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항해, BMW M760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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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항해, BMW M760Li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7.06.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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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모터쇼 BMW 부스의 중앙에서 카리스마를 뽐내던 BMW M760Li를 모터쇼가 끝나자마자 공도에서 만난다. 쇼윈도 속의 멋진 슈트를 꺼내 입고 거리를 걸어가는 기분이 이럴까. 약간의 설렘과 뽐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그런 기분 말이다. 하지만 V12 엔진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인적 드문 먼 곳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떠나기 전에 먼저 도심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어쨌든 자동차는 일상에서 출발해야 하는 존재이므로.

 

기함이라는 성격이 그렇지만 기함 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은 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M760Li는 6세대 7시리즈가 이룬 기술적 혁신의 토대 위에 가장 강력한 심장인 V12 엔진을 얹었다. BMW V12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올라가는데, 1987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750i/750iL을 통해서였다. 당시 BMW가 새로 개발한 V12 5.0L 엔진은 BMW 최초의 12기통 엔진이면서 라이벌인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1991년 600 SEL)보다 4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외관에서 기존 7시리즈와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M 퍼포먼스로 다듬은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아연도금 세륨 그레이로 마감한 키드니 그릴 프레임, 트윈 테일 파이프 등과 차체 곳곳의 V12 배지 및 레터링이 특별함을 더한다. 플랩 컨트롤이 내장된 M 스포츠 배기 시스템 또한 준비되었다. 하지만 V12라는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M760Li를 움직이기 시작할 때 차창 밖으로 꽃가루가 흩날렸다. 도심의 봄은 언제 피었다 지는지 모르는 꽃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차안에서 즐기는 작은 여유가 때로 소중한 시간이 되는 이유다. 출발은 부드럽고 조용하며 가뿐하게 이루어진다. V12의 웅장함은 시작부터 드러나지는 않는다. 골목길에서 요란스럽게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초기 감각은 보통의 고출력 대형 세단의 그것과 특별히 다르지는 않다. 다만 좁은 길에서도 큰 차체를 의식하지 않을 만큼 민첩하고 정교하며 느긋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느긋함 안에 숨겨진 609마력의 힘을 얼마나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듬직함이 남다른 것은 분명하다. 신형 7시리즈는 구형보다 커졌지만 기계식 카본파이버 강화 폴리머(CFRP)를 써 더 가볍고 강성이 높아진 차체로 놀라움을 주었다. 기본형보다 140mm 더 긴 롱 휠베이스 모델이지만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다. 화려한 뒷좌석에 잠시 눈길을 피하고 스티어링 힐을 잡으면 큰 차체를 의식하지 않게 되는 운전 자세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도심을 벗어나며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싣는다. 평소의 움직임은 뒷바퀴굴림 그대로. 가속 상황에 따라 네바퀴에 골고루 힘이 분배되는 x드라이브는 넉넉한 파워 덕분에 더 안정적인 접지력으로 노면을 움켜쥔다. 

 

가속은 에코 모드에서도 여유 있지만 컴포트를 거쳐 스포트 모드로 옮겨가는 손길을 붙잡긴 어렵다. 붉은색으로 물든 계기판, 옆구리를 툭 치며 가속을 부추기는 느낌, 시트가 조여지며 더불어 차체도 긴장감이 주어진다. 폭발적인 가속감은 무엇보다 안정적이다. V12 엔진특성에 맞게 프로그래밍 된 자동 8단 변속기는 즉각적인 응답성으로 속도에 스며든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패들 시프트의 촉감도 스포티한 기분을 북돋는다. 사운드 역시 야성의 소리로 탈바꿈한다. 일상 속도에서 드라이브 모드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속도의 영역이 달라질 때 그 차이는 또렷해진다. 그렇다고 드라이브 모드를 항상 속도의 기준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서스펜션의 강도에 포인트를 주고, 좀 더 부드러운 것을 원할 때 컴포트 플러스를 선택하는 것이 더 능률적이다. 또 하나 어댑티브 모드는 본인의 운전 경험을 좀 축적시킨 다음 세팅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역시 낮은 rpm에서 발휘되는 엄청난 토크다. M 퍼포먼스의 손길이 닿은 V12 6.6L 트윈파워 터보 엔진은 1550rpm에서 최대토크 81.6kg·m를 낸다. 가속은 꽃잎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보다 빠르다. 섬광 같은 가속력에 터보랙이란 단어는 끼어들 틈이 없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3.7초로 동급의 럭셔리 스포츠 세단 가운데서도 압도적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250km에서 제한되지만 시속 330km까지 확장된 계기판이 잠재력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빠르게 달라지는 차창 밖 풍경처럼 속도를 높여갈수록 한층 탄탄해지는 섀시를 느낀다. 적응형 댐퍼는 고속에서 그립을 더욱 높여준다.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에어 서스펜션은 어느 영역에서나 균형적인 승차감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고속에서의 그립 뿐 아니라 중저속에서 거친 노면이나 둔턱을 타고 넘을 때도 실내에 거의 충격을 전해주지 않았다.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IAC) 시스템은 뒷바퀴의 조향각을 조절해 앞바퀴의 조향각에 좀 더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이는 BMW 최고 장기인 핸들링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차체의 크기를 감안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핸들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쾌적함을 유지하면서도 스포티한 성격을 발휘하는 것이 7시리즈의 기본 방향이지만 M760Li는 그런 성격을 극대화하고 있다. 어느 순간에도 정숙함과 안정적인 자세는 서로 엇갈리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편리해진 터치 디스플레이 방식의 i드라이브 조작 시스템은 이제 흡족함을 주지만 지도 그래픽은 좀 아쉬움이 있다. 제스처 컨트롤은 여전히 연습이 필요한데 간단한 손동작으로 바워스&윌킨스의 기막힌 사운드를 조절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용해본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플러스 시스템은 자율주행차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V12 엔진에서 이 기능을 사용하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사용해보면 또 그 편리함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자동차는 일상의 존재이므로. 그리고 잠시 뒷좌석의 호사에 빠져보았다. 버튼을 하나 누르면 앞좌석이 멀리 물러나고 등받이도 눕혀지며 발받침대까지 스르르 올라와 완전 릴렉스한 자세가 된다. 지상의 퍼스트 클래스란 수식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다만 이때 물러난 앞좌석은 조금 조절이 필요한 데 운전석에서 사이드 미러가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사지 기능 그리고 와인 냉장고가 있다. 문제는 트렁크가 좁아진다는 점인데 따로 떼어낼 수도 있다. 

 

효율성의 시대를 앞서가는 BMW지만 그 본성은 열정적인 운전자를 위한 브랜드라는 것을 말해주는 차가 바로 M760Li. 앞좌석과 뒷좌석 모두 만족스러운 가치에 특별함을 더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M760Li와 함께 달린 시간은 먼 대양을 항해한 기분이다. 거친 파도를 제압하는 것은 그보다 강한 힘. 기함이라는 의미를 저절로 수긍하게 되는 풍요로운 항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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