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문라이트- 후안의 임팔라, 샤이론의 커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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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문라이트- 후안의 임팔라, 샤이론의 커트라스
  • 신지혜
  • 승인 2017.06.3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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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눈은 조급하고 다급하다. 소년은 또래들에게 쫓기고 있다. 같은 피부색, 같은 나이, 같은 학교…. 도대체 소년은 왜 쫓기는 걸까. 후안은 우연히 그 소년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음으로 소년을 받아들인다. 

흑인들이 사는 동네. 마약과 알콜로 찌든 동네. 그곳에 후안은 금붙이를 잔뜩 걸치고 정기적으로 나타난다. 비록 마약거래를 하지만 나름의 철칙이 있고 자기 구역에서 험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과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소년이 또래들을 피해 숨어들어간 곳은 후안의 마약창고였다. 소년을 불러낸 그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 질문을 몇 가지 던지고는 너털웃음과 함께 먹을 것을 사준다. 많은 질문을 담은 커다란 눈망울과 다르게 굳게 다문 도톰한 입술은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꼬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후안은 여자친구 테레사의 집에 소년을 데려가 잠자리를 제공해준다. 그렇게 후안과 테레사는 소년의 정신적 지지자, 의사부모가 된다. 

소년의 이름은 샤이론. 흑인이며 알콜과 약에 찌든 엄마와 산다. 어리고 작은 몸집에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소년의 이름은 샤이론. 그에겐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있고 전혀 상관없는 남이지만 따뜻하게 받아들여준 후안과 테레사가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소년에게 말을 걸어주고 믿어준 소년 케빈이 있다. 

 

후안이 샤이론에게 해준 말은 의미심장하다. 달빛 속에서 흑인 아이들은 파랗게 보인다는 말. 검은 피부를 가졌기에 차별을 당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을 갖기 힘든 소년에게 후안은 푸른빛을 선사한 것. 그 이야기는 어린 샤이론의 마음에 가 닿는다. 그렇게 후안은 소년에게 롤 모델이 된다.

샤이론의 일생에 세 번, 크게 다가오는 케빈. 소년 케빈은 거리낌 없이 샤이론에게 다가와 “너는 강하다”고 말해주었다. 고등학생이 된 케빈은 역시 스스럼없이 샤이론에게 다가와 “너도 강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샤이론과 케빈의 ‘강함’은 다른 소년에 의해 이용당하고 두 소년의 삶은 전기를 맞는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수 년 전의 후안의 모습이 된 샤이론은 우연히 걸려온 케빈의 전화를 받고 그를 찾아간다.

<문라이트>는 간결하고 단순한 구성으로 샤이론의 시간을 유년기와 청소년기, 어른이 된 시기를 보여주면서 생물학적 엄마와 의사부모인 후안과 테레사 그리고 단 몇 번의 만남이지만 인생을 관통하는 큰 의미를 갖는 케빈과의 관계를 통해 샤이론의 성장기를 그려낸다. 

대단한 재능이다. 이렇게 간단한 플롯들로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관계들을 깊이 그려내다니. 더구나 영화의 종반부,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바바라 루이스(barbara lewis) 의 ‘헬로 스트레인저’(hello stranger)는 두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기가 막히게 잡아준다. 

후안의 자동차는 파란색 쉐보레 임팔라. 언제나 누구에게나 당당했던 후안처럼 그의 자동차는 파랗다. 달빛 아래 서있는 검은 아이들처럼 푸른빛이다. 푸른 계열이 주는 느낌처럼 시원하고 투명하며 거침없고 단단한 쉐보레 임팔라는 후안과 꼭 닮아 있다. 

소년 샤이론을 태운 임팔라는 소년의 보호막이 되어주고 테레사의 집 - 안전하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소 - 로 소년을 인도했으며 차의 주인인 후안을 소년의 버팀목으로 롤 모델로 삼을 수 있게 해준다. 

 

어른이 된 샤이론은 예전 후안의 모습을 옮겨 놓은 듯하다. 몸 여기저기에 걸친 금붙이, 후안의 차 대시보드에 있던 것과 같은 장식물…. 그런 샤이론의 자동차는 검은색 올즈모빌 커트라스. 후안과 비슷하게 꾸몄지만 모든 것을 덮는 색인 검은색 올즈모빌은 후안이 아닌 샤이론을 보여준다. 또한 케빈에게 블랙으로 불렸던 샤이론을 떠올리게 하면서 검은색 올즈모빌은 샤이론이 이전세대 ‘부모’들을 떠나 자신의 세대인 케빈과 관계를 굳게 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외양과 차종은 달라도 후안과 샤이론은 닮아있어서 차의 장식물도 스스로를 꾸민 장식물도 내면도 비슷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전혀 닮지 않은 쉐보레 임팔라와 올즈모빌 커트라스에게서 두 사람을 관통하는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시네마 토커 신지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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