쉐린의 TRX 메트릭 타이어를 신었다. 기본장비는 지름 16인치였고, 폭은 앞 8인치에 뒤쪽은 큼직한 10인치였다. 

 

테스타로사→512TR→F512M로 탈바꿈해도 넓은 실내는 대체로 바뀌지 않았다

최종 테스타로사는 이따금 ‘88.5’ 모델이라 불렸다. 신형 5스터드 휠 이외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스티어링 컬럼, 댐퍼를 포함한 서스펜션을 손질했고, 트레드를 키웠으며 신형 브레이크 디스크를 달았다. 초기 버전은 ‘A’ 스펙 엔진에 보쉬 K-제트로닉 분사를 더했다. 그리고 1989년부터 KE-제트로닉 인젝션과 촉매 컨버터가 결합된 ‘B’ 엔진을 장착했다. 

 

오늘 우리가 몰게된 차는 후기 스펙 모델이었다. 테스타로사의 첫째 신화가 곧 무너졌다. 흔히 테스타로사는 큰차이고 차폭이 넓어 시가지에서는 까다롭다고들 했다. 넓은 실내에 들어가자 미러에 엉덩이가 비춰졌다. 복잡한 차량 대열속을 처음 몇 km 달릴 동안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옆을 달리는 포드 포커스와 비교하게 됐다. 그때 현대적 기준에 따르면 테스타로사는 상당히 작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페라리는 1984년의 대등한 Mk3 포드 에스코트를 압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놀랐다. 테스타로사는 실내가 넓고 아주 편안했으며 이상하게 조용했다. 골수 트랙중심의 미드십 슈퍼카가 전혀 아니었다. 드라이버 바로 등뒤에 막강 엔진이 도사린 차분한 그랜드 투어러였다. 그럼에도 이날 나는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특히 실망스럽게도 날씨가 몹시 궂었다. 

정중앙을 겨냥했을 때 핸들은 알맞게 가벼웠다. 한데 조금 방향을 틀자 갑자기 묵직했다. 뒷바퀴를 굴리는 감각을 간신히 느낄 수 있었다. 뒤쪽의 중량에 비춰 궁극적 롤링 오버스티어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아무튼 한계상황에 도달하기 전 스릴을 맛볼 수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빗속에서 어디까지 이 페라리를 믿을 수 있는지 시험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차의 드라마에 흠뻑 젖어보기로 했다. 12기통은 힘차게 너울졌고, 고회전에서 마침내 목청껏 포효했다. 가게 유리창에 비친 테스타로사는 실로 환상적이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도 아주 쉬운 차였다. 나중에 브랜드 전문가와 잡담을 나눴다. 그에 따르면 몰고다니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차 값이 너무 비싸니까), 몰고 다닐수록 좋다고 했다. 

 

512TR의 노즈는 84년의 오리지널보다 부드러워졌다

테스타로사에 이은 512TR은 운전경험이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겉보기에 비슷한 외부 스타일에 놀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 섬세한 스타일 변화가 있었다. 차체 외부의 컬러처리 방식이 한층 다양해졌고, 테일램프가 달랐다. 그리고 우리 눈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버트리스가 더 길어졌고, 뒤 데크 가장자리로 흘러내렸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달랐다. 그러나 페이스립트 이상은 아니었다. 

사실 TR은 중대한 방향전환을 이뤘다. 1992년초 시장에 나왔으나 1987년 프로젝트의 하나로 출발했다. 고위 기술진에는 업계의 스타들이 포진했다. 로베르토 코라디, 파올로 마르티넬리(뒷날 페라리 F1 엔진맨으로 12년동안 활약했다)와 아메데오 펠리사가 핵심 트리오였다. 뒷날 펠리사는 페라리 CEO로 등극했고, 2015년에 물러났다.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의 배기량은 같지만 출력은 421마력으로 올라갔다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은 다시 한번 이 차의 심장으로 들어앉았다. 상당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됐지만, 엔진의 주위 환경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테스타로사의 엔진 크레이들이 사라지고, 원피스 섀시가 들어와 비틀림 강성을 크게 높였다. 엔진은 전보다 30mm 내려앉았다. 365GT4 BB까지는 무게중심이 높아 문제가 됐던 것과는 대조를 이뤘다. 새 엔진은 니카실 피복 실린더 라이너, 달라진 공기흡입장치, 더큰 흡기밸브와 개선된 배기관을 갖췄다. 그리고 한층 현대적인 보쉬 모트로닉 2.7 엔진 매니지먼트가 뒷받침했다. 따라서 단판 클러치, 개량형 기어와 18인치 휠의 ‘현대적’ 낮은 프로파일 타이어가 421마력을 소화했다. 스티어링은 더 빨랐고, 신형 댐퍼와 더 큰 십자천공 브레이크 디스크가 뒷받침했다. 

테스타로사를 뒤이은 512TR은 아주 치밀하게 다듬었다. 1990년대 최고성능차의 경이적인 자질을 갖췄다. 성능에서는 현행 슈퍼카에 수준에 육박했다. 다만 클래식에서 그토록 찬양하는 완벽한 피드백이 현수준에는 미달했다. 

 

92년식 모델의 아름다운 합금휠

출발하자마자 보다 팽팽하고 민첩한 기동력이 폭발했고, 잽싼 반응이 일어났다. 솔직히 몰기 아주 쉬웠고, 변속은 지극히 정확했다. 스티어링과 차체의 반응은 보다 점진적이고 믿음직했다. 그 크기와 명성에도 100m를 가기도 전에 나와 512TR은 죽이 맞아 돌아갔다.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은 훨씬 깨끗하고 열성적으로 스피드를 올렸고, 저회전대에서도 목청이 더 컸다. 레드라인으로 치솟자 표독한 절규가 터졌다. 또 다시 날씨가 길림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언젠가 512TR을 사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트리오중 최고를 뒤로 돌렸나? 일부 페라리 마니아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터이다. 어쨌든 F512 모디피카토는 엽기적 인상을 줬다. 휘어진 스포크 휠이 눈길을 끌었고, 평평한 ‘팝업’ 헤드램프는 한층 둥근 노즈의 고정 램프로 바뀌었다. 전통에 비춰 미학적 관점에서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F512M엔진은 더 가볍고 위력적인 440마력을 뿜어냈다

그러나 이 차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었고, 드라이버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파워를 갖췄다. F113G040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은 우리 트리오중 마지막 주자를 몰고가는 절대적인 자연의 힘이었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 수입한 이 화려한 모델에 스포츠 배기관을 달았을 때 효과는 더욱 컸다. 

이제 파워는 듬직한 440마력에 51.0kgㆍm. 티타늄 콘로드, 더 가벼운 크랭크샤프트(-7.26kg), 더 높은 압축비와 7500rpm까지 치솟는 회전대가 특별한 엔진을 빚어냈다. 으르렁-가르렁거리고 비명을 질렀다. 그 차의 개성은 너무나 강렬하여 단번에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다른 부분에서 한층 세련된 512TR 패키지와 찍지으면 F512M은 어느 기준에 비춰도 본격적으로 빠른 머신이었다. 

 

장방형 테일라이트가 물러나고 약간 둥근 라이트가 들어왔다

실로 파격적인 오너의 배려로 나는 하루종일 M과 함께 했다. 마음대로 다루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지만 실로 찾기 어려운 기회였다. 상당한 거리를 달리며 친밀하게 사귈 수 있었다. 비가 세차게 쏟아졌고, 깊은 물구덩이를 지나갈 때 흙탕물이 문턱을 후려쳤다. 때때로 차선이 대형 페라리에는 너무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데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F512M은 모든 것을 떨쳐버렸고, 내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그 순수한 능력이 밖으로 찬란히 빛났다.

 

멋진 5스포크 스티어링

이들 최종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은 요즘 주가상승중이다. 이 차를 찾아 가지려면 약 20만파운드(약 3억원)를 내놔야 한다. 딱 501대를 만들었고, 원래 그중 41대가 영국으로 건너왔다. 따라서 그들 대다수는 따뜻한 차고에서 졸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F512M의 실력을 감상하려면 콩쿠르 델레강스의 잘 손질한 잔디밭을 나와 제대로 몰아봐야 한다. 그러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터이다. 내가 차를 돌려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다. 보디는 여행중에 더러워졌고, 내 눈은 금방이라고 밖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심지어 오너의 차고에 가는 마지막 몇 m에서도 경이로운 오픈게이트 기어와 황홀한 엔진 사운드를 즐기고 있었다. 

 

스타일에 논란이 있었으나 F512M은 운전재미가 쏠쏠했다

테스타로사의 개성은 너무나 강렬했고, 당대의 문화에 푹 젖어있었다. 1980년대의 또 다른 아이콘 포르쉐 911 터보처럼 완전히 감상하는 데는 다른 라이벌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고, 그만큼 가치가 올라갔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나 이들은 숱한 재능을 타고 난 위대한 페라리였다. 그리고 드라이브를 사랑하는 슈퍼카였다. 2B 컨설팅 오토모티브의 에드 브라운, 개스워스 홀과 토니 워스윅에게 감사한다. 

 

넓게 보아 전체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나 속살은 크게 달라졌다

 
페라리 테스타로사

판매기간/ 생산량  1984~92년/ 7177대 
구조  강철 튜브 섀시, 알루미늄 보디에 강철 루프와 도어
엔진  완전 알루미늄, 48밸브 4924cc 수평대향 12, 보쉬 K-제트로닉 분사
최고출력  390마력/6300rpm
최대토크 49.8kgㆍm/4500rpm
변속기  5단 수동 RWD
서스펜션(앞/뒤)  독립 더블 위시본/ 코일 스프링, 텔레스코픽 댐퍼, 안티롤바
스티어링  랙&피니언
브레이크(앞/뒤)  천공 디스크
타이어 (앞) 240/45VR 415, (뒤) 280/45VR 415(후기모델 앞 225/50ZR 16, 뒤 255/50ZR 16)
크기(길이x너비x높이)  4485x1976x1206mm
휠베이스  2550mm
무게 1506kg
0→시속 97km 가속  5.8초
최고시속  290km
연비  6.0km/L
새차 가격  6만2666파운드(약 9299만원)
현재 가격  10만~15만파운드(약 1억5000만원~2억2000만원)

페라리 512TR (차이가 있는 항목)
판매기간/ 생산량  1992~94년/ 2280대 
엔진  보쉬 모트로닉 연료분사
최고출력  421마력/6750rpm
최대토크  49.9kgㆍm/5500rpm
타이어  (앞) 235/40ZR 18 (뒤) 295/35ZR 18
무게  1475kg
0→시속 97km 가속  4.9초
최고시속  307km
새차 가격  12만9953파운드(약 1억9285만원)

페라리 F512M (차이가 있는 항목)
판매기간/ 생산량  1994~96년/ 501대 
최고출력  440마력/7250rpm
최대토크 51.0kgㆍm/5500rpm
무게  1455kg
0→시속 97km 가속  4.8초
최고시속  315km
새차 가격  13만8003파운드(약 2억479만원)
현재 가격  20만~25만파운드(약 3억~3억71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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