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델마와 루이스 - 포드 선더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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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델마와 루이스 - 포드 선더버드
  • 신지혜
  • 승인 2017.05.2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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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삶이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되는 순간부터 고단함과 피곤함과 갈증과 갈망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루이스가 바로 그런 처지에 놓여있었다. 어릴 때 남편과 사랑에 빠져 오직 서로만 바라보고 결혼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부부의 사이는 서먹하고 낯설어져 버렸다. 하루 종일 남편을 기다리는 루이스지만 남편은 뭐가 그리 바쁜지 더 이상 루이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집안에 꼼짝 않고 있기를 바라는 상황이니 루이스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루이스는 델마와의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부담스럽기만 하다. 차일피일 남편에게 여행허락을 받기를 미루고 또 미루다가 여행 당일 델마와 함께 훌쩍 떠나버린다.

우리는 그들의 전사를 알지 못한다. 지금 그들의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남들과 비슷한 소녀시절을 보내고 남자를 만나 서로를 사랑하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바깥에 나가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에서 집을 꾸미고 돌본다. 이것이 루이스의 일상이며 삶이다. 그녀에게 위험하거나 특이하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을 정도로 평범하고 굴곡 없는 일상이다. 

혼자 살면서 식당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주체적으로 일상을 꾸려간다. 자기의 주관과 생각이 분명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델마의 일상이며 삶이다. 그녀는 루이스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 삶의 모습도 정반대로 보이지만 그녀 역시 어떤 특이하거나 비일상적인 경험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포드 선더버드가 오픈카였기 때문이리라. 루이스가 해방감을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웃고 떠들고 다리를 대시보드에 올리고 얇은 셔츠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더구나 절친인 델마와 둘이서 여행을 가는 것이니.

아니, 아니다. 루이스가 그렇게 들뜨고 신난 것은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불쑥 떠나온 자신이 불안하면서도 해방감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단 며칠의 여행이지만 지긋지긋한 남편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그렇게 들뜬 루이스의 모습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 우리의 우려는 맞아떨어져서 위험에 처한 루이스를 구하려다 델마는 그만 살인을 하고 만다. 게다가 길에서 만난 젊고 잘생긴 남자에게 어렵게 구한 돈을 도둑맞게 되니 델마와 루이스가 망연자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포드 선더버드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이 모든 여정에 함께 한다. 델마가 언제부터 이 차를 썼는지는 모른다. 낡은 차, 비싸지 않은 차. 그러나 델마에겐 유용한 것이었음이 분명한 이 차는 델마와 루이스를 태우고 긴 여행을 떠나며 또 한번 델마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준다. 

델마의 우발적 살인을 목격한 것도 당황한 델마와 겁에 질린 루이스를 태우고 길을 달려준 것도 선더버드이며 그들의 돈을 갖고 달아난 청년을 마지못해 태우고 미심쩍은 눈초리로 남자를 바라본 것도 선더버드이다. 현상수배되어 도망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을 거두고 함께 힘을 내주고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달려준 것도 선더버드인 것이다.

델마의 선더버드는 그래서 그들의 가장 미더운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어주었고 그들의 모든 행동과 마음을 받아주는 안식처가 되어주었으며 그들이 허공을 향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을 때 마지막 힘을 다해 허공으로 날아올라 주었던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 재개봉 러시를 타고 거의 25년만에 보여지는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델마와 루이스와 함께 끝까지 그녀들의 곁에 서서 마지막을 함께 해준 선더버드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포드 선더버드가 아니었다면 델마와 루이스의 여행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시네마 토커 신지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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