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어 디자인한 그레고리 귀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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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어 디자인한 그레고리 귀욤
  •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
  • 승인 2017.08.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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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욤에 따르면 기아는 BMW 및 메르세데스와 맞설 준비가 됐다

기아의 유럽 디자인 총책 그레고리 귀욤은 7년전 콘셉트로 시작된 프로젝트에 완전히 매료된 듯했다. 그는 기아 신형 스팅어의 우아하고 정교한 뒷바퀴굴림 프로포션을 설명하고 있었다. 대상은 곧 시장에 나올 4도어 GT. 귀욤은 이 차가 기아의 ‘패러다임 변화’를 완성할 계기가 되리라 굳게 믿고 있다. 뛰어난 프로포션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다. 거기서 출발해 잘생긴 차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신형 스팅어 옆에 서자 레이아웃의 핵심적 면모가 뚜렷했다. 긴 보닛, 짧은 앞 오버행, 뒤까지 이어진 낮은 루프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넉넉한 대시보드-액슬 규격이 그 안에 강력한 세로배치 엔진을 놓게 했다. 이 엔진이 뒷바퀴 또는 경우에 따라 네바퀴를 굴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기아는 물론 르노, 포드와는 영 딴판이다. 그들은 일상적이고 앞머리가 무거우며 앞바퀴굴림으로 모든 자동차시장의 틈새를 파고든다. 그와는 달리 스팅어는 구체적으로 마니아를 겨냥한 본격적인 드라이빙 머신. BMW 4시리즈 그란 쿠페와 아우디 S5 스포트백과 맞선다. 스팅어는 톱모델이 V6 365마력, 제로백 5.1초에 최고시속 257km. BMW M3과 메르세데스-AMG C63 같은 유럽의 최강 세단 바로 밑을 파고 든다. 사실 독일 라이벌보다 조금 크다. 귀욤은 스타일과 공간에서 크기를 중시한다. 따라서 스팅어는 3시리즈보다 길이는 200mm, 휠베이스는 약 100mm 길다. 높이는 그보다 58mm 낮다. 

 

공간과 안락성은 스팅어의 GT 정신에 중대한 요소다

귀욤은 어린시절부터 자동차를 사랑했다. 그는 1970년대 초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마세라티 기블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에 따라 스팅어의 당당한 프로포션과 파워를 빚어낼 수 있었다. 귀욤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기블리의 디자인에서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성격에 관심을 기울였다. 기블리는 유럽 전역을 아주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가 만들기로 한 차의 정신과 일치했다.”

스팅어를 처음 봤을 때 기아가 오래 전에 제작에 들어가지 않은 까닭이 궁금했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기아 GT 컨셉트와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 기간 기아는 SUV와 소형차를 앞세워 탁월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귀욤은 기아의 뛰어난 디자인 시대의 선구자로 꼽힌다. 역시 혁명의 지도자로 평가받는 동료 피터 슈라이어보다 기아에 약간 먼저 들어왔다. 

귀욤(왼쪽)은 스팅어의 뒷바퀴굴림 프로포션을 자랑했다

그러나 귀욤은 차를 만들기 이전에 검토할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스팅어와 같은 차를 선뜻 만들기는 쉽지 않다. 먼저 타이밍이 맞는지를 철저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일부 유럽 최고와 맞붙을 감성적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신뢰를 쌓았는지 짚어봐야 했다. 이제 우리는 그 단계에 도달했다고 믿는다.”

아울러 스타일에 어울리는 속살을 담아내는 게 중요했다. 한국차가 과거에 성취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래서 기아는 알베르트 비어만을 엔지니어 총책으로 맞아들였다. 그는 전직 BMW M 디비전 총수. 귀욤은 스팅어 프로토타입에 대한 비어만의 첫 반응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좋다. 우리는 스타일에 어울리는 성능을 담아내야 한다.”

 

우리는 기아의 유럽 디자인 본부에서 귀욤을 만났다. 그는 달마다 한국을 왕래하지만 으레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바라보는 스튜디오는 5층에 있었고, 천장은 2층 높이였다. 거대한 창문으로 자연광이 쏟아지고, 도시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날 귀욤은 우리에게 3개 모델을 보여줬다. 첫째 오리지널 GT 컨셉트, 둘째 대안이 될 디자인 디테일을 찾아낼 과도기적 풀사이즈 모델, 셋째 거의 완성된 후기 프로토타입. 셋째는 비어만과 기술팀이 영국에서 도로시험을 했고, 지난달 우리 <오토카>는 시승 기회를 잡았다. 기아는 영국 도로를 요리할 수 있는 차라면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고 믿고 있다.

 

정서적 스타일이지만 적잖이 자제하려 노력했다

게다가 초기 콕핏의 황금 시트가 경이적이었다(“우리가 차원이 다른 무엇을 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양산단계에서 그대로 살린 드라이버 중심의 기질, ‘한층 아날로그적이고 정직한’ 원칙도 빛났다. 파워트레인은 잘 알려졌다. 휘발유 엔진 둘과 디젤 하나. 다같이 8단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를 통해 전형적인 유럽 듀얼 클러치 세팅을 조작한다. 그와 함께 브렘보 앞브레이크, 톱모델의 경우 앞뒤 크기가 다른 19인치 휠과 새로운 어댑티브 댐퍼로 무장했다. 말하자면, 고속차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우리는 영감을 불어넣은 기욤과 함께 차를 둘러봤다. 우아한 쿠페 테일 아래 두드러진 리어 디퓨저와 섬세하지만 강력한 엉덩이와 반사경과 연결된 테일램프를 비롯한 정교한 디테일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에어스쿠프는 기아의 고전적인 ‘타이거 노즈’ 그릴의 품격을 해치지 않도록 한결 자세를 낮췄다. 

귀욤에 따르면 이처럼 정서적 모델에도 뒤 해치를 제거하는 등 디자인을 자제해야 했다. “우리는 패스트백 스타일을 선택했다. 그러나 해치백의 복잡한 구조와 무게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동작형 뒷스포일러를 피했다. 무게를 더하고 복잡할 뿐아니라 뒤 셔트라인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한데 앞바퀴 뒤의 오리지널 콘셉트 환기구(기욤은 ‘호흡기’라 했다)는 그대로 지켰다. 실제로 휠아치의 공기압을 줄이기 때문이었다. 

 

귀욤은 코카콜라병 스타일을 무척 좋아한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스타일에 익숙해질수록 뚜렷이 드러났다. “이 차의 전체적인 성격을 대표한다. 비교적 섬세하지만 강력하기도 하다.” 귀욤이 우리 대화를 마무리했다.

 

기존 원리를 무너뜨린 5대 모델

 

아우디 100(1982년)

1960년대부터 아우디 100은 시장을 공략했다. 아주 미끈한 C3 모델이 탁월한 공력성능으로 고객을 사로잡았다. 아울러 아우디가 지금까지 이어받는 스타일을 개척했다.

 

포드 시에라(1982년)

속기 쉬운 오너에게 조잡한 차를 판다는 비난에 시달린 포드가 만든 좋은 차. 뒤쪽에 독립 서스펜션을 달았다. 몬데오가 뒤를 이었고, 그 나머지는 모두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다.

 

재규어 XF(2007년)

영국 메이커 재규어가 2세대를 건너뛰었다. 새로운 핵심 세단에 맞고, 전체 라인업의 미래지향적 기초를 찾기 위해서였다.

 

메르세데스 190E(1982년)

요즘 프리미엄 메이커는 곧잘 주류 시장에 뛰어든다. 그러나 벤츠는 35년전에 벌써 190E를 앞세워 패밀리카의 품질과 세련미를 크게 끌어올렸다. 

 

토요타 프리우스(1998년)

보수적인 차의 대량생산 메이커로 이름난 토요다. 2여년전 다른 어느 메이커에 앞서 하이브리드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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