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생활의 즐거움, BMW 5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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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생활의 즐거움, BMW 5시리즈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7.05.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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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대 5시리즈와의 첫 만남이 530d라는 게 우선 마음에 들었다. 휘발유 자연흡기 모델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래도 직렬 6기통이 아닌가. 다운사이징 바람이 열병처럼 휩쓸고 간 자동차 시장에서 6기통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은 요즈음이다. 물론 기막힌 성능을 발휘하는 4기통 엔진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꼭 7년 만이다. 6세대 5시리즈를 처음 만난 때는 2010년 2월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였다. 비 내리는 에스토릴 서킷을 달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전통적으로 5시리즈는 직렬 6기통에 천착해 왔다. 다른 브랜드에서 공간과 중량면에서 유리한 V6으로 달려갈 때도 BMW는 직렬 6기통을 고집했다. 그것은 결코 V6이 따라올 수 없는 부드러운 회전력 때문인데, 진동이 회전력의 2배로 나타난다고 했을 때 그만큼 진동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BMW의 직렬 6기통 엔진을 ‘실키 식스’(silky six)라 불렀다. 단지 비단결 같은 부드러움 때문에 ‘실키 식스’의 명성이 드높았던 것은 아니다. 

 

BMW는 무거워진 앞부분을 감안해 뒤 트렁크 바닥에 배터리를  배치하는 등 앞뒤 중량배분이 50:50에 가깝도록 만들었다. 운동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밸런스가 중요하기 때문. 이를 바탕으로 한 정확하고 날카로운 핸들링은 BMW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BMW는 편안한 속도감을 전해주는 트랙션과 민첩한 핸들링 등 뒷바퀴굴림(FR)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데 재능을 발휘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드라이빙의 즐거움, 즉 ‘펀 투 드라이브’는 BMW의 기업 슬로건이 되었고 오늘날 BMW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트렌드에 따라 BMW의 칼날이 과거보다 무뎌졌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있다. 7세대 5시리즈는 과연 어떤지 만나보자. 

 

마침내 5시리즈도 앞트임 성형시술을 받았다. 글래스 헤드라이트 커버가 키드니 그릴과 연결되어 차폭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새롭지만 이미 다른 BMW 모델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져서인지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패밀리룩이다. 신선함을 찾기보다는 성숙함 내지는 세련된 인상이다. 메르세데스 E클래스가 S클래스를 닮아가듯 5시리즈 또한 7시리즈를 닮아가는 듯하다. 차체도 커졌다. 길이는 29mm, 너비는 8mm, 높이는 4mm 높아졌다. 휠베이스는 7mm 늘어났다. 그럼에도 무게는 최대 115kg까지 줄었다. 알루미늄과 고강도 강철 비중을 높인 결과라 한다. 

짧은 앞 오버행은 변함없이 스포티한 성격을 드러낸다. 하나의 개체로 보았을 때 차체가 큰 느낌은 아닌데, 중형차급의 다른 차 옆에 섰을 때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옆에서 보면 실루엣이 길지만 차체의 풀어지지 않는 긴장감이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이를 살리는 것은 강한 캐릭터 라인과 특유의 호프마이스터킥 등 디자인 디테일이다. L자 형태의 테일램프는 약간 슬림해진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뒷모습은 좀 더 넓고 낮아 보인다. 차체를 키웠지만 무게 중심을 낮게 보이도록 하는 이유는 새로운 세대에서도 5시리즈가 지향하는 지점은 운동성능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공기저항계수가 0.22Cd(가장 효율적인 조건에서라는 단서가 붙지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전 세대보다 10% 줄인 수치. 한 세대를 더하는 일에 얼마만한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겉보기가 비슷해 보인다고 내용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까닭이다. 신형 5시리즈에는 액티브 에어 플랩 컨트롤이 전 모델에 기본으로 장착된다. 라디에이터 공기 흡입구는 평소 닫힌 상태로 있다가 달리면서 더 많은 냉각 공기가 요구될 때만 열린다. 프런트 에이프런의 에어 커튼 또한 휠 아치에서 발생하는 난류를 줄여 공기흐름을 원활하게 만든다.     

실내 역시 겉보기에 새로운 점은 없다. 하지만 소재 품질이나 정교함에서 한층 세련되고 풍성해진 느낌을 준다. 정보를 읽어들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부분은 커지고, 계기를 다루기 위해 손에 만져지는 부분은 더 촉감이 좋아졌다. 투영 면적이 70% 넓어진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각종 정보를 담아 오직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보이고 만져지는 부분 뿐 아니라 몸 닿는 부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의 기능면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공간감도 확실히 좋아졌다. 시트는 단단하고 안락하면서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다.   

 

   
 

실내에서 인상적인 변화중 한 가지만 꼽으라면(어디까지나 한국적 관점에서) 내비게이션의 목적지 검색이 편리해진 것이다. 기존 다이얼을 돌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방식에 더해 한글 자모가 한 화면에 떠 있고 손가락으로 터치해 입력할 수 있게 된 것. 7시리즈에서 먼저 선보였던 모션 컨트롤 기능과 스마트폰 무선충전 기능도 추가되었다. 

시승차는 530d M 스포츠 패키지 모델이다. M 에어로다이내믹 패키지는 전면부의 대형 공기 흡입구, 사이드 스커트, 후면부의 디퓨저 스타일, 직사각형 듀얼 머플러, 그리고 낮아진 M 스포츠 서스펜션으로 구성된다. 보디컬러는 블루스톤. 타이어는 앞 245/40 R19, 뒤 275/35 R19 굿이어를 신었다. M 로고가 박힌 브레이크 캘리퍼도 차량 색상과 같이 깔맞춤한 블루다.   

 

손아귀를 꽉 채우는 스티어링 휠이 충만한 기분을 준다. 두툼하면서 밀착되는 그립감이 좋다. 에코 프로 모드에서 먼저 출발이다. 이 모드에서라면 같은 연료량(가득 찬 상태)으로 8.1km를 더 주행할 수 있다는 표시가 뜬다. 계기판은 푸른색으로 가운데 배터리 충전 구간이 있다. 계기의 바늘은 현재 상황을 가리키느라 분주하다. 마치 하이브리드 카를 모는 기분이다. 일단 출발한 다음에는 디젤의 징후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조용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에코 모드라고 가속이 굼뜬 것은 아니다. 그저 한도를 낮추어 제어할 뿐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 계기판이 보여주는 분위기만으로 무언가 스마트한 운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컴포트 모드로 바꾸니 정상적인 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속도계는 시속 260km까지, 타코미터는 6000rpm까지 표시되는데, 레드존은 5500부터다. 디젤치고는 조금 높은 영역인데 그만큼 고속으로 밀어부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실질적인 주행은 대부분 2000rpm 이하에서 이루어진다. rpm을 3000으로 올리면 속도는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빠르게 넘는다. 제한속도를 지키는 데는 1500rpm이면 충분하다. 

 

스티어링 감각을 느끼려면 차선유지 기능 등 보조장치를 꺼야 한다. 속도에 따른 무게감은 물흐르듯 유연하다. 유연한 반응은 정확하고 편안한 핸들링을 뒷받침한다. 너무 쉬운 가속과 부드러움 탓에 운전이 심심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매끈한 6기통의 회전력은 시종일관 진중함을 잃지 않고 탄력적인 댐퍼의 움직임과 보조를 잘 맞춘다. 속도를 높여가는 과정은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 덕을 본다. 토크 곡선은 빠르게 치솟았다가 정상에 오래 머물지는 않고 하강하는데 그 순간에 출력 곡선이 힘을 내며 바통을 이어받는다.        

 

이번엔 스포트 모드다. 계기는 붉은색으로 물들고 M 로고가 드러나 시각적인 긴장감을 높여준다. 마치 일반 도로에서 서킷으로 진입한 순간 같은. 그리고 사이드 볼스터가 조이면서 로켓같은 추진력으로 밀고나간다. 트윈터보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강력한 추진력을 뒷받침한다. 컴포트 모드에서도 그렇지만 3000rpm 이상 올라가면 노는 물이 달라진다. 더 한층 탄탄해진 하체는 네 바퀴를 좀 더 움켜쥐며 도로와의 밀착력을 높여나간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순간의 접지력도 더욱 끈끈해지는 느낌이다. 파워가 강화된 순간이나 한 단계 더 고속으로 들어가도 트랙션은 편안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드라이빙 어스스턴트 플러스’ 시스템의 ‘인텔리전트 스피드 어시스트’ 기능이다.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한 상태에서 이 버튼을 누르면 (앞차와의 간격조절도 몇 단계로 설정할 수 있는데, 너무 간격이 좁으면 살짝 불안하다) 앞차의 속도에 반응하며 가속과 감속을 스스로 해낸다. 차선 유지 기능에 자동 조향 버튼까지 누르면 준 자율주행 상태가 된다. 말하자면 자율주행의 레벨 2 단계다. 차선 유지 기능은 비교적 차선을 잘 따라가지만 일부 구간에서 한쪽으로 살짝 치우칠 때가 있다.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또한 방향지시등을 켜면 차가 저절로 그쪽 방향으로 가며 차선을 바꾼다. 자율주행 레벨 2 기능을 지닌 다른 차에서 볼 수 없었던 기능으로 신기했다. 하나라도 더 앞서가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골목길로 진입할 때 깜박이를 켜면 조금 빠르다싶은 속도로 코너링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런 스포츠 본능이라니. 편리하지만 아직 주의력이 필요한 단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의 흐름이 느린 구간에서 모든 기능을 켜놓고 달렸다. 팔짱을 끼고 발을 페달에서 뗀 상태로 여유를 부려본다. 옆 차선을 달리는 키 큰 차의 운전자가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두 손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스티어링 휠에 대한 통제권을 잠시 놓는다는 게 불안했다. 아무튼 인식은 경험에 비례한다. 자율주행에 다소 부정적이었던 인식은 점점 이런 경험을 통해 바뀌어 가는 것이다. 스티어링 휠에서 오래 손을 떼고 있으면 경고 신호가 나타난다.  

따라가던 앞차가 정지하면 속도를 줄이고 저절로 멈춰 선다. 다시 앞차가 출발하면 시동만 켜질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액셀러레이터를 살짝 밟아 깨우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앞차가 빠른 속도로 달아날 경우 이를 따라가는 속도가 느리므로 적극적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한다. 속도는 손가락으로 +,- 버튼을 조정하면 된다. 도로제한속도가 헤드업디스플레이에 나타나므로 그에 맞춰 제한속도를 세팅하면 편리하다. 시내 도로에서 앞차를 따라가는 것은 좋은데 신호등을 읽지는 못한다. 아직 지능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             

 

자율주행까지 마치고 뒷좌석에 잠시 타본다. 쾌적한 분위기로 레그룸에 여유가 있다. 특히 루프 라인에 비해 헤드룸이 여유 있다. 천장을 움푹 들어가게 해 공간을 키웠다. 앞뒤 도어 포켓에는 1L 페트병을 따로 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앞 도어포켓은 깊숙하지만 얇아서 손이 들어가기는 좀 어렵다. 뒷좌석용 송풍구 온도조절 아래 작은 수납공간, 그리고 2개의 시거잭을 마련했다. 차체 밸런스가 좋기 때문에 뒷좌석에서도 흔들림이 적고 편안하다. 트렁크 공간은 이전 세대와 비슷해 보인다. 깊숙하지만 너비는 좁다. 대신 양쪽 사이드에 별도 수납공간이 있다. 마무리와 쓰임새 모두 깔끔한 성격을 드러낸다.              

530d를 통해서 본 7세대 5시리즈는 어느 세대보다 큰 진전을 이뤄냈다. 트윈터보 디젤이지만 ‘실키 식스’의 명성에 손색없는 부드럽고 편안한 속도감, 민첩한 핸들링 등 탁월한 운동성능을 보여주었다. 실내에서의 직관성이 좋아진 것은 물론 더 한층 똑똑해진 자율주행 기능이 놀라웠다. ‘펀 투 드라이브’가 왠지 낡은 구호가 되어가는 요즈음, 7세대 5시리즈는 ‘운전의 즐거움’에서 ‘운전과 생활의 즐거움’이 공존하는 그 다음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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