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터햄 세븐 스프린트, 시간의 날개를 단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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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터햄 세븐 스프린트, 시간의 날개를 단 마차
  • 닉 캐킷(Nick Cackett)
  • 승인 2017.05.0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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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터햄은 복고 스타일의 신형 세븐 스프린트를 우리에게 보내줬다. 그보다 이틀 전 우리 조부모는 몸이 불편하고 치매 기미가 있어 그동안 살던 집을 떠나 요양원에 들어가 간병을 받게 됐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소의 창문에 조부모 집이 매물로 나 붙었고, 직계가족들이 집정리에 들어갔다. 나도 그 자리에 불려갔다. 우리는 60년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산더미같은 잡동사니에서 소중한 추억을 골라냈다. 이따금 가슴 아픈 순간을 제외하고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할아버지 작업장의 어지러운 선반과 낡은 박스에서 온갖 비밀이 쏟아졌다.

 

공장에서 바로 나온 듯한 수공구가 여러 겹의 포장지에 싸인 채로 줄줄이 나왔다. 매우 아름다웠다. 날카롭거나 반들거렸고, 단단하기 짝이 없는 것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 이외에는 목재를 다듬고 짜맞추는 대단한 장인이었다. 당시 잘 만들어 수명이 긴 물건에 붙은 ‘셰필드제’(Made in Sheffield)라는 트레이드마크가 빛났다. 무엇보다 그는 마이크로미터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원자로의 노심이 허술해 보일 만큼 정밀한 물건이었다. 황당하게 무겁고 단조금속의 광채를 발하는 손대패 하나가 있었다. 높이 들고 보려고 하자 건장한 남자인 내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드 해빌랜드 항공기 생산라인에서 일생을 시작한 전기 드릴도 살아 있었다. 제2차대전중 활약한 영국 공군 전폭기 모스퀴토의 모노코크용 발사와 자작나무에 구멍을 뚫던 공구였다. 

 

 

물론 나는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명수라 이런 물건을 실제로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 수집품의 제작품질, 무게와 당당한 위풍에 끌려 몽땅 차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치 거대한 자석처럼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영국을 뒤덮은 2차대전 이후까지 잘 돌아갔다. 그 작업장의 심장인 용광로는 숨을 거둔 지 오래였다. 문득 수십년동안 이 작업장을 분주하게 움직이던 쇳물의 이글거리는 불빛이 떠올랐다. 그들은 세븐 스프린트를 비롯한 수많은 차의 매력적 성격을 뒷받침했다. 그동안 케이터햄은 오직 하나뿐인 제품이 더 빨리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찾는데 골몰했다. 그 바람에 좀더 넓게 주위를 돌아보는 노력이 모자랐다. 그러나 2017년이 되자 케이터햄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세븐이 얼스 코트 모터쇼에 첫선을 보인 뒤 60년이 지난 세월을 되돌아봐야 했다. 

 

스프린트는 그해 로터스 스탠드를 화려하게 장식한 모델을 별로 닮지 않았다. 플레어 앞 윙, 파워코팅 섀시, 목재림 스티어링과 반들거리는 허브캡을 달고나온 이 차는 속살보다는 시대의 본질을 자축하는 역할을 했다. 속살은 현행 엔트리급 160과 다르지 않았다. 스즈키의 3기통 660cc 80마력 엔진이 5단 수동변속기와 짝지었다. 상상력을 휘어잡는 모건 3 휠러처럼 복고적 테마는 정곡을 찔렀다. 

 

디자이너 콜린 채프먼도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돈키호테처럼 파격적이었고, 야성적인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자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투철한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모터스포츠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겨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그가 오픈 스포츠카 레이스를 제의했을 때 60년을 살아남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때가 되자 그 차를 잇속이 밝은 딜러에게 풀어놨다. 그는 외고집으로 살았고, 먼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을 중시했다.

 

세븐의 거미줄 스페이스프레임과 압착 알루미늄 패널은 그보다 훨씬 얇은 로터스 마크 Ⅵ에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레이싱 로터스 일레븐에서 완성됐다. 물리적인 스트레스와 구조상 발생하는 무게가 일으키는 불변의 위험을 우아하게 해결한 방법이었다. 아울러 만들기에 비교적 값싸고 쉬운 길이었다. 완성차가 아닌 조립용 키트로 팔 때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이같은 창의성과 경량화는 분명 채프먼이 성능중심적 레이싱카에 집착한데서 나왔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세븐은 1950년대 로터스 사내에 넘치던 자신감과 할 수 있다는 야망을 상징했다. 세븐은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꿈꾸고 그렸으며 단시간에 방법을 찾아 만들어냈다. 제2차대전후 10년동안 영국에서 부화한 수많은 기술산업의 기본이라고 할 인간자원 방식이었다. 

 

 

로터스가 얼스 코트에 세븐을 내놨던 바로 그해였다. 멀러드 전파천문대가 케임브리지 교외에 들어섰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번디시 연구소의 천체망원경 시설이었다. 제2차대전의 전시체제가 여전히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지금도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가면 겨자가스를 비롯해 화학무기를 다루던 병기창이 버려진 벙커를 뒤덮고 바람에 날리는 풀밭에 서있었다. 

 

오늘날 퇴역한 망원경은 꼼짝 않고 서 있다. 그 안테나는 광막한 하늘을 겨냥하고 있으나 지금은 우주의 비밀파장에 무심하다. 영국이 가까운 과거에 거둔 과학적 성과처럼 라일의 전파망원경은 한 몫의 엽기였고, 또 한 몫의 박물관 골동품에다 두 몫의 기술적 경이였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작업장을 뒤집어 짜맞추는 것과 같았다. 낡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에서 똑같이 순수했다. 나는 강철 격자를 고스란히 내 침실창문에 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눈부신 겨울날 천천히 스프린트를 몰고 그 앞을 지나치기로 했다. 내 눈은 높은 하늘에 꽂혔고, 내 머리는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 몽상에 잠겼다. 

 

성격이 까다로운 라일은 천문대에 사무실을 차렸다. 캐번디시의 케임브리지 대학 동료들과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1960년대의 오픈카 세븐이야 말로 라일이 자기가 세운 천문대를 바라볼 가장 좋은 전망대였다. 1964년에는 시리즈 2도 나왔다. 초기 1.3L 포드 켄트 엔진은 스프린트의 가슴에서 펄떡이는 3기통 터보 엔진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거대한 구식 컴퓨터 타이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비구조적 운전 스타일은 세대간을 오갈 수 있었다. 스프링 행정에는 여유가 있었고, 스티어링은 가느다랗고 라이브 액슬은 이따금 삐그덕거렸다.

 

멀라드에 들어서자 스프린트는 배경을 이루는 케임브리지셔의 들판과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거기에는 이끼낀 콘트리트와 천체망원경의 50년 묵은 철재구조가 서 있었다. 우리는 다시 2017년으로 돌아와 A11을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스프린트는 세븐 치고도 무척 작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나는 채프먼의 유명한 자유방임적 매너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포트홀 이상의 무엇과 부딪쳤을 때 얼마나 위험한가(철저히 현대적 기준에 따라)를 가늠했다. 

 

그러나 스프린트의 런닝매너는 너무나 쾌적했다. 다른 어떤 케이터햄보다 제한속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디로 가는지 신경을 쓰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스프린트는 목청이 부드러웠고, 역동적으로 경쾌했다. 더 큰 목재 스티어링은 잘 돌아갔고, 팔목이 아니라 손가락끝으로 방향을 잡았다. 

 

흔히 그렇듯 우리 목적지는 힘들이지 않고 빨리 다가왔다. 우리는 서퍼크에서 여행을 마감하기로 했다. 영국공군기지 레이컨히스의 항로에 있는 곳이었다. 미국공군이 영국에 비행군단을 배치했던 마지막 공군기지였다. 그것 역시 2차대전의 유물이었다. 원래 전략공군사령부의 끊임없이 돌아가는 스티어링의 한 개 스포크였다. 지금은 제48 전투비행단의 기지.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F15 이글. 제공권을 장악한 쌍발 마하 2.5 제트전투기가 불꽃을 뿜으며 저무는 하늘로 치솟았다. 그 전투기의 디자인은 1960년대말로 거슬러 올라갔다. 시리즈 3이 세상에 나오던 때와 일치했다. 원래 F15는 공중전 성능을 올리기 위해 더 작고 가볍게 만들었다. 한편 시리즈 3은 케이터햄의 운명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케이터햄 총수 그레이엄 니언이 1973년 로터스로부터 제작권을 사들인 차는 바로 시리즈 3. 그뒤에 더 크고 완전 글래스파이버 시리즈 4가 나왔다. 

 

그로부터 3년 뒤 F15는 1선에 배치됐고, 그뒤 진화를 거듭했다. 10년뒤 대지(對地)공격력을 추가했고, 수많은 외국 공군에 당당히 팔려나갔다. 그 생산라인은 첫 비행이후 거의 50년이 되는 2019년까지 돌아간다. 케이터햄 휘하에 들어간 세븐은 F15의 발전과정을 그대로 본뜨고 있다. 점진적으로 현대화되고, 보다 정교한 서스펜션을 갖추고 공간이 더 넓은 섀시를 받아들였다. 게다가 엔진룸에 들어앉은 심장은 포드→복스홀→로버에서 다시 포드로 돌아왔고, 레이스에서는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이 메이커는 그 이전의 20년간 판매량을 넘는 실적을 거뒀다. 스프린트는 케이터햄의 견인차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굿우드 리바이벌에서 첫선을 보인 지 1주일만에 60대가 모두 팔렸다. 공장에서 만든 160 S보다 5000파운드(약 731만원)나 더 비싸지만 고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오래지 않아 케이터햄이 감상적인 추억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보다 더 좋거나 매력적인 타임머신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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