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의 황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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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의 황금 시대
  •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
  • 승인 2017.08.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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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는 랜드로버의 돈줄이었다. 그에 앞서 영국 솔리헐의 랜드로버는 바탕이 서로 다른 2개 모델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마저 우연히 시장에 나왔고, 첫째는 미들랜즈 공장에서 만든 지프 대용이었다. 제작자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차였다. 둘째는 그보다 훨씬 호화롭고 세련됐다. 기술진이 서둘러 디자인했고, 미국제 V8 엔진을 얹었다. 이 차는 세상을 놀라게 했고, 새로운 차급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인기는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출발 당시의 사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198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디스커버리가 첫선을 보였을 당시 모터쇼 주최국인 독일은 랜드로버 스탠드를 구석진 곳에 배정하며, 1980년대의 영국 자동차산업을 어떻게 처우하는지 똑똑히 보여줬다. 세계자동차계에서 뒷자리로 밀렸던 일본과 동유럽 모델이 자리를 같이했다. 하지만 영국의 충성스런 자동차 매스컴은 랜드로버의 새로운 ‘레저차량’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나름 성과는 컸다. 디스커버리의 두 번째 공식석상인 영국 모터쇼에선 이전과 다른 뜨거운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S1의 가느다란 필러와 높다란 유리가 탁트인 시야를 열어줬다

실용적인 4×4 시장이 기울고 있었다. 1950년대 이후 랜드로버가 주름잡던 수출시장을 토요타가 접수했기 때문이었다. 미쓰비시 쇼군과 이스즈 트루퍼와 같은 범용 모델이 전성기를 맞았다. 이들은 영국시장에서도 기세를 떨쳤다. 랜드로버는 약간의 투자금을 마련해 목표를 세웠다. 회사 전무 토니 길로이(Tony Gilroy)의 지휘하에 2540mm 길이의 레인지로버 섀시에 코일 스프링, 일체형 서스펜션을 달았다. 거기에 수많은 보디 부품을 더했다. 이로써 한층 가볍고 값싸며 전적으로 다른 모습의 디스커버리가 태어나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거기서 랜드로버의 현대사가 시작됐다. 1970년대 초의 레인지로버, 디스커버리, 디펜더 라인업이 갑자기 본격적인 모델 시리즈로 다가왔다. 그런 모습이 그대로 굳어졌다. 이후 프리랜더(이 또한 로드카 클래스를 개척했다)라는 모델도 추가됐지만, 핵심 라인업을 흔들어놓지 못했다. 결국 이 차는 손질을 받고 나서야 디스커버리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라인업에 들어왔다. 

 

로저 크레이손이 S1을 몰고 이스트너를 돌았다

이제 5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을 때가 됐다. 그러나 새차가 첫 고객에게 인도되기 전 선배 모델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랜드로버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어느 저녁 우리는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 호로 달려갔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 차를 세울 곳을 찾았다.

이스트너 트랙은 지금까지 모든 디스커버리를 받아들였다

계획은 단순했다. 영국의 척추 같은 페나인 산맥을 올라가 디스커버리 1세대의 첫 시승코스를 따르는 것이다. 그뒤 릴레이 방식으로 3개 지점을 이어 달렸다. 디스커버리의 역사적 명소 3개는 이스트너 캐슬, 솔리헐 공장,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이름난 시승 코스였다. 이들 뛰어난 모델과 랜드로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뜻깊은 순례. Mk5 디스커버리 발표회가 열린 스코틀랜드에서 순례행사는 막을 내렸다.

1989년 말 랜드로버의 임원들은 플리머스를 디스커버리 1의 언론시승 장소로 결정했다. 이곳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영국 탐험가들이 신세계를 찾아 나선 출발점이었다. 그처럼 랜드로버는 세계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여기서 출발했다. 우리 취재팀은 비오는 날 아침 역사적인 디스커버리 군단을 모았다. 그리고 현지 도로를 달리고, 마운트 에지컴에서 빗속의 오프로드에 도전했다. 그곳에는 16세기 영국의 해군제독 겸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대서양으로 나가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기념비가 서 있다. 

 

디스커버리 S2는 거침없이 진흙탕을 달렸다. 유압 앤티롤 시스템 ACE 덕분에 서스펜션은 저속에서 나긋했다

이번에 우리는 스케줄이 꽉찬 3일을 보냈다. 어느 수요일 어둠이 짙게 깔린 플리머스 호에 도착했다. 먼저 이 기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사진(청초한 백색 3도어 디스커버리 1을 수집 목적으로 사들였다)을 찍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트너 캐슬을 거쳐 북쪽으로 290km 떨어진 몰번 힐스 깊숙이 들어갔다. 

 

디스커버리 1의 매력은 단순함이었다. 시트 포지션은 매우 높고, 유리창은 허벅지 높이에서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지극히 가느다란 윈드실드 필러, 부드럽지만 든든한 좌석, 2.5 TDI 엔진의 믿음직한 공회전, 짧으면서도 약간 부정확한 기어박스, 제동 시 앞으로 크게 꼬꾸라지는 차체, 그리고 초기 레인지로버를 떠올리는 유쾌한 승차감이 다가왔다.

이들 오래된 디스커버리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만 했다. 녹이 잘 쓸기는 하지만 영국 어디서나 올드 디스커버리를 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승차감, 높은 운전위치, 우뚝선 어린이 좌석, 용이한 짐칸 등 모두가 매혹적이었다. 특히 도로에 나가면 그다지 크지 않았고, 4000파운드(약 561만원) 이하로 한 대 살 수 있다. 물론 그 이하로 값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디스커버리 S2는 G4 챌린지 시리즈의 베테랑이다

요즘 어느 메이커도 이런 차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도 매력의 일부다. 스펙만으로 보면 일체형 서스펜션은 투박하고, 승차감은 너무 떠다니는 느낌이다. 이른바 뉘르부르크링의 저주가 승용차, 심지어 SUV까지 바꿔놨다. 따라서 튼실한 안티롤 바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서스펜션 때문에 급선회 능력이 아주 좋아졌다. 북부 스웨덴에서처럼 돌발적으로 고라니가 뛰어들 경우에는 쓸모가 있지만 쇼핑 다닐 때 도로소음과 함께 쓸데없이 끼어드는 버릇이 있었다. 

결함이 있다면? 거의 모든 디스커버리 S1에 장착된 TDi 200 엔진의 공회전은 좀 지나쳤다. 기어변환도 기대를 밑돌았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120km(고속도로의 느긋한 크루징 속도)로 달리는 다른 차를 추월하려면 좀 더 큰 토크가 필요했다. 사실 그보다 조용한 V8이 있으나 디젤보다 토크가 더 크지 않으면서 연료소비는 2배나 많았다.

랜드로버는 113마력짜리 TDi 200 엔진보다 더 강력한 엔진이 필요했다. 그리고 1994년에 나온 개량형 TDi 300 엔진은 더 친환경적이었고 변속기와의 조화도 더 좋았다(우리는 곧잘 ‘총알처럼 빠른’ 동작을 들먹였다). 그러나 높아진 출력은 겨우 2마력으로 그다지 빨라지진 않았다. 그뒤 5기통 TD5에 와서야 성능이 올라갔다. 1998년 디스커버리 S2와 함께 시장에 나왔다. 그러자 일부 고객들은 새 엔진이 전자장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디스커버리가 대형마트 테스코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오너들은 스패너 몇 개로는 엔진 매니지먼트 모듈을 손질하지도 못하면서 사하라 사막을 반쯤 건너온 시늉을 했다. 

 

디스커버리 S2의 실내는 제1세대 S1에 비해 디자인 기교가 떨어진다

점심시간에 도착한 이스트너에는 랜드로버의 전설 로저 크레이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스커버리 S2 V8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페이스리프트된 이 차는 랜드로버의 G4 챌린지용 경주차 컬러를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이 국제 시리즈는 담배회사 캐멀이 주관한 캐멀 트로피가 물러난 뒤 등장했다. 우리는 G4에 들어가 크레이손과 함께 이스트너 트랙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런 다음 가까운 레드버리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솔리헐 공장을 찾기로 했다. 1998년에 출시된 이 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1994년 BMW가 로버 그룹을 인수한 뒤 내놓은 초기 제품이었다. 모두 5도어였고, 제작품질이 한층 뛰어났다. 구조 강성도 상당히 향상됐다. 길이가 152mm 늘어났지만 여전히 구형 2540mm 휠베이스 섀시를 썼다. 그리고 뒤 오버행이 꽤 길기 때문에 짐칸도 넓었으며, 3열에 2개의 좌석을 추가해 7인승 구조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프로드의 이탈각이나 견인안정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오늘날까지 4x4 골수파는 찬성하지 않는다. 아울러 키가 60mm 더 높아 일부 실내 주차장에는 아슬아슬했다. 

높은 운전위치는 여전했고, 느긋한 승차감도 마찬가지였다. 고속코너의 보디롤링(BMW 애호가에게는 금기인)을 액티브 롤 컨트롤이 길들였다. 안티롤 바 끝에 있는 일종의 유압잭으로 고속코너에서 차체를 평탄하게 유지했다. 

 

꾸준히 개선한 5기통 TD5 디젤은 136마력을 뿜어냈다. 그리고 V8 모델은 강력한 182마력을 자랑했다. 따라서 우리가 시승한 4단 ZF 자동변속기와도 궁합이 좋았다. 

조심해야 할 대목이 있었으나 G4 V8은 훌륭했다. 운전위치는 변함없었고, 울부짖는 V8은 아주 매끈했으며, 구식 ZF 자동변속기는 빈틈이 없었다. 이스트너 일대의 오프로드를 휘몰아치고 솔리헐로 가는 90km 코스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런 차를 몰고 연비에 신경을 쓰기는 어려웠다. 연료탱크는 95L. 

 

디스커버리 3이 솔리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기 58 플레이트로 주행거리는 13만km. 오너는 재규어 랜드로버(JLR)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는 루시 니콜스. 그녀의 임무는 차량생산공정을 예측하고(정교한 소프프웨어의 도움을 받아), 그 공정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우리에게 너그럽게 차를 빌려줬다. 지난해 3월 낡은 레인지로버를 대체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 팔아 고른 귀중한 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차를 몰고 솔리헐에서 펜리스까지 320km를 달렸다. 주행성능은 아주 좋았다.

 

북쪽으로 가기 전에 S2를 나와 세련된 S3(위)으로 갈아탔다

5인승 또는 7인승 ‘가정용’ 4×4에 충실했지만 이전의 모델과는 확실히 달랐다. 더 컸고, 더 당당했으며, 네바퀴에 독립 에어 서스펜션을 달았다. 파워트레인은 V6 2.7L 디젤 엔진(그보다 적게 팔렸지만 가솔린 엔진도 있었다)에 6단 자동변속기가 조화를 이뤘다. 또한 상시 네바퀴굴림 시스템에는 수많은 전자장비가 들어가 바퀴를 개별적으로 조율했다. 때문에 험로주행 성능이 아주 탁월했다.

‘제품 디자인’은 첫날부터 논란을 불렀다. 물론 나는 예외였지만…. 나한테는 언제나 걸작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디스커버리 3의 디자인에 대해 비난했다. 특히 앞뒤 문짝에 스웨이지 라인을 넣지 않은 것과 비대칭 분할 테일게이트를 꼬집었다.

 

S3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도로를 달린 뒤 스코틀랜드로 가는 마지막 구간에 들어섰다

그런 논평, 특히 미국의 반응은 랜드로버 마케팅팀에 압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디자인 총수 게리 맥거번을 설득했고, 맥거번은 한층 부드러운 디스커버리 4를 빚어냈다. 우리가 에딘버러까지 마지막 230km를 몰고간 바로 그 차였다. 맥거번은 실내를 좀더 럭셔리하게 바꿨다. 그리고 단조로운 3개 바 그릴은 한층 세련된 메쉬 타입 그릴로 변경했다.

디스커버리 3에서 4로 바뀌자 판매량은 부쩍 늘었다. 그런데 차를 몰아본 결과, 주행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와 3의 격차는 꽤 컸지만, 3에서 4로의 발전은 미미했다. 레인지로버처럼 디스커버리 3은 하룻밤에 특별한 4×4의 하나가 됐다. 드라이버의 일상적인 요구가 오프로드에서 이룬 엄청난 성과에 비해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차는 세련된 고속도로 승차감을 곁들인 매끈한 크루저였다. 하지만 거친 지형에서는 한계에 도달하기 훨씬 전부터 드라이버에게 공포를 안겼다.

 

디스커버리 4는 디젤 V6을 2.7L에서 3.0L로 키웠다. 세련미를 더했고, 도로소음을 거의 0으로 줄였다. 본질적으로 아주 우수한 차였고, 실제로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번 5세대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기존 강인했던 자태를 레인지로버처럼 날씬하게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1~4세대의 열렬 팬들을 잘 설득해야 할 것이다.

 

기자가 노트북에 휘갈겨 쓴 내용이 뒷날 심사숙고한 내용보다 대상을 더 잘 요약할 수도 있다. 이스터너에서 디스커버리 1을 몰고 몇 킬로미터 달렸을 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이 차에 올랐을 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차에서 내린 뒤에도 이 차가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 탔던 어떤 디스커버리도 이보다 마음을 빼앗진 못했다. 

 

디스커버리 존

4구간에 걸친 디스커버리 릴레이 방식에 따라 플리머스에서 에딘버러로 갔다. 그 중간에 이스트너 캐슬의 개발 트랙과 솔리헐의 랜드로버 생산공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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