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GT, 812 슈퍼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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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GT, 812 슈퍼패스트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7.09.2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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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카로서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는 세상 어느 차보다 빠르고 편안하게 달린다

페라리에 대한 나의 기억 대부분은 벽에 걸린 액자 또는 잡지속의 사진에서 출발했다. 지나간 날이 그렇듯 어느 순간 눈앞의 실체로 나타났고 페라리의 시트에 앉게 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가령 360 모데나의 옆자리에 앉아 프로 드라이버가 서킷에서 그 차를 갖고 놀 때 나는 그저 롤러코스트를 탄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내가 직접 페라리의 운전대를 잡는 횟수가 늘어났다. 페라리 FF, 캘리포니아 T, 458 이탈리아, 488 GTB. GTC4 루쏘 T 등 근래의 페라리는 대부분 운전해 볼 수 있었다. 특히 488 GTB는 새롭게 나의 드림카가 되었다. 

 

 

페라리 70년 그리고 V12 역사에 대한 헌사
그리고 오늘 페라리의 본고장 마라넬로에서 가장 최신의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를 만난다. 마라넬로는 처음이지만 옆동네 이름보다 많이 들었던 만큼 친숙하다. 슈퍼패스트는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알 만큼 직설적이다. 왠지 페라리답지 않다는 느낌도 주지만 과거 500 슈퍼패스트라는 동명의 모델이 있었다. 그런데 812는 무슨 의미일까. 800마력 12기통 엔진을 말한다. 페라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이 모델은 페라리 V12 역사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실내는 익숙한 디자인이지만 모든 것이 새롭다. 스티어링 휠도 조금 작아졌다

800마력이란 힘의 그릇이 얼마나 클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812 슈퍼패스트는 파워만 앞세우는 마초는 아니다. 박물관이자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유서 깊은 ‘공작 저택’(Palazzo Ducale) 앞에서 처음 만난 812는 런웨이에 선 탑모델보다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근래의 슈퍼카 가운데 페라리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은 없다. 812는 그 절정에 다가선 느낌이다. 현대식 기계 미학의 정수를 담은 스타일링은 압도적인 파워를 다스려야 했다. 에어로다이내믹스가 중요한 이유다. 저택의 일부인 작은 아틀리에에서 테크니컬 브리핑을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타코미터를 중심으로 한 계기는 집중력이 높다

“펀 투 드라이브라는 페라리의 V12 DNA를 잇는 한편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했다. 파워가 상당히 커진 만큼 디자인에서 공력 특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안한 GT카여야 했다” 

페라리 기술팀은 812 슈퍼패스트의 콘셉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페라리 디자인 센터는 V12 프론트 엔진의 전통을 재해석해 812 슈퍼패스트를 빚어냈다. 짧고 높은 꽁무니를 품어 매끈하면서도 공격적인 패스트백 스타일은 과거 데이토나를 휩쓸었던 1969년의 365GTB4를 염두에 두었다. 그런 한편 부품의 75%를 새롭게 바꾸고 풀 LED 헤드라이트와 새로운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S), 새로운 기어비를 적용하고 5세대 SSC 등 첨단장비로 무장했다. 

 

동반석에서도 차의 주행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막강한 성능을 표현하는 스타일은 어느 면에서나 스포티한 차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공기역학을 우선으로 설계한 차체 구조는 치밀하고 혁신적이다. 프론트 에어댐 양 끝단에서 앞뒤 휠 하우스 주변에 공기 통로를 만들어 공기 흐름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 설계한 리어 디퓨저의 액티브 플랩이 14도 각도로 움직이며 위로 올라가는 공기를 줄여준다. 이렇게 얻은 전체 다운포스는 F12 베를리네타보다 30% 높은 수치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마네티노 설정의 보정을 통해 엔진 잠재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812 슈퍼패스트가 지향하는 목적지는 다음과 같다. F12 베를리네타의 스페셜 에디션인  F12tdf는 보다 뛰어난 운전 재미와 핸들링을 목표로 했다. 812 슈퍼패스트의 지향점에서 운전 재미와 핸들링은 F12tdf와 같은 레벨에 있다. 이를 능가하는 부분은 장거리에서 고속으로 꾸준하게 달리는 수준, 트랙션, 브레이크, 기어박스(운전성능을 위한), 다재다능함이다. 그리고 스티어링 감각과 반응에 치중했다. 이것이 페라리 최초로 ESP를 적용한 이유라는 것.  이렇게 함으로서 스티어링 토크, 센터 감각, 조종력, 반응, 편안함 모두 향상되었다. 아무튼 목표는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바로 사상 최고의 GT라는 것 말이다. 

 

범피 로드 댐퍼 설정은 거친 노면에서 승차감을 높여준다

 

절제와 폭발력 모두 자연스러운 슈퍼 GT 
마라넬로에서의 둘째날, 마침내 812 슈퍼패스트를 타고 달릴 순간이다. 하룻밤을 지낸 마라넬로 빌리지(페라리를 테마로 만든 호텔)에서 피오라노 서킷은 무척 가까이에 있었다. 서킷은 공장에서 바로 연결되는데 페라리의 생산 라인을 거쳐 나오는 모든 차는 이 서킷에서 성능 평가를 거친다. 마라넬로는 그야말로 페라리에 의한 페라리를 위한 도시. 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페라리는 생활의 일부였고, 그것은 또한 이 도시의 자랑이었다.      

 

V12 6.5L 자연흡기 800마력 엔진. 무슨 말이 필요한가

창업주인 엔초 페라리가 살던 집은 피오라노 서킷 한쪽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정원처럼 펼쳐진 서킷 위로 구름이 낮게 내려앉았다. 마라넬로 일대를 돌아오는 300km 남짓한 거리 지도를 보니 마치 서킷 같다. 그것도 수없이 많은 코너로 이루어진. 일반도로를 달린 다음 서킷 주행이 기다린다. 배정된 시승차는 강렬한 이탈리안 레드인데 약간 낯설다. 새롭게 추가된 컬러로 ‘로쏘 70애니’(rosso 70anni) 라고 부르는 70주년을 기념하는 컬러다. 뒷모습은 F12의 싱글 서클 리어램프가 트윈 서클 램프로 변경된 점이다. 동그란 트윈 머플러와의 앙상블은 GTC4 루쏘와 비슷한 이미지다.  

 

날카로운 눈매의 헤드램프

실내는 페라리의 디자인 언어 그대로지만 세부적으로는 모든 것이 새롭다. 5인치 풀 HD 스크린에는 GTC4 루쏘에서 가져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달았다. 그래픽과 조작감은 더 심플해지고 애플 카플레이는 연결성이 좋아졌다는 설명. 동반석에도 8.8인치 터치 스크린을 마련해 차의 동력 상황을 확인하거나 라디오 조작 등을 할 수 있다. 계기판 중앙의 타코미터는 한층 샤프하게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스티어링 휠은 조금 작아진 느낌으로 다루기가 더 편해졌다. 붉은색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마른하늘에 천둥이 친다. 사운드는 묵직하고 뒤끝이 부드럽다. F12 베를리네타의 6.2L를 키운 V12 6.5L 자연흡기 엔진은 실린더 헤드와 인테이크 매니폴드, 350바에 달하는 인젝션 시스템 등이 새롭다. 공식적으로 8500rpm에서 최고출력 800마력을 내지만 엔진 스피드는 8900rpm까지 올라간다. 최대토크 73.3kg.m는 7000rpm에서 터지고 최대토크의 80%는 3500rpm에서 발휘된다. 이후 빠르고 지속적인 커브 곡선이 이어진다. L당 출력은 F12의 118마력에서 123마력으로 향상되었다. 0→시속 100km 가속 2.9초(0→시속 200km 가속이 7.9초), 최고시속 340km를 내 양산형 프론트 엔진으로는 사상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공기 통로를 통해 다운포스를 높여준다

그렇다고 스펙에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하자 그에 맞춰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차체는 도로의 차선을 거의 꽉 채운다. 하지만 기민한 움직임으로 차체 크기가 부담스럽지는 않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햇살만이 가득한 이탈리아의 한적한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길가의 아이들이 페라리를 발견하고 함박 웃으며 손을 흔든다. 굽이진 길들이 이어지고 언덕 위로 작은 성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속도를 높여갈수록 풍경은 재빨리 사라지고 사운드는 고음과 저음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느긋한 GT의 움직임이 이어지지만 핸들링은 날카롭다. 특히 코너를 돌아나갈 때 터닝이 예리하고 빠르다. 헤어핀 코너에서 그만큼 다루기 쉽다는 얘기다. 날카로운 핸들링이 진행되는 동안 토크의 향상이 두드러진다. 페라리는 이번 812에서 마네티노 설정의 보정을 통해 엔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게 했다. 스포트 모드에서의 활기찬 움직임은 7단 변속기의 빨라진 반응과 잘 어우러졌다. 데이터상으로 2단에서 3단으로 업 시프트 반응 속도가 30% 빨라졌다. 4000rpm에서 다운 시프트가 이루어지는 속도는 이보다 더 빠르다. 수치상으로 40% 빠르다.

 

고출력을 위한 에어로다이내믹스

패들 시프트 반응도 빠르고 즉각적이다. 속도나 엔진 회전수 영역에 까다롭게 굴지 않고 모든 기어 단수에서 빠른 응답성을 보여준다. 운전 재미는 빠르게 달리는 것만 아니라 변속 재미도 크다. 변속 때 ‘텅’ 하는 소리는 변속 충격이 아니라 청각적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그리고 빼어난 그립이 운전 재미와 안정감을 뒷받침한다. 812는 낮은 속도에서도 서스펜션이 타이어를 눌러주는 그립이 좋다. 스티어링 휠 왼쪽 아래에 있는 범피 로드(bumpy road) 댐퍼 버튼을 누르면 다소 거친 노면에서 승차감이 향상된다. 거친 노면에서도 스티어링 휠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거의 없다. 질감이 좋은 버킷 시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착 맞아가며 일체감을 느낀다.  

 

휠하우스 근처의 공기 통로를 통해 와류를 평정한다

가끔씩 나타나는 직선도로에서 스로틀을 열어젖힌다. 순간 가속은 불꽃처럼 강렬하다. 부드러운 회전력은 날카로움으로, 사운드는 거칠게 변하지만 차체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다는 느낌은 변함이 없다.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매력은 역시 높은 rpm에서 지속되는 풍성한 파워임을 실감하는 순간 가슴이 탁 트인다. 가속을 마친 뒤의 자세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페라리의 장점은 압도적인 가속력뿐 아니라 제동력에도 있다. 812 슈퍼패스트는 시속 100km에서 제동 성능이 5.8% 향상되었다. 타이어는 어느 순간에서도 끈끈한 접지력을 잃지 않았다. 이제 서서히 피오라노 서킷이 다가오고 있다.   

 

리어램프는 듀얼 타입으로 바뀌었다

   
폭우가 지나간 피오라노 서킷을 달리다
누구에게나 쉽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피오라노 서킷 주행을 앞둔 시간.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예사롭지 않다. 이윽고 폭우가 쏟아지더니 세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든다. 서킷은 침묵에 빠졌으나 주행이 취소된다는 이야기는 누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박마저 내리는데 불안감이 커져간다. 30~40분쯤 지났을까. 비바람은 한동안 서킷을 유린하더니 잠잠해졌다. 테스트 드라이버가 서킷을 점검하러 출동하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린다. 비로소 머리에 맞는 헬맷을 찾아 쓴다. 

 

오직 한 대의 812를 위한 시간. 피오라노 서킷 달리기는 감동이었다

먼저 컨스트럭터가 모는 812 슈퍼패스트의 옆좌석에 앉아 두 바퀴를 돌며 서킷을 익힌다. 그런 다음 직접 네 바퀴를 주행한다. 서킷에는 선도차도 없고 함께 주행하는 차도 없이 오로지 혼자뿐이다. 서킷을 온전히 독점한 순간인데 긴장감이 몰려왔다. 속도와 코너 공략은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 피오라노 서킷은 8개의 커브로 구상된 1랩 2.976km 길이.

천천히 한 바퀴를 돈 다음 속도를 올린다. 젖어있는 노면이라 조심스럽지만 차체의 안정감이 워낙 좋으니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다. 마네티노 모드는 레이스. 더 높은 rpm 영역에서 가속과 감속을 즐긴다. 코너를 감아 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직선도로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는다. 불꽃을 쏘아올린 것처럼 페라리 노트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 뒷바퀴가 사뿐하게 앞바퀴를 따라 추종하는 4WS 특성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코너 공략이 그만큼 쉽고 재미있다. 오르막 코너에서 연석을 살짝 타고 감으며 탄탄한 하체와 강인한 코어의 힘을 느낀다. 이보다 더 강력한 GT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긴장과 황홀의 시간이 지나고, 저물어가는 오후의 서킷은 누부셨다. 지상 최고의 GT카 812 슈퍼패스트와 함께 한 순간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비바람이 지나가는 동안 묵묵히 기다리며 피오라노 서킷 주행의 기회를 마련해준 페라리 관계자들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린다. 

( 이 기사는 월간 <오토카코리아> 8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편집자 주) 

 

페라리는 왜 전자식 파워스티어링(EPAS)을 받아들였나?

 

전통적으로 스포츠카를 전문으로 만드는 자동차회사는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몇몇 자동차 메이커가 뒤늦게 전자식 파워스티어링(EPA)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페라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사실 도로에서는 유압식 파워스티어링의 감각이 더 좋다. 그러나 조정할 수 있는 변수가 많다는 장점이 있어 전자식 파워스티어링(EPAS)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페라리에 따르면 전자식 파워스티어링(EPAS)과 유압식 파워스티어링(HPAS)의 전체적인 감각, 반응속도, 무게감은 같다. 그러나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은 한계 상황에서 차를 제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이드 슬립 컨트롤’(side slip control) 시스템에 도움을 준다. 스티어링, 리어 스티어링, 댐퍼, 액티브 디퍼렌셜, 스태빌리티 컨트롤 등이 서로 연결돼 있어 특정 방향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하나가 되어 토크를 올리거나 낮춘다. 따라서 운전자가 한계치까지 몰아붙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전자식 파워스티어링(EPAS)은 또한 회복력이 빠르다. 게다가 모든 상황에서 일정함을 유지한다. 페라리는 유압식 파워스티어링(HPAS)의 경우 차마다 허용오차와 마모율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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