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와 로엘 사이, G4 렉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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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와 로엘 사이, G4 렉스턴
  • 안정환 에디터
  • 승인 2017.08.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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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옆집 아저씨가 갓 출시된 렉스턴을 장만했던 게 기억난다. 아저씨는 “여태껏 타본 차 중 가장 따봉이야!”를 외치며 동네방네 신차 렉스턴을 자랑하곤 했다. 렉스턴부심(?)은 실로 대단했다. 동네 어른들이 자동차 얘기를 꺼냈다 하면 아저씨는 항상 나서서 렉스턴이 최고임을 주장했다. “힘도 세고 네바퀴굴림이라 험지도 끝내주게 달려, 무엇보다 승차감이 따따봉!”이라면서 말이다. 당시엔 수입차를 타는 사람도 적었고, 렉스턴이 국내 판매되는 차 중에서 나름 비싼 축에 속했기 때문에 크게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저씨는 소위 말하는 ‘쌍용 마니아’로, 항상 쌍용차를 맹신했다. 렉스턴을 구매하기 전에도 코란도 훼미리와 무쏘 등을 타며, 힘 좋은 네바퀴굴림 차를 과시했다. 그런 이웃 아저씨 덕분에 아직도 내겐 쌍용차 하면 ‘힘 좋고 튼튼한 차’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더욱이 렉스턴은 더 그렇다. 하지만, 또 다른 이미지도 오버랩된다. 바로 ‘아재차’. 쌍용차를 타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아재미(美)’ 풀풀 풍기는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타입이 많았던 것 같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쌍용차 디자인이 다소 올드한 느낌이라 그런 느낌이 더했는지 모른다. 

 

쌍용 SUV 라인업의 맏형답게 듬직한 인상을 갖췄다

아무튼 세월은 흘러 그 렉스턴이 16년 만에 풀 체인지를 거쳐 돌아왔다. 사실 렉스턴은 그동안 3번의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하긴 했지만, 미묘한 스타일 변화와 살짝 높아진 출력이 전부. 한때 국내 대형 SUV 시장을 주름잡았던 렉스턴은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차로 전락하게 됐다. 

쌍용차는 새롭게 다 바꾼 렉스턴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한다. 새 렉스턴에 들인 시간과 공도 만만치 않다. 3년 반 동안 380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만큼 차명도 ‘G4 렉스턴’으로 변경했다. G4는 위대한 4가지 혁명(Great 4 Revolution)을 의미한다. 쌍용차는 G4 렉스턴이 멋(Styling)과 힘(Powertrain), 안전(Safety) 그리고 첨단기술(Hi-tech)의 혁명을 이뤄냈다고 말한다. G4 렉스턴의 신차 발표회에서도 ‘동급 최고’, ‘국내 최초’, ‘국내 최대’ 등의 단어를 되풀이 했다. 

 

웅장한 대형 SUV지만 전체적인 비율이 좋아 옆모습이 둔해 보이지는 않는다

쌍용차에 따르면 G4 렉스턴은 디자인도 젊어졌고, 성능도 좋아졌다. 더불어 안정성과 편의사양은 더욱 강화됐다. 타깃 고객도 다르게 잡았다. 쌍용차는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가치 소비를 하는 30~50대 ‘로엘족’(Life of Open-mind, Entertainment and Luxury)을 주요 고객층으로 규정하며, 기존 ‘아재차’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한다. 과연 G4 렉스턴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전체적인 겉모습은 한층 젊어졌다. 쌍용차의 최신 디자인 언어를 반영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외관이다. 브랜드의 막내 SUV인 티볼리의 얼굴을 살짝 베낀 것 같지만,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과 힘이 응집된 범퍼 그리고 아낌없이 두른 크롬 장식 등이 차별화를 준다. 확실히 좀 더 고급스러우면서도 강인한 인상이다. 물론 크기도 압도적이다.  

 

인테리어는 올드하지만 9.2인치 대형 디스플레이는 보기 좋다

G4 렉스턴의 길이×너비×높이는 4850×1960×1825mm로, 경쟁모델인 기아 모하비(4930×1915×1810mm)보다 80mm 짧지만, 45mm 넓고, 15mm 높다. 차체 전반에 수직적인 라인도 많이 들어가 모하비보다 더 거대하고 듬직한 인상이다. 쌍용차는 G4 렉스턴 디자인 전반에 최고의 균형감을 주는 ‘황금비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는데, 실제로도 보기 좋은 균형미를 나타냈다. 특히 이런 대형 사이즈의 SUV는 옆모습이 둔해 보이기 쉽다. 하지만 G4 렉스턴은 20인치 대형 휠과 휠 아치를 둘러싸는 라인 등을 이용해 역동성을 부여했다. 

실내는 어떨까? 먼저 문을 열고 승차하는데 높이가 꽤 높다. 사이드 스텝이 없으면 단번에 오르기 어려울 정도. G4 렉스턴은 기본적으로 일체형 사이드 스텝을 달고 있긴 하지만, 100만원을 더 보태면 전동식 사이드 스텝을 장착할 수도 있다. 외부가 거추장스러운 게 싫으면 이 옵션을 선택해도 좋다. 높은 차고는 높은 시트 포지션을 만든다. 반대차선에서 다가오는 마을버스 운전기사님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높이. 그만큼 전방의 시야는 많이 확보된다. 옆 윈도라인도 낮아 시야를 가리는 답답함이 없다. 이런 구성은 오프로드 달리기에도 유용하다.  

 

2열 시트 리클라이닝 각도를 키워 뒷좌석 탑승 편의성을 높였다

무엇보다 시트의 착좌감이 훌륭하다. 소파처럼 푹신하지만, 몸을 잘 지탱해주기도 한다. 장거리 주행을 떠나도 허리에 무리가 갈 염려는 없을 것 같다. 대한인간공학회에서도 G4 렉스턴 시트에 인간공학 디자인상을 수여했다고 하니 시트의 안락성은 믿어도 되겠다. 고개를 돌려 전체적인 인테리어 구성을 살펴봤다. 쌍용차가 G4 렉스턴에 공을 많이 들인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겠는데, 인테리어에선 동의하기 어렵다. 플래그십 SUV로서 질 좋은 소재 적절하게 사용했지만, 전체적인 구성이 신차치곤 너무 올드하다. 심지어 기어 조작부는 기존 렉스턴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스티어링 휠을 감아쥐는 맛도 떨어진다. 실내에선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잡은 9.2인치 대형 터치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태블릿PC 만한 화면에 HD급 해상도를 구현해 시인성이 상당히 좋다. 여기엔 애플 카플레이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미러링 기능도 탑재돼 있어 최신 트렌드에 맞췄다. 

 

2.2L 디젤보다 더 강력한 엔진이 들어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뒷좌석 역시 안락하다. 대형 SUV답게 무릎공간은 여유롭고 머리공간도 넉넉하다. 특히 2열 시트는 뒤로 꽤 많이 젖혀져 더욱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3열 시트가 추가되는 7인승 모델은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쌍용차에 따르면 올 하반기 추가될 예정이라고 한다. 3열이 추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은 광활하다. 2열에 탑승객을 태우고도 4개의 골프백을 실을 수 있는 820L의 크기를 자랑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2열을 접고 또 접으면 최대 1977L까지 확장된다. 캠핑을 가서 굳이 힘들게 텐트를 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시트만 접으면 성인 2명이 눕고도 남을만한 공간이 나오기 때문. 

 

화물차에 맞먹는 적재공간을 갖췄다

G4 렉스턴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주행감각이다. 어릴 적 옆집 아저씨가 그렇게 자랑했던 부분이 바로 주행성능이었다. G4 렉스턴은 기존 렉스턴이 갖춘 정통 SUV DNA를 계승한다. 요즘 보기 드문 프레임 보디를 유지하며, 뒷바퀴굴림 기반 네바퀴굴림 방식을 사용한 데에는 정통 SUV의 성격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요즘 다양한 SUV들이 나오면서 SUV 고유의 성격이 모호해지고 있는데, 사실 오프로드를 제대로 달리려면 프레임보디가 더 적합하다. 탄탄한 뼈대가 하체를 단단하게 잡아주기 때문에 험지에서의 주행성능이 뛰어나고, 차체 뒤틀림도 적은 편이다. 또 차체가 프레임과 분리돼 있어 소음, 진동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LED 주간주행등과 방향지시등이 하나로 합쳐진 HID 헤드램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달려보니, 프레임 보디의 성향이 짙게 느껴진다. 차체는 묵직하면서도 안정적이고,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과 잔 진동을 잘 잡아준다. 덕분에 실내 정숙성이 매우 뛰어나다. G4 렉스턴에는 2.2L 디젤 엔진이 들어가는데 휘발유 엔진을 얹은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쌍용차는 새롭게 개발한 방진고무 마운트 10개를 프레임 위에 깔아 진동을 줄이고, 펠트 소재 휠하우스 커버 등을 통해 노면소음을 차단했다고 설명한다. 정차 중에 디젤 엔진 특유의 진동이 스티어링 휠과 시트를 통해 전해지긴 하지만,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 

승차감 역시 좋다. 매끈한 도로 위를 달리면 요트를 타고 유유자적 항해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스포티한 주행과는 거리가 멀다. 낭창낭창한 서스펜션과 무거운 프레임 보디가 만나 좌우 롤링, 앞뒤 피칭이 나타난다. 때문에 과격하게 몰아부치기보다 여유 있게 운전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파워는 살짝 아쉽다. 42.8kg·m의 최대토크가 1600rpm에부터 발휘돼 초반 가속은 경쾌하나, 고속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2톤에 육박하는 거구를 이끄는 데에 최고출력 187마력은 다소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2.2L 디젤 엔진이 효율은 높겠지만, 더 강력한 엔진을 하나를 더 구성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속 80~100km의 실용영역 구간에서는 문제없이 달려낸다. 

 

키를 소지한 채 차량 뒤에 3초간 머물면 트렁크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기어레버 뒤에 있는 다이얼을 돌려 네바퀴굴림 고속 기어(4H)로 변경하고 오프로드로 들어선다. 프레임 보디와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진가를 발휘할 때다. 차체가 이리저리 요동치지만 G4 렉스턴은 주저 없이 달린다. 세단을 타고 왔으면 엄두도 못 냈을 험로다. 높은 차고 덕에 웬만한 험지는 가뿐하게 넘어버린다. 울퉁불퉁 굴곡진 자갈길을 아무렇지 않게 달리고, 비가 내려 질퍽해진 진흙길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과연 정통 SUV다운 오프로드 성능이다. 또한, 경사로 저속 주행장치(HDC)가 탑재돼 있어 급경사 주행 시 중력에 의한 급가속을 막아준다. 

 

높은 차고 덕에 이 정도의 물웅덩이쯤은 가뿐하다

G4 렉스턴은 겉과 속이 모두 새롭게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기존 렉스턴의 기질은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여유로운 승차감에 뛰어난 험로주파 능력까지 갖췄다. 더불어 정숙성을 비롯해 실내 거주성, 편의성 등까지 향상시켜 더욱 프리미엄 SUV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올드한 디자인의 실내 인테리어와 구식의 구동방식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쌍용은 이 차의 타깃으로  로엘족을 겨냥하지만 아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더 많은 것 같다. 글쎄, 아재와 로엘족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 차의 진가를 알아주고 좋아해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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